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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자

이세계에서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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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정주(丁柱)
작품등록일 :
2024.05.30 07:44
최근연재일 :
2024.06.2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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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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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028. 도시, 수틀리면 돈주머니 베어가는 곳.

DUMMY

알레니말레르 성.

이곳이 도시(都市)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곳들과 다르게 시장(市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선출직이며 시장의 신분은 귀족이다.

민주주의 사회도 아닌 왕정국가에서 시장을 선출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6개나 되는 귀족 가문에 의해서 공동 통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터레트 백작가, 레오타스 백작가, 니스 자작가, 말페런 자작가, 레이너드 남작가, 르멜리온 남작가.

알레니말레르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각 가문의 이름 중 앞 글자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거였다.

현재의 시장은 니스 자작가에서 선출된 사람이라고 한다.

시장은 권력을 행사한다기보단, 다른 귀족들을 대신해 행정을 운영하는 실무자라고.

그런데 이런 도시가 세상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도시가 있는 곳에는 공통으로 ‘던전’이라는 고대의 신비한 유산이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몬스터는 원래 이 던전에서 나와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 거라고.

그래서 던전은 몬스터의 기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던전에선 몬스터를 잡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보물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던전이 나타나면 원래의 영지를 포기하고 다른 귀족들과 힘을 합쳐 던전 주변을 개간해 도시로 만든다.

즉 도시 말고 다른 성이나 영지가 없다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다만 도시에서 나오는 수입이 다른 영지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힘이 강한 가문에서만 도시를 개간하고.

일반 영지에 남은 비도시 영주 가문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생활 수준도 낮다고 한다.


이곳의 최고 귀족이 백작인 걸 보면 알겠지만, 알레니말레르 던전은 던전 중에는 제법 쉬운 레벨이라고 한다.

하지만 권장 입장 레벨은 실버 등급의 파티로, 솔로로 활동하면 골드 등급인 엘리나가 간신히 입장 컷을 맞출 정도라고 한다.

물론 권장 사항이 그럴 뿐이고 랭크 낮은 자들이 들어가서 자살하는 걸 말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모험가의 업무는 던전을 탐험하는 것만이 아니다.

던전 주변에는 과거 던전에서 나와 지상에 적응한 몬스터들이 많고 그들을 퇴치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의뢰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엘리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모험가로서 제법 시작하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배웠던 내용을 곱씹으며 서쪽 성문 앞에 선 줄로 가서 마차를 세웠다.

그때 엘리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토마스. 여기서부터는 따로 행동하자. 모험가 길드도 가야 하고 나는 뒤따라 들어갈게. 성문을 들어가 북문 쪽으로 가는 대로를 타면 중간쯤 지점에 황색 밥상이라는 이름의 여관이 있을 거야. 내게 신세를 졌던 곳이니, 가서 내 이름을 말하면 싸게 해줄 거야.”


그녀는 따로 행동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알았어. 그럼 먼저 들어갈게. 황색 밥상에서 만나면 되는 거지?”

“그래. 황색 밥상. 여주인에게 엘리나의 소개로 왔다고 하고.”


한 번 더 당부한 엘리나는 챙겨온 짐을 짊어지고는 안에서 로브를 꺼내 종족의 상징인 귀를 가렸다.

엘프면 몰라도 하프엘프는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고 하던데.

여기는 도시다 보니 하프엘프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괜히 우리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따로 행동하려는 것 같았다.

차례를 기다리자 점점 줄이 줄어들었고 어느새 경비병과 얼굴을 맞닥뜨릴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랑 형을 물리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둘에겐 돈이 없었으니까.


“흐음...”


경비병은 나와 가족들을 보더니 아래에서 위로 대놓고 스캔했다.

성문의 경비병이 하는 일이 이런 거라고는 하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왠지 우리 가족을 하찮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쪽에 있는 개척촌에서 왔지? 그 이름도 없는.”

“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이쪽 길로 오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설마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앞질러서 온 건가?

아니면 이 사람 우리 마을 출신?

‘나야 토마스.’ 하면서 반겨주는 건 아니겠지?


“어쩐지 가난해 보이더라고. 근데 짐이 많아보이는데...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

“통행료요?”


알고야 있지만, 처음부터 통행료에 대해 물어보다니...

우리 일행이 돈도 못 낼 것 같이 생겼다고 보는 건가?

잠시 뒤를 돌아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경비병의 얼굴을 한 번 봤다.

그랬더니 경비병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알겠다.

경비병의 얼굴은 붉은빛 생기가 돌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만 얼굴 톤이 회색이라 빛바랜 자들 처럼 보였고.

가구를 덮어둔 천도 화산재 때문에 검회색으로 물들어 지저분했다.

처음 기분 나빴던 시선의 정체가 바로 이거 때문이었구나?


“얼마나 내야 하는 겁니까? 저희가 이제 막 시골에서 와서 돈도 별로 없고 정보도 어두워서...”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원래 인당 10 실버에 말 한 마리당 20 실버야. 마차는 따로 내용을 봐서 가격을 매기는데...”


이런 미친 날강도 새끼들을 봤나?

들은 것보다 두 배는 비싼 값을 부르고 있었다.

통행료가 그새 올랐을 리도 없고, 뒷돈을 챙기려고 그러는 거다.

정해진 금액은 있지만, 더 받고 덜 받고는 경비병 마음이라고 엘리나가 말했다.

아니면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근데 어려워 보이는 시골 촌놈한테 그걸 다 받겠다고?

그럼 우리 가족은 나까지 여섯이니 60 실버에 말만 따로 80 실버를 내야 한다.

벌써 1골드 40 실버인데, 마차는 또 따로?


“아이고! 어르신! 저희가 그렇게 돈이 많치는 않습니다요. 시골에서 막 올라와서 마시장에 가서 말이라도 팔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큰돈은 낼 수가... 고작 땔감 팔러 왔는데 그렇게 큰돈은...”


바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경비병은 내 저자세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흠... 하지만 돈을 내지 않으면 그냥 통과를 시켜줄 수가... 우리 재량에 따라 다르긴 한데...”


경비병이 슬쩍 몸을 틀며 자신의 갑옷 배 옆 부분, 주머니가 있는 쪽을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거...

뇌물 달라는 거잖아?

바지 주머니에 슬쩍 손을 넣어 동전들을 집었다.


“아이고 어르신. 조금 전에 주머니에서 이게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경비병의 주머니에 동전들을 찔러넣어 주었다.


“어? 그래? 그러면 안 되지. 다른 주머니에 넣어야겠네.”


경비병은 너스레를 떨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동전을 꺼내 몇 개나 들어있는지 살폈다.

주머니에 넣은 돈은 10 실버 짜리 동전 2개.

사람과 말 수에 딱 2 실버씩 곱해서 계산했다.


“흠... 원래 20 실버 밖에... 안 들어 있었던가? 이거? 돈이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어디 갔지?”


지독한 놈!

이 몰골을 보고도 돈을 뜯어내고 싶단 말이냐!

조금 열받았지만,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잔돈을 긁어 그의 주머니에 다시 찔러넣었다.


“아이고, 여기 돈이 더 있네요. 저 아니었으면 잃어버리실 뻔했습니다.”

“아이 고마워. 맞아. 돈이 더 있었다니까.”


경비병은 웃으면서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얼마가 들어 있나를 살폈다.

그의 표정에서 살짝 웃음이 사라졌다.

더 집어넣은 돈은 3 실버.

돈은 더 있었지만, 일부러 없는 척.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경비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에 말에... 그대로 내면 마차 통행료도 못 냅니다요. 어르신. 반으로 깎아서 한 1골드에 맞춰주시면 한 10 실버는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크흠...”


경비병은 살짝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까, 통행료를 딱 반값으로 해줄게. 사람하고 말에 70 실버, 그리고 마차 통행료까지 해서... 딱 1골드만 줘. 근데 혹시 내 10 실버 못 봤어?”

“어? 바닥에 이런 게... 아이고! 감사합니다!”


말이 바뀌기 전에 빨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10 실버와 1골드를 지출했다.

골드 코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거지 같은 놈이 골드를 꺼내면 돈이 더 있다고 의심할 것 같아서.

적당히 실버와 쿠퍼 동전을 섞어서, 보는 앞에서 숫자를 세며 경비병의 손에 넘겨주었다.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는 돈을 더 넘기라고 압박하듯 자신의 빈 주머니를 보이는 경비병.

하지만 더 이상은 한 푼도 건내주지 않았다.

돈이 돌지 않아서 도시 물가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시골에서 이걸 어떻게 모았는데!


“쩝... 진짜 가난한가 보네.”

“사정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는 계속 굽신거리면서 가족들에게 얼른 신호해 마차를 몰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을 통과하자.

가족들이 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야? 니 원래 남들한테 아부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


헤일리가 대표로 물어보자.


“내가 싸가지가 없지, 눈치가 없냐? 왜들 그래?”


어이없다는 듯 답변해 주었다.


“아아...”

“하긴...”


가족들은 다들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그때 뒤에서 경비병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군 죽이기의 외팔이 하프 아니야?”


인상이 찌푸려졌다.

스승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프엘프라는 것을 밝히다니...

하프엘브가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이유는 인간 세계에도 엘프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면 모험가로서의 신분은 인정받지만.

인간 세계에서도 엘프 세계에서도 모든 분쟁에서 법적으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상대방이 불법적으로 공격해 자신의 몸을 지킨다 하더라도 오히려 폭행죄 같은 시비에 걸리고는 한다는 말이다.

오로지 모험가 길드의 규칙, 자신의 랭크와 실력, 명성, 인맥 정도만이 법 대신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는 소리다.

고개를 돌리니 다른 가족들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스승이 하프라는 걸 처음 들어서 그런 걸까?


“너무하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하프엘프인 걸 밝히다니.”

“정말 나쁜 놈들이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생명을 지켜준 고마운 처자인데...”


다행히 가족들의 반응은 내가 생각하는 정상 범주에 있었다.

그때 경비병들이 모두 엘리나에게 다가왔다.


“어? 의수를 달았네?”

“왜. 모험이라도 다시 시작하게? 이번엔 또 누굴 죽이려고?”

하하하하!


그들은 내가 만들어 준 의수를 가리키며 비웃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오버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지도 모르고.

그들의 비웃음에 화가 날 만도 한데.

스승은 달관한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혼자인데도 1골드였다.


“여기 돈 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통과시켜 줘.”

“돈을 주든 말든, 통과시키는 건 우리 맘이야.”

“언제 아군의 뒤를 칠지 모르는 위험인물을 함부로 안으로 들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리고 하프 엘프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나 짐 취급이라고. 고작 이 돈 가지고 되겠어?”

킬킬킬.


경비병들은 엘리나를 통과시켜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보통 모험가 길드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경비병으로 취직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가장 많은 모험가가 그만두는 구간이 실버 구간이라고 한다.

팔 하나를 잃었어도 골드 등급.

거기다 의수를 장착해서 정령으로 움직이는 스승이라면 이전처럼 백금급 실력은 바라보지는 못해도 백은 등급은 될 텐데.

저 새끼들은 고릴라 같은 힘에 찢겨 죽고 싶은 건지.

왜 스승에게 시비를 터나 모르겠다.


“하아...”


스승이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골드 코인을 꺼내 들었다.


“통과시켜 줘. 이 정도면 되잖아.”


경비병은 1골드를 더 받아들이더니, 진짜 금인지 이로 물어 확인했다.

그것을 딴 주머니에 챙기더니.


“이거론 안 되겠는데? 그 사이에 물가가 올랐어.”

“탐욕스러운 새끼들!”

팅!


엘리나는 1골드를 더 꺼내서 경비병을 향해 튕겼고 코인은 갑옷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코인을 주운 경비병은 웃으면서 엘리나에게 돌아서더니.


“이년이?”

짝!


팔을 휘둘러 팔등 쪽으로 그녀의 뺨을 갈겼다.


“진작 3골드를 줬어야지. 다음부턴 바로바로 준비하라고. 알았어?”


피가 흘러나왔지만, 엘리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회복초를 꺼내 입에 넣고 씹었다.


“...”


스승은 대꾸 없이 경비병들의 옆을 스치며 성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 있는 우리 가족들을 보고는.

말이나 인사 없이 모험가 길드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며 후드를 뒤집어쓰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괜히 아는 척해서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하프엘프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

거기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자세하겐 모르겠지만.

평소 하는 행동을 보면 스승은 저들의 말대로 아군 죽이기를 했을 사람이 아니다.


“짜증 나는 새끼들이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드론을 손가락질해 불렀다.


“드론. 한 30분쯤 후에 저놈들이 차고 있는 돈주머니. 들키지 말고 전부 뜯어와. 할 수 있어?”

=맡겨줘 주인!


복수를 겸해서 드론에게 돈의 회수를 지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들 두어 시간씩 교대로... 아까 스승의 뺨을 때린 놈을 감시하다가 그 새끼가 들고 있는 돈을 계속해서 털어와.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평생.”


네 월급은 이제 평생 압수다.

위자료로 잘 쓸게.


* * *


“2인실 방 네 개요? 1박에 5실버에요. 식사는 별도고요.”

“저희 엘리나의 소개로 왔는데요.”

“어머? 엘리나가 소개시켜줬다고요? 그럼... 4실버만 주세요. 아침은 저희가 무료로 줄게요.”

“그럼 일단 4박 5일 묵겠습니다.”


엘리나의 소개로 간 황색 밥상이라는 여관은 도시의 물가 치곤 가격도 싼 편이었다.

거기다 진짜 그녀의 이름을 말하자 여관비를 할인해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차 보관비와 말 보관비는 또 따로였기에.

토마스는 가족들만 짐을 풀게 하고 혼자서 두 대의 마차를 끌고 상업지구로 향했다.

상업지구에 도착한 토마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혹시, 가구를 팔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실례합니다. 혹시 가구를 팔...”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 길 좀 묻겠습니다. 혹시 가...”

“저기 이 동네 가구를 팔... 저기요? 여기 사람 있는데?”


하지만 화려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완전히 무시하며 상대도 안 해주고 길을 지나갔다.

여관에 들르자마자 짐도 안 풀고 바로 온 까닭에.

아직도 토마스의 피부톤은 회색이었고 마차도 매우 더러워서 상대를 안 해주는 것이었다.

그때 토마스가 잠시 세워둔 마차의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서.

지배인으로 보이는 노신사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허허. 이보시오. 젊은이. 앞에 있는 마차가 우리 가게로 들어오는 빛을 막아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소만. 언제쯤 치워주실지 여쭈어봐도 되겠소? 손님들이 찾아오기 전에 햇빛으로 가게를 데우고 싶어서 말이오.”


노신사는 토마스가 마차를 주차해 장사를 방해하고 있었음에도 마차를 치워달라고 돌려서 부드럽게 항의를 해왔다.


“죄송합니다.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런데 실례가 아니라면 가구 같은 걸 팔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가야 하는 곳만 알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토마스의 말에 노신사는 그의 복색을 아주 짧은 시간, 실례가 안 될 정도로 힐끔 쳐다보았다.


“가구 납품을 오신 것이오? 보아하니 마부를 고용할 돈이 없어 말을 공수해 직접 만든 마차를 끌고 온 장인처럼 보이는구려.”

“어? 장인이라는 것만 빼면 전부 다 맞는 말입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가구부터 마차까지, 제가 직접 다 만들었습니다!”


토마스는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로 깜짝 놀라며 자신 있게 마차의 천을 걷어 그에게 가구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 모습에 노신사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말렸다.


“허허. 다음부터 이곳에 올 때는 제대로 된 복색과 괜찮은 모습의 짐마차를 타고 있는 마부에게 납품시키라고 돌려서 말하는 것이었소. 진짜 장인께서 여기에 온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아아... 장인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자격도 없고 공방도 없이 시골 창고에서 만든 거지만, 조금 독특한 물건을 만들었기에 팔아보려고 가져왔습니다.”

“흠... 얼마나 독특한 물건이길래 자신 있게 이곳으로 마차를 끌고 온 건지 궁금해지는구려. 한 번... 어떤 물건인지 볼 수 있겠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토마스는 천을 걷고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보석함을 꺼내 노신사에게 보여주었다.

한 땀 한 땀 박아 넣어 굳힌 자개의 무늬는 화려한 공작의 날개를 표현하고 있었다.

자개 무늬는 태양의 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며 노신사의 눈을 부시게 했다.

노신사는 손바닥으로 눈 앞을 가리면서도.

두 손가락 사이로 차분히 정성스럽게 보석함을 확인했다.


“확실히... 그런 차림으로 이곳을 찾아올 만큼 독특한 물건이구려. 조금 독특하다는 말은 너무 겸손이 심한 것 같소. 장인께선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토마스입니다. 평민이라 성은 없고요.”

“토마스.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구려. 이 노인의 이름은 제프먼 니코레트라고 하오. 북동쪽으로 열두 길 정도 넘어가면 가구거리가 있소. 입구와 가까운 순으로 가장 잘나가는 가구점부터 못 나가는 가구점이 늘어서 있으니. 가장 가까운 가게에서 내 이름을 대고 주인과 만나고 싶다고 하시오. 좋은 물건을 볼 수 있었던 보답이오.”

“오! 감사합니다! 제프먼 할아버지!”

“제.프.먼 니.코.레.트. 라고 부르시오. 이름을 모두 부르는 것은 보통 상인들끼리 지켜야 하는 예법이오.”


노신사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자신의 이름을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프먼 니코레트님.”


분위기에 살짝 놀란 토마스는 그의 이름을 똑바로 말하며 사과했다.


“허허.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구려. 그럼 이만.”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노신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보라고 손짓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토마스도 자신의 꾀죄죄한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모습에도 상대방에게 예의를 잃지 않으며 대해주는 노신사가 상당히 기품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노신사에게나 토마스에게나 서로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았다.

노신사의 말대로 열두 블럭 정도를 더 올라가니.

깔끔한 짐마차들에 지금 막 가구를 싣고 있는 마차들이 즐비한 가구점들이 나왔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구점으로 마차를 몰고 가니.

근처로 가기 전에 상당히 좋은 쇠갑옷을 입고 있는 경비가 다가와 손을 들어 앞을 막아섰다.


“워워...”

푸르륵...


마차를 세운 토마스는 상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용건을 말했다.


“가구를 팔기 위해 제프먼 니코레트님의 소개로 이곳에 왔습니다. 이 가게의 주인님을 만나게 해주시겠습니까?”


토마스의 질문에 경비는 조금 전 성문 앞에서 경비병이 했던 것처럼 위아래로 그를 훑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웬 거지 같은 몰골을 하고 뭐가 이렇게 당당해? 장사 방해 하지 말고 안 꺼져?”


작가의말

얘도 돈주머니 털어야겠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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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우리 토마스 이 시대 최고의 가구 장인 아닙니다. +5 24.06.24 1,352 42 16쪽
29 029. 입구부터 보인다. +1 24.06.23 1,339 38 13쪽
» 028. 도시, 수틀리면 돈주머니 베어가는 곳. +5 24.06.22 1,453 39 20쪽
27 027. 도시로 +10 24.06.22 1,507 40 14쪽
26 026. 엑소더스 +12 24.06.20 1,597 46 20쪽
25 025.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4 24.06.19 1,653 46 16쪽
24 024. 우리 가족만 모르는 마을회의 +7 24.06.18 1,694 45 17쪽
23 023. 1등도 잘한 거야! 24.06.17 1,643 42 17쪽
22 022. 너 환생했지? +5 24.06.16 1,762 5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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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18. 오늘도 난 숙명을 불사른다. +2 24.06.12 1,831 48 15쪽
17 017. 불청객 +2 24.06.12 1,951 43 17쪽
16 016. 결승전 국룰 +9 24.06.11 1,965 48 15쪽
15 015. 바람에 흔들리는 다리같이. +3 24.06.10 2,016 49 16쪽
14 014. Spring goes where?(용수철은 어디로 가는가?) +4 24.06.09 2,068 50 12쪽
13 013. 령 압축 +5 24.06.09 2,123 62 8쪽
12 012. 정령들의 장래희망 1순위, 정령왕이 아니었다? +3 24.06.08 2,244 60 12쪽
11 011. 지금부터 서로 의심해라 +5 24.06.07 2,332 61 14쪽
10 010. 고딩 정령 참교육 +5 24.06.06 2,484 63 16쪽
9 009. 사제역전, 정령의 올바른 사용법. 24.06.05 2,632 69 15쪽
8 008.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1 24.06.05 2,914 72 15쪽
7 007. 정령은 타고난 배우다. +6 24.06.04 3,355 74 15쪽
6 006. 정령을 선택하는 법 +2 24.06.03 3,663 78 14쪽
5 005. 나만 목소리가 들려 +1 24.06.02 3,798 89 12쪽
4 004. 4가지 없으면 마법을 못써 +7 24.06.01 4,141 94 16쪽
3 003. 막말하는 사제지간 +8 24.05.31 4,560 96 13쪽
2 002. 나보고 촌놈이라고? +10 24.05.31 5,651 104 14쪽
1 001. 전생이 기억나버렸다 +6 24.05.30 6,127 122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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