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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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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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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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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대리 결투 2

DUMMY

말하자면 대리 결투는 일종의 볼거리이자 스포츠이기도 했다.

케이지 안에서 싸우는 현대의 이종 격투기.

재미있고,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며, 명예 역시 걸려있다.

다만 그런 격투기를 현대에서는 방 안에서 남녀노소 나이 없이 TV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기는 무조건 직관이다.

귀족들 세계에서 기사란 직업 자체가 꽤 쉽게 접하고 볼 수 있기에 대리 결투는 그리 거창하게 하지 않고 서로 소소하게 한번 붙어 본다거나, 연회를 열면 종종 여는 일종의 행사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작가에서 열리는 건 그냥 괴롭힘.

이건 그저 괴롭히기일 뿐. 명예는 개뿔 처해진 조건이 다르다. 막말로 리번은 이리저리 아는 친구들이 많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피할 수는 없으니 대리로 뛰어줄 기사를 찾았다.

후작가인 만큼 기사는 얼마든지 있다.

후작가에 있는 기사들은 두 개. 자랑스러운 발렌할의 이름을 그대로 쓴 후작 직속의 발렌할 기사단.

그리고 하나는 이제 막 배우는 견습 기사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관들.

벨과 리번이라 해도 후작 직속 부대인 발렌할 기사단을 막 갖다 쓸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공적을 쌓고 부상으로 은퇴해 교관으로 전향한 기사들을 대리로 막 부를 순 없을 것이다.

진짜 대리로 부른다 해도 이 교관들은 나이도 있고 부상도 있어 몸이 성치 못한 경우가 대부분.

몸을 쓰는게 아니라 후작의 아래에서 후대를 양성하는 데 힘쓰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견습 기사들뿐. 실력이야 별거 없어도 젊고 체력이 있다.

벨과 리번은 여기서 고를 것이다.

실제 소설에서도 리번은 견습 기사들 중에서 골랐다. 물론 소설 내용 그대로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까지 따져볼 순 없다.

`견습 기사 뿐이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어울려 놀던 그 잡배들을 부를 순 없다. 앞으로 볼일도 없을 자들이다.

그러니 견습 기사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게 아니다.

하녀들도 뒤에서 욕했는데 기사들은 어떻겠는가. 그게 견습 딱지가 붙은 애송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이럴 때 쓰라고 스킬이 있다.

견습 기사들 중에는 귀족들도 있고 귀족이 아닌 자들도 있다.

발렌할 후작가의 기사 훈련소인 만큼 남작이나 후작을 비롯한 여럿 귀족들이 아들들을 여기로 보내 배우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귀족들만으로는 기사들의 수를 유지할 수 없으니 평민 중에서도 기사를 뽑는다.

이들은 평민이지만 기사 서약을 받고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나면 준 귀족으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준 귀족은 엄연히 말해 귀족은 아니고 보통 귀족들의 아래에서 아래 직원들처럼 지낸다.

대충 말하자면 급이 낮은 공무원이다.

이런 준 귀족들. 그들 중에서 점찍어둔 놈이 하나 있었다.

패트릭. 후작가의 견습 기사. 소설속에서는 조연 정도의 위치로 나중에는 북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마왕군을 막아내는 데에 공을 세우는 인물이다.

즉, 실력자라는 뜻.

조연 정도의 위치라면 리번이 고르는 놈에게 이길수 있을 것이다.

계획이 세워졌고 실행은 빨랐다. 나는 곧바로 견습 기사들이 훈련하는 훈련소를 찾았다.

후작가의 저택. 말이 좋아 저택이지 사실상 부지라고 보는 게 맞다. 엄청나게 넓은 땅은 성벽으로 감싸져 있고 그 안에 성. 저택. 그리고 기사들의 훈련소까지 갖춰져 있다.

훈련소 앞을 지키던 일반 병사들은 알아서 길을 터 주었다. 그래도 전에 운동하며 봤다고 웃는 얼굴로 인사까지 한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벌써 남자들의 땀내가 물씬 풍겨오는 듯했다.

저 멀리, 기합과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보기만 해도 짬내 올라오는 듯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게 보인다.

한국이건 여기건 군인이라는 신분이 머무는 곳은 어찌 저렇게 한결같이 생겼는지.

더 가까이 가자 훈련받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부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다. 바지를 입고 웃통은 시원하게 벗어 던진 채 한쪽은 대련. 한쪽은 훈련중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관에게 다가갔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얼굴의 흉터. 곧게 서 있지만, 어딘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오른발. 거기에 험상궂은 얼굴과 면도하고 조금 지난 건지 까슬하게 올라오는 수염은 이 남자가 어떤 일을 겪고 여기까지 왔는지 조금은 알게 해주었다.

여기서는 다리아를 비롯한 하녀들. 그리고 병사들을 대하듯 굴지 않았다.

교관과 기사들은 레볼턴 후작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함부로 한다는 것은 후작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건 그냥 혼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일이다.

안하무인으로 나갈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예의 있게 굴어야 한다.

적어도 상대에게 호감 가게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는 안다. 거기에 연기력을 조금 곁들여주면 금상첨화다.


-면접관 : 대상의 이력을 확인합니다.


갑질하는 재벌 2세가 가진 능력 중 하나.

이걸 교관에게 사용하자 상세 정보가 마치 이력서처럼 나타났다.


[콜슨]

인간. 남성. 48세.

리텐 왕국 기사 양성소 졸업.

장미 전쟁에 로셀 기사단으로 참전.

갈대 숲 전투에서 부상으로 은퇴.

현 발렌할 후작가 견습 기사 교관.

*채용할 수 없습니다.


아주 긴 이력서는 아니다. 무슨 영어 기능사에 무슨 학교를 나왔네 부모님은 뭐하시는 분인지 따위는 적혀 있지 않다.

콜슨은 그냥 남자로 태어났고 기사 학교를 졸업했으며 20년 전의 전쟁. 이른바 장미 전쟁에 로셀 기사단으로 참전.

그 뒤에 여기서 교관을 하고 있다는 짧고 굵은 인생 경력만 나타난다.

아주 당연하다는 것처럼 채용할 수 없다는 문구도 적혀 있다. 뭐 이 정도는 예상했었다.

“반갑습니다, 콜슨 경.”

재료는 있으니 일단 인사. 뒤에 경을 붙임으로써 우대를 해준다.

그리고 콜슨은 조금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제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나는 노련하게 답했다.

“이름 높은 로셀 기사단으로 장미 전쟁에 참전한 기사를 모르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발렌할 후작가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계시니 더 모를 수가 없지요.”

10대의 애가 할법한 화술은 아니다. 마치 노련한 상인 같았다.

물론 아무 대가 없이 칭찬해 주는 것이 아니다. 평판 나쁜 사람이 와서 입 발린 소리를 하면 그것은 좋은 경험이 아니라 불쾌한 일이다.

그 입발린 소리가 진심이라 할지라도.

콜슨 역시 느꼈다. 기사는커녕 검하고는 아무 인연도 없던 발렌할의 망나니가 갑자기 여길 찾아와 이런 소릴 하면 누구나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놀라고 있었다.

‘요즘 들어 사람이 좀 바뀐 거 같다더니, 진짜인가?’

레이튼의 운동 소식은 이미 교관들에게도 하나의 이슈였다. 게다가 저 아래 병사 숙소에서 벌어진 일 역시 알고 있었다.

콜슨이라는 자기 이름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로셀 기사단으로 참전했다는 것도.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앞에서 훈련하는 병사들을 한차례 슥,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갈대 숲 전투에서 부상당해 은퇴하신 걸로 압니다. 저는 겪어보지 않았지만 유명한 전투였죠. 길거리 시인들은 전투를 노래하고 찬양하고 용맹한 기사들을 찬미하는 전투. 하지만 그런 시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전쟁의 좋은 면만을 보고 뒤에 숨겨진, 실제 벌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니.”

“···무슨 말씀인지.”

“전쟁은 참혹한 것이죠. 죽은자의 명예를 드높일 수는 있어도 전쟁은 미화돼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뭐, 제가 뭘 알겠냐만은 그래도 그렇다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관님들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죠. 편히 쉴 수도 있는데 여기서 또 이렇게 국가를 위해 일하고 계시니. 아, 너무 속 보이는 말이었을까요?”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이 상황에 콜슨은 웃지도 못하고 지금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레이튼. 이 망나니가 갑자기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을 뿐.

어쩌면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고 정말 사람이 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뜬금없기는 해도 옳은 말이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건 죽은자의 명예는 드높이되 전쟁을 미화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전쟁은 참혹하다. 아직도 잠에 들면 귓가에 그날의 함성과 비명이 울려 퍼져 종종 악몽에서 깨어나고는 한다.

갈대 숲 전투는 끔찍했다. 사람 가슴께까지 자란 갈대가 평야를 가득 메우고 거기서 벌어진 육탄전은 베테랑 기사조차도 덧 없이 쓰러질 정도로 치열했으므로.

그리고 나는 어느새 과거에 잠긴 듯한 우수에 찬 표정의 콜슨을 슬쩍 바라보았다.

시인도 아니고 문과를 나온것도 아니었다. 다만 직업이 직업이기에 그럴싸한 말을 그럴싸하게 내뱉는 건 쉬운 일이었다.

동시에 콜슨에 관한 것도 소설을 통해 알았다. 콜슨은 교관들의 실질적 리더이며, 동시에 하녀장인 다리아를 짝사랑하는 것도 안다.

소설의 스쳐 지나가는 곁가지다.

콜슨이 과거를 떠올릴 잠깐의 시간을 준 뒤, 적당한 때에 다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기사 하나를 좀 쓰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제야 콜슨은 정신을 차렸다.

“기사 말씀이십니까?”

“패트릭이라는 기사를 잠깐 빌리고 싶습니다. 대리 결투 신청이 들어왔거든요.”

“대리 결투··· 그렇군요.”

콜슨은 이제 이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해 이해했다.

확실히 아까 전에 벨과 리번. 두 사람이 찾아와 견습 기사를 뽑아갔다고 들었다. 대리 결투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상대가 설마 레이튼인줄은 몰랐다.

“그래서 패트릭을 원하시는 겁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흐음. 그건···.”

“물론 맨입으로 어려운 부탁을 드리는게 아닙니다.”

“예?”

맨입으로는 아니다? 설마 돈이라도 주려는가 싶어 좀 좋았던 기분이 다시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말이었다.

“하녀장 다리아. 좋아하시죠?”

“예? 예? ···예?”

당황한 목소리. 그리고 나는 진실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공격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죠.”

“어, 아니. 어떻게 그러, 그걸? 아니 그게 아니라···.”

“패트릭을 준비해서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좀 도와 드리겠습니다.”

떡밥이 좀 쌨다.

게다가 이게 아니더라도 안된다고 할 그런 일이 아니었다.

“···음, 알겠습니다. 준비시켜 두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콜슨은 괜히 안된다고 하느니 그냥 된다고 해버렸다. 게다가 부탁이라는 단어까지 들으니 더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으며 다리아에게 줄을 좀 대준다고 하니 더 그랬다.

“감사합니다.”

나는 정중하게 감사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잠깐 머물렀다.

그러자 또 불안해진 콜슨이 물었다.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아뇨. 이제 훈련에 힘써주시면 됩니다. 저는 잠깐 보다 돌아갈 겁니다.”

물론 이 행동도 오랜 사회 경험에서 나오는 소소한 행동 중 하나다. 여기서 그냥 용건 끝났다고 휙 돌아서는 건 하수나 할 짓이다.

내 이미지는 바닥 중의 바닥이다. 용건 끝났다고 돌아가면 앞서 했던 사탕발림 같은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진짜 입발린 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여기 잠깐이라도 남아 시시콜콜한 얘기라도 몇 마디 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종종, 콜슨에게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을 물었다. 어느 기사가 좀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지.

훈련은 잘 되는지. 생활은 어떤지, 등등.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시점이 되자 아!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콜슨 역시 수고하십시오, 라고 말하며 간단하게 배웅했다.

서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광경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다른 교관들이 슬그머니 콜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저 망나니가 여길 왜 온 거야?”

“무슨 일이야?”

그리고 콜슨은 함께 전쟁을 치렀던 동료 기사들이자 아직도 동료인 교관들에게 말했다.

“니들도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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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악당의 방식 2 +19 20.07.18 21,837 576 18쪽
16 악당의 방식 1 +29 20.07.17 22,227 579 16쪽
15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8 +40 20.07.15 21,622 615 17쪽
14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7 +14 20.07.14 21,380 519 11쪽
13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6 +12 20.07.13 21,591 565 15쪽
12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5 +18 20.07.12 21,871 556 17쪽
11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4 +31 20.07.11 22,032 579 15쪽
10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3 +62 20.07.10 22,664 630 17쪽
9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2 +24 20.07.09 23,965 586 13쪽
8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1 +14 20.07.08 24,480 542 12쪽
» 대리 결투 2 +9 20.07.07 25,380 530 13쪽
6 대리 결투 1 +29 20.07.06 25,960 541 13쪽
5 발렌할의 망나니 4 +36 20.07.05 26,899 631 13쪽
4 발렌할의 망나니 3 +22 20.07.04 29,510 58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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