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성실하게 살자

이세계에서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정주(丁柱)
작품등록일 :
2024.05.30 07:44
최근연재일 :
2024.07.05 10:49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52,163
추천수 :
6,011
글자수 :
299,214

작성
24.06.05 22:35
조회
7,266
추천
177
글자
18쪽

009. 내가 이 마을을 싫어하는, 강해지려는 이유

DUMMY

엘리나에게 이름...

다르게 지으라고 알려주는 게 좋을까?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오갔다.

나름 많은 걸 베풀어 준 스승인데 이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지 않겠어?


“제 정령이 좀 더 협조적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협조적? 어떻게 하면 협조적이게 되는데?”

“잘은 모르겠는데... 제가 계약을 하면서 정령에게 남들과 다른 이름을 지어줬기 때문에 제 말을 더 잘 듣는 게 아닐까요?”

“네 정령의 이름은 최하급이니까 운디네 아니야? 아... 아니다! 너 처음에 계약할 때 네 이름은 드론이다! 라고 했었지?”

“네. 아무래도 정령들은 개성이 강하잖아요? 근데 운디네는 최하급 물의 정령 아무에게나 붙이는 이름이고, 남들하고 똑같이 부르면 싫어할 것 같아서. 전 따로 드론이라고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래서... 말을 잘 듣는다고? 그럼 나도...”


엘리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이 계약한 운다인을 바라봤다.

운다인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내 쪽과 엘리나를 고개를 돌리며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설마 나에게도 새로운 이름이?


아무래도 스승의 표정을 보니 그럴 모양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운다인 혹시 이런 이름은 어때? 엘리다인.”

=엘리다인?

“넌 항상 나를 큰 위기에서 구해줬잖아? 마치 넌 내게 없는 친자매 같은 느낌이라서... 새로 부른다면 나랑 이름을 섞어서 쓰고 싶어. 괜찮겠어?”


엘리나는 빈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운다인 아니, 엘리다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자신의 정령을 바라봤다.


=당연히 괜찮지! 엘리다인! 너무 좋은 이름이잖아? 넌 이제 내 자매야!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엘리다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나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기뻐하는 엘리다인의 표정과 동작에 엘리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전달되었다.

독립된 이름을 갖게 된게 그렇게 좋나?


“기뻐해 줘서 고마워. 엘리다인 혹시 너도 조금 전 토마스가 했던 것처럼, 저 나무를 네모반듯하게 깎아줄 수 있어?”

“네모반듯하게 하지 말고, 땔감으로 쓰게 200개 정도로 나눠달라고 하죠?”

“어... 조금 어렵겠지만, 혹시 저 말대로 200개로 나누는 게 가능할까?”

=그런 건 물어보면 입 아프지!


엘리다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나는 평소 습관처럼 나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엘리다인 저 나무를 잘라서 일정한 크기의 땔감으로 잘라줘. 200개로. 부탁할게 워터 블레이드!”


엘리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엘리다인이 빠르게 달려들어 나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슈륵! 슈르르륵!


나뭇가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200조각으로 갈라진 네모반듯한 땔감이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졌다.


“와! 진짜 해내잖아?”


깜짝 놀라는 엘리나.


“토마스! 진짜로 됐어! 진짜 네 말이 사실이었어!”


엘리나가 한 팔로 내 손을 잡고 방방 뛰며 기뻐했다.

이거 누가 보면 내가 스승이고 그쪽이 제자인 줄 알겠어?


“와... 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정령술사 처음 해보는 거 맞아?”

“난 남들하고 보는 눈이 다르잖아? 농사꾼이 아니라... 가구 장인이라 그런가?”

“확실히... 넌 뭔가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하고 다른 거 같아. 생각하는 것부터 말이나 하는 행동들까지. 싸가지가 없지만, 가식도 없고... 아무튼 뭔가 달라.”


이거...

칭찬 맞지?


* * *


수업에서 두 번 정도 구체적인 명령으로 물의 칼날을 사용하고 정령력이 다 떨어져 멀미가 오는 척하며 수업을 끝냈다.

썰어둔 목재를 가져가려고 집에서 수레를 끌고 왔는데.


“엘리다인.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 네가 아니었으면 거기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야. 그런 고마운 너에게 운디네라는 남과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니...”


엘리나는 엘리다인을 붙잡고 자신의 빈 소매를 만지며, 한참 옛날얘기를 떠들고 있었다.


=그때 얘기는 하지 말라고. 나도 그때에 대해선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니까. 아 씨... 갑자기 언니 동생 하려니까 너무 오글거리네.


엘리다인은 조금 불편해 보였다.


“스승, 다른 정령들한테도 새로 이름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엘리다인도 경계할 겸 숲으로 돌려보내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다른 정령들한테도 새로 이름을 줘야겠구나. 고마워 엘리다인. 이제 숲으로 돌아가서 경계를 해줘. 뭔 일 생기면 돌아오고.”

=알았어. 그정도는 여기서도 할 수 있긴 하지만, 주인 넌 좀... 부담스러우니까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엘리나의 명령을 들은 엘리다인은 이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살짝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를 하고는 숲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날 저녁.

낮잠을 자고 일어나 평소처럼 가족들과 어색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나무 쟁기를 좀 만들어 두고서 격겜 판을 열기 위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창고 입구쪽에서 큰 존재감이 느껴졌다.


=야. 너 진짜로 우리들 말이 들려?


엘리다인이 창고로 들어왔다.

그녀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진 다른 정령들과 함께.

힐끔, 드론의 반응을 살폈다.


=히끅! 저분들이... 여길... 왜?


드론은 엘리다인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정령들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높으신 분들인 거지?

그 자유로운 정령들이 눈치를 보다니.

어려운 선배님... 뭐 그런 건가?


“선배면 지갑 열고 마라탕이랑 탕후루나 사주라고.”

=뭐?

짝! 짝!

“자! 판 엽니다! 배우 들어오시고!”


나는 엘리다인을 무시하고 곧장 구석의 책상 앞에 앉았다.

이미 엘리다인이 오기 전부터 2P 쪽에는 도전자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뒤편에서 몸을 풀고 있던 캐릭터들은 슬쩍 눈치를 보다가 모니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잘 부탁해. 쫄지 말라고. 내가 너무 잘한다고 해서. 푸하하핫!”

=그, 그거 때문에 쫀 거 아니거든? 할 수 있다!

=우리 정령 이겨라!

=우우우우우우. 인간 져라!

=토마스 보여줘!

=토마스 사랑해!


판을 연다는 소리에 지금까지 조용하던 정령들은 다시 즐기는 모드로 들어갔다.

내게 환호성을 보내는 정령들에게 손 키스를 날리며 캐릭을 고르려고 하는데.

이곳에 처음 와본 엘리다인과 다른 정령들은 대체 이게 뭐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어리둥절했다.

모르겠으면 닥눈삼, 닥치고 눈팅 삼십 분이라도 할 것이지.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야? 설명을 좀 해줘 봐 인간. 우리랑 말이 통한다면서?

“...”


무시무시.


=어이! 인간!


엘리다인이 유령처럼 책상에 낀 상태로 눈앞까지 와서 부르고 초를 쳤다.

하지만 무시했다.


=저기... 엘리다인님.


그때 옆에 있던 드론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당연히 신경질적으로 돌아보는 엘리다인.


=엘리다인님도 남들이 운다인이라고 부르면 열받을 거 아니에요? 제 계약자는 인간이 아니라 토마스라고 해요. 토마스라고 불러주세요.


조금 떨면서도 드론은 당돌하게 말했다.

엘리다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여러 정령 방해하고 계신데, 좀 나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들도 하는 일이 있어서.


계약을 하면 계약자 따라 정령도 좀 변하는 건가?

옛날엔 남들 흉이나 보는 나쁜 정령이라고 생각했는데, 훌륭한 계약자를 보고 많이 뉘우친 건지.

자기보다 높은 등급의 정령에게도 자기 할 말을 하는 드론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뭐? 야! 너 끼지 말고 꺼져있어. 어디 최하급이 감히 말을 섞으려고 해? 야! 인간! 아니 토마스!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말로 설명을 하라고 말로!


드론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고.

엘리다인은 답답해하며 화를 버럭 냈다.


=우우...

=나와라... 엘리다인.

=방해하지 마라...

=뒤에 줄 선 정령 안 보이냐?

=우우우우!


그때 드론에게 용기를 얻은 정령들이 점점 야유를 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놈들이? 내가 어떤 분들을 모시고 왔는 줄 알고!


하지만 엘리다인이 자신이 데리고 온 정령을 팔자.

정령들이 다시 야유를 멈추며 조용해졌다.

그만큼 높은 등급, 존재감 있는 정령들을 데리고 온 건 나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만.

분위기가 이게 뭔가?

초딩들 노는 문방구 앞 오락실에 갑자기 고딩 깡패가 출현한 것처럼.

삔또가 확 상했다.


“엘리다인. 앞이 안 보이니까 뒤로 나와. 스승한테 다시 가서 운다인으로 부르라고 하기 전에.”

=뭐? 너 감히! 네가 감히 내 이름을 뺏겠다고? 그렇게 하기만...


엘리다인이 뭐라고 하기 시작하자 바로 목에 걸고 있던 정령석 목걸이를 풀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엘리다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정령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엘리다인이 뭐라고 하고 있는지는 오로지 드론의 표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창백해졌다가, 오들오들 떨다가, 헉하고 놀라고 자기 몸을 끌어안으며 무서워하는 드론.


“드론. 정령계 가 있어. 나중에 다시 소환할게.”


드론도 소환을 해지해 버렸다.

더 이상 눈에 들어오는 정령이 한 명도 없었다.

잠시 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책상에 올려둔 정령석이 자기 멋대로 떨리며 움직였다.

아마도 답답했는지 물리력을 행사해서 나보고 목걸이를 차라고 하는 것 같은데.


“됐다. 그냥 오늘은 접자.”


그냥 싹다 무시하고 창고를 빠져나가 버렸다.

나한테 아쉬울 건 하나도 없었다.


* * *


오전엔 엘리나에게 가서 검술 수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제 하다만 나무 쟁기 작업을 마무리했다.

쟁기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아들아, 며칠 뒤면 씨뿌리기를 해야 할 시기인데 밭을 갈 쟁기는 혹시...”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창고로 찾아왔다.


“다 준비해 뒀죠. 다른 분들 것도 만들어뒀습니다.”

“오오! 역시 우리 아들은 준비성이 좋다니까?”

“항상 고마워 토마스!”


아버지와 함께 동네 사람들이 쟁기로 몰려들었다.


“잠깐. 우리 아빠 빼고 다들 잊은 게 있는 것 같은데요?”


내 부름에 동네 사람들이 멈칫했다.

아버지는 내가 뭔 말을 하려는지 알기에.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끼이고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않게 쟁기를 하나 챙겨서 서둘러 창고를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나가자, 창고 문을 가로막고.


“대금을 지출하시면 됩니다. 대금을. 노동력은 공짜가 아니니까요. 항상 받던 대로 1실버 받습니다. 1실버. 100쿠퍼도 괜찮아요. 100쿠퍼. 1실버. 자자.”


손을 벌리며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다.


“야... 토마스, 너 저번에 내가 도와줬던 거 잊었냐? 그거 있잖아. 그거... 호두였나? 아무튼 한 바구니 가져다준 거 같은데.”

“예전에 내가 너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랬는데, 굳이 그걸 받아야겠어? 우린 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이, 우리끼리 뭔 돈이야. 나중에 줄게 나중에. 외상 달아놔.”


다들 표정이 썩어버린 채로 돈 안 줄 핑계를 찾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준비한 돈을 순순히 지불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이 마을에선 목공으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같이 나무로 쟁기를 만들어도 내가 만든 게 더 튼튼하고 균일해서, 밭을 갈아도 깔끔하게 길이 남는다.

바퀴까지 달려 있어서 끌고 다니기도 편했고.

하지만 자기들이 직접 만든 쟁기는 그렇지 못했다.

바퀴도 없고 부서지기도 잘 부서지고.

하지만 난 부서지면 무상으로 교체까지 해준다.

항상 돈값 이상을 한다는 소리다.


“돈을 내신 분은 들고 나가셔도 좋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돈 낼 때까지 쟁기 들고는 못 나갑니다. 돈 안 내실 거면 그냥 나가주세요. 여기 제 작업공간입니다.”

“야야야. 토마스,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집안 어른한테.”

“네가 뭐라도 되냐? 어? 그 쟁기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거 만들면서.”

“아 됐어! 아 됐어! 내가 직접 만들어서 쓴다. 더럽고 치사해서 원.”

“토마스 나 알잖아? 나중에 너 곤란한 거 있으면 내가 뒤 봐줄게. 응? 그냥 이번엔 좋게 넘어가자. 어때?”


처음부터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은 끝까지 뻐팅기며 돈을 내지 않으려고 했다.


“돈이 좀 부족해서 그런데, 나중에 좀 더 갖다주면 안 되나?”

“내가 오늘 가진 게 이거밖에 없어서, 가을에 밀을 좀 팔아야 돈이 나올 거 같은데...”


하지만 일부는 조금이라도 돈을 내겠다며 실제 돈을 보여주며 지불 의사를 명확하게 했다.


“알겠어요. 돈이 부족하신 분들은 부족한 대로 놓고 가시고 나중에 더 주세요. 대신 돈 다 주시기 전까진 고장 나도 교환은 없습니다.”

“아이고. 고장이 왜 나? 우리 토마스가 만든 거. 2년은 든든하지!”

“내가 가을에 꼭 갚을게. 응. 고맙다.”


한 명은 50쿠퍼를 손에 쥐어주었고 다른 한 명은 30쿠퍼만 주고 쟁기를 가져갔다.

과연 이 두 사람, 나중에 진짜 돈을 갚을지 안 갚을지...

그건 두고 봐야 알 거다.

나간 쟁기는 아버지 포함 11개, 손에 쥔 돈은 8실버 80쿠퍼.

돈을 안 내겠다고 버티는 사람은 아직도 스무 명 정도 남았다.


“우리도 외상으로 하자. 외상으로.”

“야! 토마스. 외상 좋다. 외상!”

“우리가 외상 안 갚는 거 봤어? 우리 다 이웃사촌 아니야? 우리처럼 착한 마을 사람들이 어딨어?”

“다 나중에 갚는다니까? 뭐 안되면 돈 대신 다른 거로라도.”


이런저런 말로 외상을 하려고 하는 남은 마을 사람들.

저렇게 말한 사람들치고 지금까지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이 없었다.

진짜 염치없는 사람들이다.

도시 물가는 모르곘지만, 시골이라 돈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진짜 누구라도 낼 수 있을 만큼만 받는다고 했는데.

씨이...


“돈 없으면 그냥 다...”


꺼지라고, 그냥 남은 사람들을 다 내쫓으려고 할 때였다.


“토마스. 촌장인 내가 보증할 테니까 저들에게도 쟁기를 나눠주도록 해라. 안 되면 내가 나중에 마을 비용에서 빼서 줄게.”


촌장이 들어와서 다른 이들의 빚보증을 서겠다고 한다.

또다.

항상 갚지도 않으면서.


“이게 다 농사 잘 지어서 마을 전체가 잘 되자고 하는 일이잖니? 응? 네가 내 얼굴 봐서 좀 양보해라.”


하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난 이 사람이 무섭다.

내가 가만히 있자 촌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 허락도 없이 자기 멋대로 사람들에게 쟁기를 가져가라고 손짓했다.


“들었지? 촌장님 말씀대로야.”

“촌장님 말씀 잘 들어. 되게 훌륭하신 분이야.”


다들 한마디씩 하며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쟁기를 하나씩 끌고 창고를 빠져나갔다.


“항상 고맙다. 토마스.”

“...”


마지막으로 촌장이 빠져나갔다.

입이 얼어붙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듯 대꾸하며 배웅하지도 못했다.

어렸을 때 나는 촌장이 인간으로서 해선 안될 짓을 하는 걸 본 적 있었다.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뒤로 항상 이런 식, 저 사람 앞에만 서면 뱀 앞에 선 개구리 처럼 몸이 굳거나 떨려왔다.

촌장이 나에게 돈을 주는 일은 없을 거다.

마음 같아선 쟁기를 다 뺏어오고 싶었지만.

언젠가 내가 이 마을에서 나가도 마을에 남을 가족들 때문에라도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러니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정을 줄 수 있겠나?


“공짜 좋아하다 대머리나 돼라!”


모두가 간 뒤 저주를 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니지?

잠깐!

나 이제 정령사잖아?

이럴때를 대비해서 강해진 게 아니었나?


“드론.”


정령계로 돌려보냈던 드론을 불렀다.

물방울과 함께 눈앞에서 나타나는 드론.

이곳에 오자마자 드론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어제 왔던 정령들이 아직도 여기 남아있나 보다.


“드론. 먼저 나간 사람들은 말고 지금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들고 있던 쟁기 있지? 그들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따라가서 전부 다 바퀴 축 안쪽을 절단해 놓고 와. 자연스럽게 부서진 것처럼, 티 나지 않게. 절단면을 깔끔하게 만들지 말고 난도질을 하라는 말이야. 뭔 말인지 알았어?”

=일단 사람들 마킹은 해둘게. 어? 근데 그거 어제 주인이 정성껏 만들어 놓은 그거 아니야?

“어. 맞아. 정성을 들여 만들었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 아니야?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당연한 대가를 하나도 지불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가서 다 부숴놔.”

=그래도... 너무 아깝지 않아?

“상관없어. 난 앞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면 그게 누가 되든 내가 뭘 만들었든 다 상관 없이 부숴버릴 거니까.”


나는 드론에게 대꾸하면서 주변에서 보고 있을 정령들을 행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정령권이라는 격투 게임을 만들었는데, 어떤 정령들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됐잖아? 그럼 난 이렇게 조이스틱을 다 부숴버릴 거고. 앞으로 더 이상 정령권을 하지 않을 거야.”


갑자기 격겜 은퇴 선언과 함께 조이스틱을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밟아버렸다.


콰직!

=아이고...


드론이 아깝다는 얼굴로 바닥에 부서져 나뒹구는 조이스틱의 부품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저들이 크게 아쉬워 할까?

나 말고 정령들도 조이스틱을 만들 줄 알고 각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 줄도 알고 게임의 룰도 모두 알고 있으니.

정령들은 내가 없다 해도 다른 곳에 가서 정령권을 재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더 아쉽게 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공개할 신 캐릭터랑 신 게임. 하나도 없는 거니까 그렇게 알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에서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분은 새벽이나 아침쯤에 연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NEW 12시간 전 12 0 -
공지 후원 해주신 목록(고정) 24.07.01 987 0 -
42 042. 로버트 형은 나가 있어, 불똥 튀기 싫으면 +7 24.07.05 1,921 103 26쪽
41 041. 어쩌다 산업스파이 +13 24.07.05 2,381 92 15쪽
40 040. 처음으로 의뢰를 나가다 +17 24.07.04 3,132 92 16쪽
39 039. What is 던전? +7 24.07.02 3,660 108 18쪽
38 038. 새로운 도전과 공연의 법칙 +7 24.07.01 4,011 126 18쪽
37 037. 낭만의 시대, 동네 형들이 칼을 차고 돌아다님 +10 24.07.01 4,163 129 17쪽
36 036. 과학의 재발견 +8 24.06.29 4,224 116 11쪽
35 035. 성인이 되고 돈도 생겼는데 좋은 곳에 가보실까? +5 24.06.28 4,367 121 13쪽
34 034. 신입 괴롭히기 +8 24.06.27 4,408 119 14쪽
33 033. 성인식은 고유스킬 뽑는 날! +6 24.06.26 4,452 132 17쪽
32 032. 헤어짐이 있고 만남이 있다 늘 그렇듯 +9 24.06.26 4,319 113 13쪽
31 031. 도시 정착을 도와주다 +5 24.06.26 4,308 113 16쪽
30 030.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8 24.06.24 4,352 116 18쪽
29 029. 괜찮은 거래처를 찾았다 +2 24.06.23 4,333 108 13쪽
28 028. 첫인상은 중요하다. 나 말고 너. +10 24.06.22 4,497 110 17쪽
27 027. 도시의 첫인상 +11 24.06.22 4,668 108 16쪽
26 026. 정화의 불길이 솟아오르다 +15 24.06.20 4,838 120 19쪽
25 025. 인간이라는 이름의 지옥 +5 24.06.19 4,849 115 17쪽
24 024. 마을 회의 우리 가족만 없는 +11 24.06.18 4,849 113 14쪽
23 023. 내가 모르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2 24.06.17 4,769 107 17쪽
22 022. 내 제자는 환생자? +5 24.06.16 5,060 126 16쪽
21 021. 합체하면 기쁨이 배가 된다. +4 24.06.15 5,017 128 20쪽
20 020. 수상한 제자 +9 24.06.14 5,123 115 14쪽
19 019. 엘프 궁술을 배우다 +7 24.06.13 5,291 118 25쪽
18 018. 사탕 두 알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 +7 24.06.12 5,252 125 15쪽
17 017. 불청객 접대 +4 24.06.12 5,470 129 17쪽
16 016. 한가지 채웠다 +10 24.06.11 5,564 137 16쪽
15 015. 흔들다리 효과 +6 24.06.10 5,695 137 13쪽
14 014. 쩌는 활 있습니다(못당김) +4 24.06.09 5,860 139 12쪽
13 013. Spring goes where?(용수철은 어디로 가는가?) +29 24.06.09 5,993 156 12쪽
12 012. 정령들의 취직희망 1순위 +10 24.06.08 6,409 172 13쪽
11 011. 정령이 머물다간 거리 +10 24.06.07 6,551 160 12쪽
10 010. 정령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좋은 이유 +9 24.06.06 6,922 158 14쪽
» 009. 내가 이 마을을 싫어하는, 강해지려는 이유 +4 24.06.05 7,266 177 18쪽
8 008. 이름의 특별함 +5 24.06.05 7,770 195 16쪽
7 007. 정령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다 +10 24.06.04 8,898 185 18쪽
6 006. 즐거운 막대기를 배워보자 +9 24.06.03 9,630 193 16쪽
5 005. 정령사, 정령과 계약한 사람이라는 뜻 +4 24.06.02 10,043 223 12쪽
4 004. 나만 목소리가 들려 +12 24.06.01 10,661 182 13쪽
3 003. 4가지 결핍 +13 24.05.31 11,612 240 12쪽
2 002. 촌놈과 폐인 하프 +10 24.05.31 13,552 261 13쪽
1 001. 전생이 기억나버렸다 +17 24.05.30 15,971 29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