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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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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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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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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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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악당의 방식 2

DUMMY

수도에 도착 후 그 뒤의 절차들에서 직접 나서 뭔가 할건 없었다.

이미 레볼턴 후작이 미리 말해두었기 때문에 복잡한 절차나 입학 수속. 혹은 뭔가 자격이 되는지의 시험 같은 건 일체 없다.

배우는 동안 지낼 3층 저택마저 준비되어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나 여기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학연이나 지연. 아무튼 빵빵한 부모가 있다는 것은 꽤 많은 일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관 학교는 수도, 룰르즈의 왼쪽 산. 조금 크기가 작은 왕궁의 아래에 만들어져 있었고 그래도 엘리트 지휘관을 양성하는 곳답게 귀족의 자제 중에서도 선택받은 몇 명만이 저명한 교수들에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즉, 건물은 크고 넓고 웅장한데 반은 하나뿐인 것이다.

교수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마치 전학 온 거 같은 기분으로 교실에 온다. 다행히 자기소개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시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마주한 얼굴들은 죄다 비슷했다.

나이치고는 권위 의식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얼굴들. 젊은 귀족 자제들을 보며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고 이 교실에 있는 귀족 자제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니아 벨린. 거기에 카를린 올펜.

여주인공들.

니아 벨린이야 여기서 또 만나는게 스토리다. 하지만 카를린 올펜 같은 경우는 의외였다. 훈련소에 와서 쫓아냈는데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그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수업이 시작된다. 동시에 나는 턱을 괴고, 교수의 말은 죄다 흘려보내 버렸다.

아무 관심도 없다. 들을 것도 없었다.

일이 수틀렸을 때 세웠던 계획이 있다. 마공을 익힌 사악한 무림인이 생각했던 그런게 아니었을 때를 대비해서 세운 계획.

쉽지 않다. 비교적으로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이것뿐이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어려운 계획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한 이 새로운 전학생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오는 사람은 없고 멀리서 저들끼리 말하기 바쁘다.

카를린 올펜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자기 무리와 어울릴 뿐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명. 발렌할의 망나니에게도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얻은 직업과 거기 딸려 온 능력에 완전히 실망한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 나 역시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

페트릭. 후작가에서 리번의 대리 결투에 대응하기 위해 뽑은 그 조연.

지금은 졸업하고 어딘가 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여기서 만난 것이다.

“여기서 만나는구만.”

일어나 아는 체를 했고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페트릭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손을 잡았다.

친한건 아니다. 그저 한번 써먹은 거 뿐이니까.

그리고 페트릭 역시 그저 아는 얼굴이라 인사치레나 하러 온 것은 아닌 듯,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왔습니다.”

“감사하다? 내가 뭐 한 게 없는데.”

“아뇨, 그럴 리가요. 그때 대리 결투에 저를 지목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일 덕분에 레볼턴 후작님의 눈에 든 모양입니다.”

“그래?”

“예. 훈련소를 졸업하자마자 다른 데로 간 것도 아니고 곧바로 준 귀족으로 후작님의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후작님의 성을 딴 발렌할 기사단에 들어갔으니, 제 일생일대의 영광이었죠.”

“그렇구만.”

“게다가 후작님께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저를 여기로 보냈습니다. 솔직히 지금 여기 있지만 이게 꿈이 아닌가 하고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 뭐··· 잘됐네.”

“예. 저기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니, 아닙니다.”

뭐 말하려다가 아니라고 하는건 사람 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이런 걸 제일 싫어했던 레이튼은 혹시 스토리와 관련된 무언가인가 싶어 페트릭을 째려보며 종용하기 시작했다.

“뭔데. 빨리 말 해.”

“아니 그게. 저기···.”

“빨리. 왜 말하려다가 말아?”

그러자 페트릭은 머리를 긁더니 모기 날아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게, 벨님이.”

“벨?”

“예. 레이튼님의 누님.”

“그년이 왜?”

“그게···.”

“아니 잠깐. 말하지 마.”

바보도 아니고 여기까지 들으면 모를수가 없다.

그리고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말하라고 종용해놓고 인제 와서 말하지 말라고 하니 참으로 모순된 행동이지만 그렇게 양심적으로 살지도 않았으니까.

그러자 페트릭은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또 한명이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해?”

니아 벨린이었다.

그리고 날아드는 시선. 대놓고 적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너는 싫다, 라는 것을 내비치고 있는 그 표정.

물론 여자 하나가 그런 눈빛 보낸다고 상처 입을 여린 마음도 아니다. 나는 무신경하게 굴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고서야 알았다.

페트릭. 이놈은 소위 말하는 인싸라는 것.

잘생겼고, 예의 바르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고, 실력이 있으니 당연히 그런거겠지만.

“하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패트릭을 만났다. 니아 벨린도 있다. 물론 이 둘은 아무 상관 없지만 카를린 올펜까지 만난 것은 솔직히 말해 운이 좋은 거였다.



***



다음 수업 역시 시큰둥하게 보내버리고 그다음 쉬는 시간. 거기서 나는 아주 당당하게 카를린 올펜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까칠한 반응. 이걸 보자 짜증이 솟구친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뒤에 가서는 후회한다고? 겉으로는 틱틱거리는데 속으로는 반대다? 정신 분열 조증도 아니고···.’

이런 태도를 소설에서 읽었었다.

속으로는 위해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틱틱거리는 것.

츤··· 뭐시기 인가 뭔가 아무튼 어려운 단어로 표현했었다.

아무튼 겉과 속이 다르다는 소리다.

이 태도를 단순무식한 게 아니라 그냥 무식하게 그날인가? 라거나 혹은 겉과 속이 다른 까다로운 년, 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뭐가 됐든 백작을 만나는데 이년이 다리를 놓을 수 있을거야.’

그리고 거의 명령조로 말했다.

“프리암 올펜 백작, 님을 좀 만나보고 싶은데.”

“···무슨 소리죠? 제 아버지를 왜···”

“너 때문에 만나는 거 아니니까 이상한 걱정은 하지 말고. 가급적이면 정식으로 초대받아 가고 싶지만, 그냥 조용히 만나도 되고.”

“이유가 뭐죠?”

“어린애가 알만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어린애? 무례하군요.”

“그래서 돼, 안돼?”

그렇게 말하며 카를린에게 조그만 쪽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게 뭐죠?”

“이걸 프리암 올펜 백작님께 전해드려야 하는데 나 혼자 다짜고짜 찾아갈 순 없으니 부탁 좀 하려고.”

“이걸 제 아버지께 전해달라는 건가요?”

“아니, 직접 만나서 전달해야 돼.”

“그게 대체 뭐길래··· 개인적인 건가요? 아니면 가문의 일인가요.”

“내 일은 아니지.”

내 일은 아니다. 즉 가문의 일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레볼턴 후작이 자기 아버지에게 뭔가 볼일이 있을거라 생각할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면 이건 거절할 일이 아니다.

“제 아버지 앞에서도 그리 무례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아무렴.”

손쉬운 승낙.

쉽다. 아주 쉬운 일이다. 카를린 올펜이라는 이 여자는 겉으로만 지랄 맞지 속으로는 정반대인 그런 여자니까.

입으로는 싫다, 싫다, 하면서도 부탁하면 결국은 다 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번 경우에는 아무것도 안 적힌 쪽지에 거짓말로 거절하지 못할 떡밥을 던진 거긴 하지만.

“오늘 끝나고 가자고. 이것도 꽤 급한 일이니까.”

“흥.”

카를린은 대답 대신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홱! 돌려 버렸다.

나 역시 볼일 다 봤다는 듯 제자리로 되돌아 왔고 언제 온 건지 페트릭이 뒤에서 조용히 나타나더니 말했다.

“여자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페트릭을 쳐다본 뒤 니아 벨린을 바라보며 혹시나 싶어 물었다.

“너희 둘이 사귀냐?”

패트릭은 고개를 저었다.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닙니다. 어찌 제가.”

그리고 나는 패트릭의 어깨를 툭, 치며 진심으로 말했다.

“열심히 해라.”



***



그날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카를린과 마차 하나를 타고 올펜 백작의 저택까지 갔다.

당연히 날 호위하던 발렌할 가문의 기사들이 약간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따라왔다.

원래부터 여자를 끼고 살던 레이튼인데다가 저 여자는 올펜 백작가의 영애이니 혹시 모를 사고가 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걱정된다기보다는 자기가 모시는 가문을 걱정하는 거지만.

그리고 올펜 백작의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카를린은 나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저택으로 쑥 들어가 버렸고 대신 마중 나온 집사가 나와 기사들을 안내했다.

곧, 기사들과 헤어져 넓은 응접실에 하녀 두명과 남게 되었고 잠시 후에 살이 찌긴 했지만 건장한 체격의 프리암 올펜 백작을 만날 수 있었다.

백작은 들어옴과 동시에 하녀들을 물렸고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소파에 떡하니 앉아. 그것도 다리를 꼬고 미동도 하지 않는 날 바라보더니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내 집인데 마치 허락을 받는 기분이로군.”

너는 아주 무례한 놈이다, 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꼬아놓은 다리를 풀지도 않았고 오히려 여유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백작이 보기에 내 모습은 건방지다 못해 그냥 미친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전박대하지 않고 이렇게 따로 불러 놓은 이유는 어쨌든 발렌할 가문이며, 지금 하는 일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도가 건방진 건 사실이라 기분이 좋지는 못하다. 그런 티가 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확실하게 확인했다.


[프리암 올펜]

인간. 남. 67세.

올펜 기사단 기사단장.

리텐 왕국 백작.

마왕군 간부 몰렉의 부하.

마왕군 스파이.


뭐, 뻔하다. 이미 다 알고 온 거니까.

그리고 백작이 또 뭔가 말하려고 숨을 들이키는 그 짧은 순간, 먼저 선수를 쳤다.

“하시는 일은 잘되십니까?”

“···일?”

말하려던 타이밍을 놓쳐 백작은 엉겁결에 답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앞에 놓인 과일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일이 꽤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제국의 공주도 여기로 온다고 하니 더 바빠지겠죠.”

“······그렇군. 일이 많지. 꽤나 바빠서 사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도 좀 모르겠군. 자네가 여기 왜 왔는지도. 발렌할 후작가의···.”

“그게 문젭니다.”

“···.”

또 말을 끊었다.

이건 신이 준 능력이니 스킬이니 하는게 아니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고 내가 뭘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거기에 맞는 자세와 표정을 연기하는 것이다. 글자 하나에서 손가락 하나까지 전부.

가장 잘하는 일중 하나다. 신이 준 능력보다도 더 자신 있는 일.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 뱀의 미소.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기분이 나쁜 그런 웃음.

비열하고 비겁한 자다.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얼굴.

그리고 거기에 프리암 백작은 자기도 모르게 몰입되고 있었다.

“발렌할 가문이 문젭니다. 일하는데 문제가 되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이번에는 말을 끊지 않았다. 백작 스스로 뒤를 얼버무린 것이다.

여기서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났다. 그리고 백작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 바로 옆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을 위해 일하는 건 너 혼자만이 아니다.”

단 한마디.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리를 꼬고 아까와 같은 자세를 한 채 말했다.

“일이 정말 많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군.”

백작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쯤 되면 그게 무슨 소린가? 라고 발뺌하는게 멍청한 짓이다. 프리암 백작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다.

하지만 백작은 아주 쉽게 다 믿어주지는 않았다. 소파에서 일어났고 한쪽에 진열된 고급 술을 꺼내 잔에 따르며 말했다.

“난 의심이 많은 성격이야.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할 방법이 있나?”

“여기는 안전합니까?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는지 궁금하군요.”

“귀는 없네. 눈도 없어. 그러니 증명해보게.”

“그렇다면 얼마든지요.”

의심을 지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혹시 여기에 시체가 있습니까?”

“시체?”

“예.”

“시체. 인간의 시체 말인가?”

“뭐든 상관없습니다. 죽은 동물도 괜찮겠군요.”

“잠깐 기다려 보게.”

그렇게 말하고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더니 잠시 후에 목이 비틀어진 닭 한 마리를 들고 왔다.

그것을 탁자 위에 툭, 던지더니 말했다.

“이것도 상관없나?”

“좋군요.”

죽은 닭 시체를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프리암 백작 역시 굉장히 흥미롭다는 눈으로 닭 시체와 날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닭 시체에 혈마수라결이 발동되었다.

‘유치해서 못 해먹겠네.’

혈마수라결은 개뿔. 지금 나이가 몇인데.

하지만 보여줘야 한다. 사람 시체뿐만이 아니라 저런 짐승의 시체. 닭 역시 시체이므로 상관없다.

손을 뻗고 스킬을 발동하자 닭 시체에서 붉은 안개 같은 것들이 죽, 뽑혀 나오더니 가느다란 실처럼 뭉쳐 이내 손으로 스며들 듯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가 다 빨린 닭 시체는 순식간에 검게 변색되기 시작하더니 썩어 들어가 버렸다.

남은 것은 뼈. 그마저도 푸석하니 무너지고 있지만.

“오, 오오.”

프리암 백작은 신기하다는 것처럼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제 믿겠습니까?”

“정말 대단하군. 그런 힘을 얻다니.”

놀랐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 궁금하군. 언제부턴가?”

“망나니라 불리기 전부터니 꽤 오래됐죠. 숨기고 사느라 힘들었습니다.”

“발렌할 가문에 어떻게 그런 놈이 나왔나 했더니, 이제 보니 그게 다 정체를 숨기기 위한 연기였다고?”

답 대신 어깨만 으쓱해 보인 뒤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끝날 때가 된거 같습니다. 곧 제국의 공주가 동맹 문제 때문에 여기로 올 텐데, 납치 준비는 끝났습니까?”

“제국의 공주 납치라··· 그 말을 누구에게 들은 건가?”

“누구에게 들었겠습니까. 아니 어차피 우리 목적은 하나고 모시는 주인도 한 분 아닙니까.”

“···그렇군.”

“발렌할 가문쪽 일도 바쁘지만, 이쪽 일도 꽤 중한 일이니 온 겁니다.”

"발렌할 가문쪽 일이라니?"

"레볼턴 후작도 이쪽입니다."

"설마, 아니 진짜인가?"

"가짜겠습니까? 설마 그분의 힘을 의심하시는 건?"

“아니, 그럴리가. 괜한 소리 말게. 그럼 이쪽 일이란 건?"

“곧 죽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왕족들이라거나, 반대파 귀족들, 뭐 그런 부류들인데··· 속 편하게 사형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살려둬선 안 될 족속들이지.”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 역도들로 몰고 북쪽과 결탁한 놈들이라는 누명을 씌워 사형해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세간의 눈을 아예 신경 안 쓸 순 없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것들로 만들어야 하니.”

“그래서?”

“왕성 지하 감옥. 제가 거기를 좀 관리하고 싶군요.”

“거길?”

“백작님 정도면 절 거기로 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 어차피 거기도 이미 알만한 사람들로 채워두시지 않았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목을 쳐야 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역적놈들을 발렌할 가문의 이름으로 목을 친다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보는 백작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런 미소.

하지만 이것은 백작의 입장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성과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뜻밖의 지원군으로 인해 한시름 놓게 되는 결과이기도 했다.

‘설마 이 애송이가. 아니 발렌할 가문도 그분 손에 넘어가게 되는 건가.’

동시에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상황이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바로 전쟁을 다시 일으키는 것.

북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입구이기도 한 리텐 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하며 제국이 다시 한 번 야욕을 드러내게 해야 한다.

이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각국은 등 뒤로 비수를 숨겨두고 있다.

유사시에 못 미더운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싸움도 먹고, 자고, 좀 쉬고 몸이 충분히 준비돼야 할 수 있다.

게다가 20년 전의 전쟁이 워낙 격렬했던 탓에 손에 무기는 쥐고 있어도 그걸 그다지 휘두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저 위협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면 계기가 필요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공주의 납치다.

납치한 후에 심문하고 고문하고 목을 잘라다 제국 황실에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레이튼 발렌할. 이 망나니가 온 것이다.

‘최근 들어 정신 차렸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라 맡은 임무가 있던 거였군. 설마 발렌할 가문에도 힘이 미치고 있다니. 역시 그때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프리암 백작은 따라두었던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그놈들을 지하 왕성으로 보내는 건 어렵지 않아. 공주도 납치해 그쪽으로 보낼 계획이었는데 그것과도 관련이 있나?”

“제국 공주를 지하로 보내면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그렇군. 설마 뭔가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설마,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시는 건···.”

“엄한 소리 하지 말게. 의심할 수가 없는데."

백작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 대한 두려움과 그 힘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발렌할의 망나니가 보이는 행동이 설마 거짓에 연기라고는 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마 단두대에 목이 떨어지는 그날까지도.

“이 일은 전부 비밀입니다. 제가 여기 온건 공개해도 되지만, 이유는 제가 따님에게 관심이 있어 온 걸로 해두도록 하죠.”

“그러지.”

“그러고보니 궁금한데, 따님도 혹시?”

“음? 아니, 그 아이는 몰라. 하지만 곧 우리처럼 되겠지.”

“그렇군요. 아무튼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지.”

이걸로 됐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밖에서 대기하던 집사가 다시 안내했고 홀로 남은 백작은 땀으로 축축해진 손으로 유리잔을 들어 다시 술을 들이켰다.

발렌할 가문. 그리고 자신.

유리잔에 비친 백작의 얼굴은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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