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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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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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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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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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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악당의 방식 3

DUMMY

올펜 백작가에서의 일은 대성공이었다.

“흐흐.”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백작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북쪽에서 일한다는 그 헛소리에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그냥 다 믿어버린 것이다.

하긴 그 정도 상황이면 오히려 의심하는 게 더 이상하다.

만약 의심한다면 지금 그분의 일을 의심하는 거냐며 오히려 역으로 의심하는 것으로 따져도 된다. 물론 그 나름대로 뭔가 알아보려 해도 나오는 게 없을 테고.

하지만 이 대담한 일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일단 왕성 지하에 위치한 지하 감옥에서 일해야 한다.

여기가 중세 판타지긴 하지만 법은 있다. 물론 돈 있는 자들이 엣헴, 하고 헛기침하며 주물럭거리는 헌법처럼 복잡하게 돼 있진 않지만, 어쨌든 그 법을 가지고 재판도 연다.

물론 재판이라고 해 봐야 현대 사회처럼 그런 재판도 아니다.

사실 말이 좋아 재판이지 실상은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 행사.

죽거나, 혹은 감옥에 갈 패배자의 마지막 절규를 듣는 곳이라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재판에서 죄인으로 낙인 찍힌 자들은 지하 감옥으로 오게 된다.

음습하고 지저분한, 꿈도 희망도 없는 산 아래의 지옥.

지하 감옥에서는 누가 죽어 나가도 큰일이 아니다. 말 한마디면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쓸려나가고 시체를 치우는 건 그저 일상일 뿐.

지독하게 폐쇄된 공간이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부로 유출되기 어렵다.

바로 거기로 공주가 온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공주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옥으로 올 올펜 백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그때가 되면 입막음을 해야 할 자는 막아둬야 한다.

즉,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스스로 이런 생각이 좀 무섭다고 느끼고는 있었다. 죽을만한 놈을 죽이는 거지만 말 한마디로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해야 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을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게 겁나서 못한다면 나중에는 죽어 시체가 돼서 세상 망하는 걸 보던가 멀쩡히 살아서 벌벌 떨다가 세상 망할 때 같이 망해 죽던가 할 테니까.

죽일 놈은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 건 이쪽이 될 것이다.

“출발.”

밖에서 마차를 끄는 마부와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곧 마차가 출발했고 그 모습을 백작의 저택 높은 곳에서 카를린 올펜이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리텐 왕국 왕성 지하 감옥.

마치 개미굴처럼 산 아래로 나 있는 거대한 동굴. 그 안에 인위적으로 공간을 더 만들고 기둥을 세워 천장을 받치고 있다.

인권 따위는 시궁창 개벌레에게 쥐여준 칙칙한 공간. 꿈도 희망도 없는 죄인들이 흙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몸을 뉘이는 장소.

그리고 이 지하 감옥을 관리하는 자들 역시 공간만큼이나 으스스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가진 자들이다.

죄수들이야 허름한 죄수복을 입었고 구속구에 쇠사슬 등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두었다.

그리고 죄수들을 관리하는 간수들은 하나같이 펑퍼짐한 후드 달린 검은 로브에 눈만 겨우 보이는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다.

심지어 가면 자체가 특수하게 제작되어 말을 해도 목소리가 메아리쳐 변조되어 울리니 목소리로도 이게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다.

이 간수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 곧 죽어 나갈 죄수들이 저주를 퍼부어도 자신이 저주를 퍼붓는 대상이 누군지 모르니 죽은 자의 망령이 들러붙지 못하게 하려는 미신 같은 이유 때문에.

하지만 아주 미신도 아닌게 어쨌든 이 세상에는 마법에 저주 같은 것들도 존재하니 정체를 숨기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진짜 얼굴을 가린 실질적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이 간수들. 전부 프리암 백작의 끄나풀들이다.

프리암 백작은 권력자다. 리텐의 귀족 절반을 이끄는 자다. 그러니 이런 지하 감옥에 자기 사람 심어두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 지하 감옥의 감독관으로 오게 되었다.

간수들이 하는 일은 죄수 감독이다. 여기에는 고문 기술자가 있으며 죄수들에게서 진실을 캐냄과 동시에 질서를 확립하는 게 간수들의 일이다.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도 있지만, 감옥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근무한다. 병사들 역시 얼굴을 가렸고 그 어떤 경우에도 죄인과 대화할 수 없다.

그리고 감독관은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자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아무리 몸을 가리고 목소리가 바뀌어도 조그만 애가 떡하니 앉았으니 간수들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여기는 올펜 백작이 관리하는 곳이고 그에게 임명되어 온 감독관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게 갈아 치워질 수도 있다.

죄수 대신 감옥에 들어가기 싫다면 알아서 사려야 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여기서 감독관으로 생활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관 학교에 등록되어 있으니 일단 학교는 나가서 출석 도장이라도 찍어야 한다. 지하 감옥에서는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인데 사관 학교에서도 사라지면 말 그대로 행방불명. 올펜 백작만이 내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므로.

즉, 낮에는 사관 학교에 눈도장이라도 찍고 그 뒤에 감독관으로 지하 감옥 일을 해야 한다는 뜻.

그리고 지금. 나는 감독관으로서 지하 감옥에 첫 출근해 칙칙한 지하 감옥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밝고 깨끗하고 화려한 집무실의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에 앉아 간수들을 모아두고 있었다.

“새로 와서 사실 아는 건 없지만,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마저 하면 된다. 알아듣겠나?”

아무리 가렸어도 누가 봐도 어린아이인데 하대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간수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저 새로 온 감독관이 싸가지없는 애새끼일지라도 이곳에서는 나이와 성격이 통하는 그런 곳이 아니니까.

이런 곳에 왔다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간수들 중 한명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있었지.’

다 똑같은 옷을 입었어도 간수들끼리는 일의 편의를 위해 가면에 표시를 해 두었는데 지금 보는 간수는 유일하게 검은 가면에 스크레치 같은 하얀 줄을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세로로 그어 두었다.

게다가 저 몸.

저 엄청난 몸매. 펑퍼짐한 검은 로브를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드라져 보이는 가슴에 골반.

사실 10권 분량의 소설을 여러 번 읽은 것도 아니고 한번 봤을 뿐이다. 그것도 술을 마셔가며.

프로 의식이 있어 아주 꼼꼼하게 보긴 했지만 전부 다, 세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 와서 이렇게 보니 기억이 났다. 여기, 지하 감옥에도 여주인공 중 하나가 있다는 걸.

그래도 혹시 모르니 면접관 스킬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네인 펠]

인간. 여. 22세.

네로운 펠 남작과 창부의 딸.

네로운 펠 남작에게 학대 받은 이후 가출.

살인 혐의로 수감.

프리암 올펜 백작에 의해 간수로 임명.

현 리텐 왕국 지하 감옥 고문 기술자.


면접관 스킬로 확인한다.

그 결과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지만 발렌할 후작가에서 만났던 그 여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짜증이 나거나 하지 않았다.

이번 계획은 누군가 도와준다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네인 펠은 여기 간수들 중 유일하게 프리암 백작을 따르지 않는다.

프리암 백작이 그녀를 간수로 임명했음에도 그렇다.

만약, 이 여자. 네인 펠을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해야 할 일을 꽤나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갑질로 행동을 정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자기 알아서 움직이는, 그런 유능한 사람이 필요했다.

‘일단 채용은 해 놓고, 유사시에는 갑질로 써먹어야겠군.’

네인 펠 뿐만 아니라 다른 간수들도 마찬가지다. 유사시에 쓸 수 있게 일단 전부 채용은 해둔다.

이걸로 이곳 지하 감옥의 간수들은 말 한마디면 그 행동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만약 여기 프리암 백작이 잡혀 오면 말 한마디로 간수들을 움직여 백작을 목매달 수도 있다.

백작을 강간하라 해도 그대로 할 것이다. 부당하다 생각하고 싫어도 한다. 그런 능력이니까.

그러나 유일하게 하나. 네인 펠은 갑질이 아니라 유능한 직원. 비서. 혹은 매니저처럼 알아서 해줘야 한다.

그래야 내가 편하다.

시선을 거둔다. 그다음 이제 돌아가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이제 다들 나가서 일들 봐.”

간수들은 대답도 없이 그냥 조용히 집무실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난 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명단을 확인했다.

간수들. 그리고 죄수들의 명단이다. 감옥을 관리하는 감독관은 간수들. 그리고 죄수들의 모든 인적 사항을 알고 있다.

간수들 명단은 사실 봐도 별거 없다. 다른 자들이야 조연도 아니라 그저 엑스트라고 어차피 네인 펠. 그 여자만 알면 되니까.

그러니 죄수 명단을 확인했다.

약 한달간 수도 전체를 살인마, 임무를 저버리고 도망친 기사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죄수들의 이름.

하지만 이런 진짜 범죄자들 보다는 어떤 가문의 자제. 어떤 가문과 줄을 대고 있던 상인. 어떤 가문과. 어떤 귀족과. 또 어떤···.

적어도 여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명확하다. 소설에서도 묘사되었지만, 이곳은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게 아니라 차라리 정치범 수용소라 보는게 맞다.

그것도 정치 싸움에 져서 여기 온 귀족들과 그 자제들이다. 진짜 반란을 모의했거나 한게 아니라 백작의 일에 방해가 되니 여기로 온 자들이다.

그런자들의 이름을 확인하며 명단을 몇 장이나 넘겨 한참을 찾고 나서야 자신이 찾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구만.”


[바라크]

죄명 : 반역.


죄명은 반역이라 돼 있지만, 반역자는 아니다. 그도 그럴게. 이 바라크라는 놈은 애초에 리텐 왕국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위. 북쪽 야만족중 하나다. 리텐 왕국과 북쪽 설원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종종 군사 충돌이 벌어지므로 이렇게 북쪽 야만인을 포로 형식으로 데리고 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 바라크라는 놈은 지나가는 야만인 A같은 엑스트라가 아니다.

족장의 아들이다. 그것도 꽤나 큰 부족의.

이 바라크라는 야만인의 옆에 작게 체크 표시를 해 두었다. 풀어줘야 하는 죄수에 당첨된 것이다.

꽤 나중에 있을 스토리를 위해서다. 물론 이 뒤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풀어줘서 나쁠 건 없다 생각했다.

일단 바라크의 운명은 이걸로 결정됐다.

그다음, 네인 펠에 관해 다시 떠올렸다.

‘그러니까, 일단 복수를 시켜줘야 하고 그 뒤에 주인공을 따라 왔던가?’

네인 펠. 수많은 여주인공 중 하나.

꽤나 박하게 살았다. 결코,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이 여자를 상징하는 단어가 있다면 일단 복수다. 네로운 펠 남작은 주인공에 의해 죗값을 치르게 되고 이 네인 펠이라는 여자는 그냥 술술 넘어온다.

막말로 하자. 그냥 알아서 다리를 갖다 벌린다. 기본적으로 이 개 같은 소설의 여주인공이란 것들은 주인공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따르니까.

좋아하거나. 지켜보거나. 충성하거나. 뒤에서 도움을 주거나. 혹은 맹신. 더 나아가서는 숭배. 기타 여러 가지 방법.

그 방법에는 당연히 육체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으며 물심양면으로 겉과 속을 다 내어주니 이 네인 펠이라는 여자도 그중 하나다.

적어도 여기 지하 감옥에서 내가 편하게 있기 위해서.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네인 펠이 있어야 한다. 여주인공 중 하나라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이 여주인공을 위해 목숨 바칠 생각 따위는 없으니 이번에는 써 먹어야 한다.

‘애비 이름이 네로운 펠이라고 했던가. 프리암 백작에게 배신할 낌새가 보인다고 하고 잡아오라 해야겠군.’

이걸로 결정되었다. 네로운 펠 남작은 여기로 끌려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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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3 +62 20.07.10 22,656 630 17쪽
9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2 +24 20.07.09 23,955 586 13쪽
8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1 +14 20.07.08 24,473 542 12쪽
7 대리 결투 2 +9 20.07.07 25,370 530 13쪽
6 대리 결투 1 +29 20.07.06 25,952 541 13쪽
5 발렌할의 망나니 4 +36 20.07.05 26,891 631 13쪽
4 발렌할의 망나니 3 +22 20.07.04 29,497 580 16쪽
3 발렌할의 망나니 2 +22 20.07.03 38,253 67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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