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륜마도(轉輪魔道) 第四章 너는 왜 웃고 있냐? (一)
도영은 죽지 않았다.
또다시 혼자가 되었을 뿐이다. 원래 계획을 바꿔 배에는 풍기 혼자 탔다.
적들에게 명궁이 있었기에 부득이 그리 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배에는 며칠분의 식량과 두툼한 이불 두 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풍기는 식량과 이불 하나를 꺼내 도영과 함께 바위 틈바구니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남은 이불을 둘둘 말아 마치 도영인 것처럼 꾸몄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잔꾀였는데 상대는 보기 좋게 넘어갔다.
도영은 멍하니 빗줄기를 바라봤다.
언제나 혼자였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적들의 수중에서 빠져나왔다는 것도 가슴에 닿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어찌 될지 막막하기만 했다.
풍기가 화살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 시야가 가려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풍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지만 숨이 막혀올 뿐이다.
도영은 풍기가 남겨놓은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육즙이 입안에 가득했지만,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시간은 거칠게 흐르는 탁류처럼 주저 없이 흘러갔다.
빗줄기가 사라지자 어둠이 밀려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영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크지 않은 갈대밭을 멍하니 응시했다.
어둠속의 갈대들은 마치 그와 세상을 단절시키는 장벽인 것처럼 스산해 보였다.
그때였다.
바스락!
갑작스런 소리. 분명 무언가 있었다.
도영은 눈을 흠칫 치켜떴다.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흔들리는 갈대가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었다. 흠칫 몸이 떨렸다.
두려움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두렵지 않다. 죽음 따위는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기에 전혀 두렵지 않다. 하지만 몸을 차갑게 먹어치우고 있는 놈은 분명 두려움이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현실이다.
스-윽!
갈대를 뚫고 달빛 아래에 놈이 머리를 천천히 내밀었다.
노란 눈이 번뜩였다.
‘늑대인가?’
범이든 늑대든 자신을 어찌하기엔 충분할 터였다.
‘범만은 아니었으면 싶은데······.’
우습다.
범이든 늑대든 결과는 어차피 뻔하다. 그런데도 범이 아니길 바란다. 좀 더 작은 공포를 바라는 것이 우습기만 하다.
이 정도에도 벌벌 떠는 놈이었던가?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모든 게 거짓이었다.
자신이 가소로웠다.
“큭큭큭!”
스스로를 비웃었다.
“너는 왜 웃고 있냐?”
갑작스런 목소리에 도영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웃음을 멈추었다.
그때 늑대인지 범인지 모를 놈이 으르렁거렸다.
“시끄러! 패주기 전에 꺼져라.”
믿을 수 없게도 놈은 잠시 으르렁거리더니 천천히 물러났다.
도영은 일순 멍해졌다.
그때 갑자기 그의 앞으로 우스꽝스런 얼굴이 나타났다.
“히히히! 냄새가 난다. 맛있는 냄새다.”
도영은 눈앞에서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멍청하게 바라봤다.
하얀 수염이 제법 그럴 듯해 보이는 노인이다. 한데 얼굴 표정과 행동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도영은 노인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았다.
노인이 입을 크게 벌리고 헤벌쭉 웃었다.
“히히! 고기 냄새가 난다.”
그러고는 육포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린다.
도영은 황당했지만, 이내 육포를 팔로 끌어와 노인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질겅질겅!
성글지도 않은 이로 잘도 씹었다.
순식간에 절반이 줄었다. 이틀은 충분히 먹을 양이다. 그럼에도 노인의 얼굴엔 아쉬움이 남아있다.
도영은 나머지 육포마저 앞으로 내밀었다.
노인은 만세라도 부를 듯한 얼굴로 육포를 양손으로 덥석 움켜쥐고는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결국 노인은 사일치 식량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신 노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육포를 찾고 있는 게 분명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주고 싶어도 줄 게 없으니 황망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다.
더 이상 먹을 게 보이지 않자 그제야 자신의 동산만한 배로 고개를 돌린다.
“히! 배부르다.”
배가 부르긴 하나보다.
잠시 배를 쓰다듬던 노인이 도영을 쳐다봤다.
“난, 내 이름은······ 히! 난 나야. 근데 넌 뭐냐?”
당연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는 왜 말이 없냐?”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크게 벌려주었다. 잘 보이도록 말이다.
“엇! 너는 왜 혀가 없냐? 웃기는 놈이다.”
노인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다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도영은 인상을 쓰며 곧 입을 다물었다.
“어, 벌려봐라. 자세히 못 봤다.”
도영은 입을 벌리지 않았다.
노인은 손을 내밀어 도영의 입을 열려고 했다. 도영이 고개를 숙여버리자 입을 반쯤 빼 물었다.
“쳇! 재미없다. 나 갈래.”
도영은 고개를 들었다.
이런 곳에 혼자 있기 싫었다. 좀 전의 맹수가 다시 돌아올지도 몰랐다. 도영은 노인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맞았다.
그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지 미풍만을 느꼈을 뿐이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그 어디에도 노인을 찾을 수가 없다.
‘무공 고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설마하니 진짜 귀신은 아닐 것이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비정상적인 상태로 보아 혹시 말로만 듣던 주화입마인지도 모르겠다는.
‘주화입마!’
몸이 정상으로 회복할 수만 있다면, 노인처럼 고강한 무공을 익힐 수만 있다면 당장에 쳐들어가 년놈들을 자신처럼 만들어줄 것이다. 그 후에는 다시 이 지경이 되어도 좋았다. 노인처럼 주화입마에 빠져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죽어도 좋았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그게 현실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얼굴을 스치는 미풍이 불어왔다.
깜짝 놀랐다.
노인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노인은 입을 열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아, 맞다. 넌 착하니까.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히히히!”
그러고는 헤벌쭉 웃는 얼굴로 내려다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너무 쉬워서 어렵게 느껴졌다.
피식!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웃고 나니 스스로도 놀랍기 짝이 없다. 웃음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헤! 웃었다.”
노인은 먹을 것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물었다.
“근데 왜 엎드려 있냐?”
웃음이 사라졌다.
고개를 떨어트렸다.
노인은 그런 도영을 훑어보았다.
“많이 아파? 괜찮아! 넌 착하니까. 내가 지켜줄게. 히히!”
노인은 옆에 나란히 엎드렸다.
도영은 흠칫 놀랐지만, 노인이 특유의 우스꽝스런 웃음을 보여주자 또다시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전방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잠겨있는 갈대밭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시간이 갈대를 스쳐갔다.
둘은 나란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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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주인공, 작가 잘못 만나 너무 처참하게 당했네요.
이제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으니 원하는 것을 얻길 바라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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