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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꿈
작품등록일 :
2016.04.2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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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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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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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씨앗.7

DUMMY

모든 게임에서 '고수'라고 불리는 유저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대전격투게임이나 PVP 분야의 랭커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단순한 동작 하나하나로 주고 받는 고도의 심리전부터 찰나를 보고 반응하는 순발력이나 흡사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예측력 등.

그것은 하나의 재능이자 무기로 봐도 무방했고, 흔히들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셀 수 없는 대전 경험은 하나의 '직관력'을 만들어 준다. 간단한 동작이나 거리, 자세 하나로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고 상황마다 나올 수 있는 공격과 방어 수단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대전격투나 PVP를 처음 하는 초보자가 보는 '고수'들은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방을 이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엄청난 압박감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


강한 상대일수록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수준의 차이를 느낀 유저들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다른 방면의, 게임만의 특징을 살리는 것이다. 캐릭터나 직업을 바꾸고, 스텟을 올리고, 스킬을 배우고, 아이템을 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핵심은 남들이 모르는 혹은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무기, 그것이 게임 속에서 '유일한 것'이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해당 게임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아이템이나 스킬. 숨겨진 직업이나 캐릭터 같은 것들···.


'하지만 부질없어.'


이안이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면서 느낀 것은 하나였다. 용사가 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재능을 시스템으로 보정 받고 용사로써 특별한 기술들을 배우고 용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아이템을 얻어도 결국 노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밸런스가 존재하니까.'


튜토리얼의 유일 클래스인 용사는 장점 보다 단점이 많았다. 좋게 말해서 만능이나 올라운더이지 스텟부터 스킬, 숙련도, 아이템 등 모든 것이 최고 수준이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활용해야 다른 직업과 엇비슷한 정도, 한마디로 최고 수준이 될 때까지 이렇다할 장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럼에도 수 많은 유저들이 그런 '유니크'함에 집착하는 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을 되돌아가 다른 길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을 찾고 있거나.'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적었다.

유저들이 흔히 말하는 변태 같은 직업이나 육성법을 연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성에 맞고 강해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게임을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유저는 아니었다. 이안이 보기에 그는 재미로 전투 마법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전투 마법사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순수 마법사의 벽을 보았거나.'


마법사 유저는 가상현실 RPG에서 생각 보다 희귀한 존재들이었다.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유저들이 기피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두뇌싸움이었다.

마법의 위력이나 시전시간 정도는 웬만한 유저들은 감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른 판단력과 절제력, 거리와 범위의 조절, 효율적인 콤보와 부과효과, 조합에 따른 변수 등. 깊게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매니악해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마법사는 만 시간 정도 해보고 질문하라'는 어이없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마법사를 하게 되면 마냥 게임을 즐기긴 힘들어진다. 물론 모든 게임의 마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마법사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 벽이 PVP의 벽이면 골치 아프겠어.'


두개골로 만든 투구를 쓰고 검을 뽑은 이안은 상대방의 입을 주시하면서 투척용 뼈다귀 하나를 꺼냈다.

롱 하오의 것도 전부 받았기 때문에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투척용 뼈다귀는 총 스물 개, 그가 슬쩍 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를 받은 롱 하오가 창을 들자 그가 들고 있던 뼈다귀를 던지지 않고 허공에 떨어뜨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것을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살덩어리와 나무 지팡이를 든 하임이 크게 외쳤다.


"네가 어떻게 올 줄 알았는지, 왜 내가 널 기다렸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봐?"


이안과 롱 하오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딱히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조잡한 창이 바람을 가르면서 떨어지는 뼈다귀를 강타했다.

일명 튕겨내기. 기교가 뛰어난 전사 유저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실드 부메랑처럼 극한의 컨트롤을 요구한다.

놀라운 것은 창에 튕겨나간 뼈다귀가 정확하게 하임을 향해 날아간다는 것이다. 하임이 그것을 가볍게 피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직접 던지는 위력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지만.'


연속공격은 배는 빠르다.

이번엔 뼈다귀 세 개를 꺼낸 이안이 계속해서 뼈다귀를 허공에 떨어뜨렸다.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가는 롱 하오가 이번에도 튕겨내기로 떨어지는 뼈다귀를 전부 쳐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뼈다귀들을 보며 하임이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그 정도도 준비하지 않았을 것 같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살덩어리를 들어올린 하임이 빠르게 주문을 외우더니 미리 준비해 둔 곳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불, 타오름, 가열, 솟구침, 지속, 장벽!"


그의 전방으로 불의 장벽이 솟구쳐 오르며 날아오는 뼈다귀들을 불태웠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의 장벽은 계속 타오르며 형태를 유지했다. 순수한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 보단 '대량의 촉매'를 소모해서 만든 것에 가까웠다.

이안과 롱 하오가 간단하게 우회하는 것으로 불의 장벽을 피했지만 손해는 아니었다. 이로써 하임이 마법을 사용하기 편한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이 만든 불의 장벽에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불, 타오름, 압축."


평소였다면 여기까지만 주문을 외웠으리라, 그러나 하임은 주문을 계속 이어갔다.


"회전, 가열, 야구공, 인첸트-폭발."


주문을 외운 하임의 손 위로 위압적인 불의 구체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떠올랐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이안은 마법이 날아오기 전에 손을 들어서 신호를 보냈다. 그와 롱 하오가 좌우로 흩어졌다.


"파이어 볼."


어느 한쪽을 공격하면 다른 쪽에서 공격해 온다, 평범한 마법사 유저라면 어느 쪽으로 공격해야 할지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임은 망설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마법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이안을 향해 달려가는 그가 외쳤다.


"지팡이는 폼이 아니라고!"


하임은 어딘가 들떠 보였지만 이안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순수 마법사처럼 운용한다고 해서 속으면 안된다.'


애초에 순수 마법사들도 근접전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투 마법사처럼 마법 이외의 능력이 없다는 것뿐이지 수준급 실력자들은 지팡이 하나로 웬만한 전사 유저는 이기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는 마법 이외의 능력까지 보유한 전투 마법사였다.


'근접전에선 내가 불리하다.'


튜토리얼의 경험을 제외하면 이안의 순수한 실력은 웬만한 전사 유저에 해당되었다. 전사 뿐만 아니라 다른 클래스도 마찬가지였다. 튜토리얼에서 무수한 경험을 했지만 이안이 일정한 수준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손꼽힌다.


'하지만···.'


갑자기 뒤로 물러난 이안이 검을 칼집에 집어넣더니 덩굴로 만든 올가미와 세 개의 뼈다귀를 꺼내 들었다.


'갑자기 뒤로 물러난다고?'


눈을 부릅뜬 하임의 표정을 보며 이안이 웃었다.


"난 전사 유저가 아니야."


용사로써 최고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 이안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성에 맞게 싸우는 것이었다.

전사가 불리하면 도적이 되고 도적이 불리하면 마법사가 된다. 용사는 모든 것이 어중간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모든 상황을 대응할 수 있었다.


'즉, 어떤 상황에서든 상성만큼은 우위를 점한다.'


물러난 이안이 달려오는 상대를 향해 뼈다귀를 던졌다. 단순한 견제용이기 때문에 하임은 간단하게 피할 수 있었다.


"꽤 잘 피하는데? 그럼 이것도 피해봐!"

"하!"


이안이 올가미를 흔들며 외치자 하임이 비웃었다. 갑자기 뒤로 물러나서 무언가가 있나 했더니 단순한 시간 끌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진짜 공격은 뒤에서 왔다.


"큭!"


세 개의 뼈다귀 중 두 개가 그의 등에 박혔다. 분명 피했던 뼈다귀들이 뒤에서 다시 날아왔다.

이안이 시선을 끄는 사이에 반대편에 있던 롱 하오가 하임이 피한 뼈다귀들을 튕겨내기로 다시 날린 것이다.

뼈다귀를 전부 튕겨낸 롱 하오가 들고 있던 창까지 집어던지며 달려갔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하임은 아껴 두었던 마법을 뒤를 향해 던졌다. 창과 불덩이가 충돌하는 순간 폭발과 불길이 일어났다. 달려가던 롱 하오가 뒤로 피할 정도로 강력한 폭발과 불길이었다.

하임은 지체하지 않고 이안을 향해 달려가며 주문을 외웠다.


"공기, 압축, 칼날, 인첸트-오라."


나무 지팡이 끝에 바람의 칼날이 형성되며 희미한 오라로 뒤덮었다. 올가미를 던지려던 이안이 혀를 차며 회수하고 검을 뽑았다.


'변수가 너무 많다. 그걸 제한해야 돼.'


얼마나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신체강화를 한 이안이 빠르게 접근했다.


'한 놈은 해치웠군.'


과감하게 다가오는 이안을 보며 하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괜히 불의 장벽을 만든 것이 아니었고 괜히 그 주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하임이 다시 불의 장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불, 타오름, 압축, 가열···."

'역시 공격으로도 응용이 가능하고··· 필요한 마법만 사용하고 있어.'


저번에 싸웠을 때와 다른 상황이었다. 이쪽에서 공략법을 준비한 것처럼 저쪽에서도 공략법을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여유가 없어 보여, 일단 주문을 방해한다.'


불의 장벽 곳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낀 이안은 빠르게 검으로 땅바닥을 긁어서 흙을 날렸다. 그리고 뼈다귀 세 개를 다시 순차적으로 던졌다. 하임의 뒤를 보면서 말이다.


'걸려라, 걸려라.'

'없다···!'


견제를 피한 하임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롱 하오가 시야에 안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의 고개가 올라갔다. 공중에서 롱 하오가 오라를 집중시킨 창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집중되고 있는 오라의 양을 본 하임이 재빨리 주문을 마저 외웠다.


"인첸트-오라, 견고, 방패."

'걸렸다!'


창과 방패가 충돌하면서 폭발이 일어났고 흙먼지가 날렸다. 하임이 불길의 방패로 롱 하오의 공격을 방어하는 사이에 이안이 올가미에 검을 묶었다. 즉석에서 새로운 무기를 만든 이안은 검을 집어 던졌다.


"공기, 압축, 폭발! 불··· 이런 제길!"


빠르게 이안의 공격을 빗나가게 만든 하임은 주문을 외우다가 어느새 착지한 롱 하오를 볼 수 있었다.

그가 던진 창이 또 다시 날아오고 있었다. 방금 전처럼 오라를 이용한 위력적인 공격은 아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주문을 멈춘 하임이 바닥을 굴렸다. 아슬하게 창을 피한 그가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면 끝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려갈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는 본능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무수한 경험이 그의 패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안의 계획대로 그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단호해질 수 있었다.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어차피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지면서 이기는 싸움을 하면 된다.


'던전 키퍼로서 역할은 거의 다 했고, 이제 이 둘만 어떻게든 전투 불능으로··· 아니, 한 명만 어떻게든 해치워면 된다.'


한 명은 엄청난 전투력을 가졌지만 게임 초보이고 다른 한 명은 반대로 그저 그런 전투력을 가진 게임 고수였다.

짧은 순간에 여러 변수와 상황을 생각한 하임이 결단을 내렸다.


'불완전하지만 지금 사용할 수 밖에.'


하임이 정화의 파편으로 얻은 힘은 스펠과 또 다른 마법인 소서리(sorcery)였다.

그가 익힌 스펠이 정신력으로 법과 률을 다루는 마법이라면 소서리는 그냥 신체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간직하고 있거나 혹은 재능처럼 타고난 마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즉, 스펠과 다르게 깨달음이나 지식 따위가 없어도 본능적으로 특정 마법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다. 마치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저는 아니야.'


소서리를 사용하는 NPC라면 분명 태어난 순간부터 마법을 사용하는 천재 중의 천재로 설정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저는 그런 천재성이 결여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NPC는 소서리를 사용하기 위한 '본능'을 타고나지만 유저는 그런 '본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한마디로 유저의 '본능'은 아직 소서리가 요구하는 수준을 못 따라간다.


'지속 시간은 10초 남짓.'


그럼에도 소서리가 대단한 점은 지식이나 깨달음을 얻기 힘든 고차원 마법을 간단하게 쓸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OP(Overpowered)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풀, 속박."

"···?!"


상정하지 않았던 확정 군중제어기.

검을 회수하기 위해 올가미를 당긴 이안이 뱀처럼 살아움직이는 올가미에 속박당했다.

하임은 당황한 표정으로 바닥을 뒹구는 이안을 뒤로한 채 또 다시 창을 던지러는 롱 하오를 보며 손을 뻗었다.


"풀, 속박."


이안이 어떻게 당했는지 목격한 롱 하오가 눈치 빠르게 들고 있던 창을 전부 집어 던졌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창들이 허공에 멈추더니 그를 속박했다.

롱 하오가 전력을 다해 움직여 봤지만 단순한 마법이 아닌지 속박이 풀리지 않았다.


"진짜 마법을 보여주지. 불, 타오름, 회전, 압축···."


활활 타오르던 불의 장벽이 하임의 손 위로 모여들었다. 거대한 불길이 그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손위로 모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가열, 인첸트-오라."


형태 고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롱 하오를 향해 다시 손을 뻗은 하임이 주문을 계속 외웠다.


"분화."


그의 손에서 화염 방사기처럼 불꽃이 내뿜어졌다. 오라를 연료로 사용하는 화염 방사였다.

그는 오라를 아끼지 않고 퍼부었다. 빠르게 오라가 고갈되어갔고 마치 생명을 불태우는 것처럼, 하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말라갔다.

그때 속박이 풀린 이안이 빠르게 검을 날렸다. 그는 이안의 공격을 눈치챘지만 피하지 않고 마지막 주문을 이어갔다.


"압축, 타오름."


화염 방사처럼 내뿜어진 화염들이 롱 하오의 머리를 감쌌다. 뒤늦게 이안의 검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은 그는 이안이 다시 검을 회수하지 못하도록 올가미를 전력으로 붙잡았다. 그가 빠르게 달려오는 이안을 보며 입을 움직였다.


"···가 이겼다. 폭발."


쾅! 화마가 다시 롱 하오를 덮쳤다. 확실하게 마무리한 하임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련 없이 쓰러졌다. 미동이 없었다. 막대한 오라의 소모와 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


어떻게 손써 볼 수도 없이 허무하게 전투가 끝났다. 하임의 죽음을 확인한 이안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드러누웠다.


'우리가 이겼다고?'


타오르는 잔해를 뒤로 하고 이안은 생각에 잠겼다.


*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혹은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완벽하게 되는 경우는 얼마 없을 것이다. 세상 일이란 것이, 변수라는 것이 원래 그러니까.


이러한 사실을 이미 튜토리얼 때부터 뼈저리게 경험한 이안은 자신의 계획이 처음부터 제대로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과 생각이, 계획과 계획이 부딪치는 것이 바로 세상이기에 그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 던전 키퍼에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빠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해도 소용없었다.

그럴만도 했다. 그가 던전 키퍼에게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써먹은 수법에 자신이 당한 것이다.


"와, 인생···."


중얼거리던 이안이 갑자기 키득거렸다. 겨우 게임에서 당했다고 인생 타령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게임 중독인 것 같았다.

아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게임이 인생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인생의 절반을 가상현실에서 보냈고 또 그 절반을 게임에 쏟아부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가장 잘하는 것도 가장 자신 있는 것도 게임이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고 나니 머리가 차가워졌다.


'지금 할 일부터 해야겠지.'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롱 하오가 죽고 혼자 남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우선 하임의 시체를 뒤져봤다.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봤지만 건질 수 있는 것은 톱밥이 담긴 주머니 뿐이었다. 그리고 롱 하오의 시체에선 하얀 돌덩이만 남아있었다.


'이로써 파편은 두 개. 나 혼자 남았고 던전 키퍼에겐 동료 내지는 일행이 있고···. 던전 키퍼라···.'


던전 키퍼는 사실 이안이 직접 유저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던전 키퍼의 원조는 바로 그의 첫번째 스승 빌라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었다.


-대응법은 말할 필요도 없고, 도리어 자신이 써먹은 수법에 자신이 당할 수도 있지. 전술이나 전략은 한번 써먹으면 늘 모방되고 변형되고 개선되니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늘 모방되고 변형되고 개선되어 왔다.

최초라는 것에, 선구자라는 것에 취하면 금방 추월당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간단해, 그냥 똑같이 하면 돼. 자신이 써먹은 수법에 자신이 당한 것 그대로 갚아주면 그만이야.


대부분 이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수법에 자신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바로 던전 키퍼에게 당한 이안처럼 말이다.


-흔히 하는 착각을 이용하는 것이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를 거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 속으론 이해하기 힘든 것이니까···.


이안은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의미를 모른다. 머리 속으로 알고 있어도 말이다.


'그리고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지.'


던전 키퍼를 하는 이유는 던전에서 나오는 이익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결국 던전 키퍼도 언젠가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라고 말한 것을 보면 공략 팀이 따로 있을 확률이 높고, 재시도 없이 한번에 끌낼 심산이야. 롱 하오만 필사적으로 죽인 이유는 날 변수로 생각하지 않거나 나 혼자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지.'


그만큼 자신들은 던전을 클리어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변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유저들을 무시할 정도로 말이다.


이안이 웃었다. 싸우기 전에 느꼈던 의문이 이제 풀렸다. 확실히 던전을 클리어할 자신이 있다면 다른 유저들을 제거하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상대는 던전 키퍼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이안, 자신이었다.


"똑같은 던전 키퍼를 절대로 살려두면 안되지."


특히 자신처럼 경험이 풍부한 던전 키퍼는 더더욱, 파편을 품에 챙긴 이안은 검에 묶은 올가미를 풀어내고 위를 올려 봤다.

그곳에서 끝없이 빛과 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숨통 구역의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벽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고 날카롭게 만든 투척용 뼈다귀와 올가미 덕분에 그는 능숙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클리어는 이미 물 건너 갔다.'


혼자서 씨앗을 얻어도 던전 보스로부터 도망치긴 힘들 것이다. 오히려 다른 유저들에게 씨앗을 빼앗길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전투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 확실히 변수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던전 키퍼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이 클리어할 수 없으면 아무도 클리어할 수 없다. 그런 고약한 심보로 탄생한 것이 바로 던전 키퍼이다.

빌라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이안의 입에서 흘려나왔다.


"당하면 갚아 줘야지."


작가의말

또 늦어져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과로로 기절하는 일이 잦아져서 공지를 올리는 것도 까먹고 한동안 쉬게 되었습니다.

쉬는 동안 글을 안쓴건 아니기 때문에 일주일 쯤 뒤에 3,4권을 한꺼번에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앞으로 건강관리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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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던전 키퍼.3 +4 17.04.06 592 34 12쪽
25 던전 키퍼.2 +6 17.04.05 597 28 16쪽
24 던전 키퍼.1 +6 17.04.04 619 30 19쪽
23 공략의 실마리.3 +5 17.04.03 638 32 14쪽
22 공략의 실마리.2 +4 17.04.02 670 36 18쪽
21 공략의 실마리.1 +2 17.03.30 710 41 19쪽
20 세계수의 통로.4 +3 17.03.29 667 38 16쪽
19 세계수의 통로.3 +5 17.03.28 662 40 15쪽
18 세계수의 통로.2 +4 17.03.27 697 41 17쪽
17 세계수의 통로.1 +6 17.03.27 743 34 10쪽
16 균열. +4 17.03.23 807 32 13쪽
15 용사들. +4 17.03.22 786 42 18쪽
14 미로. +2 17.03.21 812 38 19쪽
13 고블린.2 +3 17.03.21 846 38 16쪽
12 고블린.1 +1 17.03.21 892 39 10쪽
11 마나. +3 17.03.21 926 43 13쪽
10 무의식의 세계.3 +4 17.03.20 949 38 10쪽
9 무의식의 세계.2 +5 17.03.20 976 42 11쪽
8 무의식의 세계.1 +3 17.03.20 1,037 40 15쪽
7 사냥꾼.3 +3 17.03.20 1,026 45 12쪽
6 사냥꾼.2 +5 17.03.20 1,077 4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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