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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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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984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6.03.25 19:24
조회
371
추천
7
글자
11쪽

56화

DUMMY

" 한가하군... "


발롱드의 기사, 메롬 드 바티용은 캄캄한 방 안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코딱지만한 방에 갇혀 나오지 못한지 벌써 487일이 지났다.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하루에도 수십번은 반복하는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본다. 불과 487일 전만해도 그는 발롱드를 이어받게 될 제 1왕자, 펠릭스 빈타 가르댕 폰 발랑쉐트의 근위기사이자 심복으로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던 사람이었을 터이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이 코딱지만한 방에 갇히게 되었냐하면, 이게 참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주군, 그러니까 펠릭스 1 왕자의 아내이자 미래의 왕비님을 강간하려했다는 누명을 덮어썼기 때문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 그는 평소처럼 야간 순찰을 돌다가 왠 괴한이 창문을 통해 왕자비의 방에 침입하는걸 우연히 목격했다. 당장 괴한이 왕자비의 방에 침입한 마당에 한가로이 계단을 통해 올라갈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괴한이 그랬던 것처럼 건물 외벽을 타고 3층으로 뛰어올라 창문을 통해 돌입했는데 왠걸, 창문을 깨고 들어가니 괴한은 온데간데없고 한창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반라의 왕자비만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것만이라면 큰 실례이긴 하지만 이렇게 유폐될 정도의 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견책, 심해야 감봉 정도의 처분으로 끝날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왕자비가 그를 강간 미수범으로 몰았기 때문이었다.


쾅!


" 빌어먹을 년! "


그 때를 생각하자 짜증이 치밀어오른 바티용은 괜히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이를 갈았다. 그는 당연히 부정했지만 왕자비가 강력히 주장하는데다가 조사 결과, 괴한의 존재를 전혀 입증할 수 없었던 점이 문제가 되어 결국 왕자비 강간 미수라는 불명예스러운 죄목을 뒤집어 쓴 채, 죄인들의 탑에 무기한 수감되는 결말을 맞고 말았다. 그것도 펠릭스 왕자가 끝까지 바티용의 결백을 믿고 선처를 주장했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 대체 그 년은 나한테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런 말도 안되는 누명을...! "


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건데 바티용은 왕자비에게 섭섭하게 대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충심으로 모시던 주군의 아내를 뭣 때문에 미워하겠는가? 왕자비 역시 그 날 오전까지만해도 별달리 싫은 티를 내지 않고 평범하게 그를 대해주었었다.


그런데 어째서?


수백, 수천번을 자문하며 온갖 추측을 떠올려보았지만 역시 무엇하나 속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아니, 설령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 골방에 갇혀 있는 이상,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빠져나가 자기 손으로 모든 누명과 불명예를 뒤집을 수 있는 대답이 아니면 안되었다.


뚜벅... 뚜벅...


그때, 그 자신의 혼잣말을 제외하면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안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 방은 방음이 필요 이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바깥의 소리가 안쪽에선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쿵쿵.


" 누구요? "


철컥!


점점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멈춘 직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바티용은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문이 열리며 뜻밖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 그 동안 잘 지냈나? "


" 죄인 메롬 드 바티용이 테오도르 왕자님을 뵙습니다. "


죄인들의 탑을 찾아온 것은 다름아닌 테오도르 제 2 왕자였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바티용은 반가움과 의아함을 동시에 품으며 예를 표했다.


' 테오도르 왕자님이 왜 여기에? '


펠릭스와 테오도르는 나면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는 입장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두 형제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 테오도르가 자신의 입장과 상관없이 항상 형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두 사람은 자주 교류했고 자연히 근위기사였던 바티용도 테오도르와 적지 않은 친분을 쌓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상황이 설명되는건 아니었다. 모친이 제거되고, 펠릭스가 후계자로 낙점된 이후부터 테오도르는 사실상 별궁에 유폐되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수행원 하나 없이 죄인들의 탑에 올라왔다는 것 부터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헌데, 어쩐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습니까? "


" 아, 별일은 아니고 경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러 왔어. "


" 제안... 말씀이십니까? "


" 응, 국왕 전하가 돌아가시고 형님이 즉위하기 전에는 아무래도 경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들었거든. 하지만 경도 알다시피 전하께선 아주 정정하신 분이잖아. 앞으로 십년을 더 사실지, 이십년을 더 사실지 아무도 모르는건데 그때까지 경을 마낭 썩혀두기엔 능력이 너무 아깝다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혹시 탈옥할 생각 없어? "


" 예? "


뜻밖의 제안에 바티용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 예? "


그것도 두번이나.


***


[아, 정말 이런데서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저런 벽에 부딛치기 마련이다. 그것은 때로는 돈이고, 때로는 시간이며, 가끔은 외모나 지식, 어쩌면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벽과 씨름하다보면 어느샌가 바라지 않는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쉽다.


" 아, 정말. 너도 이제 그만 포기 좀 해. "


만약, 그런 당신에게 어떤 벽이라도 단번에 뚫어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뭐,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있으니까 자신있게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길을 택할 것이다.


" 난 평생 이렇게 살거니까. "


[아, 그럼 날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그렇게 살던가!]


" 싫어. 내가 왜? "


[아후우우우우우! 진짜! 창 환장하겠네!]


이 윤기넘치는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오빠로부터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을만큼 막강한 '힘'을 물려받았고 그것을 이상을 위해 사용하다 죽어버린 오빠와는 달리, 자기 인생을 즐기는데 사용하기를 택했다.


캉! 캉! 캉! 캉! 캉!


"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


[갸아아악! 하지마! 하찮은 돌덩어리 따위에 나를 내리치지마!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잖아!]


" 아, 정말. 이 쓸데없는 자아만 떼어내버리면 최고일텐데. "


그녀는 창대까지 은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창을 뚱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투덜거리다가 문득,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진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 오, 나왔다! 내 비상금! "


[비상금은 무슨, 쟤한테 네 돈 맡겨놨냐?]


햇빛을 가린 범인은 과장 조금 보태서 산만한 크기의 골렘이었다. 흙과 바위를 아무렇게나 섞어서 만든 듯한 그 골렘은 어찌보면 거대한 악어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주둥이가 긴 도마뱀 같기도 했다.


" 맡겨놓은거나 다름없지. "


쿠웅!


소녀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창을 바로잡는 것과 동시에 골렘의 거대한 앞발이 그녀를 짓밟았다. 특별히 노리고 한 공격이 아니라 재수없게 골렘이 발을 내딛을 자리에 그녀가 서 있었을 뿐이다. 거대한 덩치답게 무게도 엄청난지 발을 디딘 땅이 푹 꺼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드르르르르... 투쾅!


골렘의 앞발에서 무언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미미하게 들리더니 사람으로 따지면 어께쯤 될법한 위치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창을 앞세운 소녀가 탄환처럼 회전하며 튀어나왔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뚫고올라온 덕인지 구멍은 그녀의 몸보다도 훨씬 컸지만 골렘이 워낙 거대했기에 상처라고 할만한 크기는 못 되었다.

그 거대한 기둥 같은 괴물의 앞발을 완전히 관통하고도 힘이 넘치는지 그녀는 멈추지 않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 으아, 이렇게보니까 진짜 말도 안되게 크네. 저거 왠만한 성보다 큰거 아니야? "


[그러게, 저 등 위에 작은 도시 하나쯤은 충분히 짓겠다.]


지상에서 거의 600m는 떨어진 높이까지 올라와서야 겨우 멈춘 소녀는 골렘의 어처구니없는 크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이걸로... 저걸... "


그녀는 거대한 골렘과 손에 들린 창을 번갈아보면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주인에게 '못 미더운 것' 취급을 받은 창에서 성난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아, 뭐야! 지금 날 무시하는거야? 저딴 덩치만 큰 놈은 내가 힘 좀 쓰면 촥! 촤아악! 네 동강 낼 수 있다고!]


" 그만큼 힘쓰고나면 나 죽는거 아냐? "


[그야 죽겠지.]


소녀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되묻는 창을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매도했다.


" 에이, 됐어. 생명력만 축내는 무능한 놈. "


[아앗! 너 말 다했어!? 고작 사람 목숨 하나 가지고 이만한 위업을... 야!]


그녀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창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주인의 손에서 떨어진 창은 공간 너머로 사라지고 그 즉시 소녀의 등 뒤 공간이 길게 갈라지며 거대한 금속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잉...


거인의 흉갑이 열리고,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크기의 조종석이 드러났다. 어느새 금속 거인을 조그맣게 줄여놓은 듯, 전신을 은빛 갑옷으로 감싼 소녀의 몸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파일럿을 받아들인 기간트는 즉시 흉갑을 닫고 오른팔을 뻗었다. 그러자 공간이 열리면서 소녀가 들고 있었던 은빛 창을 크게 키운 듯한 창이 거인의 손에 잡혔다.


" 한 방에 끝내주마! "


[두 방 날리면 손해볼 것 같아서?]


" 그래! 뭐 잘못됐냐!? "


[쪼잔하긴.]


"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펑펑 낭비하는 놈이 이상... 캑! "


쿠웅!


거대한 은빛 기사는 파일럿이 잡담을 나누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꼴사납게도 골램의 등 한복판에 머리부터 성대하게 처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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