퀵바

똘똘킴 님의 서재입니다.

음악으로 세계 독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똘똘킴
작품등록일 :
2022.09.16 23:53
최근연재일 :
2022.10.10 1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709
추천수 :
163
글자수 :
137,703

작성
22.09.22 18:00
조회
287
추천
11
글자
13쪽

행사 무대부터 독식(1)

DUMMY

회귀를 한 지 며칠이 지났다.

첫날이 지나고 지난 며칠 간은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회귀 첫날 벌어졌던 소동은 더더욱 한여름날 밤 꿨던 꿈만 같았다.


“휴우~”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35분.

그날을 생각하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내 전생의 집 거실보다 두 배는 더 넓어 보이는 안현의 침실. 난 눈을 뜬 채로 멍하니 천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번에 보는 천정은 시민아파트의 누런 벽지가 아닌, 눈이 부시도록 하얀색 벽지다.


“······.”


부스럭 부스럭

침대에 누우면 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 어찌나 침대가 푹신한 지 팔다리를 자꾸 휘젓게 된다.

청결 상태로 봤을 때 침대 시트와 이불, 베개는 마치 5성급 호텔처럼 매일 세탁되어 제공되는 듯했다.

다시 얻게 된 어린이의 인생. 그런데 전생의 삶과는 180도 다른 신화 기획사 가문의 삶을 얻었다. 부자로서의 특권은 지금의 푹신한 이부자리처럼 앞으로도 지겹도록 누릴 듯하다.


‘그와 동시에 맹수들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

수십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각 파트의 집사들, 수시로 드나드는 신화 기획사의 중역들, 그리고 TV에서 봤음직한 유명 뮤지션들 등.

회귀 첫날 반나절 남짓의 시간동안 믿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고,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향한 수많은 견제의 눈빛을 말이다.

이제 고작 열두살의 어린 아이인데 뭐 이렇게 까지들 하나 싶다. 특히나 동생이라는 녀석, 안욱은 집에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그 눈빛에 살기가 넘쳐났다.


‘내 참. 머리 굴릴 일이 많아질 듯하군.’


생각이 복잡해지자 나는 천정 바라보기를 멈췄다.


‘이런 걸 악마가 선물한 재능이라고 하나?


나는 회귀 첫날 의도치 않게 사람들 앞에서 발휘된 내 젓가락 행진곡 연주를 떠올렸다.

그날의 젓가락 행진곡 연주는 정말이지 악마가 준 재능 그 자체였다.

30년을 넘게 잡았던 전생의 기타.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연습을 열심히 했었다고.

10대 때의 나는 내가 하루에 식음을 전폐하며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연습하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사운드를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죽도록 연습한 덕분에 손가락 테크닉만큼은 헨드릭스를 능가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브라토. 지미 헨드릭스의 그 비브라토 느낌은 단 한번도 따라할 수조차 없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기타의 지미 헨드릭스, 건반의 델로니오스 몽크처럼 그 누구도 연습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악마의 재능을 내뿜을 수 있게 되었다.


‘좋아. 이왕 생긴 능력. 기똥차게 활용해 줄 테다.’


딸칵

생각하기를 멈추고 조심스레 침실문을 열었다.

동이 트기 전에 집사장이라 불리는 박용례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이 집에서 그나마 제일 말이 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흐익! 큰 도련님.”


주방에서 식재료를 체크하던 박용례 집사장이 나를 보자 화들짝 놀랐다.


“저한테 볼일이라도?”

“네.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따라오세요.”


내 부탁에 집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응접실로 향했다.


“제가 여기 있을 거라고 어떻게 아셨대요?”

“하루의 시작 중 제일 중요한 업무가 아침식사 준비일 테니까 여기 계시겠다 싶었죠.”

“허이고 참. 큰 도련님 곱게 미치셨다더니, 정말이네요.”


신화 기획사 가문의 자제라고 꼬박꼬박 내게 높임말을 하는 집사장이었지만, 맹랑한 꼬마다라고 생각하는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항상 저를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이구, 도련님. 그만 좀 하세요. 이젠 좀 무서워질 지경이네요.”

“왜 그러시죠? 제가 기억을 잃기 전 집사장님께 쌍욕이라도 했나요?”

“······.”


내 말에 집사장은 대답을 못 했다. 안현 이 버러지 같은 놈. 쌍욕까지 했구나.


“그리고 이제 제 식사는 따로 챙겨주지 마세요.”

“그럼 어쩌시려고요?”

“저도 이제는 가족 식사에 참석하려고요.”


그랬다.

그동안 나에게는 계속 식사가 내 방으로 따로 차려져 나왔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가족들에게 제공되는 음식과 메뉴도 다르게 나온다고 했다. 안현이 워낙에 편식이 심한 탓에 내려진 방침이라 얼핏 들었다.


“아니, 왜요? 도련님?”

“괜히 저 때문에 번거로우실 거 아녜요? 가족 구성원으로서 소외감도 느껴지고 말이에요.”


나 때문에 고생하는 집사들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집안 돌아가는 정보가 너무 막혀서 말이지.’


직장 분위기가 회식 자리에서 나오듯, 집안 돌아가는 분위기는 밥상 머리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예전의 안현처럼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밥상에 같이 앉는 걸 피했다가는 맹수들에게 물어 뜯길 터였다.


“네. 큰 도련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대표님이 무척 기뻐하시겠네요.”

“그리고 저번에 오셨던 최 교수님 말이에요.”

“네? 최 교수님은 왜요?”

“저랑 음악치료 프로그램 진행하신다더니, 영 소식이 없네요?”


음악치료가 진행이 안 된 것도 궁금했지만 내가 진짜로 알고 싶었던 건 회귀 첫날 내 젓가락 행진곡 연주가 끝나고 보였던 그 최 교수란 자의 알 수 없는 표정의 의미였다.


“제가 듣기로는요. 도련님의 연주를 보고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대요.”

“······.”


나는 집사장의 설명에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집사장의 그 한마디로 그 상황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

비록 전공은 여러 분야로 세분화 돼있지만, 이 대학의 모든 지원자는 전공을 불문하고 악기 하나를 선택하여 음악적 소양에 대한 입학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내게 음악치료를 진행할 예정이었던 그녀도 분명 피아노로 대학에 합격을 했을 터. 아무리 자신의 분야가 심리치료 분야겠지만, 버클리음대 출신으로서 연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남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열두살 꼬마의 연주에 한 인간으로서 본인의 자존심이 무너졌겠지.


“그래도 전 그 분께 음악치료 받고 싶습니다.”

“정말요? 소용없을 텐데요. 그 교수, 실의에 빠져서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온다고 하던대요.”

“그건 제가 알아서 설득해보겠습니다.”

“······.”


다시 나를 ‘열두살 꼬마가 맞나?’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집사장.


“저는 이만 씻으러 가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집사장에게 꾸벅 인사하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


드디어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다.


“우와! 이 식탁 네 명의 식구 식탁 크기 맞아요?”


웃으며 말한 내 한마디에 나머지 세 식구의 시선이 모두가 나에게로 쏠렸다.


“···아. 우리 현이가 기억상실증에 걸렸었지?”


식탁의 상석에 앉은 안치영 대표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나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어쨌든 우리 현이가 곱게 미쳤다더니, 이제 식사까지 가족이랑 함께 하자네. 이러다 병 고쳐지면 다시 옛날 망나니로 돌아가는 거 아냐? 난 그럼 반댈세.”


역시 예상대로였다. 안치영은 나의 변화에 대해 무척이나 흐뭇해 했다. 안현의 망나니같은 기질을 언제나 고칠 수 있으려나 고민해 왔었으니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여보. 참 다행이에요.”


그에 비해 한명희는 영혼 없는 반응이었다. 이것 또한 예상을 했으니, 놀라울 것도 실망할 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아빠! 며칠 전에 저 할아버지 앞에서 라흐마니노프 연주한 소식 들었죠?”

“그럼, 우리 욱이. 그날 엄청 잘했다며?”

“그럼요! 사람들이 저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 했는데?”

“호오~ 국민학생이 라흐마니노프 곡 연주라니. 역시 천재야, 천재 막 이랬다니깐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요···.”


놀라웠다.

그날 안욱의 연주가 있은 후, 사람들이 했다는 말들을 안욱은 주저리주저리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의 분위기 정도야 나도 대강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누가 뭐라고 했는지 또렷이 기억할 순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에게 보내졌던 무려 12명의 찬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듯하게 읊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현이 형. 그날 연주한 젓가락 행진곡 말이야. 그거 장르가 재즈지?”

“켁!”


최대한의 밝은 미소를 만들었지만 나를 불 같은 눈빛으로 쏘아보는 안욱.

안욱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밥알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재즈? 음. 뭐, 정통 재즈라기 보다는 재즈 형식을 가미한 즉흥연주라 할 수 있지.”


조용히 밥을 먹으며 가족들의 말을 유심히 관찰하던 나에게 안욱이 예상치 못하게 치고 들어왔다. 이건 뭐지? 일종의 기습공격 같은 건가?


“응, 그렇구나. 그럼 재즈라는 음악은 본고장이 어디인지도 알겠네.”

“응, 알지. 미국의 뉴올리언스.”

“재즈라는 말의 어원도 알아?”

“발레의 한 동작인 채즈(Chaz)라는 설도 있지만, 음악을 듣다가 흥분할 때 외치는 ‘jazz it up!’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지.”

“그럼 비밥 재즈의 창시자는?”

“당연히 찰리 파커(Charlie Parker)아니겠어?”

“······.”


갑자기 펼쳐진 퀴즈 타임. 녀석이 무차별적으로 내는 질문들에 내 입에서 정답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자, 안욱의 입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닫혀졌다.

아마도 안치영 대표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허나 녀석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나의 전생인 유명식이 얼마나 재즈를 사랑했었는지를.


“이야. 현이 너. 만날 사고만 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또 언제 공부했대? 너 기억상실증 맞긴 한 거니?”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안욱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이다. 녀석의 의도는 오히려 반대로 나에게 득이 된 분위기다. 내가 녀석의 퀴즈를 다 맞춰버리는 바람에 괜시리 안치영 대표가 나를 한 번 더 칭찬할 수 있는 기회가 돼버렸다.


‘녀석. 유치하기는. 아무리 사이코패스라도 아직 초딩이니 별 수 없구나.’


“참. 현아. 욱이 연주 실력도 연주 실력이지만, 현이 네 소문도 회사 내에서 아주 자자하던데.”

“어이쿠. 뭐 과찬이십니다.”

“과찬이긴. 그래서 말인데 내가 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회를 주고싶거든.”

“기회라뇨?”

“이번에 우리 신화 기획사에서 작은 지역 행사 기획일을 따 놓은 게 있어. 그 무대에 한 번 서 보는 건 어떨까?”


나에 대한 안치영 대표의 제안에 한명희와 안욱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여보. 현이는 지금 환자예요. 아직 바깥 활동은 삼가야 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보기엔 기억상실증 전보다 애 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안치영의 제안에 한명희가 초를 치려 했지만 난 어찌됐든 좋았다.


‘안치영. 안치영이 나에게 제안을 했어!’


지금 내가 그의 아들이 됐든, 아니든 그가 내 음악적 재능을 보고 활동 제안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내가 유명식의 삶으로 20여년 간 음악활동을 해왔지만, 안치영의 실물은 단 한 번도 볼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명성과 나의 위치에 대한 갭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회귀 전 유명식의 삶과는 다르다.


“어찌됐든 여보. 전 반대라고요. 아직 정신이 성치 못 한 아이에요.”


필사적으로 한명희는 내 기회를 막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다시 안욱의 표정을 봤다.


“······.”


지금의 표정만은 이전과는 다르게 꾸며지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다급함, 그 자체였다.

모든 상황을 투쟁과 전쟁처럼 생각하는 녀석. 아무리 한명희가 안욱을 방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녀석은 지금의 분위기를 패배한 걸로 인정하는 듯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그 행사에 나가겠습니다!”


나는 안욱 표정 관찰하기를 멈추고 손을 번쩍 들었다.


“오, 그래. 현아. 잘 생각했어. 네게 좋은 기회가 될 거다.”


좋아하는 안치영 대표와 다르게 한명희의 눈은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동생 욱이와 함께 참가하겠습니다.”

“응, 너랑 욱이랑 같이?”


날카롭게 노려보았던 한명희의 눈빛. 나의 돌발적인 새로운 제안에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떠졌다.


“네. 욱이와 함께요. 저도 동생을 사랑하니까요.”


역시나 의아함에 크게 떠진 안욱의 두 눈. 나는 그런 욱의 눈빛을 맞춰 방긋 웃어보였다.


‘안욱, 이제부턴 널 좀 이용해야겠어.’


<6화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음악으로 세계 독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안내 22.10.11 20 0 -
공지 월~금 오후 6시 10분 / 토,일, 공휴일 오전 10시 연재 22.10.06 34 0 -
24 내일은 늦으리(3) 22.10.10 54 5 13쪽
23 내일은 늦으리(2) 22.10.09 57 5 12쪽
22 내일은 늦으리(1) 22.10.08 64 6 12쪽
21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광인(狂人) 22.10.07 74 6 14쪽
20 타이지와 아이들, 드디어 데뷔하다 22.10.06 77 4 12쪽
19 타이지와 아이들(7) 22.10.05 74 4 12쪽
18 타이지와 아이들(6) 22.10.04 77 5 13쪽
17 타이지와 아이들(5) 22.10.03 86 5 12쪽
16 타이지와 아이들(4) 22.10.02 102 5 13쪽
15 타이지와 아이들(3) 22.10.01 107 4 13쪽
14 타이지와 아이들(2) 22.09.30 125 4 11쪽
13 타이지와 아이들(1) 22.09.29 153 7 12쪽
12 류 부장의 몰락 22.09.28 170 6 13쪽
11 행사 무대부터 독식(6) 22.09.27 171 6 14쪽
10 행사 무대부터 독식(5) 22.09.26 165 5 13쪽
9 행사 무대부터 독식(4) 22.09.25 187 6 13쪽
8 행사 무대부터 독식(3) +1 22.09.24 228 7 13쪽
7 행사 무대부터 독식(2) +1 22.09.23 237 8 12쪽
» 행사 무대부터 독식(1) +1 22.09.22 288 11 13쪽
5 푸른 빛의 아지랑이 +1 22.09.21 309 10 13쪽
4 뒤바뀐 운명 +1 22.09.20 367 11 13쪽
3 금수저를 빼앗다. +1 22.09.19 451 11 12쪽
2 안현, 그리고 유명식(2) +1 22.09.18 456 10 14쪽
1 안현, 그리고 유명식(1) +1 22.09.17 629 1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