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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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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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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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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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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2화

DUMMY

" 하나같이 한숨나오는 이야기 뿐이군. "


보셰트의 차세대 국왕 자리를 예약해둔 제 1왕자, 펠릭스 빈타 가르댕 폰 발랑쉐트는 읽고 있던 서류들을 책상 위에 내팽겨치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충직한 근위기사이자 전세계를 통틀어 5기 밖에 없는 『기사』 중 한 기를 소유한 메롬 드 바티용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바티용의 머리 뒤로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명예를 회복한 기사.> 라는 제목의 낡은 신문기사가 화려한 액자 속에 보관된 채,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 메롬 경, 적기사로부터 좀 더 식량을 얻어낼 방법이 없을까? "


여느 나라가 다 그렇지만 현재 보셰트의 식량 사정은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동맹의 대가로 바티용이 적기사에게서 얻어오는 식량 덕분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나라의 목숨만 겨우 유지할 수 있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보셰트의 팔다리는 비참하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 어떻게든 지금보다 20% 정도만 더 얻어낼 수 있다면 숨통이 좀 트이겠는데... "


" 협상해보겠습니다. "


" 후우... 꼴사납지만 부탁하지. 식량만 얻을 수 있다면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테니까. 하긴, 지금 시대에 식량보다 귀한게 어디있겠냐마는... "


바티용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주군께서 바라시는대로. "


그리고는 예를 표한 뒤, 펠릭스의 집무실을 나섰다. 문을 나서려는 그의 등에 왕자의 한숨소리가 투창처럼 틀어박혔다.


***


' 괴롭기 짝이 없군. '


팔라우 궁을 나서는 바티용의 얼굴은 어두웠다. 위대하고 선량한 왕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주군이 밀 몇 자루, 야채 몇 개, 돼지 몇 마리 따위에 연연하는 모습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정말 보기 괴로운 장면이었다.


'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하는거지? '


대지에서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고 바다에서의 소출도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나마 괴물 고기가 유통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 또한 언발에 오줌누기나 다를 바 없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괴물들도 굶어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괴물 고기조차 구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되면 테오도르가 장악하고 있는 공중 도시의 작물만이 유일한 빵줄이었다. 하지만 공중 도시의 면적은 도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물며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은 그 중에서도 일부분. 아무리 생산성이 높더라도 그 코딱지만한 땅에서 나라 전체를 먹여살릴 식량을 거두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후우... "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보셰트의 내일은 없었다. 하지만 원인조차 모르는데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수단은 『소원의 열쇠』 뿐이었지만, 백기사와 은기사의 위치는 아직도 미궁 속. 미래는 여전히 잿물처럼 시커멓기만 했다.


삐리릭!


그때, 그가 지닌 통신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공중도시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바티용은 약간 긴장하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낮익은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바티용 경? "


" 예, 왕자님. "


" 지금 이네스를 보낼테니까 빨리 이쪽으로 와줘. "


" 예?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


" ..... "


통신기를 쥔 바티용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하... "


한편, 발롱드의 알레크 후작도 식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내전 시기에 큰 피해를 입었던 발롱드는 이상 사태가 발생한지 3년만에 지방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그나마 수도권 일대의 영향력은 유지하고 있어서 멸망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간신히 숨만 붙어있을 뿐, 뭘 해볼 수 있는 여력은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현상유지조차도 버겁다.


" 어떻게든 식량을 좀 더 손에 넣지 못하면 수도권도 위험한데... "


땅이 아니라 물에서 작물을 키워본다던가, 아예 마나로 작물을 만들어낸다던가* 하는 연구들을 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출발선에서 제자리 걸음만 하는 형편이다.

유일한 빵줄은 테오도르의 공중도시에서 지원해주는 식량 뿐이었지만 면적이 면적인만큼 추가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 결국, 수도권에서도 몇 군데 짤라내야하나. "


식량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넘쳐난다면 먹을 입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유일한 식량줄인 배급이 끊겨버린 지역들이 얌전히 승복할 리 없었다. 기력이 떨어지기 전에 남아있는 전력을 이끌고 수도나 다른 도시를 약탈하려고 들게 뻔하다.


" 끄응... "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뭉개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별다른 자원소모 없이 반란 지역을 제압하려면 『기사』를 보유한 알레크 후작 본인이 나서는 수 밖에 없었다. 또다시 자국민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후작은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이 살리겠답시고 지금의 배급 체제를 유지해봤자 다같이 천천히 굶어죽어갈 뿐이다. 미래를 도모하려면 어떻게든 몸집을 좀 줄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후작은 답답한 표정으로 서류를 내려놓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복도 창문 너머로 비치는 텅 빈 연병장이 그녀의 입맛을 한층 씁쓸하게 만들었다. 본래라면 훈련에 매진하는 기사들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치안 유지를 위해 수도권 각지로 파견되어 있었다. 저택에 남아있는건 경비 업무를 수행해주는 네 명 뿐이다.


똑똑.


" 네~ "


방 안에서 어린 계집아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그러져있던 후작의 표정이 조금 펴진다. 곧이어 문이 열리며 아래쪽에서 조그마한 계집아이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황금을 녹여 만든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금발과 귀여운 이목구비를 가진 아이다. 아직은 조금 귀여운 어린애일 뿐이지만 10년 정도쯤 더 자라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미녀로 자라리라.


" 와아~ 시누이다! "


차세대 롱스 최고의 미녀는 후작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면서 알레크 가문의 족보를 엉망진창으로 꼬아버리는 폭언을 날렸다.


" 리안나, 시누이가 아니라 고모라고 부르랬지. 하여튼, 그 마... "


망할 엘프년이라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후작은 어린 조카를 생각하여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문이 조금 더 열리면서 달갑잖은 큰 귀 계집의 대가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 뭐야, 시누이. 아직 근무시간 아니야? "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엉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는 망할 올케년이 불편한 기색을 뚝뚝 흘리면서 시비조로 물어왔다.

발끈한 후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땡그란 눈으로 올려보는 조카를 보고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할 수 없이 힘을 풀었다. 그러나 주먹의 힘은 뺐어도 혓바닥의 예기(銳氣)는 사라지지 않았다.


" 시꺼. 오늘 일 다했어. "


" 아직 3시도 안됐는데? "


" 다 했다면 다 한 줄 알아라. 비켜. "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문을 활짝 연 후작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센나를 아무렇게나 밀쳐버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하여튼 높으신 나으리들이란 이래서 안돼. 아랫사람들한테는 엄격, 진지, 근엄하게 굴면서 규칙을 강요하는 주제에 막상 지들은 개뿔도 안지킨다니까. "


두 사람이 나란히 선 순간, 밀려난 엘프가 팔짱을 끼면서 비아냥거렸다. 몇 년 전이었다면 그대로 대판 싸웠겠지만 후작은 코웃음을 치면서 되받아쳤다.


" 떪으면 너도 높으신 나으리 하지 그랬냐? 하긴, 쌈박질 생각밖에 못하는 그 열등한 머리로는 시켜줘봐야 금방 쫒겨나겠지만. "


그리고는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안쪽으로 이동했다. 등 뒤에서 뭐라뭐라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딴 무의미한 소음에 일일이 반응할만큼 후작의 고막은 예민하지 않았다.


" 어서오십시오, 후작 각하. "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세바티아가 깍듯이 예를 표하며 후작을 맞이했다. 살짝 그을린 듯한 연갈색 피부와 새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꼬마 하녀는 지난 몇 년 사이 차분한 분위기의 아가씨로 성장해 있었다.


" 티아, 그렇게 딱딱하게 대답하지 말래두. "


" 하지만... "


" 너도 이젠 알레크 가문의 일원이야. 공적인 자리도 아니고, 가족끼리 그렇게 부르는 집안이 어디있어? "


후작은 세바티아가 품은 아이를 가르키면서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녀의 팔 안에는 알레크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세바티아는 곤란해하면서도 예, 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은 푸근하게 웃으면서 두 모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걸 깨닫고 물었다.


" 그나저나, 알비는? "


" 도련님은 목욕하러 가셨습니다. 아마 이제 곧 돌아오실겁니다. "


방금 주의를 줬는데도 또 이 모양이다. 후작은 ' 남편을 도련님이라 부르는 아내가 어디 있어? ' 하고 태클을 걸려다가 어차피 소용없을거란 생각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그만두었다.


덜컥.


" 어라, 누나 벌써왔어? 별일이네, 아직 해가 벌건데. "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이제 완전히 알레크 가문의 후계자로 자리잡은 소년. 아니, 이제는 청년이 된 알버트 알레크는 방 안으로 들어오다가 후작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어왔다.


" 살다보면 일이 좀 빨리 끝나는 날도 있는거야. "


후작은 짐짓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 따스한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이야말로 알레크 가문의 마지막 후예들이자 그녀의 검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들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라스 알레크는 얼마든지 비정해질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후작은 능글맞게 웃어보이면서 덧붙였다.


"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지. "


" 뭐야, 그게. "


" 시꺼, 이 누님이 잠깐 땡떙이 좀 칠 수도 있지. "


후작은 어이없어하는 동생에게 장난스럽게 대꾸하고 조카와 세바티아에게 작별인사를 남긴 뒤, 또다시 무어라 궁시렁거리는 비센나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리안나를 살짝 안아주었다. 그리고 집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 응? "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웅웅거리면서 진동하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꺼내보았더니 공중도시와 이어지는 통신기였다. 지금껏 공중도시 측에서 먼저 연락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그녀는 별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수신 버튼을 눌렀다.


" 알레크 후작? "


" 어, 나야. 무슨 일인데? "


" 지금 델핀을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알버트, 비센나씨와 함께 빨리 이쪽으로 올라와주십시오. "


" 뭐? 갑자기 왜? "


" 백기사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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