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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자

이세계에서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새글

정주(丁柱)
작품등록일 :
2024.05.30 07:44
최근연재일 :
2024.06.28 23:32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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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37
추천수 :
2,033
글자수 :
233,152

작성
24.06.2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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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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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
20쪽

026. 엑소더스

DUMMY

마을 사람들을 전부 묻어두고 집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 집에 들러 말이나 소 중 한 마리씩을 훔쳐 왔다.

훔쳐 왔다는 표현이 좀 그러네?

그동안의 빚을 딱 가축 한 마리씩으로 정산해 준 거다.


이히히힝...

푸르르..

모오오오...


마당에서 들려오는 말과 소 울음소리에 가족들이 집에서 빠져나왔다.


“너희들은 창고에서 마차부터 꺼내고 대피소 창고에 있는 물건 다 꺼내와 줘. 바로 말만 연결하면 떠나갈 수 있게. 드론, 너는 가서 엘리나 스승한테 우리 집으로 오라고 전해주고.”

=알았어! 주인.

=맡겨주시길.

=자자. 다들 시작합시다!


정령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가족들이 다가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란이냐? 말이랑 소는 다 어디서 나온 거야? 근데 너... 무슨 일 있었니?”

“아들. 왜 이렇게 심각해 보여? 뭔 일 있어?”

“토마스 왜 그래? 화났냐? 누가 그랬어? 뭐 때문에 그래?”


아버지, 어머니, 큰형.

모두 내 표정을 보고 한 마디씩 해왔다.

표정을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오래 같이 살았던 가족들이라 숨겨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짐 챙겨서 나와요. 우리 이 마을 버리고 떠날 겁니다.”

“뭐? 동생아. 그게 무슨 소리냐? 갑자기 마을을 버린다니? 이제 막 새 밭 개간도 끝나서 간신히 서른 마지기 짓게 됐는데?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개간해서 3년에 한 마지기씩 간신히 늘렸어. 이걸 다 버리고 어딜 간다는 소리야?”

“아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엄마 피곤해. 빨리 들어와 자. 창고는 너무 추워. 너 얼어 죽겠어.”


큰형이나 어머니는 의문을 표하며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진 달랐다.


“음...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여보 헤일리 깨우고, 너도 네 부인 깨워서 당장 중요한 것만 챙기라고 해. 우리는 마을을 버릴 거야.”


평소 아버지와는 대화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같은 공간에 오래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마을 소문이라든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눈 기억이 없었다.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느낌?


“그러면 아버지한테 맡길게요. 전 짐 챙기러.”

“그래. 다들 뭐 해? 빨리들 들어가서 짐 챙겨!”

“아니 아버지! 동생 말만 듣고 어떻게 갑자기 마을을 버려요? 우리가 여기에 해놓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이 겨울에 갑자기? 아버지! 제 집도 이제 막 새로 짓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버려요?”


어머니야 아버지가 하자면 바로 하는 사람이지만, 큰형은 이 마을에 미련이 많아 보였다.


“네가 어렸을 때 내가 너한테 말했지? 중요한 건 땅과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모든 걸 다 잃어도 사람만 멀쩡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러니까 네 사람 챙겨서 빨리 나와.”

“아버지! 하지만 이유를 모르잖아요. 이유를? 아 저 녀석 왜 설명도 안 해주고...”

“토마스가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 봤냐? 그런 녀석이 이유도 설명 안 해주고 이렇게 까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넌 네 동생을 그렇게 몰라?”

“...”


아버지가 형을 설득하는 사이.


-불어라 거친 바람, 거스트 오브 윈드!

휘휘휘휘후휘휘...

콰지직!


나는 마법으로 창고 천장과 벽을 날려버리고 마차를 꺼내기 쉽게 만들었다.

정령들이 판마차를 조립하고 지하 대피소에서 짐들을 꺼내는 사이, 완성된 판마차부터 말들을 연결했다.

그때 엘리나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빨랐다.

원래 밤늦게 여길 찾아오긴 하는데, 아직 한두 시간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엘리나도 항상 약속 시간보다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고 기다렸나 보다.


“무슨 일이야?”

“곧 있다 알게 될 거야. 아무튼 이 마을 버릴 거니까, 스승은 중요한 짐 챙겨서 빨리 이곳으로 돌아와. 급해.”

“안돼. 말했잖아. 나는 계약마법에 묶여 있어서, 계약이 끝나기 전까진 여기서 못 떠난다고. 촌장한테 허락 맡아서 네 성인식 때 널 도시에 데려다주는 정도가 전부라고.”


그러고 보니 모험가들의 계약은 계약마법이라는 것 때문에 강제성을 띤다고 했다.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상호 동의가 필요하다든가, 한쪽이 계약을 어기면 모험가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페널티를 준다든가 하는 얘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계약을 파기하는 방법은 상호 동의 말고 다른 방법도 있었다.


“스승. 그 계약. 촌장하고 맺은 거지?”

“응. 근데?”

“그러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짐을 챙기고 있는데.


“너... 설마?”


스승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짐 챙기는 데 집중했다.


“야! 너 모험가가 되겠다는 놈이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해? 살인자는 모험가가 될 수 없다니까? 모험가 길드에는 살인 여부를 조사하는 수정구가 있어. 너 그 사람을 죽였다간 모험가 길드에 가자마자 살인죄로 잡혀들어갈 거야!”


스승이 화를 내며 다그쳤다.

고개를 돌리니 나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는 살인 여부를 조사하는 수정구가 있다고 했다.

예전에 살인자를 파악하는 고유한 스킬을 가진 사람과 남의 고유 스킬을 수정구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힘을 합쳐서 모험가 길드에 보급했다고.

그 수정구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험가 길드는 불한당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부터 엘리나를 괴롭혔는데도 그녀가 날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가.

툭 건드리면 죽을 것처럼 약해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당시는 거의 모험가를 은퇴한 상태였지만, 살인하지 않는 습관은 남아서 내가 멀쩡했던 거다.

지금 와서 고릴라 같은 스승의 힘을 생각하니까, 그때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구나 싶다.

하지만 수정구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괜찮아. 스승이 그랬잖아. 살인자를 죽이는 건 살인에 속하지 않는다고.”


내 대답에 엘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눈에는 촌장이 살인을 저질렀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오늘 이 마을에서 사람이 죽어나간다 하더라도. 내가 직접 죽이는 건 아니니까.”


내가 주위에 있는 정령들을 가리키자, 엘리나가 화를 냈다.


“바보야! 네가 계약한 정령으로 죽이는 것도 당연히 포함이라고!”

“당연히 알고 있지. 난 내가 계약한 정령으로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다니까?”


스승이 말해준 내용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고도 사람을 죽이고 수정구를 속이는 편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 모험가들 중에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비중이 높다고.

그것을 다 알려줘 놓고도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살인에 익숙해지면 계속 살인에 의존하다가 다크 길드 쪽으로 떨어지는 모험가를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엘리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였다.


우웅...


나와 엘리나는 동시에 깜짝 놀라며 촌장의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이게 무슨? 이 존재감은... 정령왕?”


지난번 창고에 정령왕이 나타났을 때와 다르게.

정령들의 기운이 쌓여 있지 않은 곳에서 정령왕이 나타나서 그런지, 멀리 있어도 그들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벌써 왔네. 시간이 없어. 빨리 짐 챙겨서 와. 여기 대충 마무리하고 나는 저쪽으로 가볼게.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 있어. 나 기다리지 말고, 짐 챙겨서 오자마자 바로 마차 끌고 도시 쪽으로 가고 있어. 뒤따라갈 테니까.”

“토마스? 대체...”


그때였다.


두우우웅...


이번에도 새로운 존재가 출현했다.

커다란 존재감과 또 다른 커다란 존재감은 마치 둘이 공명하는 듯했고 정령사인 엘리나와 나에게 그 존재감만으로도 심한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


“빨리 갔다 와! 시간이 없다니까?”


나는 엘리나를 다그쳤고, 엘리나는 말없이 초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사이, 또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 * *


쿠르릉!


마른하늘에 갑자기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여름도 아니고 겨울인데 후덥지근해지고, 갑자기 거친 바람이 불어오며 소나기라도 내릴 것처럼 구름이 몰려왔다.


“뭐야 이거?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데?”

“태풍이라도 오는 거 아니야?”

“토마스 말이 맞았나? 진짜 재앙이?”


아직도 구덩이에서 땅을 파며 반신반의하던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하늘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뭣들하고 있어? 언제 그걸 삽으로 다 팔려고? 기둥을 뜯어와서 박고 사다리로 벽을 파서 발판을 만들면 되잖아!”

“하지만 그렇게 하면 힘 약한 여자들은...”

“먼저 올라가서 밧줄을 내려두면 될 거 아니야! 생각을 해 이 멍청이들아!”


이빨이 다 나갔어도 촌장은 촌장이다.

그는 집에 비치한 회복초로 상처를 회복시키고 오더니.

마을 사람들을 무섭게 다그치며 작업 방식을 바꿨다.

땅을 파던 마을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 촌장 집의 기둥을 뜯어왔다.

토벽에 기둥을 대고 사다리를 가져와 발판을 만들어서 기둥을 잡고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방향이 정해지고 모든 작업이 끝나자.

가장 먼저 촌장이 앞장서 땅 위로 올라왔다.


“당신 먼저 올라올 줄 알았어.”

“토마스!”


그런 그를 기다려 준 것은 다름 아닌 토마스였다.


“마음을 바꾼 건가? 아니면 나랑 다른 사람들을 죽이러 왔어?”


토마스는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아직도 올라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빨리 올라올 수 있게 마법과 정령으로 그들을 보조해 주었다.

덕분에 남자들뿐만 아니라 힘이 달리는 여자들도 벽을 타고 빠르게 올라올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가서 애들 데리고 마을에서 멀어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재앙이 밀려올 거 같으니까.”

쿠르릉... 쿠궁... 콰콰쾅!

쏴아아아!


토마스가 사람들에게 경고하는데 타이밍 좋게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겨울이고 밤인데, 장대비의 온도는 왠지 모르게 따듯했다.

여름도 아니고 한겨울에 따듯한 장대비라니...


“큰일 났다.”

“빠, 빨리 도망쳐야겠어!”


사람들도 뭔가 사달이 날 거라는 걸 눈치챘다.

다들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촌장의 아들도 촌장의 사위도.

하지만 촌장은 돌아갈 곳이 없어, 토마스의 눈치를 보다가 아들을 따라가려고 했다.


“어딜 가려고?”


토마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흥! 내가 너였으면 날 죽이고 그냥 이 마을을 차지했을 거야. 재난이 온다고 친절하게 경고까지 해주다니... 넌 사람이 너무 물러.”


하지만 촌장은 배짱 좋게 이런 상태로도 토마스를 당당하게 비난했다.

그도 왜 그렇게 큰 힘을 가진 토마스가 자신을 죽이지 않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살려두는 건지 생각해 봤고.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어차피 너 사람을 못 죽이잖아? 모험가가 된다고 했던가? 나도 소싯적에 모험가를 해봐서 잘 알아. 모험가는 살인을 하면 안 되지? 수정구가 있으니까.”


토마스는 모험가가 되려고 한다.

수정구 때문에 모험가는 살인을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지 않은 거라는 결론을 내린 덕에.

촌장은 이렇게 막 나올 수 있었던 거다.


“어쩌라고! 씨발!”


토마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촌장을 발로 찼다.


퍽!

“어? 어어엇!”


거리가 상당히 있었음에도 촌장은 구덩이까지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퍽!


따듯한 비가 내려 땅이 물러졌고 촌장은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정면으로 바닥에 넘어지는 바람에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렸다.


철퍽!


그때 토마스가 구덩이에 착지했다.

그는 바닥에 넘어져 있는 촌장에게 다가가, 그를 발로 뒤집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펜지라고 기억해? 우리 옆집 살던 여자앤데.”

“펜지? 내가 애들 이름을 하나하나 어떻게 기억해? 기억 안 나는거 보니까 다른 마을로 시집갔나 보네.”

“역시 기억하지 못하고 있구나? 다행이네... 혹시 태풍이 왔을 때 기억해? 그때 굴에서 당신이 직접 구워 사람들한테 나눠주었던 고기 있잖아.”

“고기? 아아... 걔가 걔였어?”


토마스가 촌장을 무서워했던 것은 그가 잔인했던 이유도 있지만.

예전에 태풍 때문에 동굴에 모두 대피했을 때.

그가 어린애들을 불러 모으고는 과거에 자연재해가 오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토마스를 보고 입맛을 다시면서.

인육을 먹는다는 행위?

이 세상을 살아보니, 생존이 달린 문제라서 극한의 상황이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토마스도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도 인육을 먹었어야 했을 거라고.

그런데 그가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하고 얼마지 않아.

옆집 살던 여자애가 밖으로 나가 실종되었다고 말하더니.

촌장이 직접 고기를 구워서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했다.

그때 사라진 여자아이가 펜지다.


“흥! 먹을 게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잡아먹은 거야. 그리고 그걸 나만 먹었나? 애초에 마을 사람들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던 선택이라고. 너랑 네 부모도 걔를 먹었을걸?”

“거짓말하지 마. 식량은 조금이지만 남아 있었어. 나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도 그 고기에는 입도 대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 그거 알아?”

“뭘?”

“이번 생에... 걔가 내 첫사랑이었어. 이 씨발 새끼야!”

“여기까지 와서 첫사랑 타령이야? 물러 터졌군.”


토마스의 눈이 돌아갔다.

그는 바닥에 박혀있던 촌장 집 주춧돌을 주워들었다.

큰 돌이었지만, 스트렝스 마법의 효과가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퍽!


토마스는 주춧돌로 촌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래, 나 물러터졌다. 근데 넌 대가리가 터졌네?”


토마스는 죽어버린 촌장을 향해 이죽거렸다.

센척하며 양심의 가책을 날려버리려고 했던 거 같지만, 토마스의 창백한 입술은 후회와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잠시 뒤 토마스는 점프해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촌장 아들의 집을 찾아갔다.

토마스의 몸에는 촌장의 피가 튀어 있었고, 촌장의 아들은 그것이 당연히 자신의 아버지 피라는 것을 알았다.


“토, 토마스. 왜... 왜 그래? 다 끝난 거 아니야? 아버지만 없어지면 되는 거잖아? 아버지만 죽였으면 됐지. 나한텐 왜...”

“끝나긴 뭐가 끝나? 입을 털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토마스는 촌장 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발목을.


빠직!

“꺄아아악!”


발로 차서 부러트렸다.

비명을 지르는 촌장 아들을 버려두고 그의 집에서 빠져나온 토마스는.

이번엔 촌장 사위 집을 방문했다.

빗장뼈가 부러진 촌장 사위는 손가락으로 부인에게 이것저것을 챙기라며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토마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뭔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하며 반대편 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빠직!

“끄아아아악!”


이번에도 촌장 사위의 발목이 부러졌다.

그가 끝이 아니었다.

토마스는 안에서 촌장의 계획에 한마디씩 거들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찾아가 그들의 발목도 부러트려 주었다.

이곳에서 상처는 약초로 쉽게 치료되지만, 뼈가 빨리 붙는 약초는 흔하지 않았다.

다들 마을에서 도망쳐야 하는데 부러진 발목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들이 그들을 버리고 갈 수도 있겠고 가족들 전부가 그 때문에 재난에 휩쓸릴 수도 있을 거다.

거기서부턴 그들의 운이다.

그들이 죽어도.

상처가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 아니고 자연재해가 그들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거다.

애초에 방치해서 사람을 죽게 만들어도 수정구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고 계약한 정령으로 죽인 것도 아니다.

기록상으로 토마스는 살인 한번 한 적 없이 깨끗할 것이다.


쏴아아아아...

쿠릉! 쿠릉!

번쩍!

콰콰쾅!

휘휘휘휘휘휘휘휘휘!


비바람이 치고 번개가 치는 가운데.

토마스는 촌장의 집이 있던 구덩이로 다시 찾아왔다.

왠지 자신이 남아 마을의 최후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바람이 치고 있는데도 토마스에게는 한 방울의 비도 묻지 않았다.

계약하지도 않은 정령들이 힘을 합쳐서 그를 둘러싸고 비가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토마스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괴롭겠구나. 하지만 오래 살아온 우리로선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건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이야. 거기다 인간들 사이에선 살인자를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라잖아? 넌 아무런 잘못이 없어.

=그래! 나라도 화나겠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는 죽을 만했어. 얼굴 펴! 피라고 이 바보야!

=우리 정령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편입니다. 당신은 우리 정령에게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담 갖지 말고 우리를 불러주세요.

=정령들의 힘이 축적되고 있어요. 어서 자리를 피하세요. 위험해질 겁니다.


바람의 정령왕 노아 브리즈, 불의 정령왕 노아 루미에르, 땅의 정령왕 노아 토아르, 물의 정령왕 노아 프레쳐.

여성형인 4대 정령왕 모두가 다가와 동서남북으로 토마스를 안고 따듯하게 위로해 주었다.


“다들 고마워요. 하지만 살인자를 죽였다고 해도 살인은 살인입니다.”


토마스는 정령왕을 향해 쓰게 웃어 주었다.

오늘 처음 보는 정령왕들도 있었는데, 가족이라 불러주고 걱정해 주니 가슴 한편이 따듯해졌다.

전생에 죽인다는 말을 정말 많이 썼다.

XX 새끼들 다 죽여야지! 왜 사형 안 함? 미친 짓 하지 말고 죽어라 좀! 제발 죽어! 죽어버리렴! 아! 다 죽여버리고 싶네! 등등...

그런 말을 할 때는 그 자신도 인터넷 망령들 중 하나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분노라는 감정이 치밀어오를 때마다 댓글이나, 입버릇으로 그런 말을 했었다.

근데 여기에 와서 살다 보니 죽고 사는 게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의 지구와 다르게 이곳 사람들은 정말 하루하루를 위험 속에 노출되며 간신히 살아남는다.

이곳은 몬스터조차 뜸한 시골이라 덜하지만, 대부분은 몬스터라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이런 시골에도 자연재해는 인간을 향해 차별 없이 덮쳐온다.

모두가 위태롭게 살고 있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무거운 생명이다.

그렇게 생명의 무게를 알게 된 토마스에게조차.

촌장은 죽여 마땅한 놈이 맞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야. 감내해야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후회는 없었다.

지금도 토마스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또다시 사람을 죽일 일이 올 거라고.

하지만 이곳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세상이다.

토마스는 그때도 망설임 없이 사람들을 죽일 거다.

모험가고 수정구고 뭐고,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드드드드드...


토마스가 서 있는 바닥 밑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푸후욱!

푸훅!


땅에서 갑자기 하얀 연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썩은 달걀 냄새나 닭똥 냄새 비슷한 냄새들이 진동했다.


‘유황 냄새?’

=음... 슬슬 저희는 가봐야겠어요.

=다음에 만나 토마스.

=아, 가기 전에. 쪽.

=저도. 쪽.


정령왕들이 인사하며 급하게 정령계로 돌아갔다.

땅의 정령왕 노아 토아르와 물의 정령왕 노아 프레쳐는 가기 전 뽀뽀로 급하게 엘리멘탈 에센스를 토마스의 입에 넣어주었다.

갑자기 몸속에서 땅과 물의 마나가 들끓었다.

하지만 두 속성은 서로 상성이 좋은지 잘 섞이면서 빠르게 토마스의 몸에 흡수되었다.

네 가지 속성의 모든 엘리멘탈 에센스를 모으게 되자.

토마스는 자신의 마나와 마법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간 것이 아니라 상당히 큰 스텝을 밟으며 진일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느낄 새가 없었다.


푸후!

푸후!


바닥 여기저기에서 하얀색 수증기 섞인 기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정령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맞다. 그러고 보니까,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에 저렇게 되던데. 오랜만에 보네.


정령들이 다들 동조했다.


=멋있지. 화산폭발.

=나도 좋아해.

=나도.


그 말은 즉, 지금 화산이 폭발한다는 소리였다.


=근데 토마스. 슬슬 안 피해?

“뭘?”

=발밑.


토마스는 고개를 내려 발밑을 바라봤다.

어느새 땅 밑.

자신의 다리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붉은빛 때문에 핑크빛으로 보이는 하얀 연기가 막 분출되고 있었다.

갑자기 확 온도가 올랐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대지가 품고 있던 무언가를 밖으로 뱉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땅이 거칠게 흔들렸다.

마을의 최후를 지켜보기 전에 자신의 최후가 먼저 찾아올 것 같았다.


“젠장!”

콰콰콰쾅!


작가의말

토마스 죽었어?


...


그동안 ‘전생 기억이 떠올랐습니다만?’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부턴 ‘전생 기억으로 독점 스트리밍하는 모험가입니다만?’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제목 변경 신청하려고요. ㅎ)


+++

huggin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45 초고수님
    작성일
    24.06.21 00:59
    No. 1

    주인공이 인성질 하면서 대드는데 이걸 살려주네?호구엘프네? 했는데,,,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24.06.21 01:11
    No. 2

    2화 엘리나의 마지막 대사...

    “끄으으으윽! 아오! 죽일 수도 없고!”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78 오지고요
    작성일
    24.06.21 01:20
    No. 3
  • 답글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24.06.21 01:27
    No. 4
  • 작성자
    Lv.73 忠忠
    작성일
    24.06.21 01:34
    No. 5

    좆같은 중세비스무리한 시기에 살인자를 가린다는게 좀 무리가 있지않을까 하네요
    재밌게 보고 갑니다

    찬성: 2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24.06.21 01:35
    No. 6

    안 그래도 그 부분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든가...
    잠깐 그걸 보충설명으로 넣어야 하나... 흠...
    나중에 내용이 나오긴 할건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시 몇번 더 보면서 넣을 구석이 았나 찾아볼게용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24.06.21 01:43
    No. 7

    지적해주신 부분에 대해 오해하실 분들이 있을것 같다고 생각해서.
    엘리나와 실랑이를 벌이기 전 부분에.

    『스승이 말해준 내용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고도 사람을 죽이고 수정구를 속이는 편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 모험가들 중에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비중이 높다고.
    그것을 다 알려줘 놓고도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살인에 익숙해지면 계속 살인에 의존하다가 다크 길드 쪽으로 떨어지는 모험가를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를 넣어서 忠忠님 말씀대로, 실제 여기는 조까튼 중세 비스무리한 곳이라서
    살인자들의 비율은 생각보다 많을수 있다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추가해서 넣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읽은 댓글은 모두 좋아요 누르고 있습니다.
    독자님들 댓글 많이많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우럭구
    작성일
    24.06.21 01:48
    No. 8

    재미있게보고있어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24.06.21 01:50
    No. 9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보라하늘달
    작성일
    24.06.21 02:49
    No. 10

    와..제목변경되는 타이밍이 절묘하군요 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1 정주(丁柱)
    작성일
    24.06.21 03:28
    No. 11

    나 안잔다! ㅋㅋ(계속 디테일한 부분 구상하면서 지우고 맞추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ㅋ
    그러고니 절묘하네요.ㅋ
    누가 보면 맞춘듯 ㅋㅋ
    진짜 아님다 ㅋㅋ
    어? 이게 되네? 라는 느낌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허리케인조
    작성일
    24.06.26 05:05
    No. 12

    재밌게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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