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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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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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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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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3

DUMMY

니아 벨린.

벨린 후작 가문의 장녀였으며 그렇기에 모자람 없이 자라온 삶.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검을 배워 볼 기회가 없었으며 여성은 여성 답게 교양을 배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반발해 여기까지 왔다.

부모님 몰래 검을 들었고 홀로 연습했으며 어깨너머로 기사들의 훈련을 보며 수련했다.

그러나 도둑마냥 곁눈질로 배우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드디어 리텐 왕국의 왕실에서 여기사에 관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왕국은 지금부터 여기사들을 뽑아 가르치겠다는 내용.

이건 기회였다. 결코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난 뒤 스스로 여기에 왔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 대단하지는 않아도 그간 해왔던 노력과 흘린 땀이 아주 솔직한 성과를 내줄 것임을 믿었고 결국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발렌할 후작가의 기사 훈련소.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레볼턴 발렌할. 리텐 왕국의 소드 마스터.

살아있는 전설이 다스리는 영지와 저 멀리 보이는 저택에 검을 든 자들의 정점인 후작께서 생활한다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니아에게 다른 귀족가 영애가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벨린 양.”

배정 받은 숙소는 4인이 함께 생활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말을 걸어온 귀족 영애가 자신을 소개했다.

“데일리 바노스입니다. 바노스 자작가의···.”

“아, 아! 데일리 양!”

“예.”

바노스 자작가의 얘기는 이미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데란트 바노스 자작은 애처가였다. 모르는 자가 없는 사실이다.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아내 자랑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가, 부인이, 첫째 딸인 데일리를 낳다가 죽은 것이다.

딸뿐인 귀족가. 이름을 잇기 위해서는 새로운 부인을 들여 남아를 낳아야 하지만 자작은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귀족들이 자작을 이해했다. 그가 얼마나 애처가인지 알고 있었기에.

오죽하면 왕이 특별히 데란트 바노스 자작 가문에게는 딸이 가문을 잇고 성을 그대로 쓰며, 자식이 태어나면 바노스라는 성을 써도 된다고 말했겠는가.

게다가 이번 여기사에 관한 정책을 가장 강력히 주장한 것도 바로 바노스 자작 가문이었다.

검을 쥐는 집안으로써 여성은 기사가 안 된다는 법을 고쳐달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가문이 더 있었다. 주로 딸만 낳은 귀족가들이 왕에게 여자도 기사로 작위를 받게 해달라 말했고 그래서 나온게 이번 새로운 정책이다.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의 니아 벨린과 데일리 바노스는 서로 면식이 있었다. 연회 때마다 만나 어울렸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서로 검을 쥐고 기사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공감하는 게 있다면 이야기꽃은 금방 피어난다. 특히나 여기는 여성임에도 검을 목표로 한다는 동일한 목표로 왔기에 더더욱.

그러자 거기에 또 다른 영애가 끼어들었다.

“두분 다 검이 좋은신가보군요.”

니아와 데일리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새로운 영애는 자신을 소개했다.

“카를린 올펜입니다.”

올펜 백작가의 장녀. 그녀 역시 데일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곧 꿈에 부푼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주 이야기 주제는 검이었으나 그 이야기 속에는 4인실인 이곳에 자기들 3명 뿐이라 공간이 비어 좋다는 말들도 있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새벽 6시. 발렌할 후작가 견습 기사 훈련소.

‘빠빠~ 빠빠빠~ 빠빠라 빠빠 빠빠빰~ 빠빠빰~.’

어디선가 끔찍한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기상!”

동시에 검은색의 타이트한, 몸의 근육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옷을 입은 교관들이 견습 기사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거지 같은 나팔 소리와 대기를 찢어버리는 듯한 목소리에 영애들이 깨어난다.

꽤 이른 시간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견습 기사(남성)들의 훈련소의 일정이 8시부터 시작인 것에 비하면 무려 2시간 빠른 것이다.

“으, 음.”

요란한 나팔 소리와 난생처음 들어보는 남성의 큰 목소리. 갑자기 바뀐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편히 잠들지 못한 몸은 더 쉴 것을 권했으나,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기상 목소리에 니아는 잠에서 깼다.

“뭐지?”

침대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데일리와 카를린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일어나! 기상 소리 못 들었나!”

문이 쾅! 하고 열리며 들어선 교관이, 침대에서 이제 몸을 일으킨 ‘견습 기사’들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러나 하늘거리는 잠옷 차림의 ‘귀족 영애’들에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꺄아악!”

날카로운 비명.

그러나 교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어나라! 여기가 너희들 가문의 넓은 방인줄 아느냐! 여기는 발렌할 후작가의 기사 훈련소다! 일어나라! 늦장 부리는 자는 즉시 퇴소시키겠다!”

서슬 퍼런 목소리에 딸꾹질을 일으킨 영애도 있었다.

그러나 교관은 사정 봐주지 않았다.

이 방뿐만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6시 40분.

기상 이후 무려 40분이 지난 후에야 영애들은 연병장이라 이름 붙여진 훈련소의 운동장에 집합할 수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춰 세워 놓았는데 뭔가 애매하게 삐뚤다. 당연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정면. 높은 단상 위.

“아주 가관이로군. 가관이야.”

첫마디. 교관이자 관리자로서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그 첫 운을 띄운 뒤 이어지는 것은 오늘 너희를 울리고야 말겠다는 독설.

“머리 꼬라지들을 봐라. 투구 대신 머리를 말아다 뒤집어써도 될 수준이군. 어쭈? 그 와중에 화장을 하고 나와? 전쟁에서 화장을 하는 기사도 있나? 저건 또 뭐야?”

목걸이에 반지를 한 영애를 바라본다.

“목걸이에 반지에 아주 허허허허. 그걸로 적을 홀려보려고 그러나? 아니면 포로 몸값을 미리 지불하려고 그러나? 여기로 오기 전에 개념은 침대 위에 두고 온 건가?”

차라리 욕을 하는게 더 나을 듯한 신랄한 비판. 그 다음 고개를 몇 번 저어주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발렌할 후작가의 견습 기사 훈련소다. 그리고 내가 보건대, 너희는 배울 자세가 안 돼 있는 것 같군.”

“······.”

“엎드려.”

엎드려.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영애들은 그냥 멀뚱히 서 있다.

그러자 나는 콜슨을 바라보았고 콜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연병장이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

“엎드려어어어어!”

동시에, 주변의 다른 교관들이 움직였다.

“엎드리란 말 못 들었나!”

“엎드려!”

“여기가 너희 안방인 줄 알아! 엎드려!”

난리가 났다.

풀을 심어두긴 했다. 모래 바닥의 낙후된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바닥에 엎드렸다.

교관들은 영애들 사이를 누비며 소리를 질러대고 그렇게 모두 엎드리자 나는 다시 지시했다.

“좌로 굴러.”

“좌로 굴러어어어!”

“굴러!”

“좌로 굴러! 좌측이 어딘지 모르나!”

"정신 차리란 말이다!"

데굴. 데굴. 데굴.

“우로 굴러.”

“우로 구르란 말이다!”

“빨리빨리 굴러!”

“우로 구르란 말이다. 우로!”

“일어서.”

“일어나라! 일어나!”

“빨리 움직여!”

“누가 옷을 털라 했지! 일어나라고 했으면 일어나기만 해라!”

시뻘게진 얼굴로 일어선 영애들. 입고 있는 고급진 옷은 이미 풀과 흙으로 엉망진창이며 길게 기른 머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다음 지시가 내려졌다.

“굼벵이 같은 너희에게 지금부터 입고 쓸 물건들을 보급하겠다! 1열 앞으로 나와 앞의 물건들을 하나씩 가져간다, 알겠나!”

단상 앞. 거기에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옷가지. 그리고 세면도구.

“1열 앞으로! 1열이 뭔지 모르나!”

교관들의 지도하에 영애들이 앞으로 나와 물건들을 받았다.

그 물건들은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뭔지는 알고 있지만, 평생에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물건.

옷과 세면도구. 물론 이게 뭔지는 알지만, 이건 귀족의 물건이 아니다.

저기 평민들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질 낮은 물건들이다.

투박하고 섬세하지 못한 그런 것들.

이걸 하나씩 보급한다. 그렇게 전부 다 받은 걸 확인하고 나는 다시 소리쳤다.

“너희가 앞으로 사용할 물건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숙소로 돌아간다! 너희가 집에서 가져온 것들은 전부 되돌려 보낸다! 준비해 뒀으니 직접 정리하고 직접 개서 포장할 수 있도록!”

영애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마치 거친 파도에 휩쓸리듯 다시 숙소로 돌아온 영애들은 교관들의 지시에 따라 어제 풀어둔 자신의 짐을 다시 싸야만 했다.

그리고 그 짐들을 압수당하기 시작했다.

짐 겉에는 하얀 종이에 어느 가문의 누구 것이라는 글만 써진 채, 모조리 교관들의 손에 들려 마차에 실렸다.

그제야 그녀들은 깨달았다.

집에서 가져온 장인이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든 옷과, 고급 향수를 비롯한 화장품. 보석이 박힌 거울 등은 여기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대신 주어진 것은 싸구려 옷과 싸구려 비누와 싸구려 세면도구. 전부 싸구려. 뭔지는 알아도 쓸 일은 없었고 앞으로 쓸 일 없을 거라 생각한 그런 물건들이다.

그러나 교관들은 냉정하고 냉혹했다.

“집에서 기르던 개를 여기 왜 가져온거지!”

“아! 피피!”

“피피 같은 소리! 압수!”

“아, 안돼!”

고함. 그리고 흐느끼는 소리.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손에는 회초리 같은 지휘봉을 들고 복도를 돌았다. 그리고 한마디씩 소리쳤다.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숨겨 놓고 쓰다 걸리면 즉시 퇴소 조치 하겠다! 발렌할 가문의 훈련소에서 퇴소당해 집으로 돌아가는 불명예가 싫다면 지금 자진해서 내놓도록. 머리 굴리지 마라. 여기 있는 나와 교관들은 너희보다 똑똑하다."

그러자 눈치 좋게 화장품 따위를 숨겨둔 영애들이 알아서 그걸 내놓았다.

그 화장품들 역시 모조리 압수당했으며 그렇게 한바탕 물건 정리가 끝나고 나자 교관들은 영애들을 복도에 일렬로 세웠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소리쳐 지시했다.

“정리됐으면 이동!”

다시 이동. 그렇게 숙소를 나오자 어느새 연병장 한켠에는 커다란 천막이 처져 있었다.

그 천막 앞에 오와 열을 맞추어 선 영애들

그걸 바라보며 단상 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영애들을 보며 말했다.

“머리 꼴들 봐라. 노랑색에 주황색에 저건 뭐야? 펌이라도 했나? 저게 머리야 우동사리야? 쯧, 쯧.”

그리고 콜슨이 다가왔다.

“시작할까요?”

“시작.”

지시. 그리고 콜슨은 자비 없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부터 삭발을 실시한다!”



***



‘삭···뭐?’

‘삭발이 뭐지?’

이게 여기 모인 영애들에게 공통적으로 든 생각들이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니아 벨린은 귀를 의심했다.

삭발. 머리를 깎는다는 뜻이다. 그것도 빡빡.

그러나 그럴리가 없다.

머리를 잘라? 차라리 목이 잘리고 말지.

하지만 반항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는 못 자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이미 압도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분위기는 공포가 가미된 업악과 억제였고 교관들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실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겪은 교관들이다. 그러니 온실 속의 화초 마냥 자라온 10대들. 그것도 여자를 눈빛으로 압도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리고 기념비적인 첫 번째 타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어린 양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 첫 번째 타자가 본 광경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널찍한 천막 안의 바닥에는 하얀 천이 넓게 깔려있고 그 위에 의자 하나. 그리고 바로 옆에 머리는 벗겨졌지만 콧수염은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 한명이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 남자 옆에는 바닥에 바퀴가 달린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칼과 가위들이 놓여 있다.

“앉으시죠.”

느끼한 미소에 느끼한 목소리. 그리고 이게 뭘 뜻하는지 안 첫 번째 희생자는 말은 못하고 고개만 좌우로 소심하게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소용없는 반항이었다.

“명령 불복종 시 퇴소시키겠다.”

천막의 한쪽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는 교관의 말.

결국, 자석에 끌리듯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밀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콧수염이 멋진 남자. 이발사는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마세요~ 이쁘게 해 드릴게.”

이발사의 이빨과 가위가 동시에 반짝인다. 그리고 지금껏 애지중지, 온갖 고급진 영양 크림 발라가며 돈 아끼지 않고 길렀던.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음이 분명한 찰랑거리는 머리가 사정없이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툭.’

바닥에 떨어지는 건 풍성한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눈물도 같이 떨어졌고 여자로서의 뭔가도 같이 떨어졌다.

물론 반항하는 영애도 있었다.

“안돼. 안돼! 이건 말도 안 돼! 나, 나는 올펜 백작가의···!”

천막에 안 들어가려고 땡깡부리는 모습. 그리고 나는 가차 없이 명령했다.

“퇴소시켜.”

“아, 아니 잠깐!”

“교관. 즉시 퇴소 조치하도록!”

일말의 자비도 없는 명령에 콜슨이 조금 난색을 표했다.

“올펜 백작가의 영애입니다. 퇴소까지는 취하지 마시고···.”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퇴소.”

그 말에 콜슨은 끙, 하고 작은 신음을 냈다.

그냥 평민이면 가차 없이 퇴소시키겠으나 지금 저 퇴소시키라는 여자는 카를린 올펜. 그 올펜 백작가의 영애다.

퇴소시켰다가는 괜한 말이 나온다. 분명 나올 것이다.

콜슨이 어쩔줄 모르자 나는 다시금 명령했다.

“퇴소!”

그와 동시에, 콜슨은 뭔가 홀린 듯 그 명령을 그대로 이행했다.

“카를린 올펜. 퇴소 조치!”

갑질 스킬이었다.

두번째로 사용한 갑질 스킬이었다. 첫번째는 삭발을 할 때였다. 콜슨을 비롯한 교관들은 거기에 따랐다. 따를수밖에 없다.

행동을 제한하되 기억이나 감정은 그대로 남게 된다. 콜슨은 이건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그건 생각 뿐이다.

이걸로 정해졌다. 갑작스런 퇴소 조치에 잠깐 더 소란이 일긴 했지만 결국 올펜 백작가의 카를린 올펜이 퇴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정말 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급작스러운 퇴소 결정은 그녀가 삭발을 거부해서나 혹은 본보기가 필요해서만은 아니었다.

지금 퇴소시킨 영애. 올펜 백작가의 이름도 말하기 싫은 저년은 그 많은 여주인공 중 하나다.

여기에는 저년 말고도 더 있다. 니아 벨린. 그리고 데일리 바노스. 그중 하나를 보내 버림으로써 한층 더 안전해진 것이다.

여주인공은 배제한다. 저기 저 니아 벨린과 데일리 바노스 저년도 좀 수틀리면 바로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발사의 섬세한 손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형형색색의 머리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 후 연병장에 영애들 따위는 없었다.

완전한 삭발은 아니다. 그래도 여자라고 좀 남겨두긴 했다.

물론 대머리가 아니다 뿐이지만.

그렇게 삭발이 끝나고 난 뒤, 그녀들의 눈은 꽤 처참했다.

완전히 죽은 눈. 흡사 썩은 동태 눈깔 같은 그런 눈에 눈물 자국이 번진 `견습 기사`들만이 모여있게 되었다.

리텐 왕국에서 여성의 머리는 그냥 스타일을 나타내는 것만은 아니다.

리텐의 귀족 여성들에게 머리는 기사의 검과 같은 의미였다. 중요한 거다.

헌데 그걸 죄다 잘라 대머리로 만들어둔 것이다.

검을 들고 반짝거리는 갑옷을 입은. 거기에 더해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닌 전장의 여신 같은 그런걸 상상했는데 펼쳐진 현실은 삭발.

그리고 이어서, 콜슨의 주도 하에 무기가 나누어졌다.

전부 나무로 만들어진 검, 창. 방패. 단단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굉장히 투박한 생김새.

무기들이 나누어지는 동안, 나는 단상에 올라 떠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그게 너희의 애인이다. 연회에서는 남자의 외모를 보고 품평하고 맘에 드는 상대를 고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턱을 올리고 고고하게 굴었겠지만, 여기서 너희가 골라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오직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지시하는 자와 따르는 자만 있을 뿐이다. 여기는 도도하게 검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적의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수고 피를 취하는 장소란 말이다. 응석 따위는 받아주지 않는다. 너희가 흘릴 수 있는 건 눈물이 아니라 피와 땀뿐이다."

차라리 욕을 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신랄한 말에 견습 기사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부터 너희에게 주어진 그 애인들을 갈고 닦아 번쩍거리게 만들어라. 수료식때 누구 애인의 얼굴이 가장 빛나는지 한번 볼 테니. 그럼 교관들!”

“예!”

“훈련을 시작해라! 저 기어 다니는 애새끼들을 기사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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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2 +24 20.07.09 23,956 586 13쪽
8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1 +14 20.07.08 24,473 542 12쪽
7 대리 결투 2 +9 20.07.07 25,370 530 13쪽
6 대리 결투 1 +29 20.07.06 25,952 541 13쪽
5 발렌할의 망나니 4 +36 20.07.05 26,891 6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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