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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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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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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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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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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DUMMY

지율비는 뒷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다들, 이곳이다! 재양 도련님을 찾았다!"


그의 외침에 사람들은 우르르 나타났다.

얼핏 잡아도 열 댓명은 될 법한 인원이었다.

복색이 비슷한 걸로 봐선 같은 소속의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재양을 향해 한마디씩 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니, 다치신 겁니까!"

"...괜찮다."


재양은 그들을 향해 힘없이 웃어보였다.

이에 모여들던 사람들을 사납게 살펴보던 무혼이 말했다.


“...이 주변을 수색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무혼과 재양은 서로를 잠시 노려보았다.


곧이어 무혼은 몸을 날렸다.

누가봐도 달아나려는 시도였다.


"어딜!!!!"


그리고 무혼의 시도는 열 걸음도 채 가기 전에 실패했다.

허벅지의 총상 탓이리라.


지율비라는 자가, 도주하는 그를 붙잡고 엉겨든 것이다.

한명이 엉기고 나자 두 명이, 또 세 명이 엉겨들었다.


"감히, 죽고싶으냐!"


이에 무혼은 황급히 칼집에 손을 뻗었으나, 그곳엔 칼이 없었다.

동굴에서 내가 제거해버렸던 탓이다.


“제기랄··· 이거 놔라!!!”


그런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잠깐의 소란 후, 그는 여러 사람에게 깔린 채, 고개만 겨우 밖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그는 분노하며 말했다.


“재양! 이것은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

“약속?”


재양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너 같은 살수놈이 약속을 운운하니 기분이 이상하군··· 그리고 난 네놈과 약속을 한 기억이 없다, 무혼.”

“무슨 개소리냐! 내려온 뒤에는 각자 제 갈길로 가자고 하지 않았나!”

“그건 강공자가 한 이야기였지, 너와 나 사이의 약속이 아니었다.”


재양과 무혼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난 별로 해줄 말이 없는데 말이지.


이어서 재양은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다 너는 이미 제 갈길로 가지 않았느냐. 다섯 걸음만에 잡혀서 문제지.”

“이, 개 같은 자식이..."

"으르렁거리며 짖고 있는 건 너 같은데."


무혼은 고함을 질렀다.


"명색이 정파라는 놈이!!! 약속을 희언으로 만든단 말이냐?!”

“유치한 놈··· 반대 상황이면 날 구속했을 놈이, 필요할 때만 정파를 운운하는군···”

“빌어먹을...”

“다들, 저자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

“네! 도련님!”


무혼의 입엔 빠르게 재갈이 채워졌다.

잠시 후, 그의 포박까지 마친 지율비는 내게로 걸어와, 포권하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인사가 늦은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대협.”

“...”

“저는 지율비라고 합니다. 여기, 혁련세가 막내 도련님의 호위무사이지요··· 혹 존함을 여쭤도 됩니까?”


일단 나도 그의 자세를 따라 포권하며 답했다.


“저는 강철호라고 합니다.”

“강 대협··· 이번 일로 혁련 세가에선 분명 사례를 크게 할 것입니다. 우선 함께 세가로 드신 다음, 둘째 도련님과 말씀을 나누시지요... 세가는 저쪽입니다.”


나는 지율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눈대중으로 잡아본 거리는 대략 10키로미터.


돌벽으로 둘러진 넓은 공간.

그 안쪽으로 기와가 올려진 큰 건물 여러채가 내려다보였다.


건물 사이로는 줄에 매달린 붉은 연등이 대롱거리고 있었고, 연꽃이 띄워진 호수가 그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수 많은 꽃들이 심어진 잔디밭이 길 양쪽을 따라 이어져있었고, 당산나무로 보이는 큰 나무가, 전체 공간의 정중앙에 놓여있었다.


“...”


마치, 조화를 이룬 듯한 광경이었다.

사람의 건물과 자연의 생명이.


우리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향해 걸어갔다.

함께한 이들은 걷는 내내 내 복색을 흘긋거렸다.


그리 먼 길은 아니었다.


재양이 입구 쪽에 다가서자, 문 옆에 서있던 문지기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재양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아니, 옷에 묻은 건 피 아닙니까?!”


재양은 피로하다는 얼굴로 손을 들어 문지기의 호들갑을 제지했다.


"문을 열거라."

"아... 네."

"들어가시지요, 강공자."


문이 열리자, 알록달록한 꽃과 푸른 풀잎으로 가득한 정원이 드러났다.

멀리서 내려다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안구가 더욱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어 재양을 따라 세가의 정문 안쪽으로 한 발자국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재양이, 네 이놈!"


마침 멀리서 정원을 가로질러 걷고 있던 한 남자였다.

그는 우리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이냐!”

“아, 둘째 형님···”


둘째 형님이라.

그는 다가와서도 소리를 질렀다.


“세가의 소공자라는 놈이, 말없이 자리를 비워?”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형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

그리고 나는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형제라면 통상, 재양의 상처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재양의 상처 부위에는 한 눈에도 보일 정도로 피가 번져있는데.


이윽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별 말이 없던 그는, 지율비가 포박해온 자를 보곤 눈이 동그래졌다. 그 둘째 형이라는 작자는 고개를 푹 숙인 무혼의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놀라며 말했다.


“지율비··· 이 자는 설마, 암영문의 무혼이냐?”

“그렇습니다, 둘째 도련님.”


무혼은 핏발선 눈으로 ‘둘째 도련님’이라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재갈이 물려있지 않다면 험악한 욕이라도 한사발 내뱉을 표정이었다.


이에 그 ‘둘째 도련님’도 똑같이 상대를 노려보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울비, 네가 잡은 거냐?”

“아닙니다, 조견 도련님.”

“...그럼?”

“재양 도련님이 암영문에게 쫓기는 동안, 여기 계신 강철호 공자께서 도련님을 돕다가 그러셨다고 합니다.”


음···

엄밀히는 나 자신을 지키느라 그런건데.


그리고 ‘둘째 도련님’은 지율비의 말을 독특하게 해석했다.


“...혁련의 소공자라는 놈이, 외부인에게 신세나 지고 다녔단 소리로군.”


척봐도 우애가 깊은 형제는 아니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나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혁련세가가 귀인을 뵙소... 장문인께서 출타 중인지라, 제가 임시로 세가를 관리하고 있소. 세가의 둘째, 조견이라 하오.”

“강철호라고 합니다.”

“여기 무혼은 암영문의 2인자... 그를 쓰러뜨린걸 보면, 실로 대단한 무공을 지니셨나보오···”

“...행운이 함께 했습니다.”

"겸손하시구료."


이어 그는 내 행색을 위아래로 살피다 말했다.


“강 공자, 어느 가문 사람인지 여쭤도 되겠소?”

“말씀하셔도 모르실 겁니다.”

“...혹, 이국에서 온 거요?”

“...비슷합니다.”


잠깐 고개를 끄덕여보인 그는 말을 이었다.


“어쨌건 저희 혁련세가는 강공자를 귀한 객으로 모시겠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서슴치 말고 말씀해주시오.”

“...”

“여봐라. 여기 강공자님을 접객관으로 뫼시어라.”


그의 말에 시종으로 보이는 자들이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


편히 머물라니.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선 감사한 일이다.


다만.

한가지가 살짝 맘에 걸렸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십시오.”

“이제, 이 자는 어찌되는 겁니까.”


조견이라는 자는 살짝 인상을 썼다.


“무혼 말이오?”

“네.”

“...이 자는 여러모로 우리 가문과 척을 진 자요. 그가 속해있는 암영문도 마찬가지지.”

“...”

“따라서 우선은 그를 세가 내의 옥에 가둔 다음, 암영문이 계획 중이거나 실행중인 악행들을 실토하게 할 것이오.”

“그렇습니까.”

“그런 질문을 한 까닭은 무엇이오?”


함께 있던 재양과 지율비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와 함께 이곳으로 내려오는 도중, 서로 약속을 하나 했기 때문입니다.”

“무혼, 이 자와 함께 말입니까?”

“네.”

“...어떤 약조였습니까?”

“내려온 다음에는 서로 각자의 갈길을 가기로.”


사실 명확하게 약속이라는 식으로 못박진 않았지만, 적어도 암묵적인 동의 정도는 있었다. 그 동의가 없었더라면, 나는 몰라도 재양과 무혼이 동행하긴 무리였을 테지.


조견은 입술을 잠시 깨물다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허나, 우리로선 그를 입옥하지 않을 순 없소··· 그는 무수한 악행을 저질러온 암영문의 살수요.”

“그렇습니까···.”

“다만, 우리도 최대한 자제하며 그를 대하겠다고 약속하겠소··· 그걸로 되시겠소?”


나는 재갈을 문 무혼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른 것인진 모르겠으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까지인 모양이었다.


내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조견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재양은 약선 어르신께 치료를 받은 후 집무실로 와라. 강공자께는 접객관의 가장 큰 방을 내어드리도록 하라. 그리고 무혼은, 지금 내가 데리고서 옥까지 동행하겠다.”


재양은 내게 목례를 한 뒤 어딘가로 걸어나갔고, 무혼은 포박 당한 상태 그대로 조견에게 끌려갔다.


"흐음..."


묶인 채 끌려가고있는 무혼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재양과 더불어, 이곳에 오자마자 보게된 인연이라서 그런 걸까.


멀어져가고 있는 무혼을 바라보는 내게,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고, 공자님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 네···”

“이, 이쪽으로···”


상대적으로 큰 덩치 때문인지, 시종은 날 좀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나, 의외로 부드러운 남잔데 말이지.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손님들이 머무는 곳인 ‘접객관’으로 안내되었다. 1층의 복도를 지나, 계단 옆의 방문을 열어보인 시종이 말했다.


"이곳입니다, 공자님."

"아, 네."


방문으로 들어선 나는, 방을 쭈욱 둘러보았다.


방 구석에는 낮은 책상과 함께 벼루와 먹, 그리고 몇 장의 화선지가 놓여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옷장과 경대, 그리고 내 체구에 비해 조금 작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욕실에는 둥근 나무 욕조가 있었다.

침대와 마찬가지로 내 체구에는 조금 작은 듯한 크기였다.


“흐음···”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된 기분이다.

이곳 사람들은, 다 키가 작은 것일까.


"그럼 편히 쉬소서 공자님... 식사 때가 되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 네."


시종은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갔다. 방에 홀로 남게된 나는, 경대의 작은 거울 속에 내 모습을 우겨넣어보았다.


"..."


둥근 테두리 속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있는 나.

그 모습에선 이 세계와의 이질감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과 다른 짧은 헤어스타일이.

이곳 사람들과 다른 복장이.

그리고 생각이.


나는 약간의 유머를 발휘해보았다.


"부대로 치면, 해외 파견 같은 건가."


내가 한 말이지만, 별로 웃기진 않았다.

다른 세계에 오게된 이상, 오늘부로 나는 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야한다.


"일단, 좀 씻자."


욕조엔 이미 물이 채워져 있었다.

상의 하의를 모두 탈의하고, 목에 걸린 군벌줄까지 풀어낸 나는, 그 욕조 속에 몸을 담궜다.


폭풍 같은 일들이 펼쳐졌던 하루였다.

원래의 세계에서도.

또 이 세계에서도.


욕조의 물에 시원하게 땀이 씻겨나가고-

피로가 잔잔히 녹아들고 나자-


신기하게도, 내가 죽기전에 내뱉었던 유언이 떠올랐다.

나는 그 유언을 다시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담주 미팅엔 나 대신 김중사 넣어.”

“임하사. 관물대에서 라면 훔쳐먹은건 나였다.”

“박중사, 여동생 소개시켜주겠다는거 뻥이었다. 나 여동생 없다. 미안하다.”


실소가 나온다.


말 그대로 유언일 진데,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했던 말 일리 없다.

내 덕에 살아남을 대원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함도 아니었다.


기억나는 것이 딱 그 정도인, 시시했던 삶이었던 것이다.


깔끔한 나무결이 그대로 남아있는 욕실의 천장.

이를 멍하게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만다.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 비록 신을 믿지 않지만-


만약에.

저 하늘 위의 누군가가,

내게 또 한번의 기회를 선물한 거라면-


나는.

대체 어떤 삶으로써, 그 기회에 보답해야하는 것일지.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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