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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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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856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6.01.20 18:31
조회
325
추천
9
글자
9쪽

39화

DUMMY

겉보기엔 전쟁의 포화를 피해간 듯이 보였지만 찻집 내부는 어두웠다. 마나등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기름등잔 몇 개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 아직 마나 공급이 제대로 되질 않는 모양이네요. "


" 그러게. "


그러고보면 좌판을 늘어놓고 장사하던 다른 상점들도 상당수가 횃불을 쓰고 있었다. 그나마 마나등을 쓰는 곳들도 지금 생각하면 거진 충전식 소형 마나등이었던 것 같다.


" 어서오슈. "


평상시라면 한창 손님이 몰려들 시간이었지만 전쟁 직후라 그런지 가게 안은 한산했다. 공간은 넓은데 사람이 적다보니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감돈다. 소년과 비센나는 차와 가벼운 요기거리를 주문한 뒤, 아무도 없는 창문가에 자리를 잡았다.


" 이 추운날 왜 창가에 앉나 모르겠군. "


보존기 돌릴 마나는 있는지 차와 음식은 금방 나왔다. 넓은 쟁반 위에 차와 음식을 담아온 주인은 아예 쟁반 째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궁시렁거리면서 돌아갔다.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세바티아랑은 영 딴판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 윽, 이거 완전 얼음덩어리야. "


샌드위치를 집어든 비센나는 손 끝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보존기에 넣어둔게 아니라 그냥 방치해둔 모양이었다. 소년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이 시킨 빵을 집어보았다. 새하얀 가루 설탕을 뿌린 과자빵은 설탕 대신 눈을 뿌려놓은 것 같았고 막대과자는 길이만 조금 늘리면 훌륭한 둔기가 될 것 같았다.


" .....차에 적셔서 먹어야겠네요. "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빵을 차에 적시려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 왜 그래? "


" 아, 그냥 참 꿈 같은 이야기다 싶어서요. "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늘상 배를 곯으며 어떻게든 입에 풀칠을 하려고 발버둥치던 엘로얀의 고아놈이 이제는 후작 각하의 남동생 행세를 하면서 호의호식(?)하고 엘프 여자친구와 함께 놀면서 음식투정이나 하고 앉았으니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 꿈이라... 그러게, 정말로 짧은 꿈처럼 끝나버릴지도 모르겠네. "


" ....예? "


땡그랑~


" 어서옵쇼. "


그때, 문에 달린 종소리와 주인의 의욕없는 환영인사를 받으며 노신사와 젊은이가 차례로 가게 안에 들어왔다. 막 말문을 열려던 비센나는 김빠진 얼굴로 웃으며 젊은이 쪽을 향해 눈짓했다. 그가 바로 후작이 보낸 미행자란 신호일 것이다.


' 후작의 귀에 들어가면 안되는 이야기군. '


후작이 알아도 상관없는 내용이라면 미행이 들어오든 말든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그렇다는건 역시 암살 계획과 관계된 이야기인가... '


달그락.


소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찻잔을 쥔 손을 따라올라가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노신사의 얼굴에서 멈췄다.


" 실례... 어... 동석, 괜찮나? "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말투로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그의 얼굴 앞에 새파란 마나 입자들이 모여들어 문자를 만들었다.


『당신들 따라오고 있다 나 같이 들어온 남자.』


" ....! "


『도움 필요하면 도운다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이 정도의 마나 컨트롤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무슨 장치의 도움을 받았다면 또 모르겠는데 마법에 조예가 있는 비센나의 눈에도 특별히 마법 도구로 보이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 당신, 이 나라 사람이 아니지? "


행동으로 보나, 고도의 마나 제어력으로 보나, 노인의 머리에 문제가 없다는건 명백했다. 또한 훌륭한 외투와 말쑥한 신사복을 갖춰입은 행색으로 추측컨데 적어도 중산층은 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중산층 정도 되면 최소한 읽고, 쓰고, 셈할 줄은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어색한 문장을 쓰는 것은 단순히 이 나라의 글을 잘 몰라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비센나는 인간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스리아 어(語)로 말했다.


" 음, 노구(老軀)는 엘로얀 땅에서 온 펠릭스라고 하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니 정말 반갑군. "


과연 노인은 유창한 스리아 어로 대답했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는게 빈말은 아닌지 눈에 띄게 기꺼워하는 모습이었다.


" 그래, 엘로얀 사람이 우리한테 무슨 볼일이야? "


비센나는 그렇게 물으면서 검지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휘저었다.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 새파란 마나 입자들이 몰려들어 글자를 이루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하지만 별일 아니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 이상 볼일이 없으면 이만 가보라는 메세지를 읽은 노인은 빙그시 웃더니 메세지를 띄우면서 말했다.


『그런가, 그건 다행이군.』


" 실은 이 근처에 위명이 자자한 청기사의 저택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네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지 뭔가. 혹시 알고 있으면 좀 가르쳐주지 않겠나? "


" 청기사? 알레크 후작 말이야? "


" 음, 바로 그 사람일세. "


" 청기사는 왜 찾는건데? "


" 풍문으로 듣자하니 그분은 기사를 잘 대접해주신다고 하더군. 내 비록 늙고 곯아서 전장에 서지 못하는 퇴물이네만 대신 온갖 지옥을 헤쳐나온 경험이 있다네. 소문이 사실이라면 필시 그 가치를 알아주실터이니 이 노구가 썩어없어질때까지 몸을 의탁할 값은 받지 않겠는가? "


" 흐응... "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던 비센나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후작의 저택으로 가는 길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예의바르게 감사를 표하고는 손도 대지 않은 자기 차(茶)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찻집을 나가버렸다.


" 무슨 얘기를 나눴던거에요? "


" 응? 아, 우리 꼬마는 못 알아들었겠구나. "


같이 들어놓고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비센나는 뒤늦게 소년이 스리아 어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볍게 웃었다.


" 별거 아니야. 청기사의 집을 찾길래 알려준 것 뿐. "


" 후작 각하의 집을요? "


" 응, 이제 늙어서 더는 떠돌아다니지 못하겠고 어디 귀족집에 얹혀서 말년을 보내고 싶던차에 청기사가 기사들을 잘 대우해준다는 소문을 들었다나봐. "


비센나의 말은 거기까지였지만 소년은 ' 그러다가 우연히 그들이 미행당하는걸 발견하고 말을 걸었던거야 ' 라는 뒷말이 생략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흐음... 참 별난 우연도 다 있네요. "


소년은 미행자가 앉아있는 방향을 의식하며 미미하게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비센나의 태도로 보건데 미리 계획된 접선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미행자가 보기엔 충분히 수상하다고 생각할법한 만남이었다.


' 괜히 우리 때문에 피해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막말로 소년과 비센나야 정말로 수상한 놈들이니 이걸로 일이 꼬이더라도 억울할건 없지만 선의로 도움을 주려던 노인이 그로인해 불이익을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생각과 함께 소년의 이마에 페인 골이 점점 깊어져가고 있었을 때, 그의 볼을 가느다란 손가락이 찔렀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어느샌가 옆자리로 넘어온 비센나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소년의 볼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뭐하시는거에요, 비센나씨. "


소년이 퉁명스럽게 따지자 그녀는 양 손으로 소년의 볼을 붙잡더니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게 만들고 말했다.


" 우리 꼬마가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말이야. 어차피 당장 걱정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은 아무 생각말고 이 시간을 즐겨줬으면 좋겠어. "


알겠지? 하고 그녀는 부드럽게 타이르며 소년의 볼에 입을 맞췄다. 소년은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는 대답을 받아낸 엘프는 순순히 손을 놓고 떨어졌다. 그리고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샌드위치를 이따금씩 으적대면서 시덥잖고,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소년은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이따금씩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고, 차에 적신 막대과자나 과자빵을 먹기도 했다. 그것들은 충분히 적셔서 무르게 만들었음에도 가끔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만큼 단단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 조각까지 버릴 수 없었을 만큼 달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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