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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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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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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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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저기서 짬 냄새가 난다 5

DUMMY

그날 밤. 콜슨은 레볼턴 후작을 찾아가 오늘 하루 훈련소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했다.

그리고 후작의 표정은 그야말로 볼만했다.

“머리를 죄다 깎았다고?”

“예.”

후작은 마치 변하지 않는 강철처럼 근엄함을 유지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 감정과 표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반응은 목석 같은 후작치고는 굉장히 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머리를 잘라? 머리를? 삭발을 했다, 그 말인가?”

“그렇습니다.”

“영애들을?”

“너희는 이제 영애가 아니라 배우러 온 기사들이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겠다면서 한 조치입니다.”

“거기다가 설거지에 빨래에 청소도 직접 다 하게끔 한다고?”

“예.”

“하녀들을 뺀 이유가 그거였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게 내일부터 할 훈련 일정표라고?”

“예. 한달간 할 것들입니다.”

후작은 콜슨이 넘겨 준 일정표를 바라보았다.

몇 가지 추가한 훈련이 있긴 하지만 기존에 하던 걸 크게 건드린 건 없다. 견습 기사 훈련소지만 지금 영애들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를 가르치는, 딱 한달간 있을 곳이고 그 한달 이후에는 옆의 훈련소로 넘어가 진짜 기사로서 검술 등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 훈련 내용은 크게 변한 게 없다. 변한 것은 기상 시간부터 시작해서 식사 시간 요령. 그리고 몇 가지 행동 양식과 정신 교육. 화생방 훈련. 그리고 야간 훈련에 행군 같은 것들이 추가된 것 정도다.

그리고 후작은 일정표를 주의 깊게 살피다가 다시 콜슨에게 물었다.

“여기 이 화생방은 대체 뭔가?”

“마법 대처 훈련입니다.”

“마법 대처 훈련?”

“그러니까 제가 설명 듣기로는 마법사를 불러다가 연기 같은걸 쐬고, 전장에서의 마법 공격을 경험하게끔 하는 훈련입니다.”

“그런 훈련을 벌써?”

“베오덴님이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베오덴?"

콜슨은 자기가 아는 대로 말했고 베오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후작은 조금 놀랐다.

베오덴은 후작령에 있는 마탑과 거기 있는 화염학파 마법사들의 수장이다. 믿을만한 자이고 전장에서는 마법사의 공격도 받게 될 테니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적당히 보는 것 정도는 좋은 경험이자 훈련이 될 것이다.

그러니 놀란 이유는 훈련 내용이 아니라 바로 일을 진행시키는 속도.

관리자로 보낸지 얼마나 됐다고 훈련 일정에 베오덴까지 섭외했단 말인가.

그리고 더 살피니 확실히 구성 자체는 꽤 알차게 되어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행군. 그것도 야간 행군이라는 것은 더 마음에 들었다.

“뭐, 특별히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잘린 머리칼이야 다시 자랄 테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청소에 빨래까지 시키는 건 조금 문제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군. 기사로서 왔지만, 하녀 취급은 안될 테니.”

“그럼 그건 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예.”

“그리고 내가 지시한 것. 그건 어떻게 되고 있나?”

“잘 되고 있습니다.”

후작이 지시한 것. 바로 레이튼이 대리 결투에서 패트릭을 골랐던 바로 그 일이었다.

그것 때문에 교관들은 전체를 동일하게 훈련시키는 방식에서 개인의 기량을 보고 추가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물론 각자의 특기와 특성을 살려 훈련을 안 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걸 좀 더 강화했다는 뜻이다.

“확실히 패트릭은 물건입니다. 주제넘은 발언이지만 수료 이후에 후작님이 직접 선출해 아래에 데리고 있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예. 다른 영지로 보내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흐음,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한번 살펴봐야겠군.”

후작이 콜슨을 굉장히 높이 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레이튼이 지금 가르치는 그 영애들. 견습 기사들의 재능 같은 걸 보고 평가하게끔 하게.”

“전에 말씀하신 거군요. 알겠습니다.”

“사람 보는 눈은 누군가 가르칠 수도 없어. 타고나는 거지. 레이튼에게 그런 눈이 있다면 지금부터 보내서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니.”

보내서 가르친다. 그 말에 콜슨은 수도에 있는 지휘관 양성소를 떠올렸다.

기사 훈련소와 지휘관 양성소는 아예 다르다. 기사들은 왕실과 후작들이 키우지만, 지휘관은 왕국의 수도에 위치한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높게 사신다고?’

레이튼에 대한 평가가 갑자기 수십 단계는 겅중 뛴 느낌이었다.

“아무튼, 앞으로도 잘 살펴보게. 이만 들어가 쉬어도 좋네.”

“예.”

콜슨은 후작에게 경례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조금 늦은 시간이기는 해도 곧바로 하녀장인 다리아를 찾아갔다.

하녀들이 머무는 건물도 따로 있다. 후작이 믿는 교관이라 해도 여자들만 지내는 곳이니 막 들어갈 수는 없다.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말해 다리아만 따로 불러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아가 나왔다.

“콜슨 교관님. 어쩐 일이시죠?”

“다른게 아니라 후작님의 지시 때문입니다. 내일부터 훈련소에 하녀들을 다시 보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다리아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콜슨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괜한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걸 보자마자 다리아는 슬그머니 웃었다.

이 반응이 뭔지 알았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게 칼질뿐이라 여자를 상대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라···.’

다리아는 레이튼이 한 말을 떠올렸다.

레이튼 덕에 콜슨이 왜 이러는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전부터 어렴풋이 눈치는 챘지만.

어쩌겠는가.

“뭐 하실 말씀이라도?”

“예? 아니 저기···.”

“거기 뒤에 뭘 숨겨두셨군요.”

다리아는 정확하게 잡아냈다. 콜슨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이러니 더는 우물거릴 수 없어 콜슨은 손까지 좀 떨며 겨우겨우, 아주 힘들게 편지를 내밀었다.

“이, 이거···.”

오늘 낮까지만 해도 견습 기사들을 쥐잡듯 잡은 그 교관이 맞나 싶었다.

그리고 다리아가 그걸 받음과 동시에. 콜슨은 그, 그럼, 이라고 말하며 급하게 뒤돌았다.

그때, 다리아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편지 말고, 직접 들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들을 훈련시킬때 처럼요."

콜슨의 몸이 딱, 멈추었다. 그러더니 슬쩍 뒤돌아봤다가 다시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리아는 슬며시 웃으며 편지를 품에 넣었다.



***



바로 다음 날부터 훈련소에 하녀들이 나와 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견습이라도 그 이전에는 귀족가의 자제이니 청소와 빨래는 하녀들에게 시키라는 후작의 지시였다.

나는 쳇, 하고 아주 작은 불만을 표출할 뿐이었고 반면 일거리가 하나 줄었다는 생각에 견습 기사들은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청소하고 빨래만 빠진 거지 나머지는 그대로다. 식사 후에 식기를 닦는 일은 여전히 본인이 할 일이었다.

그거 빼고 일정은 그대로다. 나는 훈련 하는 내내 단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교관들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그 결과, 레벨이 꽤 올랐다.


[악명LV 56]


레벨 100당 능력이 하나씩 주어진다. 이건 직업으로 얻는 스킬과는 다르다.

그냥 몸에 적용되는 것.

체력이 오르고 정신력도 오르고 마나도 오르고 신성력도 생기고 심지어 정령 친화력까지.

이것저것 별의별 게 다 있다.

그러니 다음 다음 스토리의 진행과 다음에 선택할 직업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고민하게 된다.


[조폭 두목]

[부패 형사 반장]

[대물 불륜남]

[강남 성형외과의]

[지능형 연쇄 살인마]

[정부에 고용된 사설 킬러]

[재난 상황의 이기적인 생존자]

[사기 도박꾼]

[부패 언론사 사장]

[사이비 교주]

[폭군]

[동양 무술 고수]

[마공을 익힌 사악한 무림인]

[용을 거느리는 사악한 마법사]


선택된 갑질하는 재벌 2세를 제외하고 직업창이 나타난다. 여기서 후작령을 벗어나 다음 스토리의 무대가 될 리텐 왕국의 수도를 떠올렸다.

각 에피소드. 소설의 1권마다 하나의 직업을 선택 가능하다.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스토리의 진행이 필수다.

그렇다면 여기서 미리. 더 많이 생각해둬야 한다.

아마도 마공을 익힌 사악한 무림인을 선택하게 될 테지만 더 고민해서 나쁠게 없다.

다음에 어떤 스토리가 진행되는지 알고 있다.

다음 스토리. 리텐의 수도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바로 핵심 귀족들 중 일부가 마왕이란 작자의 끄나풀이라는 점이다.

스토리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기사로서 인정받은 소설의 주인공은 후작의 명령으로 임무를 하나 맡게되고, 그 임무는 바로 저기 동쪽에 위치한 라인하텐 제국의 공주 호위.

외교적 문제로 리텐으로 오는 그 공주의 호위 임무를 맡게 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습격자들에게 공격당해 결국 공주는 납치 당하고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해 조용히 사건을 파해치며 해결해 간다는 얼토당토 않은 내용.

물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스토리가 진행 중이니 이렇게 안 될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소설만 놓고 보자면 저기서 훈련받는 영애들과 친해진 다음, 그 도움을 받아 리텐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만 친해질 일은 없을 테고 이거 골치 아프게 됐는데.’

니아 벨린. 데일리 바노스. 카를린 올펜.

쟁쟁한 가문들.

퇴소시킨 카를린 올펜의 경우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퇴소시킬 게 아니었다.

올펜 백작가. 그녀의 아버지인 프리암 올펜 백작.

이놈이 바로 북쪽 마왕놈과 붙어먹은 간첩 새끼다.

프리암 올펜 백작이 핵심이다. 이놈이 머리다. 이놈이 리텐의 문제다. 마왕에 붙은 놈.

니아 벨린의 경우에는 올펜 백작가와 대립하는 벨린 후작가의 장녀.

원래라면 이 둘과 데일리 바노스의 도움을 받아 스토리를 진행한다.

물론 지금은 불가능하다. 스토리도 꼬여 있다.

어떤 놈이 배신자인지 알고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 당장 레볼턴 후작에게 프리암 올펜 백작이 바로 간첩, 역적놈의 새끼라고 말해도 미친놈 취급받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게다가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지 소변도 마려웠다.

“잠깐, 화장실 좀.”

“예? 예. 다녀오십시오.”

콜슨에게 넌지시 말하고 연병장을 나와 교관 숙소로 간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하녀들이 인사했고 그걸 가벼운 눈인사로 받아주며 화장실에 들어섰다.

중세시대 판타지 배경이지만 진짜 판타지므로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이 아니라 제대로 만든 좌변기에 소변기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지퍼는 없어서 단추를 풀고 소변을 본다. 열기가 빠져나가자 몸이 살짝 떨리고 후우, 하고 가벼운 한숨도 절로 나온다.

그때, 화장실 안으로 누가 들어왔다.

검은색에 하얀색의 옷을 입은 하녀. 청소하러 들어온 듯 걸레와 물통을 가지고 있다.

그 하녀와 눈이 마주쳤다.

사실 아주 민망한 상황은 아니다. 일단 나이가 어리니까.

내 경우 몸만 어리고 정신은 조용태라 좀 거시기하긴 해도 저렇게 어린애가 청소하겠다고 실수로 들어왔다면 역정을 낼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어? 억? 나, 나가! 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가라 소리친다.

그리고 실수로 들어온 하녀. 소설의 첫 번째 여주인공 레나는 으앗, 하고는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음에 할 일은 커녕 오늘 일정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먼저 방으로 돌아온 나는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망할년이 왜 여기 있지?’

사실 답은 나와 있었다. 하녀를 다시 불러다 청소와 빨래를 시켰으니 거기에 딸려 왔을 것이다.

하녀에 관한 권한이 없다. 다리아를 불러 윽박질러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저걸 어디로 보낼 수도 없다.

대책이 필요하다. 훈련소에서 만나게 될 여주인공들. 니아 벨린을 포함 기타 등등과는 아예 눈도 안 마주치고 지냈는데 여기서 갑자기 저게 튀어나올 줄이야.

결국, 종이 위에 그 몇 가지 대책을 적기 시작했다.

머리가 꽤 복잡했으므로 두서없이 낙서처럼 적어두었다. 풀리지 않는 일이 있거나 뭔가 골똘히 생각할 때 하는 버릇이다.

종이 위에 낙서처럼 뭐라도 써가면서 집중하는 것이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못살게 굴어서 내 쫓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차피 레이튼은 막살던 인생이니 그냥 방으로 불러다 벗겨놓고 희롱해서 내 쫓는 방법까지 있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시행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여기 적어둔 건 그냥 적어둔 것일 뿐이니까.

“하아.”

답이 없다. 어쩌면 그 신이라는 망할년이 저 레나라는 여자를 계속 이쪽으로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례하게 굴긴 했지. 근데, 그래도 잘 살던 사람 맘대로 여기로 내 던진것도 좀 심한 짓 아니냐고.”

신을 향해 에라이 시발년아,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와 혀 끝에서 맴돌았으나 그것만은 참아냈다.

물론 신은 당연히 답이 없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하녀가 싫다고 이리저리 보낼 권리가 없다. 즉, 레나는 여기 건습 기사 훈련소에서 청소하고 빨래를 할 것이며 이것은 관리자로 거의 훈련소에서 생활하는 나와 마주칠 일이 많다는 걸 뜻 했다.

예를 들자면 지금처럼.

“꺄악!”

복도에서 청소하다가 바닥에 놓인 젓은 걸레를 밟고 넘어지는 걸 상상해보라.

그렇게 넘어지면서 하늘거리는 하녀복이 넘어가고 엉덩이에 팬티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걸 정면에서 보고 있는 나.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확률이 없다.

일부러 피해 다니는데 마주치고, 그 마주친 순간에 넘어져 저런 꼴을 보여줄 확률을 구하려면 대체 몇%의 확률인가.

애초에 여긴 소설 속 세계이고 이 헛웃음도 안 나오는 상황이 바로 소설 속의 장치 중 하나다.

여자가 넘어져서 남주인공한테 팬티 보여주는게 대체 언제적 슬랩 스틱 쌍팔년도 방식인가.

“하, 참, 내. 어이가 없으려니까 아주. 하."

부끄러워서 후다닥 일어서 몸을 가다듬는 레나를 바라보며 헛웃음만 쳤다.

그다음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슥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모퉁이를 돈 다음,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허, 아니야. 반응하지 마.”

아무리 여자 생각이 나도 이건 아니다.

젊어진 몸. 18살의 몸. 그야말로 혈기 왕성.

게다가 안쓴지 꽤 됐으므로 솔직히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역시 이건 아니다. 막말로 여자 필요하면 저 밖에 나가 하나 사서 안아도 되고 하녀 하나 끌어들이면 그만이다.

저건 아니다. 저년은 안된다. 눈에 흙이 들어가면 모를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무실로 돌아왔고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똑, 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콜슨입니다.”

“들어오게.”

콜슨이 왜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찾아왔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전박대할 이유도 없으니 환영하는게 맞다.

“무슨 일로?”

앉을 것을 권했으나 콜슨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금방 돌아갈 겁니다. 그리 긴 용건은 아닙니다.”

“간단한 건가?”

“예. 다름이 아니라, 혹 훈련받는 견습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지 여쭤보러 왔습니다.”

“···마음에 드는?”

“음? 아, 그런게 아니라 그 실력 말입니다. 실력.”

콜슨은 자신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다시 정정했다.

“실력이라면.”

“견습 기사들의 실력입니다. 물론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주의 깊게 살피고 재능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저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실력이라.”

콜슨은 후작의 지시를 이행한 것이었고 나는 이걸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머릿속에 뭔가 번쩍! 하고 스쳐 지나갔다.

실력 있는 사람을 찾아라.

실력 있는 사람은 대우해준다. 그게 평민이라 할지라도.

기사들 중에는 준 귀족이 많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평민과 귀족의 중간에 위치한 계급.

준 귀족은 성을 받고 자신의 가문을 가지지만, 왕으로부터 영지를 얻어 다스리지는 못한다.

대신 귀족들의 아래에서 충성을 맹세하며 좋은 집과 안정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중에는 실제 귀족들과 연을 맺고 결혼해 준 귀족에서 진짜 귀족이 되는 자들도 있다.

실력 있는 사람. 그리고 여기 훈련소에 실력 있는 사람이 한명 있다.

“내가 그 실력 있는 사람을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찾으시면, 사실 그래도 뭔가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겁니다. 다만 좀 더 주의 깊게 봐주는 정도?”

“그게 전부?”

“예.”

“혹시 평민 중에서 찾으면 어떻게 되나?”

“평민 중에서··· 기사가 되면 준 귀족이 되겠군요. 그렇게 되면 아마 따로 훈련받게 될 겁니다.”

“그렇군. 음. 그렇구만.”

“뭔가 그런 견습 기사가 있습니까?”

“아니, 일단은 좀 봐야 되니까. 혹시 할 말은 이게 전부?”

“예.”

“그럼 이만, 가서 쉬도록.”

“예.”

존대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완벽한 하대가 됐지만 콜슨은 그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꾸벅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

그리고 나는 종이 위에 레나라는 이름을 끄적여 적어둔 뒤, 화살표를 쳐두고 동그라미를 몇 번 그어두었다.

실력 있는 사람. 그리고 실력 있는 사람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흐흐흐.”

사악한 미소가 흘러나왔고 곧 웃음으로 변했다. 골치 아픈 일이 순식간에 싹 사라지고 탄산 음료 한통을 순간 비워낸 것처럼 청량감이 맴돈다.

바로 이거다. 이게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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