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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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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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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57

작성
23.12.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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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DUMMY

#3


재양은 1시간 쯤 후에야, 겨우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나는 그의 몸상태를 간단히 물은 다음, 준비했던 질문을 던졌다.


"내려가는 길은, 저쪽 절벽 말고는 없습니까?"

“...그렇소.”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즉답이었다.

'엥, 진짜?'


그의 말대로, 정말 다른 길이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재양은 마치 내 시선을 외면하듯, 무혼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혼은, 공자가 쓰러뜨린거요?”

"...그렇습니다. 갑자기 공격을 해온터라."

“공자, 무예가 상당한 모양이- 쿨럭-”


재양은 또다시 기침과 함께 각혈했다.

상태가 심각해보였다.


그는 이 1시간 사이에 30년 쯤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창백하다 못해 파르스름해진 그의 얼굴은, 중독의 증상으로 보였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급한 건 당신의 몸입니다, 재양.”

"...갑자기?"

"내려가는 다른 길을 알려준다고 해서, 당신을 두고 가진 않겠습니다."


재양의 얼굴에 당황이 그려졌다.

알기쉬운 사람같았다.

본디 거짓말에 능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 내가 다른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찾아왔으니까요... 이는 이곳에 다른 활로가 있다는 의미일 테죠."

"..."


재양은 속마음을 들킨 사람의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것이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자괴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기다리자, 재양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소. 나는 혁련세가의 막내, 재양이라 하오··· 만일, 그대가 나를 돕는다면 필히 세가로 돌아가 크게 보답하겠소.”

“...정확히 어떤 도움을 바라시는 겁니까?”

“우선 나를 데리고 이곳을 내려가 주시오... 그리곤 무혼의 신병을 나에게 넘겨주시오.”

“...지랄나셨네.”


마지막 말은 무혼이 눈을 뜨며 한 말이었다. 그는 조심스렇게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한 차례 내 눈치를 보곤, 다시 재양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 사이에서는 스파크가 이는 듯했다.


“곧 뒤질 혁련의 도련님께서, 내 신병을 바라신다니 황송하군.”

“무혼... 세가의 옥에서 고문 받으면서도, 똑같은 건방을 떨 수 있나 두고보자.”


이에 무혼이라는 자는 콧방귀를 뀌곤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암영문의 무혼이다.”

“...내 이름은 강철호입니다.”

“강공자··· 저 죽다만 녀석이 했던 제안을 나도 똑같이 하겠다.”

"똑같은 제안?"

“그래... 나와 함께 이곳을 나간 뒤, 재양의 신병을 우리 암영문에게 넘겨라. 암영문의 문주께서, 그대가 바라는 모든 것을 보상해줄 것이다.”


음. 얘들은 뭐 그리 나한테 못줘서 안달인걸까.

서로는 또 왜이리 못잡아먹어서 난리고.


“휴우···”


한숨이 먼저 나온다.

어쨌건 보상이건 뭐건, 여기서 나간 다음에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둘은 경쟁하듯이 말했다.


“아까 제가 말한대로, 저를 세가까지 데려가 주십시오··· 반드시 사례하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저 무혼이라는 자는, 사파중에서도 온갖 음흉한 짓을 하고다니는 암영문의 살수요.”

“흥. 그건 네놈들의 관점일 뿐이지.”


곤란한데.


나는 오래 군대에 몸 담았던 사람답게, 개개인의 선악이나 시비를 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군인에게 필요한 사고가 아니다. 군인은 상관이 까라면 까고, 국가가 지키라는 자를 지키면 그만이다.


짦게 고민해본 나는 심플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럼, 다같이 내려가지요.”

“뭐...?”

“내려가고나면 각자의 길로 가는 걸로. 서로간의 신병 문제는, 다른 날 두분이서 따로 해결하시고.”


오.

몇 번 말을 해봤다고 중국어가 착착 붙는다.

외국어 실력은 외국인이랑 지내보면 바로 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곧장 움직이지 않기에, 나는 논리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셋이 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무혼은 다리를 다쳤고... 재양은 설령 다른 길을 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없이 움직이긴 힘든 상태니까."

"..."


여기에 생략된 논리는 '그렇다고 너희 둘이 손잡고 내려가진 않을 거 아니냐?'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보여서다.


"...제길."

"...빌어먹을."


두 사람은 표정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이어 말했다.


"무혼, 당신도 길을 아십니까?"

"...나는 바깥쪽의 절벽을 통해 올라왔다."

"그렇습니까... 그럼 길을 아시는, 재양이 앞장서 주십시오."


무혼을 잠시 노려보던 재양은, 비척비척 앞서 걸었다.


어찌나 큰 동굴인지, 동굴 안쪽은 꽤 갈림길이 많았다.


재양이 벽을 짚으며 앞장섰고, 무혼은 쩔뚝이며 따라 갔다.

나도 그런 두 사람을 주시하며 따라가는데, 재양이 불쾌하다는 듯이 뒤돌아보았다.


“넌 따라오지 마라, 무혼.”

“나라고 좋아서 따라가는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총상 때문에 절벽으로 내려가긴 힘들다는 말 같았다.


재양은 이를 드러냈다.


“그럼 여기서 홀로 뒤져.”

“그럴거면 혁련세가의 막내를 길동무로 데려가겠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잠시 으르릉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


달갑지는 않지만 시선의 의미는 이해되었다.

두 사람 다 부상을 입은 상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저 두 사람의 행동을 강제할 수도 있다.


이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두 분, 싸움은 금지입니다.”

“...”

“만약 먼저 상대를 공격한다면, 나는 그를 공격하겠습니다.”


둘은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터덕- 터덕- 터덕-


습한 동굴 속에서 세 사람의 발소리는 느릿느릿 이어졌다.

20여분 정도 걸어간 뒤, 우리는 동굴의 막다른 곳에 도달했다.


재양은 작게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보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길 바랍니다···”


재양은 주저하다 벽에 손을 올리더니 무언가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동굴 전체가 한 차례 진동했다.


“어엇?”


두 사람에겐 놀라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놀란 것은 나 뿐.


마치 기계장치라도 있는 것처럼-

'구구구구-' 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의 돌벽이 아래로 스르륵 내려간 것이다.


눈앞으로 자욱한 돌먼지가 피어났다.

그 속에서, 재양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동굴을 나가서, 반나절은 쯤 걸어 내려가야 할겁니다··· 괜찮겠습니까?”

“···문제 없습니다.”

“...저를 부축하며 가실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돌먼지가 거둬지며 드러난 산길을 바라보았다.


완만한 경사의 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끄떡 없습니다."

"그럼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우리 셋은, 그렇게 산을 내려갔다.


어느 정도 내려간 다음엔 무혼이 자신의 복면을 벗어던졌다.

호흡이 가쁜 탓인 듯 했다.


턱 주변으로 사마귀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내 시선을 느낀 무혼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미남이라 얼굴을 감추고 다녔던 거요."

"...그렇군요."


산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마나 걸어내려갔을까.

재양이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잠시만... 쉬어가주겠소, 공자?"

"음. 그러실까요."


제법 등과 허리에 땀이 찬 시점이었다.

이에 허벅지의 상처를 만지며 굽은 나무에 기대앉은 무혼이 말했다.


“강공자."

"네."

"그대는 혹시, 맹호곡 출신이요?”


역시나 모르는 지명이었다.


"흐음..."

"맹호곡, 맞췄소?"


이 무혼이라는 남자에게서 특이함을 느끼고 만다.


그는 아까까지만해도 나와 싸웠던 자.

그리고 어찌되었건 내게 상처를 입고 패했던 자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패배자 특유의 감정이 드러나있지 않았다.

패배자에게 응당있는 비굴함이나 공포감 같은 것이.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답했다.


“아닙니다.”

“그런가··· 외공의 깊이가 있는 듯하여 짐작해보았소. 그 정도 무예를 익힌 자라면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졌을법도 한데···”

“...”

“특히 그대의 탄지공은, 정말 눈에 보이지도 않았소··· 호신강기에 막힌, 내 탄지공이 부끄러워지더군.”


이자는 자신이 던진 쇠구슬을 맞고도 견뎌낸 것을 ‘호신강기’라고 했고, 내가 발포한 총알을 ‘탄지공’이라고 불렀다. 둘 다 나로서는 모르는 용어였다.


이어 그는 허리에 채워진 내 나이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단도에는, 순간적으로 강기를 불어넣었던 거요? 그 짧은 순간에?"

"..."

"정말이지, 기를 불어넣는 기척도 못느꼈었소."


...그거, 장비빨이었는데요.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말했다.


"두 분 다 무리하지 마시고, 충분히 쉬고나면 말씀 주십시오."

"..."

"..."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는 듯 하더니, 거의 동시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어서 그들은 명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눈을 감아버렸다.


...저게 휴식이 되나?


나는 영문을 몰라 말없이 기다렸다.

대략 30분 쯤 기다린 것 같다.

그러자 먼저 가부좌를 푼 무혼이 말했다.


“공자는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하지않아도 되는 거요?”

"..."

“과연··· 이 정도 체력 소모는, 공자에겐 일도 아닌 모양이군.”

“...”

“헌데 공자는 복색도 특이하고, 생전 처음보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던데··· 정말 정체가 뭐요.”


나도 나를 설명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힘없이 웃으며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이번엔 재양이 가부좌를 풀며 말했다.


“다시 가시지요.”

“...더 안쉬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부축해주시는 강공자만 괜찮으시면, 이제 쉬지 않고 가시지요.”


만용은 아닌 것 같았다.

무혼과 마찬가지로, 재양도 한결 밝아진 얼굴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끝내 자신의 말을 지켰다.

우리는 동이 터올 때까지 쉬지않고 걸어내려갔다.


그리고 동이 터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산행길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저 멀리-

산 허리쯤 걸렸던 태양이, 빼꼼히 봉우리 위로 오르고-

어둡던 산길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을 때-


어느 화가의 붓으로도 재현할 수 없을 풍경들이 펼쳐진 것이다.


가인이 흘리고간 향기처럼, 언덕위로 흐트러진 꽃잎들.

이를 보듬어 단단한 그림자를 드리운, 웅장한 소나무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시샘하지 않은 채, 그저 도도히 흐르는 냇물.


내가 화가였더라면, 차마 그 붓을 꺾고 말았으리라.


나는 걷다 말고 종종, 그 풍경에 압도당해 멍하니 서있었다.

그런 내게, 재양은 넌지시 물어왔다.


“강공자?”

“...아? 네.”

“혹, 피로하십니까?”


뭔 말인가 했더니, 내가 걸음을 멈춰서 물어온 말인 모양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저··· 하도 절경이라, 감탄하고 보게 되는군요.”

“...강공자는 감수성이 풍부하신가 보군요.”

“...생긴 거와는 다르게 말이지.”


마지막 말은 무혼이 비꼬듯 내뱉은 말이었다.

거 좀 감탄할 수도 있지, 삐딱하긴.


그리고 오래지 않아, 산길이 점점 평지로 접어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 중 한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재양 도련님?"

"...지율비?"

“아니, 재양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이윽고 그 지율비라는 자는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농담 아니고 거의 날아오는 기세였다.


이마에 빨간 두건을 싸맨 사내였다.

키는 무혼과 거의 비슷한 170 정도.


그는 재양의 배에 감긴 붕대를 보자마자, 절규하듯 말했다.


“도련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아직은.”

“아니, 누가 감히 도련님을-”


이윽고 그의 눈이 번쩍 떠지며 나를 향했다.

재양은 빠르게 말했다.


“아니다. 지율비... 그 분은 나의 은인이시다.”

“은인···말입니까?”


후우, 식겁했네.

이번에도 다짜고짜 공격해오나 싶어서.


재양은 무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데려온 자를 봐라.”


재양의 턱짓에 지율비는 무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울비란 사내 역시도 상대의 얼굴을 아는 모양이었다.


“이 자는···? 암영문의, 무혼 아닙니까?!”

“그래··· 그 무혼을, 저기 공자께서 쓰러뜨리셨다.”


무혼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지율비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와 무혼을 번갈아보았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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