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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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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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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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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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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1

DUMMY

아직 잠이 들지 않은 한스의 방을 방문한 헤더는 들어가자마자 두서없이 주절주절 실프가 해준 말을 전해주었다. 어린 영주가 늦은 시간 잠옷 바람으로 달려왔기에 한스는 문을 열며 잠시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녀의 설명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밝아졌다.


“그 말 사실인 거죠?”


“정말 사실이에요. 한 번만! 한 번만 내 말 믿어줘요. 아아아, 믿기지 않는 건 잘 알아요. 정령이니, 실프니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지금 제 얼굴 오른쪽에 실프가 있다고요.”


자신이 한 말일지라도 본인조차 믿겨 지지 않는 상황이기에 헤더는 사실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반면 다양한 경험이 많은 한스는 처음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이미 아리엘에게 실프가 그녀 곁에 항상 머물고 있다는 말도 들은 상태였고, 친구들이라면 분명 어떤 수를 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스는 헤더를 진정시키듯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믿어요. 영주님께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영주님 만난 첫날 아리엘이 얘기해줬어요. 정령 실프가 곁에 머물고 있다고요. 아리엘이 정령사니까 영주님이 정령사의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아본 거죠.”


그의 말이 순간 부끄러웠는지 헤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신도 모르고 있는 걸 여섯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 창피했던 모양이다.


“······다, 여섯 분 전부 다 알고, 알고 계셨다고요?”


“네.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리엘이 그러더라고요. 얘기하면 오히려 신경을 더 쓰게 되고 정령을 못 보고 못 느끼면 스트레스받고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요. 본인 스스로 눈이 틔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아아, 그랬구나.”


헤더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한스는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거죠. 이 시점에 실프를 보고 느낄 수 있으시잖아요. 후아아. 정말 다행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했는데 영주님 덕분에 살았어요.”


“저,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얼굴은 못 보셨지만 크로프트에 오자마자 다시 돌아간 제 친구가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 이랬을 거예요. 지금부터 누구보다 가장 큰 일을 할 텐데 아무것도 한 게 없다뇨? 누구보다 영주님을 믿겠습니다. 라고요.”


과한 칭찬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헤더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아어아아, 창피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레일라랑 콜리나 불러올게요. 방법이 생겼으니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해봐야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스는 잠이 든 둘을 깨워 방으로 데려왔다. 둘에게 한스가 차분하게 설명하자 특히 콜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리엘이 그런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한 모양이네. 그럼 아리엘이 남긴 흔적을 찾아 따라가면 셋이 잡혀있는 곳도 놈들의 본거지도 한꺼번에 다 알아낼 수 있는 거잖아.”


“그렇겠죠?”


반면 레일라는 지상에서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정령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흔적이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지. 그렇게 발바닥에 무좀이 생기도록 뛰어다녔는데. 쳇!”


오늘은 주로 위로를 담당한 한스였다.


“레일라도 정말 고생 많았어. 아리엘이 남겨둔 흔적을 찾는 건 영주님 몫이겠지만 그 밖에 주변을 살핀다거나 숲에서 우리 흔적을 감추는 건 레일라가 해줘야 하잖아.”


눈이 피로한지 손으로 눈을 덮어 비비며 레일라가 앞으로의 계획에 말을 꺼냈다.


“그래,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영주님이 직접 실종된 현장에 가서 아리엘이 남겨놓은 흔적을 찾아야 하잖아?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언제 어디서 또 놈들이 우릴 노리고 있을지 몰라. 그래서 우리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조사를 하는 거고.”


“언니, 저는 정말 괜찮아요! 세 분 납치되신 이후로 계속 돕겠다고 했잖아요.”


“후우우, 언니라는 말 좀 제발······. 어쨌든 영주님? 돕겠다는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해요. 상대는 크리그마 산을 제집 드나들 듯 훤히 꿰고 있어요. 어디 그뿐인가? 말도 안 되게 강한 자들이라고요. 크로프트의 전 병력을 끌고 가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 못 해요.”


“언니도 있고 마법사가 둘이나 있잖아요.”


“우리도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인데 넷이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당했어요. 마법사와 정령사가 있음에도 당했다면 놈들은 상당히 똑똑한 놈들이란 뜻이죠. 거기다 서기관님이 가만히 있겠어요? 영주님을 보호하려고 어떻게든 병력을 늘릴 거라고요. 그럼 놈들에게 들킬 가능성은 더 커지겠죠.”


얼핏 들으면 레일라는 수색에 헤더 영주의 합류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레일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도움 없이는 잡혀있는 세 사람을 절대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레일라의 생각은 잔뜩 겁을 주어 포기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기보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려는 뜻이 숨어있었다.


“제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그리고 아저씨는 제가 설득할게요.”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도우실 건가요? 우리 셋과 영주님, 이렇게 네 사람이 은밀하게 움직여야 해요. 최대한 조심하겠지만 언제 어디서 놈들에게 들킬지 모르고요. 거기다 적의 본거지를 찾게 된다면 더 위험할 테고요.”


레일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헤더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네! 당연하죠!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요!”


헤더는 단순히 용병 세 사람을 구하려는 목적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크로프트의 실종사건을 자기 손으로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영주로서의 자신의 입지 또한 굳건히 지킬 수 있을 테니까.


#

- 저벅저벅.


늦은 새벽 시간, 영주의 성에서 헤더가 각오를 다지던 때 셋이 갇혀있는 감옥에 그림자 하나가 걸어왔다. 그림자는 보초를 서던 사내와 자그맣게 대화를 한 후 교대했고, 한동안 주변을 살피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감옥 안의 카데스와 파시비엔은 불편한 자세로 곤히 잠이 든 상태였고, 둘보다 더 불편한 자세로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아리엘은 잠이 깬 채 자는 척을 하며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기 바빴다.


발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선잠에서 깬 그녀가 실눈을 살짝 뜨자 그림자는 셋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팔자 좋군. 이 상황에서도 잠을 자는 걸 보니.”


그림자는 오늘 오겠다고 약속한 피츠였다. 그가 감옥 가까이 다가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들은 아리엘은 바로 눈을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정체가 뭐야?”


“안 자고 있었나? 풉! 정체랄 거까지 없어. 슬슬 본론에 들어가야 하니 나머지 둘도 깨우지, 그래?”


상체를 밧줄로 칭칭 묶인 아리엘은 꼬물거리면서 대답했다.


“보다시피. 당신이 깨우는 게 낫지 않겠어?”


- 툭툭.


아리엘이 움직이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피츠는 검집으로 카데스와 파시비엔을 건드려 잠을 깨우자 둘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잠에서 깼다.


셋 중 유일하게 막노동을 한 카데스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피츠를 노려보며 말했다.


“왔군.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지?”


“우선 질문은 내가 해. 성실하게 답변하는 태도에 따라 나 역시 궁금한 걸 알려주도록 하지.”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 성실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기세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카데스의 의도를 금세 파악한 피츠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서로의 신뢰를 쌓기 위해선 할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설득하기 위한 과정 또한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었다.


‘말주변이 없으니 쉽지 않군. 차라리 프레시아랑 같이 올 걸 그랬나? 이거 피곤해지겠어.’


피츠가 생각에 잠긴 사이 얌전히 누워 환자 행세를 하던 파시비엔이 입을 열었다.


“대체 뭐가 궁금한 겁니까? 어디 한 번 물어보시지 말입니다.”


“좋아. 그럼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너희 동료들이 더 있나? 아, 물론 달아난 여자 이외의 다른 동료가 있는지 묻는 거야.”


혹여나 순진한 파시비엔이 솔직하게 대답할까 싶었는지 먼저 카데스가 말을 가로챘다.


“그게 왜 궁금한 거지? 혹여 동료가 더 있다고 한들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는 처지인 걸 알 텐데?”


“역시나 계속 의심하고 있군.”


“동료가 더 있다고 말한다면 너희는 어떻게 해서든 제거를 하려 들 테니까.”


“형들은 달아난 여자 포함. 너희 넷이 전부라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나와 내 동생 하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메델 누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실력 있는 모험가 파티라면 몇 명 더 있을 거라 믿고 있지. 이걸 물어본 이유는 단 하나야. 밖에 있는 너희 동료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 거니까. 만약 동료가 없거나 별 볼 일 없는 자들이라면 지금 이 얘기는 무의미해지겠지.”


카데스는 피츠의 말 중 도움이란 말에 꽂혔다. 그의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도움? 무슨 도움을 말하는 거지?”


“동료가 더 있는지 대답하기 전까지는 질문은 사양하지. 결정해.”


강압적인 태도에 셋은 상당히 불쾌했다. 불쾌함을 떠나 섣불리 한스와 레일라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입을 다물기로 작정했다.


“후우우. 말하기 싫은 모양이군. 여기에 갇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의리를 지키겠다는 건가? 너희 코가 석 자인 걸 알아두라고.”


“도움을 바란다면 좀 더 예의 바르게 나와주는 건 어때?”


“푸흡! 지금 너희 처지를 보라고. 선택지가 없다는 건 너희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선택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허리를 크게 다쳤던 파시비엔은 묶여있지 않았고, 덕분에 몰래 치료 주문을 써 부상을 모두 회복한 상태다. 손발이 자유로운 파시비엔이 꽁꽁 묶인 아리엘을 풀어주게 된다면 위험은 따르겠지만 탈출할 방법은 분명 존재했다.


“당신 말대로 실력 있는 모험가 파티라면 무슨 수를 쓰지 않았을까? 우린 당신네들이 예상하듯 크로프트 일대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고용된 용병이야. 당장에라도 탈출할 수 있지만 너희 정체를 알아보려고 일부러 잡혀있는 거라면?”


“허세 부리지 마라.”


카데스는 피츠의 신경을 건드리며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아직 너희에 관해 알아볼 게 잔뜩 있어서 말이지.”


“기대한 내가 잘못이군. 이래서야 대화조차 되지 않겠어.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보도록 하지. 탈출? 꿈도 꾸지 말라고.”


피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그의 머리 위에서 또 다른 검은 그림자 하나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 탓!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 씨! 깜짝이야. 프레시아, 네가 왜 온 거야? 위험하다고.”


“이따위로 대화할 거 같아서 온 거야.”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젊은 여인의 음성. 아무리 어둡다고 한들 상대가 가까이에 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카데스와 파시비엔은 팔의 솜털을 쭈뼛 설 정도로 소름이 돋았고, 둘보다 오감이 뛰어난 아리엘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질려버렸다.


‘대체 강한 자들이 얼마나 더 있는 거야? 살면서 이런 무리가 있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 히잉. 지터 보고 싶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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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9 24.01.04 12 1 13쪽
249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8 24.01.03 9 1 13쪽
248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7 24.01.02 17 1 12쪽
247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6 23.12.29 18 1 13쪽
246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5 23.12.28 13 1 13쪽
245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4 23.12.27 12 1 12쪽
244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3 23.12.26 13 1 14쪽
243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2 23.12.22 22 1 13쪽
242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1 23.12.21 13 1 12쪽
241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0 23.12.20 15 1 14쪽
240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9 23.12.19 16 1 12쪽
239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8 23.12.18 14 1 12쪽
238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7 23.12.15 17 1 12쪽
237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6 23.12.14 19 1 13쪽
236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5 23.12.13 14 1 13쪽
235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4 23.12.12 14 1 12쪽
234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3 23.12.11 15 1 15쪽
233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2 23.12.08 17 1 15쪽
»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1 23.12.07 13 1 12쪽
231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0 23.12.06 16 1 12쪽
230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9 23.12.05 17 1 12쪽
229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8 23.12.04 14 1 12쪽
228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7 23.12.01 21 1 13쪽
227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6 23.11.30 16 1 15쪽
226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5 23.11.29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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