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리얼리티reality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퓨전

첫번째꿈
작품등록일 :
2016.04.26 23:43
최근연재일 :
2017.07.31 18:3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29,046
추천수 :
1,275
글자수 :
234,442

작성
17.03.21 09:28
조회
811
추천
38
글자
19쪽

미로.

DUMMY

초목이 모여 거대한 숲을 이루는 것처럼 식물들의 오라가 모이면서 거대한 흐름을 이루면 무수한 '길'이 형성된다. 때문에 생명체는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서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미로, 금지 라비린스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 길마다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몬스터들이 필드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고 이런 구조의 필드에서 먹이사슬의 상위권이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설정이었다.


''길의 끝'에는 입맛 까다로운 포식자들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


소문만 무성한 필드 보스 몬스터인 포식자를 발견한 유저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지만 포식자 보다 윗단계인 '숲의 지배자들'은 이미 발견된 상태였고 많은 유저들이 만나본 상태였다.

이지스의 모험에서 방송된 메인 스토리와 NPC들의 이야기로 보아 '숲의 지배자들'은 월드 보스 몬스터이자 메인 스토리의 핵심으로 추측되고 있었다. 때문에 '포식자'에 비해선 어느 정도 정보가 풀린 상태였다.


'지배자들의 쉼터로 가는 방법은 생각 보다 간단해.'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의 영역인 '지배자들의 쉼터'로 가는 방법이었다.


-그냥 북쪽으로 걷다 보면 아무나 갈 수 있음. 중간에 죽지만 않으면!


문제는 '길의 끝'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길'에 들어선 순간 컬러풀 노즈와 다른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린 노즈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되돌아오는 것도 문제이고.'


흐름이란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거대한 흐름이라도 말이다. 그 말은 즉 '길'이 바뀐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면 영영 숲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괜히 살아있는 미로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로에 빠져서 캐릭터를 다시 생성한 초보 유저들도 적지 않았고 말이다. 이지스는 타니스가 건네준 수정 구슬의 힘으로 두가지 문제를 전부 해결했지만 이안에게는 그런 수정 구슬 같은 마법 도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대형 길드에서 써먹은 방법을 따라할 수도 없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작전이라고 잘도 포장했었지.'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미노스의 미궁 라비린토스를 탈출하는 방법과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타래 대신 숲의 덩굴이나 줄기로 밧줄 아닌 밧줄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부분이다. 혼자인 이안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파티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물 속에 들어간 기분이야.'


마치 물 속에 들어간 것처럼 답답하고 감각의 일부가 제한된 기분이었다. 감지자의 강점은 보고 있지 않아도 특정 대상의 정보나 접근을 알 수 있다는 점인데 숲의 거대한 흐름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뭐, 아직 내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뿌리 지대와 가까운 곳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점점 뿌리 지대에서 멀어질수록 감각이 제한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거대한 흐름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길찾기와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것만 조심하면 되겠어. 그리고 감지 관련 능력이 없어도 공략이 가능하게 만들었을 거야.'


어쩌면 컨트롤 유저가 아니여도 가능할 것이다. 이지스 같은 경우도 컨트롤 유저가 아닐 때에 타니스가 건네준 수정구슬을 이용해서 '숲의 지배자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리스폰 지역이 고정이면 고민할 일도 없는데.'


리얼리티의 리스폰(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 시스템은 마을이나 왕궁 같은 특정 지역에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한 곳의 일정 범위 안에서 랜덤으로 부활한다. 때문에 막무가내로 도전이나 모험을 할 수 없었다. 특히 미로 같은 구조에서 잘못하면 죽어도 미로를 벗어나지 못할 수가 있었다.


'위험 부담도 있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지. 고전 수법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단검을 뽑아든 이안이 가까운 나무 앞으로 갔다.


X1.


단검으로 나무에 징표와 숫자를 표시한 그는 곧바로 다음 나무 앞으로 걸어가 똑같은 작업을 했다.


X2.


그렇게 지루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


나무에 새겨진 흔적을 따라 숲을 돌파하는 행렬이 있었다. 선두는 똑같은 장비들로 무장한 백여 명의 레인저 NPC들이 있었고 그 뒤를 다양한 모습의 유저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정지, 저 앞에 산을 짊어지는 녀석이 있다. 녀석을 처리하고 놈의 둥지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

"정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라! 상대는 '산을 짊어지는 자'다!"


늙은 노인의 말에 중년의 사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백여 명의 레인저들이 전투 태세에 돌입하면서 정면으로 달려가고 그들의 뒤를 따르던 유저들은 미리 얘기한 작전대로 재빠르게 후방으로 물러났다.


"다들 튀어!"

"오, 전투!"

"이 멍청아. 멍 때리지 말라고!'


숲을 돌파하던 행렬은 바로 강철왕국 오르비언의 레인저들과 그들을 따르기로 한 유저들이었다.

유저들 중에는 퓨리 얼라이언스의 레이첼과 다비앙도 있었다.


"산을 짊어지는 자? 앞에 뭐가 있다는 거야 도대체."


착실하게 물러난 레이첼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름만 보면 엄청 거대한 거 같은데."

"아까 그 덩치 큰 거미들이 새끼라니까. 뭐 이번엔 걔들 엄마나 아빠가 나오지 않을까?"

"그게 새끼라고? 진짜?!"


숲의 중심지에서 보았던 퍼플 노즈 보다 거대한 거미가 새끼라니? 레이첼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다비앙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어, 산이 움직인다."


레이첼 뿐만 아니라 다른 유저들도 다비앙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 작은 동산이라 생각했던 것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작은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땅의 흔들림이 두 발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 갔다.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조상님인가 봐."


동산의 움직임이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동산 옆으로 거대한 다리가 튀어 나왔다. 하나둘 다리가 나올 때마다 등줄기로 오싹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총 여덟 개의 타리가 튀어 나오자 거대 괴물의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


레이첼과 유저들이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미 새끼 거미들을 보고 목청껏 비명을 지른 탓에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힘도 없었던 것이다.


*


-와, 괜히 기습 공격대원이 아니네.

-레인저들 수준을 보면 랭커도 짐덩어리인데. 아직까지 사망자 한 명도 없는 것 좀 봐 봐. 이 정도면 왕국 탑 클래스 아니야?

-저 거미가 생태계 중상위급이란다. 최상위급인 포식자는 최대한 피해 다니고 있고. 지나가다 마주치는 몬스터들 수준이 최소 보스급인데 여기서 또 포식자라니 이 게임 난이도 미친거 아니냐?

-괜히 7대 금지라고 부르는게 아니더라.

-개고생하네, 우린 지금 마법제국 카르타인데.

-뭐라고?!

-웬 법사라는 작자 한 명이 와서 블라블라 주문 외우더니 그대로 텔포하던데?


이제 리얼리티가 오픈한지 열흘이 지났다. 게임 타임으로 한달이 지난 것이다. 이안이 홀로 '지배자들의 쉼터'로 향하는 동안 리얼리티의 스토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강철왕국 오르비언에 이어 마법제국 카르타의 등장이라···.'


본의 아니게 중심지 북쪽 지역에서 홀로 생존싸움 아닌 생존싸움을 하고 있는 이안이지만 누구나 알만한 정보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스타팅 포인트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겠지.'


특히 강철왕국의 레인저들을 따라 숲을 벗어나는 방송은 이안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었다. 대부분 유저들이 집중적으로 챙겨 보는 것이 바로 레인저들의 전투와 7대 금지라는 숲의 몬스터들의 수준이었다.


'계정 삭제를 할 만해···.'


숲 자체가 계절과 함께 방향감각까지 뒤바뀌는 미로였고 지나가다 마주치는 몬스터들은 최소가 네임드급이었다. 과연 7대 금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혼자선 벗어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극악무도한 난이도였다.

방송을 보는 유저들과 이안의 소감은 하나였다.


제멋대로 중심지를 벗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


X2658라고 표시된 나무 앞에서 이안은 덩치가 5미터 가량 되는 호랑이를 도축하고 있었다.


'이제 그린 노즈도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 만해.'


며칠만에 그린 노즈까지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 된 이안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린 노즈의 피를 빼내고 가죽을 벗긴 이안은 살덩이와 뼈를 바르기 시작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고기 보단 그린 노즈의 단단한 뼈였다.

지배자들의 쉼터로 다가갈수록 점점 몬스터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보기도 힘든 그린 노즈가 이곳에선 하루에 한번은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블루 노즈는 사실상 잡는 것이 불가능하고. 퍼플 노즈도 특성이 발동되지 않는 한 못 잡아.'


덤프트럭 크기의 멧돼지인 블루 노즈에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이 없었고 대형 곰인 퍼플 노즈는 개체마다 전투력이 달랐다.

거기에 새로운 몬스터들이 점점 등장하고 있었다. 이미 이곳을 다녀간 유저들이 발설하지 않은 몬스터들로 컬러풀 노즈와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코 대신 다른 신체의 일부분이 파랗고 노랗게 빛나는 것이다.


'돌연변이 같은 변종은 아니야.'


왜냐하면 컬러풀 노즈와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특정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오리진 몬스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특징들을 면밀히 보면 유저들과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오감계통과 마나.

오감계통에 따라 특징이 신체로 드러나고 마나의 성질이 색으로 표현되는 듯 했다. 계통이나 마나에 따라 본능도 뒤죽박죽이 되고 말이다.


'요컨대 전체적인 상성 시스템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거야.'


끝과 시작의 숲 전체는 7대 금지라는 이름에 걸맞는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곳 중심지 만큼은 아니었다. 스타팅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난이도이기는 하지만 초보들 밖에 없는 스타팅 지역에서 꼭 필요한 부분들이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성은 생태계를 보면서 대강 파악했고.'


숲의 생태계를 보면서 이안이 파악한 오감계통의 상성은 보는자가 맡는자는 이기는 식으로 크게 보는자, 맡는자, 감지자, 듣는자, 먹는자, 보는자 순으로 물고무는 형식이었다.

상성만 보면 감지자인 이안이 컬러풀 노즈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변수는 바로 마나와 이안이 유저라는 점이다.


'뭐 같은 유저에게 통할 상성도 아니고 나중에 가서도 통할 상성은 아닌 것 같지만.'


언제나 주여진 시스템을 벗어난 수단을 찾으려는 유저들에게 쉽게 통할 상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상성만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힘들어진다.


'지금은 통하니까.'


뼈와 살을 분리한 이안은 두골과 다리뼈를 돌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다리 뼈는 둔기용이었고 머리뼈는 방패 대용이었다.


'요긴하게 써먹어주지.'


시스템을 벗어난 공략법 즉 꼼수를 찾는 것도 좋지만 시스템으로 정해진 공략법을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지금 같은 스타팅 지역에서 시스템으로 정해진 공략법은 절대적이었다.


*


X29.


지배자들의 쉼터로 향하는 초입에서 이안이 남긴 표시를 발견한 사내가 있었다.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발견할 것이 분명할 정도로 큰 표시였기 때문에 마냥 우연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이런 멍청이를 다 봤나.'


북쪽 뿌리 지대의 유명한 머더러인 샤크는 익숙한 표시를 보고 씩 웃었다. 분명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표시였지만 숫자까지 세세하게 적는 것은 의외로 보기 힘든 것이다. 그것이 그가 웃는 이유였다.


'여기서 동기를 다 만나네.'


정말 우연인 것은 샤크가 바로 튜토리얼 출신의 '예비 용사'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안이 남긴 표시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다른 게임에서도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던 '용사 지침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사내의 모습도 이안과 비슷했다. 활동하기 편한 방어구에 허벅지나 허리에 매달은 다용도 보조 무기 그리고 자신의 성격에 맞는 주무기는 분명 이안과 비슷한 템 세팅이었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꽤 녹슬었지만 철제 숄더아머(견갑, 어깨 방어구)나 건틀렛 등 이안 보다 뛰어난 장비들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어디 실력 좀 확인해 볼까?'


샤크가 뛰어난 아이템들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예비 용사일 때 얻었던 '용사 지침서'를 PK로 적용한 덕분이었다.

머더러의 일종인 정글러의 창시자, 서바이벌의 귀재가 이안이 남긴 표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안이 표시와 함께 다른 무언가도 남겼다는 사실을 모른 채······.


*


X3268.


네발이 전부 파란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재규어, 블루 풋이 나무 위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족적처럼 잔불이 남았다.

옐로우 노즈처럼 빠르기 때문에 눈으로 쫓아가 봤자 볼 수 있는 것은 미약하게 타오르는 붉은 잔불 밖에 없었다. 그 잔불이 문제였다.


'위치 파악이 힘들어.'


잔불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블루 풋의 존재감이 점점 불씨 사이로 녹아들고 있었다. 여러모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스택형은 스택형인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도 스택을 쌓는 특이한 유형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장판과 스택의 중간···. 장판 정도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주변 환경을 유리하게 만들면 그곳을 벗어나면 그만이다. 그린 노즈의 머리뼈와 다리뼈로 만든 뼈 방패와 뼈 둔기로 방어 태세를 하던 이안은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한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자신이 왔던 길을 역행하는 것이다. 괜히 다른 곳으로 도망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미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왼쪽 위로 오고 있다. 확실히 빠르긴 빠른데 옐로우 노즈 보단 느려.'


옐로우 노즈는 직선으로 날카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섬광 같은 느낌지만 블루 풋은 곡선으로 물결처럼 움직여서 흐르는 강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신체강화를 사용하면 충분히 도망칠 수는 있지만 공격하는 것은 옐로우 노즈 보다 배는 어려웠다. 옐로우 노즈는 박자에 맞춰서 정확한 타이밍에 반격할 수 있지만 블루 풋은 엇박자로 들어오기 때문에 반격하기 힘들었다. 그것이 이안이 애를 먹고 있는 이유였다.


'메즈기만 쓸 수 있어도 쉽게 잡을 텐데.'


메즈기(무력화 기술)를 쓸 수 없다고 무력화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려울 뿐이었다.

조금씩 블루 붓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곧 공격이 온다는 신호에 이안이 뼈 둔기를 양손으로 들었다.


'머리에 스치기라도 해라!'


달려가던 이안이 갑자기 야구선수처럼 자세를 잡으며 신체강화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블루 붓의 기척을 놓치자마자 타이밍에 맞춰서 뼈 둔기로 스윙을 날렸다.

빠각. 타이밍은 완벽했다. 가장 먼저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가벼운 타격감이 뒤늦게 왔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나며 이안이 날려 갔다.


"이걸 다리로 막아?!"


땅바닥을 구른 이안은 재빨리 자세를 잡아서 다시 뛰었다. 십 수 마리의 몬스터를 때려잡은 이안의 뼈 둔기가 잔불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반면에 블루 풋의 푸른 불꽃은 아까보다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제길 벌써 2스택이야.'


블루 풋이 스택형 몬스터인 것을 모르고 다리를 노릴 때가 첫번째고 지금이 두 번째였다. 최대 몇 스택까지 쌓는지 모르기 때문에 쉽게 공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놈의 잔불이 문제였다. 이안이 무장한 아이템들은 사용한지 오래되어서 내구력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잔불에 아이템이 훼손되기 쉬웠다. 특히 장검 같은 주무기는 구하기 힘들어서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일단 바위 공터로 유인해야겠어.'


바위 공터는 X3031에서 발견한 곳으로 이안이 있는 곳과 조금 멀지만 그곳 말고는 블루 풋을 상태할 방법이 없었다. 표시도 하지 않는 채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블루 풋은 도망가는 이안을 그냥 뒤쫓기만 하지 않았다. 화르륵! 재규어 특유의 얼룩무늬가 푸른 불꽃으로 타올랐다.


'갑자기 빨라졌다.'


신체강화까지 해서 빠르게 도망치는 이안이 의문을 느끼기도 전에 푸른 불꽃에 휩쌓인 채로 나무 위를 질주하던 블루 풋이 이안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미친!"


갑자기 튀어나온 그림자에 위를 처다본 이안이 욕설을 내뱉으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블루 풋이 떨어졌다.

쾅! 유성처럼 떨어진 블루 붓이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지만 주위가 캠프파이어처럼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안은 공격할 엄두도 못했다.


'역시 공터가 답이야.'


나무가 없는 곳에서 싸워야 승산이 있었다. 이대로 도망칠 수 있으면 더 좋고 말이다. 하지만 블루 풋은 이안은 놓아주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뒤쫗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이에 거리를 충분히 벌린 이안은 나무에 새겨진 표시를 확인했다.


'X3059, 거의 다 왔다!'


주변 나무들이 조금씩 적어지고 있었다. 그 탓으로 나무 위를 타고 다니던 블루 풋이 지상으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 땅에 박힌 작은 바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뼈 방패랑 둔기는 이번에 쓰고 버려야겠어.'


마침내 바위 공터에 도착한 이안이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블루 풋은 공터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기만 할 뿐 들어오지는 않았다.

자신의 불리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놈은 이안이란 먹잇감 때문에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누구의?'


그때였다. 바위를 등지고 있던 이안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좋은 먹잇감이다. 인간."


이안은 거대한 세 개의 오라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등 뒤로 거대한 존재들을 느낄 수 있었다.


후.


가운데에 있는 존재가 가볍게 입바람을 내뱉자 블루 풋이 순식간에 붉은 불꽃으로 휩쌓인 채 그대로 쓰러졌다. 블루 풋처럼 잔불 따윈 남지 않았다. 그저 노릇노릇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올 뿐이었다.


'······.'


한 방, 이안이 그렇게 고전하던 블루 풋이 입바람에 한 방에 죽었다.

거대한 존재감이 점점 작아지자 이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위 위에는 이안이 찾던 '숲의 지배자들'이 있었다. 그중 가운데에 있는 붉은 고블린이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을 열었다.


"가져와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리얼리티realit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씨앗 그리고 열매. 2 +4 17.07.31 195 12 15쪽
34 씨앗 그리고 열매. 1 +5 17.07.30 232 14 15쪽
33 세계수의 씨앗.7 +8 17.07.04 362 16 21쪽
32 세계수의 씨앗.6 +9 17.04.23 656 23 14쪽
31 세계수의 씨앗.5 +5 17.04.17 627 29 16쪽
30 세계수의 씨앗.4 +5 17.04.13 593 30 7쪽
29 세계수의 씨앗.3 +4 17.04.12 544 28 13쪽
28 세계수의 씨앗.2 +2 17.04.09 587 30 14쪽
27 세계수의 씨앗.1 +2 17.04.08 595 34 16쪽
26 던전 키퍼.3 +4 17.04.06 592 34 12쪽
25 던전 키퍼.2 +6 17.04.05 597 28 16쪽
24 던전 키퍼.1 +6 17.04.04 619 30 19쪽
23 공략의 실마리.3 +5 17.04.03 638 32 14쪽
22 공략의 실마리.2 +4 17.04.02 670 36 18쪽
21 공략의 실마리.1 +2 17.03.30 710 41 19쪽
20 세계수의 통로.4 +3 17.03.29 667 38 16쪽
19 세계수의 통로.3 +5 17.03.28 662 40 15쪽
18 세계수의 통로.2 +4 17.03.27 696 41 17쪽
17 세계수의 통로.1 +6 17.03.27 743 34 10쪽
16 균열. +4 17.03.23 807 32 13쪽
15 용사들. +4 17.03.22 786 42 18쪽
» 미로. +2 17.03.21 811 38 19쪽
13 고블린.2 +3 17.03.21 846 38 16쪽
12 고블린.1 +1 17.03.21 892 39 10쪽
11 마나. +3 17.03.21 926 43 13쪽
10 무의식의 세계.3 +4 17.03.20 949 38 10쪽
9 무의식의 세계.2 +5 17.03.20 976 42 11쪽
8 무의식의 세계.1 +3 17.03.20 1,037 40 15쪽
7 사냥꾼.3 +3 17.03.20 1,026 45 12쪽
6 사냥꾼.2 +5 17.03.20 1,077 4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