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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370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23.08.31 23:00
조회
59
추천
2
글자
9쪽

어둠으로부터는 피할 수 없다

DUMMY

스파세니예 연방 수도의 북부에 있는 도시, 린델.


수도를 방문하는 자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도시인 린델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거리 덕에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도시라는 이명을 얻었지만, 지금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때 높이 솟았던 건물은 무너지고, 깔끔하게 닦인 도로는 엉망진창으로 치솟고 부서져있다. 이 고요한 밤하늘 아래,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손이 불러일으킨 파괴가 지나간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 위에, 나는 그 밤하늘을 닮은 코트를 펄럭이며 서 있었다.


“둘 다 생포라. 신기한 결과를 냈군, 가름. 그러한 섬세한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하면 할 수 있다는 건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패트리어트 시로부터의 보고에 그러한 감상을 담고, 나는 다시금 이 도시의 유일한 생존자ㅡ주변의 먼지로 더러워진 사제복을 입은 젊은 여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클레어... 라고 했나. 황국의 클레어 아레스로군.”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내가 그 이름을 부른 것에, 아리따운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그 얼굴이 담은 것은 분노, 좌절, 절망.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걸 보면, 내가 앞에 있음에도 날 죽일 수 없는 걸 통한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너는 보고에 있었지. 천벽인광의 생존자. 리우 다음의 석차인 세 번째 빛. 뭐,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끝까지 추격하지도 않았어. 황국의 그 집단은 블레이즈와 리우를 제외하면 천경의 하위호환이나 마찬가지니 말이지. 이곳에서 널 발견한 것은 순전한 우연이다.”


“... 큿.”


사정없이 찢어발겨진 (전)도시의 한가운데서, 천벽인광 세 번째 빛 클레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나를 비웃는 건가. 네가 유디트 황국에 한 짓은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신께서 절대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버린 자신의 모국을 떠올린 듯,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입술에 피가 흘렀다.


“그렇게 말해봤자 지금이라는 현실은 바뀌지 않잖나. 나라를 잃고, 조직을 잃은 네가 뭘 할 수 있지?”


내가 빈정거리자, 클레어가 빠득 하고 이를 갈며 눈을 번뜩였다.


“그 입 닫아라... 꼴사납게 목숨만을 부지하고 있는 처지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마왕...!”


이미 내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다 손목이 날아가고도 이러는 것은 그냥 꼴사나운 큰소리 같지만, 의외로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반정부세력의 거듭되는 항복 권고에도 불구하고 철저 항전의 태세를 갖춘 이 연방 도시 린델에 내가 직접 개입한 것은 우연이다. 야전 장교로 활약하고 있는 시이나가 어떻게 하고 있나 구경 왔을 뿐인데, 마왕이 직접 행차한 김에 적당히 전선을 정리해주려고 한 것이니까.


따라서 탐지마법으로 도시 내부를 관찰하던 중 천벽인광 잔당을 발견했던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데, 그녀는 그 손에 든 통신석으로 어느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그에 작은 흥미를 품었기에 이 여자라는 예외를 제하고, 이 수도 지구 도시는 전부 내 손에 없어진 것이다.


내가 즐겨 쓰는 파괴마법 버스트가 남긴 흑염만이 아직 타들어 가고 있을 뿐, 이게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도시였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이나는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현 연방 정부에 찬동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에게 선보일 본보기로 충분했다.


“그럼 다시 묻겠다, 클레어. 누구와 통신하고 있었지.”


클레어는 절대 답하지 않겠다는 듯 반항의 시선을 보냈다.


“대답할 생각이 없으면 적당히 고문해서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만...”


내가 귀찮은 소리를 내며 그녀를 고문기술자에게 넘겨야하나 생각한 순간, 여태 조용하던 통신석이 빛을 냈다.


“나는 이안. 신성국 천경의 제1석이다.”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듯, 통신 너머 상대는 바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클레어가 놀란 얼굴을 만드는 것으로 보아, 그건 사실인듯했다.


“대화가 중간에 끊기는 바람에 확실하지 않아 묻겠다만, 그쪽은 마왕인가?”


“...”


통신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년 목소리.


마치 내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 같은 말투에, 내가 입으로 へ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딱히 안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 그 여흥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렇다.”


짤막하게 답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신성국 최강의 남자는 마왕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살벌한 저주를 담은 말을 해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뒤 이어진 질문은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하던 것이었다.


“칠흑의 마왕, 너는 전생자인가?”


갑작스러운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성국에 전생자에 대한 지식이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고, 그냥 떠보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침묵을 지키자, 다시 통신석이 빛을 발했다.


“답하기 껄끄럽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전생자가 이 세계에 강림해 그 강대한 힘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전례가 많기에 물어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힘에 취해,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곤 했지.”


“그때마다 그들을 멈춘 게 바로 너희들 신성국이라는 소리인가?”


“그렇다. 전생자는 단지 빌렸을 뿐인 힘을 휘두르는 세계의 적. 우리는 언제나 그 질서를 회복해왔다.”


나와 같은 전생자를 전부 싸잡아 말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 모든 게 내가 원해서 벌어지고 있는 거라는 암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눈을 찡그렸다.


이 놈은 내가 원해서 전생한 줄 알고 있다. 이쪽은 처음부터 휘둘려서 시작했을 뿐인데. 힘에 취해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건 천계의 신보다도 위에 서는 그놈들이라는 걸 모르는 것인가.


“... 물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너희들ㅡ신성국을 치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이유는.”


“마의 존재를 모조리 적으로 규정하는 신성국이 그걸 몰라 물어보나?”


나는 방금까지만 해도 도시였던 잔해 더미를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을 내리는 이 파괴는 한쪽에만 국한되지 않은, 양측이 서로에게 내리는 필벌이었다.


“네 세력과 내 세력은 양립할 수 없어, 결국 어느 한쪽이 멸할 때까지 싸울 운명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바로 내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네 입장이 증명한다. 너희를 없애는 건 그 사실 하나로 충분할 터다. 너도 나를 치기 위해선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안할 각오가 되어있을 텐데.”


“... 그런가. 네 말에 틀림은 없다.”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말투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렇냐는 듯 담담하게 말하는 그가 바로 신성국 최강의 남자. 필연적으로 나와 죽고 죽이는 전투에 들어갈 적이다.


“일단 알려주겠다만, 용사 유리에는 이쪽에서ㅡ신성국 수도 이스마엘에서 보호하고 있다.”


그는 클레어가 주선했을 만남을 대뜸 언급했다.


그 저의는 알 수 없다.


그것을 전한다면 반드시 죽이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내게 전하는 것일까. 이안이 그것의 정체를ㅡ내게 가지는 의미를 모두 알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나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추악한 진실이니까.


“... 용사라.”


복잡한 인연으로 얽힌 붉은 머리의 소녀를 떠올린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가름과 린이 유리에와 대면했을 때 천계에서 개입한 것에서 추측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답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해지고 있었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언제나 용사, 라고 했었지. 그게 사실이라면 신성국이 그녀를 먼저 확보한 건 옳은 판단일지도 모른다.


“시시한 잡담은 여기까지, 신성국의 개여. 나머지 이야기는 전장에서 하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생각도,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 내가 살짝 힘을 가하는 것으로, 손안의 수정은 산산조각이나 부서졌다. 유리 조각이 반사시키는 내 얼굴엔 어느새 쓴웃음이 올라와 있었다.


“... 어차피 마주해야 할 과거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나.”


이내 쓴웃음을 지우고 중얼거린 나는 손을 뻗어, 이쪽을 살피던 클레어의 목을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나라를 잃고도 지금까지 활동한 건 꽤 대단하지만, 그에 비해 실력은 대단치 못하군. 너 따위가 세 번째 빛이라니 리우의 이름이 울겠어.”


“어큭... 커흑... 켁...”


숨을 쉬지 못하고 켁켁대는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내가 물었다.


“천벽인광의 생존자는 너 말고도 있을 터. 용사를 신성국까지 인도한 경위를 듣고 싶은데, 나머지 동료들은 어디에 있지?”


작가의말

2년 전에 나왔던 (스파세니예 연방한테 데트르 개입해달라고 구원요청을 했던) 그 엑스트라를 기억하시나요

잠시 외출했더니 황국이라는 나라가 통째로 사라져있었던 그 비운의 소녀가 맞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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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최적해 +1 24.05.26 20 1 14쪽
305 랭크 측정 +1 24.05.18 19 1 14쪽
304 설계하는 어둠 +1 24.05.04 17 1 14쪽
303 합류 +1 24.04.27 17 1 15쪽
302 퍼져나가는 멸망 (300회 후기 수록) +3 24.04.20 20 3 14쪽
301 비대칭 전력 +1 24.04.13 18 2 14쪽
300 여우의 편지 +1 24.04.06 19 3 13쪽
299 모든 건 그의 뜻대로 +1 24.03.30 25 2 13쪽
298 묘안 +1 24.03.23 18 2 12쪽
297 각자의 싸움 +1 24.03.16 26 3 13쪽
296 손다르 입성 +1 24.03.09 19 2 13쪽
295 마음의 온기 +1 24.02.24 22 2 14쪽
294 최후의 편지 +1 24.02.17 23 2 15쪽
293 소녀는 어둠을 빛으로 착각한다 +1 24.02.10 22 2 12쪽
292 엄습하는 어둠 +1 24.02.03 26 2 16쪽
291 어둠과 함부로 마주한 그들의 말로 +1 24.01.27 26 3 13쪽
290 밀정 +1 24.01.20 31 3 15쪽
289 두 늑대가 바라보는 곳은 +1 24.01.14 29 3 12쪽
288 태초의 유물 +2 24.01.13 27 3 12쪽
287 어둠 속의 살육 +3 24.01.07 34 4 14쪽
286 새롭게 펼쳐지는 무대 +3 24.01.06 32 3 13쪽
285 족쇄를 찬 소년 +1 23.12.30 33 3 12쪽
284 운명을 속삭여라 +1 23.12.25 31 3 13쪽
283 아멜리아 비 리히트 +2 23.12.23 33 3 13쪽
282 왕녀의 비밀 +1 23.12.16 31 3 13쪽
281 그녀만이 뭔가 다르다 +3 23.12.09 34 3 14쪽
280 잿빛 위화감 +3 23.12.02 36 3 12쪽
279 암살 시도 +1 23.11.25 30 2 14쪽
278 세계에게 사랑받다 +1 23.11.18 44 3 13쪽
277 막으려는 자, 부수려는 자 +2 23.11.11 3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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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으로부터는 피할 수 없다 +1 23.08.31 60 2 9쪽
267 고유 이공간 +1 23.08.29 53 3 12쪽
266 그의 의지로 검게 칠해진다 +2 23.08.23 53 3 14쪽
265 가브리엘의 지팡이 +2 23.08.14 59 3 14쪽
264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최강종 +2 23.08.08 65 3 15쪽
263 드워프와 인간 +3 23.07.30 59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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