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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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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작품등록일 :
2015.03.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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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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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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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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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9화. 스스로 만들어낸 승리 -1

DUMMY

새벽녘이 되어 아카드와 그의 친구들이 호운타에 돌아왔을 때, 그들을 향한 환호는 없었다.


"맨 발로 달려나와 축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그래도..."


유지니오는 겁먹은 눈으로 골목의 여기저기서 기사단을 내려다보는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모다스 군을 막아내고 켄츄게이트 용병단을 퇴패시킨 그들의 승리에 고무가 될 법도 했지만, 이른 아침의 도시는 군대의 발소리만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전 유지니오 선배를 호운타 영주로 올리자며 사람들이 만세를 부를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휴베르토가 침울한 와중에도 농담을 했다. 따라온 병사들도 이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의 사기를 염려한 아체나는 일단 모두를 쉬게 하자는 의견을 냈고, 유지니오는 이에 동의하여 전 병사에게 사흘의 휴가를 주었다. 모두가 흩어져서 각자의 집에 돌아갔지만 아카드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막사에 남아 쌓여있는 행정업무를 처리했다.


"나도 남겠어. 대장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까."


유지니오가 큰 마음을 먹고 그렇게 말하자 아카드는 단번에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난 괜찮아, 유지니오. 그보다 지금은 다른 할 일이 있어."


머쓱해진 유지니오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카드는 그에게 호운타의 세력가를 찾아가볼 것을 조언했다.


"말이 통할만한 상대부터 만나보는 게 좋겠어. 전쟁을 계속하려면 후원자가 필요해."



유지니오는 아카드의 말을 알아듣고, 아나스타시아와 함께 호운타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린드블름이 호운타의 세력자들을 몰살시킨 탓에 도시의 세력가들은 몸을 사리고 있었다.


"유지니오, 너의 말대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진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아닌가."


늙은 귀족은 유지니오의 방문을 반기면서도 시큰둥하게 말했다.


"우리는 애초부터 모다스 영지와 전쟁을 할 이유가 없다네. 자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유지니오는 길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호운타의 전통있는 가문이라도 유지니오를 위해 선뜻 나서지 못했다. 심한 경우에는 호운타 기사단이 전쟁을 멈추고 모다스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귀족마저 있었다.


"유지니오, 미안하지만 난 널 도울 수가 없어."


부유한 백작가문의 자제이자, 학생군의 지휘관이었던 크리스토퍼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일언지하에 유지니오의 제안을 거절했다.


"기사단이 한 두번 이기긴 했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어. 젊은 혈기만 믿고 날뛰는 거라고. 모다스는 이제 호운타를 침입할 정도의 세력이 없다고 하잖아. 그럼 우리도 괜히 공격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래서야 원한을 갚을 수 없잖아, 크리스토퍼. 너나 나나, 많은 학생들의 부모님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벌써 잊은거야?"


유지니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크리스토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라고 그 분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 싫은 건 아니야! 하지만 복수하기도 전에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난 이미 부모님을 잃었고, 동생도 잃었어.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아."


유지니오는 착찹한 심정으로 크리스토퍼 저택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저택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늦은 밤, 그가 회의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도 축 쳐져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 문제야."


아카드는 열 곳이 넘는 유지들을 만나느라 녹초가 된 유지니오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야. 유지니오, 너의 이름은 분명히 대단하지만 전쟁을 위한 이름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유지니오의 음성은 이제는 슬프게 들릴 정도였다.


"성과를 내야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 말이야."


휴베르토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아카드가 눈빛으로 발언을 허가했다.


"우리는 이미 켄츄게이트 용병단을 격파하는 성과를 냈는데요?"


"우리도 물론 싸웠지만, 최전선에서 싸운건 피아조 상단이야. 적장을 잡은 상단장 게랄드와 부상단장 예리엘은 이제는 엄청나게 유명해졌지. 우리에게는 그런 전공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힘만으로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거구나."


아체나가 느긋한 목소리로 정론을 말했다. 아카드는 빙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우리의 힘으로 다음 전투를 치뤄야 하기도 하니까, 곧 해결될 거야."라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 한마디에 지휘부안에는 거의 30초쯤 혼란의 요정이 날아다녔지만, 붉은 머리의 전략가는 개의치 않았다.


"린드블름은 키얄루를 멸망시킨 다음에 우리의 화공에 속아서 병력을 후퇴시켰고, 그의 군대중 일부는 지금도 호운타를 노리고 있어. 주력 전투부대는 북랑시에로 되돌렸으니까 남은 전력은 우리가 상대할만 해."


"잠깐만, 아카드, 지금 우리가 먼저 모다스 영지를 공격하자는 이야기야?"


젠데온이 급히 말을 끊으며 모두가 궁금한 질문을 해주었다. 아카드는 태연히 대답했다.


"적의 병력은 모다스령의 퀼레팔라 요새에 있어. 주둔군을 포함해도 병력은 5천 이하니까 우리와 비슷해. 모다스의 돌격대장 윌다브스키가 요새장으로 있을테고. 우리의 작전은..."


"잠깐만, 그, 기다려봐, 아카드. 그래도 피아조상단에게 연락을 해서 협조를... 이왕이면 그들이 앞으로 나선다던가... 우리는 뒤에서 구경을... 아니 지원을..."


젠데온이 식은 땀을 흘리며 설득했지만 아카드는 눈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건 무리야."라고 단언했다.


"어... 어째서?"


"피아조 상단은 우리보다 전투를 많이 했고, 지금 병사들은 피로가 극한에 달해있어. 병력을 움직인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할 거야. 켄츄게이트 용병단이 깨졌다는 사실은 지금쯤 북랑시에에 전해졌을테고, 다리오는 피아조 상단을 막기 위해 병력을 보충할 거야."


"그 말은... 그러니까..."


"적의 병력이 보충되기 전에 우리가 퀼레팔라를 점령하자."


젠데온이 차마 못한 말을 아카드는 시원스럽게 해주었고, 회의장 안은 다시 혼란지수가 치솟았다. 아카드는 여전히 개의치 않고 유지니오에게 두꺼운 종이뭉치를 건넸다.


"유지니오, 이어지는 전쟁을 위해 구입해야하는 식량과 무기야. 그 외에 정비해야 할 것들도 미리 체크해뒀어. 적용해야할 군율도 다 정해뒀으니 확인해 줘."


유지니오는 한 손으로 그걸 받으며, 멍한 얼굴로 "언제 이걸 다 만든거야?"하고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틈틈히."


아카드는 미소마저 지어보이며 말했다.




"이거 말인데."


회의가 끝난 다음, 말을 하느라 지쳐버린 아카드가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유지니오는 한숨을 쉬며 털어놓았다.


"솔직히 이게 어떤건지 감도 안잡혀. 아카드는 진짜로 천재 같아."


"원래부터 엄청났잖아? 이상하기도 하고 말이야."


젠데온이 낄낄대며 말했다.


"아카드 선배의 작전이 그렇게 대단한 거에요?"


휴베르토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내 지식 밖이니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읽어보면 말야. 완벽하다고 밖에는..."


"아카는 정말 대단해. 같은 또래라고는 생각 못하겠어."


아나스타시아는 박수를 한번 치며 웃었다.


"이래도 괜찮을까."


유지니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카드는 우리와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라고 중얼거렸다.


"왜? 아카가 왜 우리랑 안 어울려?"


아나스타시아가 발끈 해서 묻자, 유지니오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카드는 그게, 만약에 리베리아 제국의 제상으로 있었다면 이 혼란을 모조리 막아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야. 아마 세계통일이라도 이룩하지 않았을까?"


"그게 그 정도야?"


아체나가 아카드의 종이뭉치를 가리키며 흥미로운 듯 묻자 유지니오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내가 감히 알리 없을 정도야."라고 말했다.




사흘후 다시 모인 군대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보다도 훨씬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호운타의 시민들은 전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제 아무리 의지를 갖고 유지니오를 따라온 병사들이지만, 가족들의 만류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다행히 안 온 사람은 없네."


아체나가 어중간하게 사열해있는 병사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지니오는 쓴웃음조차도 짓지 못했다. 몇몇 병사들은 지휘부쪽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여기 모인 병사들 중 일부는 내가 군대 해산을 선언해주기를 바라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마. 쉴 새 없이 한숨만 나올 뿐인걸."


아체나가 그렇게 위로했지만 젊은 지휘관의 마음은 복잡했다.


"유지니오."


아카드는 평소와 같이 속내를 비치지 않는 얼굴로 조언했다.


"마음을 굳세게 먹어야 해. 지휘관이 그런 얼굴이면 병사들도 곤란해할 뿐이야."


"하지만 아카드, 지금부터 우리는..."


"이기러 가는 거야."


아카드는 언제나의 패턴과 같았다. 그녀가 단언한 다음 내리는 지시는 두말할 것 없이 언제나 옳았다.


"아카, 이길 수 있겠지?"


아카드에게 다짐을 받는 것은 아나스타시아의 일이었다. 아카드는 그녀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군대가 퀼레팔라 요새를 얻어낸 것은 겨우 6일 후였다.


작가의말

등장 인물의 이름은 영어책을 세로로 읽거나, 친구들에게 생각나는 이름을 하나씩 말해보라고 하거나, 행정학 책에서 제일 어려워보이는 이름으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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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16화. 승리, 그리고 승리 -3 16.02.02 165 2 13쪽
127 115화. 승리, 그리고 승리 -2 16.02.02 156 2 27쪽
126 114화. 승리, 그리고 승리 -1 16.01.30 153 1 8쪽
125 113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4 16.01.24 122 2 13쪽
124 122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3 16.01.18 147 2 12쪽
123 121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2 16.01.14 170 2 19쪽
122 120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1 16.01.14 129 2 8쪽
121 119화. 전야 16.01.14 156 3 10쪽
120 118화. 험멜의 뒤를 쫓아 -3 15.11.17 237 2 26쪽
119 117화. 험멜의 뒤를 쫓아 -2 15.11.09 250 2 13쪽
118 116화. 험멜의 뒤를 쫓아 -1 15.10.30 195 2 15쪽
117 115화. 휴식의 날 15.10.23 152 2 20쪽
116 114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3 15.10.21 256 2 17쪽
115 113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2 15.10.19 216 2 16쪽
114 112화. 선지자 15.10.16 95 3 12쪽
113 111화. 마지막을 피할 수 없는가 -4 15.10.15 178 4 15쪽
112 110화. 마지막을 피할 수 없는가 -3 15.10.13 138 2 16쪽
111 109화. 마지막을 피할 수 없는가 -2 15.10.08 101 2 7쪽
110 108화. 마지막을 피할 수 없는가 -1 15.10.04 192 2 8쪽
109 107화. 옛 연인 -3 15.09.30 140 3 15쪽
108 106화. 옛 연인 -2 15.09.21 239 2 12쪽
107 105화. 옛 연인 -1 15.09.18 188 2 8쪽
106 104화. 세만 요새 공성전 -3 15.09.16 110 2 8쪽
105 103화. 세만 요새 공성전 -2 15.09.14 206 3 9쪽
104 102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1 15.09.11 305 3 8쪽
103 101화. 스스로 만들어낸 승리 -3 15.09.09 179 3 13쪽
102 100화. 스스로 만들어낸 승리 -2 15.09.07 171 4 9쪽
» 99화. 스스로 만들어낸 승리 -1 15.09.02 183 3 10쪽
100 98화. 의도된 급변 15.08.31 187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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