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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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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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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5.12.04 23:42
조회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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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0쪽

33화

DUMMY

"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


후작의 오른손에 새파란 입자가 모여들더니 길쭉한 장검으로 변했다. 그녀는 그것을 소년에게 집어던졌다.


' 우왓, 위험하잖아! '


검은 소년의 발치에 박혔다.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지만, 소년을 놀라게 하기는 충분했다. 그의 눈이 반사적으로 반월을 그리며 원흉을 향해 움직인다.

능글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을거라는 예상과 달리, 후작의 표정은 진지했다. 딱히 놀리려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평소부터 저런 식으로 검을 던져대는걸지도 모른다.


' 젠장, 괴상한 여자 같으니라고. '


웃고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소년은 소심하게 마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선에서 불만을 찍어누르고는 검을 집어들었다.


' 가벼워. '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그야 쇳덩어리인만큼 가볍지는 않다. 어림잡아 약 1kg 정도. 그럭저럭 묵직한 수준이다. 하지만 어제 후작이 던져줬던 검과 비교하면 체감상 절반도 되지 않는 듯했다.

검을 들어올려 검끝에서부터 자세히 살펴본다. 검신이 얇고 피부를 대기만해도 찢어질 것처럼 날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 기사들이 쓰는 검이 아니군. '


소년은 테오도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현대의 기사들은 갑옷을 입은 상대와 싸우는게 기본이다. 그래서 검을 쓰더라도 날카로움보다는 단단함을 중시한다. 괜히 날카롭게 날을 세워봤자 베이지도 않을 뿐더러, 부서지기만 쉽기 때문이다. 그들이 쓰는 검은 검신이 두껍고 날은 무딘, 사실상 검처럼 생긴 쇠몽둥이에 가깝다.


이것은 맨몸의 사람을 베라고 있는 검이다.


그것을 깨닫자, 그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미약한 기대감마저 픽 꺼져버렸다. 오늘날 제대로 된 무술들은 모두 갑옷을 입은 적을 상대하는걸 전제로 깔고 가기 때문이다. 맨몸의 인간, 혹은 경무장한 인간을 상대하는걸 전제로 삼는 것들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낡은 무술이나 간단한 호신술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물론, 후작의 판단은 옳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소년이 중무장한 상대 - 기사 - 와 싸울 일도 없을 뿐더러 싸워봤자 승산이 있을리도 없다. 게다가 고급 무술들은 사용자가 기사급의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으므로 일반인은 제대로 된 위력을 내지 못하거나 아예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기술도 많다.

가르쳐봐야 의미도 없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괜히 외부 유출의 가능성만 만드는 고급 무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호신술을 가르치는게 모든 면에서 훨씬 합리적이었다.

소년도 안다, 납득은 하고 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건 어쩔 수 없었다.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주는 마법검을 가진 그에게 일반인을 상대로 한 호신술 따윈, 배워봤자 별 의미 없는 것이었으니까.


" 네가 배울건 검술이야. 뭐, 효율성만 따지면 총이 제일이겠지만... 어, 음... 어라, 생각해보니 정말 총이 최고 아닌가? 쟤가 AMF 달고 다니는 놈과 싸울일이 뭐 있다고... 아니, 꼭 없다고 할건... 역시 설득력 없잖아? 어어어? 그럼 그냥 사격이나 가르쳐야하나? 아니, 그래도 그게 뭔가 좀 아닌데... 애당초 이게... "


" ? "


소년은 설명하다말고 갑자기 횡설수설하면서 당황하는 후작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는걸까. 한동안 안절부절하면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혼자 궁시렁거리던 그녀는 괴성을 지르면서 머리를 헝크러트리더니 붉게 상기된 얼굴로 고함치듯이 말했다.


" 에에에이잇! 그냥 가르쳐주는데로 배워! 이유 따지지 말고! 알았지!? "


" 네에... "


애시당초 선택권도 없는데 뭐라는거야. 소년의 머릿속에서 후작의 이미지가 조금 더 안 좋은 쪽으로 기운다. 후작은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남발하다가 소년에게 건내준 것과 똑같은 검을 만들고는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 넌 검술이 뭐라고 생각해? "


" 예? 어... 검을 쓰는 방법...일까요? "


소년은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답하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멍청한 놈, 누가 그걸 몰라서 물었겠어? 좀 더 그럴듯한 대답을 했었어지. 그러나 뜻밖에도 후작은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 바로 그거야! "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쳐보이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 그럼 두번째 질문. 어떻게 해야 검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 "


" 열심히 단련해야죠. "


소년은 또다시 단순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생각하고 한 대답이었다.

그는 앞선 문답을 통해, 후작이 바라는건 그럴싸하게 들리는 추상적인 대답이 아니라 보다 단순하고, 구체적이며, 직관적인 -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떠오르는대로 지껄이는 - 대답이라고 판단했다.

과연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지 후작은 이번에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지, 몸을 쓰는 일이 대부분 그렇지만 검도 자꾸 써봐야 느는거야. "


그리고는 검을 들어올리며,


" 그러니까 지금부터 실전이야. "


하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여주셨다.


" 예에? "


소년이 황당해하며 소리를 내지르자 후작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로 설명을 보충했다.


" 검을 잘 쓰려면 연습을 해야지! 그리고 실전보다 좋은 연습은 없어! 따라서! 실전을 겪고 겪고 또 겪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검술 훈련이다, 이 말이야! "


" 아니, 잠까... "


챙!


불평할 겨를도 없이 후작의 검이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가롭게 항의하고 있다간 머리가 쪼개질 판이었기에 소년은 다급히 검을 휘둘러 공격을 쳐냈다.


' 아니, 애시당초 뭘 배운게 있어야... 윽! '


튕겨져나간 후작의 검은 즉시 반전하여 되돌아왔다.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가까스로 막아낸다.검과 검이 마주친 채, 밀고 밀리는 힘싸움이 시작됐다.

서로의 근력을 감안하면 애초에 성립할 수도 없는 승부였지만 이쪽의 수준에 맞춰줄 정도의 상식은 남아있는지 어떻게든 밀어낼 수 있을만한 수준이었다.


퍼억!


" 우욱! "


이대로 힘을 주어 밀쳐버리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 후작의 오른발이 소년의 복부에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검이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발로 걷어찰 수 있을만큼 거리가 좁혀졌다는걸 간과한 대가였다. 세 걸음이나 밀려나며 원래부터 어설프던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다.


" 정신차려! 네 손에 들린건 장검이야, 장검! "


그대로 따라가서 베어버리면 끝날 상황이었지만 후작은 그렇게 하는 대신 허리에 손을 짚은 채, 호통을 내질렀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마음 속으로 투덜거렸다.


' 젠장, 장검이 뭐 어쨌다는거야!? 그런소리 하려면 뭘 좀 가르쳐주고나서... 에이, 젠장! '


자세를 회복하자마자 후작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방어할 수도 있었지만, 머리 끝까지 짜증이 치밀어올랐던 탓인지 소년은 마주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


챙!


" 그래, 바로 그거야! "


즐거워하는 후작의 목소리와 함께 베기와 베기가 맞부딛쳤다. 검과 검이 얽히면서 또다시 대치상태가 벌어진다. 한번 호되게 당했던 소년은 거리에 주의하며 팔에 힘을 더했다. 이번에야말로 후작의 검을 밀쳐버리며 주도권을 가져갈 속셈이었다. 그러나,


" 좀 더 머리를 써보는게 어때? "


후작은 힘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소년의 상체를 향해 칼끝을 겨누었다. 그러자 소년의 검은 후작의 검신을 타고내려와 손 보호대에 막히고 후작의 칼끝에 자기 가슴팍을 들이박는 형국이 되버렸다. 다행히 찔리는 순간, 후작의 칼끝이 푸른 입자로 변해 사라졌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검이었다면 치명상을 면치 못했을 상황이었다.


퍼억!


" 다시! "


후작의 일갈과 함께 또다시 배를 걷어차인 소년이 꼴사납게 나가떨어졌다.


***


알레크 저택에서 남쪽으로 두 블럭만 내려오면 롱스의, 나아가 발롱드의 자랑거리인 바실로네 대신전이 자리잡고 있다. 신전 본체를 중심으로 방위마다 하나씩 세워져있는 거대한 첨탑들이 인상적인 이 웅장한 건축물은 지난 내전 동안 롱스 전역이 폐허가 되는 와중에도 벽돌 하나 부서지지 않을만큼 발롱드인들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이었다.


" 우와, 엉망진창이네. "


그 보물의 북쪽 첨탑에 비센나가 있었다. 그녀는 지상 137m 지점의 외벽을 장식한 8마리의 그리폰 석상 중 하나에 앉아 쌍안경으로 알레크 저택을 주시하다가 소년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 저거 단순히 괴롭힘 아냐? "


거리가 거리인만큼 대화까진 들을 수 없었지만 눈치로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후작은 소년에게 검술을 가르치려는 것 같았다. 지금은 도저히 자신할 수 없는 예상이 되버렸지만.


" 뭘 가르쳐나 주고 굴려야지. "


실전, 혹은 그에 준하는 대련을 통해 기술을 체득시키는 교육법은 의외로 흔한 편이다. 부상의 위험 - 실전이라면 목숨의 위험 - 이 따르지만 그만큼 빠르고 확실하게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 교육이 선행된 다음의 이야기다. 일단 기술을 알아야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되짚어봐도 후작이 뭘 가르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다짜고짜 칼 하나 던져주고 무작정 싸워대고 있을 뿐이다. 저래서야 하면 할수록 몸만 힘들고 어설픈 자기식 검술만 몸에 베지 않겠는가? 뭘 어떻게 생각해도 손해만 나는 길이었다.


" 저러다가 우리 꼬마한테 괜한 버릇이 생기면 곤란한데... "


한동안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쌍안경을 주시하던 그녀의 얼굴에 점차 놀라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눈이 구슬처럼 동그랗게 커지고, 벌어진 입에서 연신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 어? 어? 어!? "


쌍안경 너머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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