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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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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4
추천수 :
225
글자수 :
128,657

작성
23.12.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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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0

DUMMY

우리가 누워있는 산마루로, 안개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호위무사라는 자를 막연히 상상해 보았다.


“호위 무사면, 통상 암영문주와 자주 붙어다니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아.”

“그러면?”

“그 노친네가 굵직한 임무를 맡기는 몇 사람이 있다. 그 놈도 그 중 하나지. 이리저리 잘 돌아다녀.”

“...그래?”

“딱히 일이 없을 땐 같이 있는다. 그리고 노친네가 중요한 행차를 할 땐 동행하고.”


음.

그런가.


통상 21세기의 보디가드라고 하면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약자를 보호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말하는 호위무사란, 그 보다는 최측근이라는 이미지에 더 가까운 모양.


나는 매월관에서 만났던, 암영문주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자에게 단지 일상의 신변을 지키기 위한 보디가드는 필요없을 듯도 했다.


나는 대화의 방향을 살짝 틀며 무혼에게 물었다.


“잘은 몰라도, 암영문의 사람들은 주로 부도덕한 일을 하는 거지?”

“...원하는 것이 부도덕해야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운은 적당히 뛰워진 것 같다.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너는 어떤 못된 짓을 하고다녔던 거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무혼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 표정이 곱진 않았으나, 나로선 불편함을 각오하고 던진 말이었다.


“무슨 뜻이지?”

“그게 재양과 네 사이가 나쁜 이유 아냐... 뭔짓을 하고 다녔길래 그렇게 미움받는거냐고.”


나를 보던 무혼의 눈매가 깊어졌다.

내가 가만히 마주보자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강공자.”

“왜.”

“그 점에선 너도 그리 떳떳하진 않을텐데?”

“어딜 봐서?”


이어 무혼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 눈 쪽으로 뻗었다.

그리곤 허공에 대고, 내 눈의 외곽쪽을 쓱쓱 그어보이며 말했다.


“자신이 죽인 자의 눈을, 여러번 봤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매가 있다.”

“...그런데?”

“네 눈이 딱 그렇지.”


···마치, 선아처럼 말하는군.

나는 선아에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별 수 없잖나··· 나는 과거에 군인이었다.”


이에 무혼은 조금 놀라는 듯 했다.


“그 동안 출신에 대해 밝히지 않더니··· 황군(皇軍)이었던 게냐?”

“...”

“조금 의외군... 그런데,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하나?”


엄밀히는 황제의 군사가 아니라 이세계의 군인이었는데.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차이를 지적하진 않았다.


쓴 웃음을 지은 무혼의 말이 이어졌다.


“비겁한 정파놈들처럼 말하는군.”

“비겁?”

“그래.”


뭔 소리야.

나는 도대체 내 말의 어디에 비겁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기다리자 녀석의 말이 이어졌다.


“군사의 살인은, 뭐가 다르다는 말이냐? ···황제의 명을 등에 업은 살인이라서?”

“...”


음···

이런 식의 지적이 나올지는 몰랐는데.


무혼의 말이 이어졌다.


“개소리다.”

“...”

“군사란, 비겁한 살수의 다른 말이다.”

"..."

"살인의 죄를 황제를 위한다는 이유로 포장하고, 그 이유조차에 황제에게 떠넘겨버린."


그 말을 끝으로 무혼은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그는 쓰러진 소나무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집어올렸다.


활이었다.

그 형태를 굳이 나누자치면 장궁에 해당할.


나는 무거웠던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말했다.


“활도 다룰줄 알아?”

“어느 정도는.”


이어서 녀석은 활통을 잠시 살피는 듯했다.

통에 담겨있는 화살마다, 화살깃의 색깔은 제각각.


이어 무혼은 그중 검정색 화살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시위에 걸고서, 한쪽 방향을 향해 옆으로 섰다.


나는 농담처럼 던졌다.


“...이 시간에, 누굴 쏴죽이려고?”

“때가 되어 신호를 보내는 거다.”

“때?”


나도 몸을 일으켜 무혼의 화살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내 눈대중이 맞다면, 여기서 1km 거리가 채 안되는 바위산 쪽이었다.


“이 시간대의 암영문의 보초는 내 사람으로 채워놓았다.”

“...내부첩자 같은 거군.”

“그렇지··· 그리고 이 화살은, 그들에게 결행일을 묻는 신호다.”

“결행일?”


난 오랜 고민이 없이도, 뭘 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아아. 그 호위무사가 없을 때?”

“그래.”


이어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무혼의 화살이 쏘아져나갔다.

그 궤적을 쫓아가본 나는,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돌산 사이에 찍혀있는 점 같은 부분을.


아마도 저곳이 그 암영문이라는 곳의 동굴인 듯 했다.

그리고 무혼이 쏜 화살이 그 근처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솔직히 감탄했다.


비록 우리가 있는 산마루가 더 높다곤 하지만, 이는 분명 화살의 최대 비거리에 가까운 거리일 것이다.


“···너, 밥먹고 활만 쐈어?”

“한 때, 꿈이 있었거든.”

“무슨 꿈.”

“아버지를 화살로 쏴죽이는 꿈.”


나는 녀석과 공감대를 넓히려 노력해보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슴벅찬 꿈이었겠네.”

“응··· 그러다 화살로 그 노친네를 죽이는 건 불가능함을 깨달았을 땐, 이미 30리 밖의 과녁을 맞출 수 있게 되있더라고.”


···요약하면 재능 낭비 같은 거군.


무혼은 시위를 당겼던 팔의 어깨를 빙빙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그리곤 활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며 말했다.


“강공자. 부탁하나만 하지.”

“뭔데?”

“오후가 되면, 대장간에서 칼을 한자루 사다줬으면 하는데.”

“...칼?”

“응... 원래의 내 칼은 ,수련동굴에서 그대가 단도로 잘라버렸잖나.”

“...어?”


정말이었다. 무혼의 옆구리에 채워진 것은 빈 칼집 뿐.

그 안에 있어야할 칼이 없었다.


근데 분명···


“아까, 세가의 옥에서는 너, 칼 있었잖아... 어쨌어?”

“그거야, 내가 만든 암영귀혼진 안이었으니··· 환시를 만드는게 가능했었고.”

“...”

“거기서 본 것 중, 말이 되는게 몇이나 있었다고 보나.”


···하긴.

이 녀석이 무수히 나타나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지.


나는 슬쩍 몸을 돌려, 우리가 올라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세계에서 말하는 ‘경공’이란 걸 쓸 줄 모른다.


“...그러니까, 나더러 저 길을 다시 내려가서, 칼 사오라고?”

“응.”

“...왜 네가 직접 안가고? 활쏘는 걸 보니 몸도 다 나았더구만··· 게다가 무기란 건, 어? 직접 만져보고 골라야지.”


솔직히 내려가기 귀찮아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정론일 것이다.

이에 무혼은, 자신의 빈 칼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피해야할 눈이 많아, 낮에 돌아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

“조견과 암영문주를 말하는 거면, 나도 마찬가지일텐데.”

“그 둘 뿐이 아니다... 나는 이곳 섬서지방에 적이 많다.”


아··· 하긴.

무혼 이 자식은 정파의 공적 같은 거랬지?


녀석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그냥 다녀오라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대장간은 오후가 되어야 열테니, 그 때까지 나는 내게 암영귀혼진을 견뎌낼 심법(心法)을 알려주겠다.”

“심법···?”

“그래.”


무혼은 돌산의 동굴방향을 잠시 노려보다 말했다.


“단언컨데··· 이 상태로 그 노친네의 귀혼진에 들어갔다간, 너는 곧바로 죽게될 거야.”

“...”


이어 무혼은, 조금 씁쓸하게 들리는 어조로 말했다.


“혹시라도, 암영귀혼진을 우습게 볼까봐 말하는데... 세가의 옥중에서 썼던 나의 귀혼진은, 내가 처음으로 성공시킨 진이었다.”

“그래?”

“나로썬 필사적인 심정이었지.”


무혼은 절로 한숨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옥에 갇힌 채로 노친네를 만나게 되었다간 그대로 죽게되었을 테니까... 아마 조견으로써도 내가 귀혼진까지 완성시킬 줄은 몰랐던 거지.”

“흐음···”

“사실 완성했다고 보기도 힘들겠지만.”


그게 불완전한 거였나?

내가 그곳에서 경험했던 것을 상기시켜보는데, 무혼은 말을 이었다.


“난 분명 해당 공간을 이계화(異界化) 시키는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에 독자적인 규칙을 부여하고 침입자에게 해당 규칙을 암시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

“노친네의 귀혼진이 만들어낼 세계는, 절대로 그런 어설픈 것이 아닐 것야.”

“알았다.”


나는 장황해지려는 무혼의 설명을 끊었다.


“필요하니까 해보라는 거겠지? ···그냥 믿을란다. 뭐부터 하면 되나?”

“그래? 으음··· 그럼, 우선··· 내 앞에 한번 서봐라.”


나는 그렇게 했다.

마주보는 녀석과 나의 거리는 1보 간격.


녀석은 자신의 오른손을 가만히 내 머리 위에 올리며 말했다.


“우리의 혼(魂)은, 기본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거부하지··· 그리고 혼이 거부하는 일은, 실제로도 일어나기 힘들고.”

“...”

“이에 나는 지금부터 내게, 말도 안되는 상념을 불어넣어 볼 거다··· 이를 우선 거부감없이 받아들여보아라.”


···이게 다 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람.

내가 눈만 꿈뻑거리고 있자, 녀석은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마치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가만히 내 상념을 받아들이는 거다··· 눈을 감고··· 내 말을 믿어라···”


눈을 감으래서 일단 감긴 했다.

무혼의 말이 이어졌다.


“이곳엔 너와 나 둘뿐···"

“...”

"그리고 그 주변엔 아무 것도 없다.”


먼저 바람이 멎었다.

이곳 산마루에 도착한 이례, 꾸준히 불어오던 바람이.


음···

무혼의 답지않은 나긋한 목소리 덕분인지, 기분이 조금씩 이상해진다.


“있다고 하면··· 온 사방으로 드넓게 펼쳐진 하늘 뿐.”


아까 마셨던, 황주인지 하는 술의 취기가 뒤늦게 올라오는것 같기도 하고-

피곤한 몸이 살짝, 잠을 요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있다고 한다면··· 저 멀리에서부터, 발치 아래까지로 이어진 푸른 바다 뿐···”


마치-

그가 내뱉는 음절 사이로, 조용한 파도소리가 넘어오는 기분.


“강공자, 이제 눈을 떠보라.”


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어··· 이거··· 어어어???”


그간 익혀온 회화가 무색하게,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새하얀 구름이 깔린 하늘 아래-

저 멀리 수평선까지로 이어진 듯한 검푸른 바다.


나와 무혼은, 바로 그 사이에 서있는 거였다.


“무혼··· 이거, 어떻게···???”

“강공자가 설명해봐.”

“...뭐?”

“여긴 어디고, 우린 뭘하고 있지?”


나는 발 아래 저 멀리서 철썩이는, 파도거품을 내려다보다 말했다.


“여긴··· 바다아냐? ···난 지금, 그걸 내려다 보고 있고.”

“...과연. 이젠 다시 날 봐바.”


나는 그렇게 했다.

무혼은 여전히 나의 한 보 앞에 서있었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무혼은, 별안간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이상한 걸 찝기보다 안 이상한 걸 찾기가 더 힘들 것 같은데???

입이 열리지 않는 내게, 무혼은 이어말했다.


“지금 말야··· 우리는 ‘어떻게’ 여기, 서있는 거지?”


멍해지는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녀석과 나는 아무것도 디디고 있지 않았다.


“어··· 어···?”


그제서야 팔다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난 대체 지금 무얼 디디고 서있는 것인가?


이어서 내가 몸을 굽히며 바닥을 짚어보려는 순간-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나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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