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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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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0
추천수 :
225
글자수 :
128,657

작성
23.12.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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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DUMMY

접객관은 무려 4층 건물이다.

아무래도 명망이 높은 세가이다 보니, 오고 가는 객들도 많은 모양.


복도에서 선아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가족인 듯한 무리들이 우리 옆을 지나쳐갔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에 흥분이 서린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 무투회를 구경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난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그 무투회는 어디서 하는거지?”

“세가의 조웅전 앞에 있는, 연무장에서 합니다. 아마 지금쯤 사람들이 꽤 모여있을 겁니다.”

“몇명이나?”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참가자만 500명을 훌쩍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500명?

500명이면, 이들이 한번씩 대전을 치른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텐데.


난 그 광경을 상상해보다 물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건데?”

“무투회의 대전방식 말씀입니까?”

“응.”

“음···“


선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우선 참가자들끼리 나와 대전을 치릅니다. 패자는 탈락이고, 승자는 계속 대전이 가능하지요.”

“...그럼, 질 때까진 계속 대전이 이뤄진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렇게 대전을 하다가 일정 승수 이상을 얻은 이는, 세가의 도련님이나 장문인께 도전하는 방식입니다.”


어중이 떠중이를 추린 후, 실력자들은 세가에서 직접 상대한다는 말이군.

그 모습을 상상해본 나는 처음에 가졌던 의문이 여전히 의아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500명이 다 참가하는 거면, 하루종일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무투회니까요··· 길게는 일주일씩 걸리기도 하지요.”


헐··· 일주일?

사람들끼리 치고박는걸, 일주씩이나 구경한다고?

그걸 저렇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니 할말이 없다.


“...그럼, 저희도 가보실까요?”


그렇게 내키진 않는 발걸음이지만, 한가지 작은 이유가 내 발길음 움직게 했다.

재양의 무술실력을 구경할 기회긴 한 것이다.


객실을 나온 그녀와 나는, 다리 위로 연못을 가로질렀다.

연못 주위의 꽃과 잔디엔 촉촉한 아침의 이슬이 묻어나 있었다.


나는 나란히 걷는 선아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

“무투회 말이옵니까?”

“응.”

“그리 자주까지는 아닙니다. 한 해에 4번 있지요.”

“계절행사인거네.”

“네··· 그런데 이번 대회엔 유달리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곤 하더군요.”


그녀와 함께 걷는 동안, 멀리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명은 되어보였다.


그 중 1/3 정도는 세가의 수련복을 입은 자들.

그리고 나머지는 다들 제각각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뭣보다 신경쓰이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런데, 무기를 든 사람들이 많네?”

“그렇습니다.”


선아는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듯 덧붙였다.


“저희 세가의 무학엔 검이나 곤, 혹은 궁을 다루는 것이 없습니다만, 이는 다른 이들이 무기를 다루는 것을 배척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武)는 결국 이들의 어울림속에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래?”

“실제로 비무 중엔, 암기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허용되는 것이구요.”


암기까지 허용된다는 것엔 조금 놀랐다.


이전의 삶에서, 부대에서도 종종 대련 시합을 벌일때가 있었다.

그리고 사고의 위험을 아무리 강조해도 발생하는 것이, 바로 그런 대련 중에 일어나는 사고다.


그럴진데.

무기를 숨겨서 가는 것도 허용된다니.


나는 사람들이 들고있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보며, 조바심을 느꼈다.


“...저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지?”

“참가자들 말씀이시죠? 다양합니다.”

“그럴 것 같긴한데··· 이를테면 무슨 목적으로 여길 오는거야?”


까놓고 말해 상금이라도 있냐는 질문이었다.

선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봄에 열리는 대회는 초계회라고하여, 통상 중원으로 나아가길 꿈을 꾸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진 정도를 확인하러 나옵니다.”

“그래?”

“네··· 장문인이나 다른 세가의 분들이, 이들을 상대하며 평을 내려주곤 하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일종의 지도 대련 같은 분위기인 거군.


실제로 연무장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머리를 빡빡 민, 중처럼 보이는 사람.

도복을 입고서 눈매에 잔뜩 힘을 준 꼬마아이.

흰 수염을 길게 드리운 노인···


나는 문득 이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어··· 그런데 지금 세가는, 장문인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선아는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조견 도련님과 재양 도련님, 그리고 호위무사이신 지율비 공자께서 대련에 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저기, 조견 도련님이 보이기도 하네요.”


선아가 연무장의 중앙쪽을 가리켰다.

시선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가보자, 그녀의 말대로 그곳엔 조견이 있었다.


혁련 세가의 둘째, 조견.


날카로운 눈매에 낮은 목소리를 가진-

이상하게도 나를 처음봤을 때부터, 나를 경계하던 남자.


나는 그에게 무혼에 대한 면회를 신청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총상을 살펴보기 위함이기도 했고, 그가 사용했던 기술에 대해 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조견은 단호하게 말했었다.


‘비록 해당 죄인을 잡아들인 것이 강공자이기는 하나, 이는 엄연히 우리 세가에 대해 해를 입히고자 했던 자. 이를 사사로히 만나게해주는 것은 곤란할 것 같소.’

‘그렇습니까··· 그는 지금, 고문 중인 겁니까?’

‘그렇소. 허나 워낙 질긴 자라 좀처럼 배후에 대해 불지 않더이다.’


연무장 가운데에 선 조견은, 옷자락을 바람에 펄럭이도록 나둔 채, 부채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었다. 조금은 작의적으로 보이는 연출같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재양과 지율비도 차례로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잠시, 재양과 눈이 마주치긴 했으나, 그는 많은 군중을 상대해야하는 자인 만큼, 나에게는 목례정도로 그쳤다.


나는 연무장 위에선 두 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다, 언젠가 재양이 저 둘째 공자 조견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나도 둘째 형은 좀 어려워.’

‘까칠한 사람이야?’

‘까칠하다라··· 그것도 그런데··· 원래 어려서부터 속마음을 잘 이야기 하지도 않고, 당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째 오늘은 장문인이 안보이시네?”

“그러게··· 길게 출타중이시라더니, 진짠가봐.”


그 웅성거림이 슬금슬금 올라왔을 때쯤.

조견은 이를 제지하듯 손을 들어올렸다.


잦아진 소음 속에서 그가 말했다.


“이번에도 저희 세가를 찾아주신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번 초계회에는 장문인과 맏형, 그리고 여동생이 출타중인 관계로 저 조견과 아우인 재양, 그리고 저희 세가의 호위무사인 지율비가 대무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탄식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에 조견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해합니다. 본 초계회에서 장문인과의 일합을 꿈꾸며 위해 먼곳에서 오신 분들께는 다소 맥빠지는 상황일 테지요. 따라서 특별히, 본 무투회에서는 소원을 접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원?

나 뿐만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조견은 이어 말했다.


“3승수를 먼저 채우신 분들께서는 저희 셋에게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 셋을 상대로 판막음을 하시는 공자께선 그 소원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너무 무리한 소원이 아니라면 저희 혁련세가의 이름을 걸고 그 소원을 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연무장을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와아-!’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재미있는 건, 뒤에 서있는 재양의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나 역시도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장문인이 자리를 비운 지금, 세가의 둘째아들인 조견이 장문인을 대리해 대회를 주최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런만큼, 중요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


대리는 어디까지나 대리인 것이다. 이는 부대에서 임시로 보직을 할당받은 이가, 맘대로 포상을 남발한 셈인 것이다.


“소원을 수리해준다고?!”

“이런. 오늘 정말 날잡고 싸워야겠구나!”


주변 사람들의 흥분이 저절로 느껴졌다.

나는 내 옆에 서있는 선아에게 물었다.


“이런 일도 자주 있어?”

“...저도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다.

혹 저것은, 자신이 패할리가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일까.


잠시 후 조견이 이어말했다.


“언제나처럼 대련 방식은 같습니다. 자신이 쓰는 무기나 암기를 들고 연무장에 올라오시면 됩니다. 항복선언이 나온 시점에 대련은 종료··· 그럼 첫번째 대련자부터, 연무장 위로 올라오십시오!”


그의 선언과 동시에 두 사람이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한 사람은 혁련 세가의 연무복을 입은, 열 네댓살쯤 되어보이는 민머리의 꼬마아이.

다른 한 사람은 기다란 나무봉을 빙빙 돌리며 올라온 털보 아저씨.


체구나 나이나 머리털로나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두사람이었다.


연무장 위로 올라온 털보는, 과장된 몸짓으로 두리번 거리는 마임을 취했다.

객석 일부에서 ‘와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란이 잦아들었을 때, 털보는 고개를 숙여보이며 말했다.


“꼬마야.”

“네.”

“머리털이 좀 자란 다음에 다시오는게 어떻겠냐?”


객석에서는 다시한번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꼬마의 얼굴은 살짝 붉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객석의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꼬마는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귀공을 머리털로 이길 생각이 아닌지라.”


이어서 꼬마와 같은 연무복을 입은 무리쪽에서 응원이 터져나왔다.


“우문에 현답이다, ”

“이겨라! 단매!”


연무장에 올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두 사람의 목적일리는 없었다.

서로를 주시하던 두 사람은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먼저 자세를 잡은건 털보였다.

그는 봉을 어깨 뒤로 길게 늘어뜨리고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상태에서 무릎을 굽혔다.


이에 꼬마의 자세는 그보다 훨씬 낮았다.

거의 바닥에 주저 않다시피 하며 다리를 한쪽을 옆으로 길게 뺀 자세.


“...”


솔직히 내 기준으로는 둘다 낙제점에 해당하는 자세였다.

저런 자세들은 멋은 있을지 몰라도, 공방에 있어 초동을 방해한다.


시작신호 같은 건 없었다.


조견이 연무장 구석으로 물러가자, 꼬마는 기합을 질렀다.


“으합!”


짧고 힘찬 기합이었다.


그 기합과 함께 그 꼬마의 몸이 연무장 위로 떠올랐다.

이어 둘 사이의 허공에서 힘껏 내지른 봉과 발길질이 엇갈렸다.


그런데, 그 부딪힌 소리가 이상했다.


톡-

마치, 입사귀 하나를 손끝으로 건드린듯한 가벼운 소리.


“어엇-?!”


털보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봉을 툭 걷어찬 아이의 몸은 이제 반대로 돌아갔던 것이다.

봉이 휘둘러진 방향으로.

마치 상대의 힘을 그대로 이용하듯이.


이어서, 접어져있던 꼬마의 반대쪽 발이 뻗어갔다.

비어있는 털보의 턱을 향해서 였다.


“얍!”


따악-!

제대로 꽂혔다.


털보의 턱은 그대로 돌아갔다.

그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대전이 흘러간다고?'


잠시 후, 내 옆에 앉아있던 선아가 내 팔을 툭툭 치며 물었왔다.


“공자님?”

"...어, 응?"

"괜찮으세요?"


선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거울이 없어 내 얼굴을 확인해볼순 없지만, 실로 볼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응. 괜찮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얼굴을 문질렀다.

방금-

짧은 공방이었지만-


나는 일전에 무혼과 싸우면서 받았던 느낌을 똑같이 받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상식 밖의 대전이었다.


공격자도.

또 방어자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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