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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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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9
추천수 :
225
글자수 :
128,657

작성
23.12.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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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3

DUMMY

#23


“매월과는 무슨 관계냐?”


눈을 뜨자 마자 들려온 목소리였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대장간의 한쪽 구석.


사위가 좀 어두워진 걸로 봐선 시간이 조금 흐른 모양이었다.


“...얼마나 지났소?”

“글쎄··· 한 시진 정도?”


나는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 쪼그려앉은 장려는 곰팡대를 피워대며 말했다.


“사람들은 이미 다 물렸으니, 편히 말해도 된다.”

“...”

“매월과는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매월관의 주인과 그 객인 관계요.”

“정말 그게 전부냐? ···거짓을 고한다면 아까 받은 교훈을 다시 받게 될 것이다.”


내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한 것을 보면 그 교훈이 위력은 확실했다는 증거겠지.

그에게 맞았던 내 정수리는 아직도 얼얼했다.


어쨌든 난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녀의 가게에 한 번 들렀던 게 전부요··· 확인해보시던가. ”

“요놈 말투보게?”


따악-!

그의 곰팡대가 내리쳐졌다.


“으윽!”


정확히 칼 옆면에 맞았던 정수리였다.

눈물이 찔끔나는 가격이었다.


장려의 말이 이어졌다.


“고작 한번 만난 손님에 대해, 고 년이 신경쓴단 말이더냐?”

“...나도 어떤 연유인진 모르요.”

“흠··· 알았다. 무혼에게 줄 검은 네 왼쪽에 있다. 은편 70개다.”


내 왼쪽?


정말이었다.

누워있던 내 왼쪽편에는, 검신이 70센티 정도 될법한 칼자루가 하나 놓여있었다.


나는 곰팡대 밖에 들려있지 않은 장려의 손과 내 옆에 놓여있는 검을 한차례 바라보았다.

이에 장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검을 다시 들면 이길 것 같으냐?”

“...”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만다.

어쨌건 상대는 나를 이기고도 자비를 베푼 상태.


난 그런 상황에 다시 덤벼들 성격이 못된다.


“아니오. 여기있소.”


나는 품안에 있던 금편 하나를 장려에게 내밀었다.

금편을 받아든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놈아. 은편 없어?”

“...없소. 나도 그걸로 받은거라.”

“썩을··· 잔돈이 부족할 것 같은데?”


나는 품속을 뒤적이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잔돈 계산하게 전에, 제 검도 하나 마련해주시오.”

“검...? 네가 검을 쓰느냐?”

“...잡아보긴 했소.”

“호오.”


이에 장려는 자신의 손에 들린 금편을 잠시 바라보다, 이를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좋다··· 그럼 일단, 그거 들고 일어서봐라.”

“그거라니··· 무혼의 칼 말이오?”

“그래.”

“...어째서?”


따악-!

눈앞이 번쩍 했다.

정수리에 또한번 곰팡대가 떨어진 것이다.


“그럼, 검장이 칼을 준다는게 무슨 남아도는 쇳덩이를 대충 던져주는 건줄 아느냐?”

“으윽···”

“네 놈에 대해 알아야 그에 걸맞는 칼을 줄거 아니냐.”


이 영감··· 성격나쁘다.

곰팡대에 붙은 용머리 모양의 쇠부분이 진짜 아팠다.


나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니... 말로 해도 알아듣소.”

“알아 들으면, 고거 들고 서보란 말이다.”


또 한번 곰팡대가 휘둘러졌다.

더 맞았다간 진짜 머리통이 깨질 것 같았다.


나는 검집이 씌워진 무혼의 검을 잽싸게 들어올렸다.

앉아서 하는 거였지만, 어쨌건 검도에서 말하는 상단 방어세였다.


땅-!

그의 곰팡대는 눈앞에서 바로 가로막혔고, 장려는 ‘호오-’하는 감탄사를 냈다.


“정말 칼자루는 잡아본 모양이군.”

“말했잖소.”

“좋다. 고걸로 날 공격해보아라.”


공격이라···

내가 칼집에 씌인 검을 잠시 보고있자 장려가 덧붙였다.


“칼놀림이 둔해질 것 같으면, 그 칼집을 벗겨도 좋다.”

“...씌운 편이 덜 둔할 것 같소.”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록 지금 곰팡대로 폭력을 구사하곤 있지만, 어쨌건 상대는 나를 죽이려 드는 적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자를 향해 칼날을 마구 휘두를 정도로 내 신경이 굵진 못하다. 조심을 해도 곧잘 일어나는 것이 대련 중에 일어나는 사고다. 혹시라도 상대의 어딘가를 베어버렸다간 마음이 좋지 않으리라.


하지만 장려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칼끝에 인정을 달아두는 놈이구나. 보아하니 네놈도 장수하긴 글렀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되게 맞았던 정수리와, 졸도하기 전에 얻어맞았던 무릎과 뺨이 얼얼하긴 했다.


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닌 것.

장려 또한 ‘읏차’ 하고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걸 본 나는, 가만히 자세를 잡아보았다.


검도에서 ‘머리에 칼’이라고도 불리는 상단 자세.

상대와 나의 키 차이를 고려해 잡은 자세였다.


“검장께선, 무기를 안드는 거요?”

“요거면 충분하다, 이 놈아.”


장려는 곰팡대를 흔들어보일 뿐이었다.


정 그렇다면야, 빚진 교훈을 살짝 돌려줘도 되겠지.

나는 여유를 부리는 그에게 검도 5단의 내려치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정수리에 내 칼끝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띵-!


내려쳐진 내 검이 튕겨나갔다.

그의 곰팡대에 붙은 용머리의 쇳부분에.


···씨발.

이게 말이 되나?


이어서 그는, 비어버리게 된 내 옆구리를 곰팡대로 툭 건드리며 말했다.


“고놈 참, 뒤는 생각도 안하고 뿌려대는 구나. 방금 일합으로 네놈은 죽었다.”

“...”

“다시.”


그리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건지.


그에게는 손목치기도, 허리치기도, 찌르기도 통하지 않았다.

내 공격을 막아낸 그의 곰팡대 끝이 내 이마나 어깨를 툭툭 건드렸고, 그때마다 그의 지적질이 이어졌다.


“찌른다고 예고하고 찌르느냐? 다시!”

“발끝이 어딜 보고 있는게냐! 다시!”

“힘을 실으면 뭐하느냐. 느려터졌는데··· 넌 또 죽었다. 다시!”


···진짜 이게 맞아???

6년의 검도수련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어이없게도 장려와 나 사이에선 아예 공방 자체가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


‘툭’ 건드린 곰팡대가, 어떻게 내 공격을 흘려낼 수 있는 건지.

천천히 걸어온 그가, 언제 내 공격의 사각에 위치하게 된 건지.

공격을 연계해나가려고만 하면, 왜 그의 곰팡대가 내 목젖에 닿아있는 건지.


“하아- 하아- 하아-”


나름 격하게 움직인 탓에 숨을 몰아쉬고 만다.

장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대충은 알았다.”


그는 재도 떨어지지 않은 곰팡대를 입에 물며 말했다.


“기세는 장대하나 공세는 정직··· 기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그 검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노라.”


마치 무혼의 명패 뒤에 적어두었던 글귀같은 말이었다.


“충분히 봤다. 사위로는 불허!”


마지막에 이상한 말이 붙어있었지만, 나는 나대로 약이 좀 올랐다.


나는 어깨 칼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한 수만 더 부탁하겠소.”

“오냐.”


이미 내가 아는 검도의 모든 기술을 다 선보인 상태.

이 시대의 검술은, 21세기의 그것을 아득하게 상회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어찌될지 보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도전을 감행해보았다.


먼저, 크게 앞쪽으로 뛰어들며 그의 안면을 향해 칼을 크게 휘두른다.

장려는 그 칼을 피해냈지만, 그 체간은 자연히 뒤로 몰렸다.

이어서 어깨를 노리며 칼을 내리친 다음, 그의 사위로 칼을 내지른다.


“...!”


샤사사삭-!


내 공격은 여전히 그의 몸에 닿지 않지만, 장려의 눈이 조금 휘둥그레졌다.


나로선 처음으로 그를 뒤로 물려낸 상태.


"흡!"


비어보이는 그의 가슴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척하다, 그 검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의 무릎쪽으로.


탕!


곰팡대와 칼집이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이번에도 내 검은 속절없이 튕겨나갔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의 곰팡대도 같이 튕겨나간 것이다.


"뭣이?!"

“으합!”


검을 쥔 손바닥이 아릿해온다.

이어진 나의 동작은 그 정수리를 노려든 내려치기.

발끝을 흐트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

“...”


공격이 끝난 나와 장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검집이 씌워진 나의 검은, 그의 정수리 위에서 우뚝 멈춰져있었다.


이에 놀라워하는 장려의 표정은, 좀 다른 의미로의 수치였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걸로 검장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소··· 어차피 같이 검을 들었다면, 내가 필패했을 테니.”


하지만 장려가 놀란 건 자신이 정수리를 내어줬기 때문이 아니다.


“네놈 설마···”

“...?”

“방금··· 아까전의 내 연성팔법(連星八法)을 따라한 거냐?”


연성팔법?

그게 장려가 썼던 초식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내가 익혀온 검도가 통하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흉내내본 거였다. 졸도하기 전, 그가 내게 선보였던 연계공격을.


“...어떻게?”

“어떻게라니··· 내 눈으로 직접 본 동작이지 않소.”


기울어진 장려의 곰팡대에서 재가 톡 떨어졌다.

장려의 눈에는 이채가 어려있었다.


***


대장간을 나왔을 땐 저녁 시간대였다.

두 자루의 검을 등에 찬 나는, 시장에서 간단한 군것질 거리를 샀다. 그리곤 무혼이 기다리고 있을 산마루를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이런 식의 산행은 처음이었다.

그와 함께 산을 오르던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흡사 날으듯이 산을 오르게 된 것.


거친 길이라는 것조차 상관 없었다.

가로막는 것은 칼로 베어버렸고, 벨 수 없는 것은 뛰어넘었다.


잠시 후, 산마루에 도착한 내게 무혼은 역정을 내었다.


“길이라도 잃은 줄 알았잖느냐!”

“...한번 다닌 길은 바로 외우는 편이다.”

“그런 놈이, 왜 늦은거냐?”

“그럴 일이 있었다··· 이거나 좀 들어라.”


나는 시장에서 사온 바구니를 무혼에게 내밀었다.

군것질거리를 담아온 거였다.


녀석은 그 속에서 전병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어? 뺨, 부은 거냐?”

“...”

“쯔쯔··· 신난다고 내달릴 때부터 알아봤다.”

“나자빠져서 부은게 아니다.”

“...그럼?”


나는 한숨을 쉰 다음, 대장간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들은 무혼이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올해 들어 가장 크게 웃는구나.”

“...그게 웃기냐?”

“어쩌자고 그 칼든 야차같은 놈에게 덤볐단 말이냐. 크하하하!”


내 이야기를 들은 무혼의 반응이었다.

그는 부어있는 내 뺨을 보더니 또 한번 크게 웃어젖혔다.


“장려는, 자신의 기(氣)를 받아낼 검이 없어, 스스로 칼을 만들기로 결심한 자다···”

“...”

“그런 장려에게 도발했다가 목숨은 건져 왔으니··· 그도 늙더니 칼끝에 자비가 묻었구나.”


씨··· 그런거면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던가.

무혼은 내게서 받아든 칼을 옆구리에 채우더니, 내가 든 칼을 보며 말했다.


“그건, 네가 쓸거냐?”

“...그만 웃고 전병이나 입에 넣어라.”


무혼은 ‘풉.’하며 웃음을 멈추더니, 내가 시장에서 사온 전병을 우적거리며 말했다.


“네가 다녀오던 중에, 답신이 왔다.”

“...누구에게서?”

“누구긴. 암영문의 수하에게서지.”

“...어떻게?”


조금 당황한 내게, 무혼은 미소지은 채로 말했다.


“내가 화살로 신호를 보내는 몇개의 지점이 있다. 내 수하가 그 모든 지점을 향해 활에 묶은 답신을 쏘면, 내가 확인하는 식이지.”


무혼은 확실히 꼼꼼한 녀석이였다.

위치가 들통나는 상황에 대해 이런 치밀한 준비를 해둔걸 보면.


“...그래서, 답신 내용은 뭐였나.”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전병을 넘긴 무혼이 말했다.


“내일 오후에, 암영문엔 최소의 병력만이 남는다.”

“...잘됐군.”


이에 고개를 끄덕인 무혼은, 장려로부터 사온 칼의 날을 달빛에 비춰보며 말했다.


“따라서 결행은, 내일 저녁이다.”


무혼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서렸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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