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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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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804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6.02.09 23:4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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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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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5화

DUMMY

소년과 비센나는 안개를 뚫고 달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었지만 발걸음에 주저함은 없다. 무언가 마법적인 인도를 받고 있다던가, 아니면 엘프 특유의 청력에 의존하는 것이던가 그런 것은 알 수 없다. 단지 비센나는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고 소년은 그녀를 믿고 달릴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 어이~ 거기 자네들~! "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세계 속에 난데없이 불청객이 불쑥 끼어들었다. 소년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의 정체를 깨닫고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다름아닌 찻집에서 만났던 노인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계란만한 빛나는 구체를 들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빛이 닿는 곳에는 안개가 침범하지 못했다.


" 누군가 했더니 자네들이었군. 아가씨 덕분에 무사히 후작가에 찾아올 수 있었다네. 헌데 자네들이 여긴 왠일인가? 아하, 그렇군. 자네들도 이 안개에서 공적의 냄새를 맡은게로구만. 하기사 아가씨 정도의 실력자면 도전해볼 법도 하지. 허허, 그래도 거리낌없이 위험에 몸을 던질 수 있다니 역시 젊음이란 참 좋은 것이야. 허나... "


노인은 유창한 스리아 어로 자기보다 몇 배는 나이가 많을 엘프 앞에서 가소롭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소년의 어께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뭐, 뭡니까!? "


놀란 소년이 발롱드 말로 묻자 노인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소년을 무시하고 비센나를 향해 돌아보면서 말했다.


" 이 어린 친구에게 무언가 특별한 재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노구(老軀)가 보기엔 이번 무대에 낄 만한 수준이 못 되는 것 같구먼. 이 안개에선 위험한 냄새가 나거든. 십중팔구 아가씨의 짐 밖에 되지 않을게야. 어디 좀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게 서로에게 좋을걸세.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좀 전해주지 않겠나? "


" 후작을 찾는다면 따라와라. "


비센나는 노인의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아직도 어벙한 얼굴로 노인과 비센나를 번갈아보고 있는 소년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한 뒤,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찜찜한 표정이었으나 한가로이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곧 마음을 가다듬고 뒤를 따랐다.


" 거 참, 요즘 젊은이들은 영 붙임성이 없구먼... "


비센나의 대응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인은 뚱한 표정으로 투덜거렸지만 이내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그도 후작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


파지직!


허공에서 별안간 불꽃이 번쩍 튀었다. 비센나가 친 방어막이 무언가와 부딛치며 반응한 것이다. 겉보기엔 다른 곳처럼 안개만이 자욱한 것처럼 보이지만 손을 대어보자 허공인데도 무언가 벽 같은게 만져졌다.


" 결계야. 구조는 단순하지만 출력이 어마어마한데... "


결계에 손을 댄 채,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던 비센나는 결계를 형성하는 마력의 밀도와 양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 머리 좀 썼군. "


" 뚫기 어려운가요? "


" 아니, 해체하는건 쉬워. 구조가 말도 안되게 간단하니까. 하지만 무작정 해체했다간 이 막대한 마력이 한순간에 해방되며서 대폭발이 일어날거야. 적어도 저택 일대는 흔적도 없이 날아갈테지. "


" 그럼... "


" 방법은 두 가지야. 힘으로 결계에 구멍을 내던가, 아니면 마력을 순차적으로 흩어버리는 회로를 추가하던가. 전자는 빠르고 간편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마력량도 마력량이지만 구조가 간단해서 말도 안되게 단단하거든. 도저히 사람이 부술 수 있는게 아니야. 반면 후자는 가능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 이만한 마력을 충분히 흩어내려면 적어도 40분... 아니, 1시간은 걸릴거야. "


지금도 늦었을지 모르는데 그렇게나 시간이 흐른다면 결판이 나도 열번은 더 날 것이다. 소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응? 자네들 왜 거기 멈춰있는겐가? "


그때, 뒤따라오던 노인이 도착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멈춰있는 두 사람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비센나의 방어막과 결계가 서로 반발하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 호오, 결계로군. 이거 때려부술 수 있는 종류인가? "


비센나는 무시하려다가 그의 마나 제어력이 뛰어났던걸 떠올리고 마음을 바꿨다. 그게 장치의 힘인지, 아니면 마법 장치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쪽이든 도움이 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 단순한 구조에 마력량이 터무니없는 물건이다. 원리상 물리력으로 파괴가 가능하지만 사람 힘으론 불가능에 가까... "


" 음, 힘으로 부술 수 있는거면 됐네. 알려줘서 고맙군. "


그러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어께를 풀면서 말을 끊었다. 비센나가 사람 말 좀 들으라고 한소리 하려던 찰나, 사방에서 몰려든 마나 입자들이 노인의 몸을 감싸더니 칠흑처럼 새카만 갑옷으로 변했다.


" !? "


" 저, 저건...! "


그것은 청기사가 무장을 만드는 방법과 완전히 똑같았다. 갑옷의 디자인도 색상을 제외하면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주먹을 휘두르려던 노인은 방금 떠올랐다는 듯,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 아, 조금 위험할 수 있으니 물러서게나. "


비센나는 무어라 말하고 싶은지 입을 두어번 벙긋거렸지만 곧 입을 다물고 여전히 경악하고 있는 소년을 데리고 거의 불빛의 시야 끝까지 물러섰다.

노인은 " 조금 더 물러서는게 좋을 것 같네만... " 하고 말했지만 비센나가 움직이지 않자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콰앙!


단순한 펀치였지만 그 결과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결계와 주먹이 부딛치며 폭음과 함께 천지가 진동했다. 주먹이라기보단 전차의 주포를 결계에 대고 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강한 일격을 먹였음에도 결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 과연, 제법 단단하구먼 그래. "


투쾅!


노인은 빙그시 웃으면서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처음 것보다 두배는 빠르고, 두배는 커다란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계는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흐읍! "


쾅! 쾅!


노인이 이를 악물고 더욱 가속했다. 상체 전체를 한껏 비틀어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세번째 펀치가 작렬한다. 곧이어 거의 틈을 두지 않고 똑같은 지점에 네번째 펀치가 작렬했다. 그런데도 결계가 깨지지 않자 그는 앞서 공격으로 붙은 속도를 더더욱 가속시켜 전심전력을 다한 일격을 꽃아넣었다.


---!


너무 커서 들리지도 않는 폭음과 사람 정도는 우습게 찢어발길 충격파가 사방을 덮쳤다. ' 뭐가 조금 위험할 수 있다야 이 미친 인간놈이! ' 비센나는 마음 속으로 쌍욕을 퍼부으며 이를 악물고 방어막에 힘을 쏟아부었다. 직접 때린 것도 아닌데 까딱 방심했다간 깨져버릴 것 같다. 그렇기에 확신한다. 저 노인 역시 알레크 후작과 마찬가지로 『기사』의 소유자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인간이 저런 힘을 가지고 있겠는가.


' 운명이란거...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네. '


운명 같은건 조금도 믿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지론을 조금 굽혀야 할 것 같았다. 운명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전 세계에 5명 밖에 없다는 『기사』의 소유자 중 하나가 우연히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마침내 후폭풍이 멈췄다. 그리고 그 엄청난 공격의 결과물이 그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 아이고오~! 손 아파 죽겠네! "


" ..... "


결계는 여전히 멀쩡했다. 그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고도 제어가 흐트러지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공격한 노인이 주먹을 부여잡고 비명을 꽥꽥 지르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꼴사나운 광경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비센나는 자괴감을 느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운명은 개뿔... '


저 결계는 애시당초 청기사를 가두기 위해 적기사가 만든 것이다. 『기사』들의 능력치 총합은 모두 동일. 배분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지만 적기사처럼 극단적으로 치우친 경우가 아니라면 그 능력치는 대체로 비슷하다. 따라서 청기사가 깰 수 없는 결계라면 다른 『기사』들도 깰 수 없...


퍼석!


" 응? "


이마를 짚은 채, 자괴감에 빠져있던 그녀는 마치 눈덩어리를 부술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노인이 있던 자리에 어느새 커다란 금속 거인이 나타나 주먹을 뻗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마법적인 힘이 깃들어있는지 결계는 거인의 주먹에 닿자마자 싱겁게 뚫려버렸다.


" 오, 왠지 간단하게 뚫리는걸! 진작 이럴 걸 괜히 고생했군. 역시 인간은 도구를 쓸 줄 알아야 인간인 것이야. 껄껄껄. "


" ..... "


그 모습을 멍청히 바라보던 비센나는 금속거인 - 기간트 - 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웃음소리에 말로 표현하기 곤란한, 허탈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짜증내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을 짓다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잘 안되는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을 내려다보고 김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 가자... 길 뚫렸네... "


" 아, 예. "


소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비센나와 함께 흑기사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달려갔다. 비록 과정은 뭔가 좀 아닌 것 같았지만 앞길을 가로막던 난관이 저절로 뚫렸는데 멍청히 그 기회를 날려버릴 이유는 없다.


스르르...


두 사람과 한 기간트가 지나가자마자 구멍난 결계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멀스멀 움직이며 빈 구멍을 메운 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고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작가의말

독자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에는 꼭 완결내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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