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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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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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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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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6.03.21 04:52
조회
437
추천
9
글자
9쪽

53화

DUMMY

예로부터 알마크 남부 지방은 이런저런 공산품을 만들어파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철 광산이 남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남부의 토지가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남부의 땅은 대체로 거칠었고, 지력이 약해 똑같이 농사를 지어도 북부의 60% 정도 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자란 양식을 구하기 위해 먼 옛날부터 물건을 만들어팔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 동안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마침내 오늘날에는 알마크 산(産) 공산품의 80% 이상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업 지역으로 발전했다.

사르바디도 그러한 남부의 공업 도시 중 하나였다. 기간트 부품 생산을 주요 산업으로 삼는 이 도시는 발롱드와의 내전을 거치면서 큰 곤란을 겪고 있었다.

전쟁기간 동안 기간트의 수요가 급증하고, 그에 따라 기간트 부품의 수요도 급증하여 많은 물량을 공급했지만 알마크가 전쟁에서 패하고 발롱드에 많은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되자 자금이 궁해진 알마크 정부는 현금 대신 지불했던 국채의 변재 기한을 무기한 연기시켜버린 것이다.

결국, 기업들 입장에선 물건만 실컷 납품하고 대금을 떼어먹힌 꼴이 되었다. 그나마 대규모 줄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은건 사르바디 시 당국에서 재정을 탈탈 털어 국채를 액면가의 40% 가격으로나마 매입해주었기 때문이었지만 그 대가로 풍족하게 운영되던 시 재정은 단숨에 바닥을 드러냈고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기간트의 수요가 급감, 자연히 기간트 부품의 수요도 확 줄어버리면서 새로운 일거리조차 없는 암울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 빌어먹을, 이래서야 이번달 월급은 꿈도 못 꾸겠군. "


" 그러게나 말이야. "


" 여기만 그러면 또 모르겠는데 공장이란 공장은 죄다 이꼴이니 원. "


오전 10시 24분.


한창 일할 시간이었지만 공장 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숨막힐 듯한 열기를 내뿜으며 쉴새없이 장갑판을 뽑아내던 기계들은 싸늘하게 식은 채 멈춰있었고 정신없이 일해야하는 노동자들은 공장 한켠에 둘러앉아 한탄 섞인 잡담을 나누었다.


" 후우... 우리집은 더 늦기 전에 다른 도시로 뜰 생각이네. "


" 다른 곳인들 뭐 사정이 나을 줄 아나? "


" 낸장, 그럼 이 망할 장갑판을 누가 사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란 말이야?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기간트라는게 나라에 돈이 좀 있을 때나 만드는거지 지금처럼 창고 탈탈 털린 상황에서 만드는 물건이 아니잖아. 당장 또 전쟁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내가 보기에 1, 2달 사이에 새 주문 들어오기는 글렀어. "


" .....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다른 노동자들도 그의 말에 공감한 것이다. 설령, 당장 다른 나라에서 알마크를 노리고 쳐들어온다해도 일이 생기는거지 돈이 생길 리는 없었다. 물건만 실컷 떼가고 종이쪼가리 - 국채 - 나 던져줄게 뻔하니까.


" 후우... 우리도 그냥 뜰까. "


" 이봐, 말더듬이 더비. 자네는 어쩔건가? "


" 예, 예? "


더비라 불린 남자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 얼빠진 반응에 다른 노동자가 실소를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 관둬, 관둬, 뭘 저런거한테 물어보고 그러나. 보나마나 아무 생각도 없을 바보한테. "


" 에헤이, 거 말이 좀 심하지 않나. 그래도 무던하게 제 할일은 잘 하는 친구인데. "


" 행,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암만 일 잘해도 바보는 바보지. "


바보라는 평이 아주 틀려먹지는 않은 듯, 더비는 코앞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고도 그저 얼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 실례합니다. "


" 응? "


그때, 그들의 뒤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기에 노동자들은 의아함을 느끼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 아이구,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하신 아가씨가... 혹시 사장님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목소리의 주인은 하녀를 대동한 젊은 아가씨였다. 그녀의 옷은 특별히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는데 옷에 대해 잘 모르는 노동자들이 보기에도 질이 확연히 좋아보였다.

이런 사람이 공장에 일자리를 구하러 왔을 리는 없고, 무언가 물건을 주문하러 왔을거라 짐작한 노동자 중 하나가 싹싹한 태도로 맞이하며 안내역을 자처했지만 아가씨는 정중히 거절하고 노동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훝어보다가 말더듬이 더비를 발견하곤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더비에게 유창한 엘로얀 말로 물었다.


" 엘로얀에서 오신 마르틴 발터씨. 맞으시죠? "


" ! "


순간, 더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그는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 어머나. "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가씨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표정과 달리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하녀에게 뒤를 쫒으라고 지시한 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 여러분들은 발터 씨와 무슨 관계이신가요? "


" 발터? "


" 네, 방금 뛰쳐나간 분이요. "


"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저 친구는 말더듬이 더비라고, 이 도시에서 좀 모자라기로 소문난 친구입니다. "


" 네, 그렇군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더비 씨와 무슨 관계인가요? "


아가씨는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넘겨버리고 처음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웃고는 있지만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서 무언가 위험한 느낌을 받은 노동자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더비와의 관계를 최대한 부정하려 애썼다.


" 그, 그냥 같은 공장에서 일했을 뿐입니다. "


" 맞습니다. 그것 뿐입죠. 저, 정말입니다. 예, 예... "


" 저도 그자와는 말 한번 섞은 적도 없습니다. "


" 그래요? "


그러자 여자는 빙긋 웃으며 " 바쁘신데 실례가 많았어요. " 하고, 인사하고는 조용히 더비가 달려간 방향으로 가버렸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노동자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하아, 방금 저 여자 대체 뭔가? "


" 분위기가 좀 위험한 인간인거 같던걸. "


" 그러고보니 더비 그 친구, 아주 기겁해서 도망쳤잖나. 내 생각엔 아마도 살인 청부업자 같은게 아닐까 싶네만.. "


한 노동자가 내놓은 추측에 다른 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큼 그녀에게서 살인자나 풍길법한 위험한 냄새가 진동했던 것이다.


" 뭔가 위험한 놈들에게 찍혔을지도 모르지. "


" 그럼 바보처럼 보였던 것도 다 위장인가? "


" 그거 그럴싸하군. 이제와서 하는말이지만 그 친구, 평소에는 바보처럼 굴어도 막상 일을 맡기면 깔끔하게 잘했지않나. "


" 야, 그렇게 말하니 소름돋는데. "


"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있어도 되는건가? 아무리봐도 예삿 일이 아닌 것 같은데. "


" 자네 말이 맞네. 이럴게 아니라 얼른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


의견의 일치를 본 노동자들은 지체없이 경찰서로 달려갔다. 단 한명도 공장에 남지 않고 말이다. 사실 그들의 본심은 신고보다는 무슨 핑개를 대어서든 이 찝찝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


' 엄청 실례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요. '


공장을 빠져나온 델핀은 혹시나 싶어 남겨둔 도청기를 통해 노동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다가 자신이 뭔가 위험한 여자로 취급받는걸 깨닫고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다.


' 역시 피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걸까요? '


그녀 자신은 전혀 노동자들을 위협할 생각이 없었다. 혹시 나중에 도움이나 될까 싶어서 물어보았을 뿐이다. 정말 그것뿐이었는데 이런 평가라니, 그녀는 우울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딱!


어찌됐거나 노동자들이 떠나버렸으니 더 이상 도청할 이유가 없었다. 델핀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공장에 숨겨져있던 작은 도청기가 저절로 불타사라졌다. 흔적을 지운 그녀는 속도를 내어 이네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이네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지 않겠니? "


그리고, 뒷골목 한구석에서 딴청을 피우며 눈을 마주치려하지 않는 동생과 미간 정중앙에 얼음 송곳이 깊숙히 틀어박혀 죽어있는 마르틴 발터의 시체와 마주하고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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