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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꿈
작품등록일 :
2016.04.26 23:43
최근연재일 :
2017.07.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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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0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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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던전 키퍼.1

DUMMY

헤이먼과 카트리나의 파티는 합리적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서로의 특성이나 플레이 스타일을 공유해서 효율적으로 역할을 분담했고 다른 파티와 만나면 회유를 하거나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파티와 전면전이 일어나기도 했고 일부 파티원은 몬스터에게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다섯 명이던 그들의 파티는 결국 열 명까지 늘어났고 그들은 클리어를 확신했다. 던전 키퍼에게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빌어먹을 새끼!"


도주 중에 헤이먼이 분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거대 거미가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배에 달린 버섯에서 포자가 위협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 모든 것이 던전 키퍼, 캐쉬맨의 작품이었다.


"분한 것은 알겠지만 일단 생존이 먼저야. 다른 파티를 만나면··· 기억하고 있지? 계획대로 가는 거야."


같이 도주 중인 카트리나가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맡는 자인 그녀는 향기의 인도라는 추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에게 쫓기는 만큼 다른 유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만약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이용하기라도 해야 했다.


"다 왔어!"


신호를 보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저들의 향기 뿐만 아니라 고기 냄새까지 맡아졌다. 처음 능력을 사용할 땐 착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저 멀리 두 명의 유저가 보였다.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로 여기저기 고기를 먹은 흔적이 보였다. 아니, 한 명은 지금도 고기를 먹고 있었다.


"···."


헤이먼과 카트리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저렇게 냄새를 풍기면 애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몬스터나 적에게 발각됨)


'초보 유저인가? 아니면 던전을 즐기러 온 유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끼에에엑!"


하지만 뒤에서 거대 거미의 괴성이 들려오자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도, 도와주세요!"


사전에 계획한 대로 카트리나가 먼저 외쳤고 뒤이어 헤이먼이 미끼를 던졌다.


"저희는 이 던전의 공략법을 알고 있습니다! 도와만 주시면 공략법을 알려드리죠!!"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


"동충하초 같은 놈이군."

'동충하초···.'


짧게 거대 거미를 감상한 롱 하오가 호흡을 다스리며 자세를 잡았다. 권풍, 허공을 찌른 그의 주먹에서 무형의 기운이 쏘아졌다. 쾅! 권풍에 맞은 거대 거미가 주춤하며 뒤로 물려났다.


"작전은?"

"둘 다 멀쩡해 보이니, 일단은 '강력한 악'으로 보이는 저 몬스터를 함께 잡아 보죠. 저 둘의 실력도 보고 '강력한 악'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 봐야하니까요. 그리고 둘 다 던전 키퍼일 수도 있으니 뒤통수 맞지 않게 조심하고요. 제가 한 명을 이끌고 후방으로 가겠습니다."


불이 붙은 장작을 여러 개 집어든 이안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헤이먼과 카트리나에게 다가간 이안은 충격을 받은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도와주도록 하죠. 그쪽은 절 따라오세요."


해골바가지를 뒤집어 쓴 범상치 않은 모습에 카트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안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 나갔고 그 뒤를 카트리나가 따라 갔다.

헤이먼은 이안과 카트리나를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기를 먹고 있었던 범상치 않은 노인, 롱 하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배운 게임 용어를 남발했다.


"가자, 고기 방패!"

"예?"

"노부가 도와주는데 가만히 뒤에서 구경할 생각은 아니겠지?"


롱 하오가 주먹을 들었다. 무언의 압박에 헤이먼은 앞장설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조합이 맞춰졌다. 롱 하오와 헤이먼이 거대 거미의 정면을, 이안과 카트리나가 거대 거미의 후방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


화르륵! 거대 거미의 버섯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거대 거미가 고통에 찬 괴성을 지르며 포자를 마구잡이로 뿌리기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포자에 둔화 디버프 판정이 있습니다!"


이안이 탱커에게 외쳤다.

탱커의 역할은 헤이먼이 하고 있었다. 감지자인 그의 특성은 '조건 반사'와 '무조건 반사'로 예상되는 위험과 예기치 못한 위험에 반응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회피형 탱커, 그는 무빙으로 거대 거미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푹!푹!푹! 송곳처럼 찌르는 거대 거미의 발 공격을 피한 헤이먼이 양손에 착용한 두 개의 원형 버클러(지름 30cm 미만의 소형 방패)를 글러브 삼아 복싱을 했다.

거대 거미의 안면을 노리는 공격으로 놈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탱커답게 어그로 수치를 올리는 방법에 능숙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어그로를 빼앗기기 십상이었다.


"간다!"


쾅! 바로 롱 하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일격에 거대 거미의 몸체가 또 다시 옆으로 밀려났다. 위협을 느낀 거대 거미가 방향을 틀었지만 움직이는 속도가 이전 보다 느려진 상태였다. 게다가 중심을 못잡고 있었다.

거대 거미의 버섯에 불을 지른 이안과 카트리나가 세 개의 다리를 절단한 덕분이었다. 헤이먼은 빠르게 움직여서 다시 어그로를 가져왔다.


'그래도 어그로 순환이 순조로워··· 이대로만 가면 쉽겠어.'


그러나 상황은 헤이먼의 생각과 다르게 흘려갔다. 네 번째 다리를 노리던 이안과 카트리나가 버섯 속에 감춰진 알을 발견한 것이다.


"버섯 속에 알이 있어요!"

"발악 패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예상 패턴은 폭발과 소환!"


그 말을 기다린 것처럼 버섯 속에서 스무 개의 알이 떨어져 나왔다. 알의 부화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벌써 어른의 팔뚝만한 새끼 거미가 알을 까고 나왔다.

4~5 미터 크기의 거대 거미와 마찬가지로 배에 버섯이 달린 새끼 거미들은 날쌘 점프를 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머리가 약점에요!"


거대 거미와 달리 새끼 거미들은 확실한 약점이 존재했다. 그러나 발악 패턴이라고 보기엔 난이도가 쉬웠다. 문득, 거대 거미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새끼 거미들의 날쌘 점프가 보였다. 이안은 그것을 보고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빠르게 새끼 거미를 처리하던 이안이 거대 거미를 보았다. 유독 크고 단단해서 절단하는 것을 포기한 뒷다리가 접혀 있었다. 이안의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헤이먼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피해!!"

'···온다!'


거대 거미의 뒷다리가 펴지는 순간, 헤미언의 특성인 '무조건 반응'이 발동했다. 예기치 못한 위험에 반응한다. 헤이먼은 그 본능 같은 반응에 몸을 맡겼다. 예기치 못한 위험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진동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헤이먼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간발의 차이였다. 판단과 대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쿨럭!"


헤이먼이 비틀거리다 결국 넘어졌다. 지척에서 받은 충격만큼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엄청난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발악패턴은 새끼 거미가 문제가 아니라 거대 거미의 돌진이 문제였다.

이 와중에도 이안은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죽는 건 크게 상관 없지만···.'


헤이먼의 실력은 상상 이상으로 쓸만했다. 이안은 거대 거미를 잡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거대 거미는 돌진 후 스턴에 빠진 상태였다. 이런 패턴은 돌진을 회피하고 폭딜만 넣을 수 있으면 생각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는 것이었다.


'스턴에 빠진 지금이 기회다.'


남은 새끼 거미들은 열 셋,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카트리나에게 다가갔다.


"서프 탱커로 새끼 거미들을 풀링*하세요. 저희는 거대 거미를 잡겠습니다."

(*몬스터나 적을 의도적으로 끌고 다니는 것.)


지시를 내린 이안이 롱 하오와 함께 거대 거미로 향했다. 고개를 끄덕인 카트리나는 검을 집어넣고 활을 꺼내들어 풀링을 하기 시작했다.


"폭딜로 빠르게 잡아야 합니다. '플랜'대로 하실 수 있겠죠?"

"당연한 소리!"


거대 거미는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패턴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잡아야만 했다.


게임이기 때문에 유저들은 물론이고 NPC나 몬스터에게도 HP가 존재한다. 그리고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입으면 HP가 0이 되어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가상현실이기 때문에 단순한 공격으론 한계가 있었다. 즉, 몬스터의 일부분만 계속 공격한다고 해서 HP가 0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대 거미가 불길에 휩싸이고 다리가 절단되어도 죽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유저도 마찬가지였다. 팔이나 다리가 절단되었다고 해서 죽진 않는다. 만약에 죽는다면 출혈이란 디버프 때문에 죽는 것이다. 반대로 출혈만 막을 수 있으면 팔이나 다리가 절단되어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딜러의 실력은 여기서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다.


'급소를 공략한다.'


스턴에 걸린 몬스터에게 특별한 스킬이나 기교는 필요 없었다. 가장 효율적인 공격으로 급소를 공략한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DPS(초당데미지)를 뽑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안의 검에 희미한 기운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놈의 약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돌진 패턴으로 스턴 상태에만 빠진 것이 아닌 듯, 거대 거미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오라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라가 미쳐 보호하지 못하는 곳, 배에 달려 있는 버섯이 바로 약점이었다. 돌진의 여파인지 버섯을 태우던 불길은 꺼져 있고 잔불만 남아 있었다.

이안의 검이 그곳을 헤집기 시작했다. 약점이라고 해서 무조건 급소인 것은 아니었다. 급소는 조금만 다쳐도 생명에 지장을 주는 곳이기 때문에 대개 뇌, 심장 그리고 내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버섯은 거대 거미의 심장과 내장이 담겨 있는 배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며 단단한 껍데기도 없는 유일한 약점이다.

검붉은 피가 튀면서 거대 거미의 몸체가 크게 요동쳤다. 엄청난 고통에 스턴이 풀리고 있었다. 이안의 검격이 더욱 빨라졌다. 동시에 크게 외쳤다.


"롱 하오님!"


이안이 약점을 공략하고 급소를 노출시켜는 동안 롱 하오는 미리 만들었던 '플롯'대로 '큰 거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 시간이 워낙 길기 때문에 그동안 실전용으로 쓸 수 없었던 기술이었다.

강체류 오의, 괴력난신.

거대한 오라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자 이안이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이안이 헤집어 놓은 급소 위로 거대한 오라의 덩어리가 떨어졌다.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거인의 주먹이었다.


*


오라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이 거대 거미의 절반을 짓뭉갰다. 가볍게 느껴지는 지축의 흔들림, 압도적인 위력과 위용. 그리고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그의 무위에 모두가 감탄했다. 그들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보는 자인 하임까지도 말이다. 그는 오라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을 주목했다. 분명 일그러져 있었다.


'오버 컨트롤··· 아직 게임에 적응하지 못했군, 시스템의 제한 때문에 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가상현실 게임에서 컨트롤이 뛰어난 유저가 앞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한때, 잠깐이나마 가상현실 게임의 궁수 계열 랭킹을 정복한 한국의 양궁선수들처럼 말이다.

특히 리얼리티처럼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게임에선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컨트롤 실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게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상현실RPG와 다른 가상현실 게임의 다른 점, 바로 유저의 성장 때문이다. 레벨에 따라 스텟에 따라 그리고 시스템에 따라 유저들은 점점 강해지는 캐릭터에 적응해야 한다. 평범한 일반인이 갑자기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의 신체를 얻었을 때, 과연 그 일반인은 스포츠 스타처럼 뛰어난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아니다. 십중팔구는 새로운 신체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버 페이스를 하고 만다.

오버 컨트롤 현상은 바로 이때 나타난다. 유저가 아바타 혹은 캐릭터의 성장에 적응하지 못할 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가?'


저런 괴물이 RPG에 적응하면 바로 티엔이나 알렉스 같은 생태계 교란종, 신컨 유저가 되는 것이다. 하임의 입장에선 천만다행이었다.


'파이터만 있는 RPG는 없으니까.'


근접 계열의 파이터가 있다면 원거리 계열의 레인저와 마법 계열의 캐스터가 있는 법. 그리고 하임은 캐스터 그중에서도 전투 마법사였다.

꺼져가는 불씨를 집은 그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말했다.


"불."


불씨에서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타오름, 압축, 음··· 야구공."


그의 말에 따라 작은 불꽃이 크게 타오르다가 점점 압축되면서 야구공 크기의 구체가 되었다.


'기초 밖에 못 익혔지만, 복합 유저인 나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하임이 검을 뽑았다. 왼손엔 파이어 볼, 오른손엔 검이었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싸우는 것은 이제 옛날이다.


"면상에 스트라이크를 꽂아주마."


*


'이 정도 위력일 줄은 몰랐는데···.'


이안이 혀를 내둘렀다. 강력한 한방이 가능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상한선이 존재해.'


이안은 롱 하오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처럼 기술이 나가지 않은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예상대로 롱 하오 같은 유저들의 독주를 막기 위한 시스템 제한이 존재했다. 생각 보다 상한선이 높지만 그만큼 많은 제약이 있었다. 준비 시간 하나만 봐도 엄청난 제약, 롱 하오의 말처럼 실전에서 즉각 써먹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준비만 하면 랭커와도 싸워 볼만 하겠어. 승리를 장담하긴 힘들겠지만, 문제는···.'


고개를 돌린 이안의 시야에 헤이먼과 카트리나가 들어왔다. 실력은 이번 사냥으로 검증 되었다. 헤이먼은 센스가 있는 딜탱이었고, 카트리나는 실력은 약간 부족하지만 범용이 좋은 딜러였다.


"일단 그 던전의 공략법부터 들어보죠."


이안의 말에 헤이먼과 카트리나가 눈빛을 교환했다. 실력은 확실히 자신들 보다 위, 게다가 거대 거미를 사냥하면서 이안이 보여준 판단력이나 대처 능력은 그가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롱 하오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길드에 소속된 유저가 아니었고, 서로 안면이 있는 파티도 아닌 것 같았다. 배신을 당할 요소는 적다.


'하지만 던전 키퍼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


던전 키퍼라면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공략법을 듣고 자신들을 죽일 천금 같은 기회,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눈빛을 교환한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약속은 지킨다.


'던전 키퍼는 아니고, 뒤통수를 맞은 건가.'


그들의 고민을 눈치채지 못할 이안이 아니었다.


'실력은 나쁘지 않고, 급하면 꼬리 자르기나 방패막이 정도로 써먹어야겠어.'


동행은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다가오면 망설임 없이 버린다. 딱 그 정도 거리였다. 같은 파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파티원이 배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옆에서 지켜본 롱 하오는 그럴 인물이 아니었다.


"저희는 다른 파티를 회유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면서 던전을 공략했어요."


카트리나가 작은 주머니에서 꺼낸 가루로 헤이먼을 치료하며 말했다. 이안이 구한 이끼와 다른 붉은 가루였다.


'하수는 아니야.'


도움을 받았지만, 그건 제안 때문에 받은 것이다. 상대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리고 아군은 부상을 당한 상태, 회복할 시간을 끌어야한다.

그래서 던전의 공략법이란 구실을 준비한 것이다. 공략법이란 매혹적인 제안을 받은 이상, 공략법에 대한 대화를 할 수 밖에 없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아군이 회복을 할 시간도 길어진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악의 성소가 파괴된 건 아시죠? 악의 성소는 하나가 아니에요. 저희가 하나를 파괴했을 땐 퀘스트가 클리어 되지 않았으니까요. 성소를 파괴하고 얻은 것은 이 검은 파편이고요. 그리고 악의 성소를 요약하자면 마법사가 만든 제물에 가까워요."

"마법사가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롱 하오가 반문을 했다. 카트리나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타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의심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로그아웃 당한 파티원이 배경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듣는 자'라서 꽤나 쉽게 알 수 있었어요. 마법사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악의 성소를 만든 마법사의 정체는 '악의 추종자'."

"광신도라···."


악을 섬기며 따른다. 단순한 종교의 신도라고 보기 힘들었다. 악을 숭배하는 광신도, 그것이 본격적인 스토리의 시발점이리라.


"다행히도 그 광신도는 이곳에 없어요. 대신 그만한 몬스터를 만들어 놓았죠. 저희 파티원들과 동맹을 맺은 파티들은 그걸 잡으려다가 던전 키퍼에게 당했고요."

"그 몬스터가 보스 몬스터입니까?"

"예, 마법사가 만들 수 있는 몬스터인 미···."

"미?"


갑자기 카르리나가 말을 멈추더니 눈을 감았다. 다른 유저의 향기가 느껴졌다. 대상은 한 명, 거리는? 눈을 번쩍 뜬 카르리나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지척! 적이에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야구공 크기의 불덩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그리고 통로 쪽에서 날아오는 불덩이 뒤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폭발."


누군가의 말과 동시에 압축된 불꽃이 그들의 지척에서 터지며 커다란 불길을 만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크윽!"

"타오름, 압축, 압축, 압축, 야구공."


불길이 더욱 거세지다가 일부가 압축을 되더니 또 다시 야구공 크기의 공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불덩이는 총 세 개. 불꽃을 뚫고 튀어나온 손이 불덩이 하나를 집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군."

"설마··· 마법사라고?"

"캐쉬맨 이 개자식!"


카트리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헤이먼이 전투를 준비하며 욕설을 날렸다.


"미안하지만 캐쉬맨은···."


캐쉬맨이라 불린 마법사 유저, 하임이 웃으며 마치 좌투수가 공을 던지는 듯 불덩이를 던졌다.


"가명이야!"


하나의 불덩이가 또 다시 날아왔다.


그리고 두 개의 뼈다귀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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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던전 키퍼.3 +4 17.04.06 592 34 12쪽
25 던전 키퍼.2 +6 17.04.05 597 28 16쪽
» 던전 키퍼.1 +6 17.04.04 619 3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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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공략의 실마리.1 +2 17.03.30 709 4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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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용사들. +4 17.03.22 786 42 18쪽
14 미로. +2 17.03.21 811 38 19쪽
13 고블린.2 +3 17.03.21 846 3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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