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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자

이세계에서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정주(丁柱)
작품등록일 :
2024.05.30 07:44
최근연재일 :
2024.07.05 10:49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52,644
추천수 :
6,023
글자수 :
299,214

작성
24.06.1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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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글자
17쪽

023. 내가 모르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DUMMY

엘리나가 흘리는 살기 띤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되었다.

정말 죽이려고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면 나가서 정말 모험가를 할 수나 있겠나?


“알았어.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할게. 잠시만 준비할 시간을 줘.”


나는 의지를 다지며, 말로만 싸울 준비를 하는 대신 마법과 정령 마법 정령을 방어구에 빙의시키는 등 싸울 준비를 단단히 했다.

제대로 준비하며 싸우려는 내 모습을 보고 엘리나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리 말할게. 은퇴하기 전 내 모험가 등급은 골드 등급이었어. 하지만 팔이 잘려 강등당하기 전까진 백금 등급을 바라보는 백은 등급이었어.”


엘리나에게 배운 대로라면 모험가 계급은 브론즈, 아이언, 실버, 골드, 백은, 백금, 미스릴, 아다만타이트 급으로 나뉜다.

가장 많은 모험가가 아이언, 실버 급이고 골드만 해도 상당히 높은 실력자인데.

백금을 바라보는 백은 등급이라면 그야말로 최상위권에 속한 모험가.

비록 지금 골드 등급이라고 해도 의수에 익숙해진 덕분에 스승의 실력은 과거의 실력을 어느 정도는 따라가게 됐을 거다.


“어떻게든 내 손에서 살아남아봐. 그럼 실버 등급까진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없이 엘리나는 엘븐보우를 당기며 나를 노렸다.


“엘리다인! 추적해!”

쎅!


처음부터 엘븐보우로 궁극기를 쓰다니!


“막아!”

쎅!

쾅!


나는 나대로 화살에 정령들을 빙의시켜 화살을 화살로 막는 묘기를 보였다.

하지만 엘븐보우로 쓴 궁극기 자체가 하나의 미끼.

내가 방어하느라 화살을 쏘는 사이.

빠르게 접근한 엘리나가 허리를 쓸어왔다.


콰직! 서걱!

“커억!”


모험가가 되면 입어야지 하고 공들여 만들어뒀던 판금 갑옷이 둔탁 소리와 함께 절단됐다.

충격으로 뒤로 밀리며 깊게 베이는 걸 피하긴 했는데.

흙의 정령인 에씨비를 빙의시켜서 강화까지 해뒀는데, 그걸 힘으로 찢고 들어오다니.

진짜 고릴라 같이 무식한 힘이었다.


“한눈팔지 마!”


경고성과 함께 목을 향해 칼이 날아들어 왔다.


채앵!


롱소드를 틀어막았는데, 목검 때 보다 더 큰 충격과 울림이 손으로 전달되며 그대로 몸이 뜨는 걸 느꼈다.


퍽!


엘리나의 발이 내 복부를 걷어찼다.

속절없이 날아가며 넘어지고 빨리 일어나려는 순간.

태양을 등지고 높이 날아오른 엘리나가 양팔로 롱소드를 들어 올리고 내 머리를 향해 내려치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손을 들어 방어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착지하는 엘리나의 두 무릎이 내 팔을 봉인하고 있었다.


“크윽!”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라도 비틀었다.


...


하지만 마무리 일격은 내려오지 않았다.

힐끔 눈을 뜨며 고개를 돌리자.


“죽이려다 봐줬다.”


엘리나가 씨익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

그래! 훈련인데 죽일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얼굴을 향해 그림자가 내려서더니.


퍼억!

콰직!


엘리나의 주먹이 눈만 빼고 전체 머리를 감싸고 있는 헬름을 구기며 들어와 내 머리를 갈겼다.

큰 통증으로 기절하기 전에 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기절하면 약으로 깨워서 바로 다시 할 거야.”


젠장, 기절해서 좀 쉬려고 했는데 꼼수도 못 부리네...


* * *


새로운 실전 수련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났다.

실전에 조금 익숙해진 토마스는 자신을 둔탁하게 하는 갑옷을 벗어 던졌다.

가뜩이나 스피드가 밀리는데, 갑옷 때문에 느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뭘 해도 항상 기절하고 베이고 썰리고 구워지고 지져지고...

토마스는 엘리나와 하는 실전 연습 때문에 몸 성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회복초나 각성약 등, 이 세계의 약초들이 기적에 가까운 회복력과 치료력을 보이며 항상 토마스를 좀비처럼 살아나게 해주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실전 감각과 실력은 조금씩 향상하고 있었다.

검술이면 검술, 마법이면 마법, 정령술이나 궁술까지 모두 복합적으로.

두 사람은 항상 사람이 오기 힘든 깊은 숲에 가서 실전 연습을 진행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생사가 오가는 싸움에서도 정령은 방어와 궁술에만 사용하고 가끔씩 다른 일반 정령사가 하듯이 원거리 공격을 하는 데 그쳤다.

여전히 정령이 직접 싸우게 하는 방법은 봉인 한 채로 따로 연구 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토마스가 검술이나 좀 배웠지, 엘리나에게 마법과 정령술까지 배웠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신 매번 두 사람이 아침마다 숲으로 들어가면, 둘 다 옷이 찢어지거나 토마스가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오는 모습이 목격되자.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상상하더니, 벌어지지 않은 새로운 소문을 만들어 냈다.

어느 날 토마스가 쩔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동네 아저씨인 잭스를 만났다.


“여어! 토마스, 오늘도 뜨겁게 한판하고 오는 거야?”

‘뜨겁게 한판... 하긴 오늘 불로 지져지긴 했지... 근데 젠장! 마법이나 정령술은 숨긴다고 했는데. 이놈의 동네는... 뭘 숨길 수가 없어!’


토마스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잭스의 안부 인사를 대충 받아줬다.


“네. 불은 뜨겁죠. 그것도 모르셨어요?”

“유후! 와! 그렇게 뜨겁다고?”

‘이건 뭐...’


안부를 물으려고 하는 건지 놀리려고 하는 건지.

토마스는 머릿속으로 잭스를 숲으로 끌고 들어가 자신이 예전에 했던 것처럼.

불로 지지고 회복초로 회복시키고 다시 불로 지지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어색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그런데 잭스에게 완전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


“근데 너... 어떻게 그 엘프를 꼬신 거야? 이 자식 항상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이 좋다니까?”

“... 에?”


토마스의 미간이 천천히 찌푸려졌다.

잘못 들은 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꼬셔? 스승이 되어 달라고 꼬시긴 했지...’


하지만 상대는 토씨 하나 오해하지 않도록 다시금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엘프는 어때? 얼굴이야 당연히 예쁘니까 피부는? 부드럽냐? 아니면 좀 땅땅하고 탄력 있어? 가슴도 생각보다 커 보이던데. 만지면 어떤 느낌이야? 여자는 몸에 탄력이 있어야 한다던데...”


이렇게 대놓고 음담패설을 걸어오는데 못 알아들을 리가 있는가?

이 촌 동네는 이래서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람이 없는 데서 자기들끼리 떠들고.

뭐 하나 생기면 거기에 아홉이나 열을 더해서 억측하고 그것을 기정사실처럼 소문을 퍼트린다.

사람도 적고 변화가 적은 벽촌의 촌 동네에서 삶의 낙이라고 해봐야 그런 소문 얘기하는 것 정도밖에는 없다고 해도.

적당히 선을 지켜야지.

자신과 엘리나가 숲에 가는 것을 보고 사귀고 있고 숲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내가 정령술을 쓰고 마법을 쓴다는 걸 들킨 게 아니라... 차라리 나은 거라고 해야 하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반응도 하기 싫었다.

토마스는 그냥 그만큼 자신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개인 정보를 잘 지킨 탓에 이렇게 억측이 생긴 거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관계를 정정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잭스의 이 말을 듣기 전까지.


“근데 걔... 외팔이에 모험가 출신이라 쉽지? 어때, 이 나도 가능성 있겠어? 얼마면 되는데?”


그가 스승인 엘리나를 싸구려 창녀 취급하며 말했다.


“아저씨, 왜 항상 그딴 식으로 말하세요? 짜증 나게. 씨발?”


토마스는 급히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며 짜증을 터트렸다.

손을 뒤로 뺀 이유는.

뒤에서 두 손끼리 서로 잡고 있지 않으면.

잭스의 면상에 한 방 꽂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그딴 식? 씨발? 야이 새끼가! 오냐오냐해 줬더니. 뭐? 그년하고 진짜로 사귀는 거야? 돈 주고 그것만 하는 거 아니었냐고!”


잭스는 되려 적반하장으로 흥분했다.

토마스는 그냥 때리는 게 제일 시원하고 좋지 왜 참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이 마을을 나가면 더 이상 볼 일 없다고.

이 마을에 남을 가족들을 위해 참아야 한다고.

벌써 몇 년을 참아 왔는데 여기서 주먹이 나갈까?

주먹을 내지르자니 그간 참아 온 세월이 아까웠다.

힘이 생겼다고 해서 함부로 휘두르기도 싫었고.


“아저씨. 만약 내가 진지하게 사귀고 있었으면 내 앞에서 그딴 식으로 말하는 게 맞아? 사귀지 않는다고 쳐. 두 사람이 뭐 하는지 직접 확인해 봤어? 그런 적도 없는데 왜 그딴 말을 떠드는 건데?”


토마스는 꾹 참고 논리적으로 따졌다.


“야! 내가 없는 말 해? 그 여자가 맨날 밤마다 너네 창고로 들락날락하고, 넌 아침마다 그 여자 집 들러서 숲으로 들어간다고 하잖아? 그게 그거 아니면 대체 뭐야? 어? 우리가 없는 말 하냐고!”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들은 게 맞는다고 우기는 잭스였다.

비단 이것이 잭스만의 태도겠는가?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똑같다.

이렇게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14년 넘게 한마을에서 살았다니.

정말 끝까지 정을 붙이려고 해야 붙일 수 없는 마을이었다.


“나 요즘 그분 스승님으로 모시고 칼 배워. 지금 차고 있는 활 보여? 활도 배워. 그리고 스승님 골드 등급 모험가야. 당신 골드 등급 모험가 귀에 그딴 말 들어가도 괜찮겠어?”


더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전에 그의 앞에서 확실하게 둘이 만나 뭘 하는지 못 박아 주었다.

엘리나의 모험가 등급을 슬쩍 흘려서 협박을 했더니.

잭스가 움찔하며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이내 지기 싫다는 듯.


“뭐? 이... 이 새끼가 말하는 싸가지 더럽게 없네? 너 이씨... 나랑 나이 차가 얼만데, 받아줬더니 꼬박꼬박 싸가지 없이 말대꾸야?”


나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딴 멘트는 어디 단체로 학원에 가서 같이 배우나?’


내세울 건 나이밖에 없고 논리가 딸리니 메신저를 공격하다니.

딱 꼰대다.

아니, 이건 자존감 낮은 커뮤니티 망령들과 같은 등급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상대를 하자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됐소. 난 갈라니까 아저씨나 나이 많이 드쇼.”


괜히 말 더 섞어서 같아지느니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야 이 등신아. 어떤 등신이 외팔이 병신한테 칼이랑 활을 배우냐? 니가 그렇게 등신같이 구니까 그런 팔 없는 불구하고 엮이는 거야! 알아?”


잭스의 말에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끊기는 게 느껴졌다.

토마스는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풀어서, 활대 끝을 잡고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휘둘렀다.

쎅! 하는 소리와 함께 뚝! 하고 잭스의 허리띠가 잘렸다.


“아악!”


하지만 잭스는 허리춤이 아닌 자신의 입술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검 대신 활로 허리띠부터 그의 입술까지 올려 베서 허리띠를 자르고 입술을 터트려 버린 거다.

그런 잭스에게 토마스가 다가갔다.

살기등등한 눈을 하고 활로 내려찍을 준비를 하고서.

피가 줄줄 흐르는 입술을 붙잡고 놀라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바지가 흘러내리며 잭스가 바닥에 넘어졌다.


“하, 하지 마! 사, 살려줘!”


잭스가 두손을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드러누운 그의 몸 위로 활대 대신 회복초 뭉치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걸로 피 닦고. 입 간수 잘하쇼. 진짜로 뒤지기 싫으면.”

“어어... 어어어... 어...”


잭스는 토마스의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회복초를 더듬더듬 입술에 가져다 댔다.


“아! 아앗... 윽...”


상처가 회복되며 느껴지는 통증에도 움찔거리는 잭스.


“그것도 못 참으면서, 누가 누굴 보고 병신이라는 거야?”


토마스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지 않아 마을에 소문이 돌았다.

토마스가 외팔이 엘프를 스승으로 모시고 칼과 활을 배웠고 실력이 상당하다고.

이번 성년식이 끝나면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모험가로 지내려고 하는 것 같다고.

이슈는 새로운 이슈로 잊힌다고.

전에 돌던 토마스와 엘리나의 있지도 않은 추문은 그 소문에 확실하게 묻혔고.

잭스는 토마스에게 얻어터져 한심하게 눈물 콧물을 짜냈다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 * *


어느새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유난히 추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쌓인 눈이 녹을 정도로 따듯한 날이 있고 바람이 많이 불어오며 녹은 눈이 다시 얼음이 되는 등.

그야말로 날씨가 지랄 같아서 마을 사람들의 야외 활동도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

엘리나와 토마스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난달 열었던 정령권 토너먼트 때문에 몰린 정령 인파 때문이라는 것을.

덕분에 다음 달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정령왕의 방문이 자연계에 쌓인 정령의 힘이 어느 정도 해소되기 전까지 밀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하루하루 날은 갔고.

나날이 토마스는 성장해 갔다.

겨울의 끝은 점점 다가왔고 토마스는 새로운 봄을 맞아 성년식을 하러 도시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똑똑똑.


토마스는 이웃들의 집 앞으로 찾아가 그들의 문을 두들겼다.


끼이익...

“누구세요? 아아. 토마스구나. 키가 부쩍부쩍 많이 크네. 슬슬 너도 성년식을 하러 가야 하던가?”

“네. 아주머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요.”

“부탁? 무슨 부탁?”

“아시다시피 제가 창고에 만들어 둔 가구가 많잖아요? 이번에 성년식을 하러 도시로 갈 때, 마차에 가구들을 실어서 도시에다가 팔 생각인데요. 말이나 소를 좀 빌리려고...”


본론을 말하자 이웃집 아주머니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아. 그렇구나. 저런... 조금만 일찍 얘기하지. 봄 되면 바로 새로운 밭을 개간한다고 소를 써야 한다고 우리 남편이 그러던데...”

‘개간은 무슨, 지금 밭도 관리 못 하면서... 근데 여기도 이러네...’


아주머니의 대답에 토마스는 이번에도 퇴짜를 맞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시기를 늦추시죠? 제가 늦어지는 만큼 나무 쟁기나 가구 같은 거로 선물도 드리고... 같이 도시에 가는 가족들에게 먹을 거나 돈을 쥐어 보내서 사용료는 꼭 갚아 드릴게요. 선불로 어느 정도 드릴 수도 있고요.”

“그러면 고맙지. 근데 이걸 어쩌나? 집에 나 혼자뿐이라서 결정을 할 수가 없는데. 남편이 돌아오면 상의해서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돌아가 주지 않을래? 밖이 생각보다 추워서.”

“제가 땔감도 좀 나눠드릴까요? 그리고 요즘 목공 제품만 다루는 게 아니라 난로 같은 철제 제품도 다루고 건물 설비도 하거든요? 구들장이라고 겨울에 방바닥 전체를 따듯하게 하는 방식으로 집을 고쳐드릴 수도 있고...”

“어어. 그래. 나중에 보자. 추워서 이만 들어갈게. 나중에. 응?”


필사적인 설득에도 아주머니는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벌써 몇 번째 거절일까?

이런 반응을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다.

토마스는 겨울 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말이나 소를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안 된다. 사용 예정이다. 말이나 소가 다쳤다 같은 것들뿐.

떼먹을 것도 아닌데 한두 집도 아니고 모든 집이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입을 맞췄다는 거다.

물론 토마스의 집에도 말과 소는 있었다.

말은 암놈이고 소는 암수 한 쌍.

하지만 이번에 끌고 가려고 만들어 둔 마차는 보통의 짐마차가 아니라 가구들을 옮기기 위한 대형 판마차다.

큰 뗏목에 바퀴를 달아둔 형상으로 적어도 소나 말 두 마리가 달라붙어야 끌 수 있을 정도의 무게고 총 4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나마도 필요 없는 건 마을 사람들에게 뿌릴 걸 각오하고 추릴 것만 추렸는데도 그만큼이 나왔다.

최근 정령 공장을 가동하면서, 샘플만 하나 나오면 같은 물건을 여러 개씩 찍어냈기 때문이다.


“더럽게 치사하게 나오네 진짜...”


몇 군데를 더 돌아본 토마스는 창고로 돌아가 골머리를 앓았다.


“너희들이 마차를 끌고 가면 안 되려나?”

=주인 정령력을 생각해. 주인 좀 강해지긴 했지만... 그정도는 아니야.

=중급 정령과 계약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달라질 듯함.

=키히힛! 내가 다 잘라줄게! 다 잘라버리면 안 들고 가도 되잖아! 키힛! 키히힛!


드론이나 피온, 질로트 같은 정령들과 상담했지만, 그들도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중급 정령과 계약을 하려면 정령력이 성장해야 하는데.

지난번 정령권 준우승자인 물의 하급 정령, 권왕 물주먹(칭호, 이름)과 계약을 해서 하급 정령 세 명을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하급 네 명째의 계약까지는 한참은 남아 있었다.


‘그냥 마차를 하이엔드 급으로 만들어 버릴까?’


마지막 남은 방법이 있다면 마차의 구동부를 베어링이나 스프링 등을 써서 나무로만 만든 마차보다 더 잘, 빠르게 굴러갈 수 있게 해서 가축의 사용량을 절반으로 만드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최소한 한 마리 정도는 더 필요했는데.

빌리러 다닌지만 벌써 1주일째.

사실상 안 가본 집이 없었지만, 다들 가축을 안 빌려준다고 한다.

마치 담합을 한 것처럼.

이 마을에서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단속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결국... 그 인간을 만나러 가야 하나...’


촌장.

이 마을에서 토마스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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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정령들의 취직희망 1순위 +10 24.06.08 6,421 172 13쪽
11 011. 정령이 머물다간 거리 +10 24.06.07 6,561 161 12쪽
10 010. 정령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좋은 이유 +9 24.06.06 6,939 160 14쪽
9 009. 내가 이 마을을 싫어하는, 강해지려는 이유 +4 24.06.05 7,283 179 18쪽
8 008. 이름의 특별함 +5 24.06.05 7,787 197 16쪽
7 007. 정령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다 +10 24.06.04 8,911 186 18쪽
6 006. 즐거운 막대기를 배워보자 +9 24.06.03 9,647 194 16쪽
5 005. 정령사, 정령과 계약한 사람이라는 뜻 +4 24.06.02 10,058 224 12쪽
4 004. 나만 목소리가 들려 +12 24.06.01 10,676 182 13쪽
3 003. 4가지 결핍 +13 24.05.31 11,625 240 12쪽
2 002. 촌놈과 폐인 하프 +10 24.05.31 13,568 262 13쪽
1 001. 전생이 기억나버렸다 +17 24.05.30 15,980 2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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