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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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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9
추천수 :
225
글자수 :
128,657

작성
23.12.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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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

DUMMY

“처음에 나왔던 꼬마 녀석, 인상적이지 않았어?”

“난 그 민머리보다, 그 뒤에 뒤에나온 여소협이 맘에 들던데.”

“...아니, 몸매 말고 무술 실력 말야.”

“그러니까 무술실력.”


비무대 근처에 세워진 간이 천막.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무투회에서 벌어진 일들이 길게 회자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잠시 중지된 대회.

조견은 대회에 참가자와 구경꾼에게 넉넉한 식사를 제공했다.


음식을 나르는 여종들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음식은 충분히 준비되어있습니다!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제법 기름진 음식들도 많았다.

방금전까지 무투를 관전하고 온 터라 화제는 많았고, 먹을 것은 많겠다, 사람들의 표정은 봄날씨를 닮아 하나같이 밝아보였다.


“공자님은 어떠셨나요?”

“어땠냐니?”

“무투회 말이에요··· 생각이 많아보이시던데.”

“글쎄.”

“혹, 음식이 입에 안맞으신 건가요?


나는 대답을 피하며 국수에 젓가락질을 했다.

전생에 먹던 것에 비하면 싱거운 편이었지만, 썩 괜찮은 맛이었다.


다만 기이한 걸 본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쏠려있었다.


내 기준에서, 무술은 합리의 산물이다.

인체의 구조에 따라 힘이 전달되는 원리가 정해져 있고, 생물학적으로 공격당하면 곤란한 부위 또한 정해져있다.


이 대전제들이 형(形)과 식(式)을 만든다.


대전에 임할 때의 자세와 기술을.

이를 단련하기 위한 방법과 방식을.


그런데, 이들의 무술은 내가 아는 상식에서 엇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랬음에도.

어떤 것들은 나로선 그 흉내도 못낼 것 같은 무(武)의 향연이었던 것이다.


“강공자. 여기있었군.”

“어··· 재양인가.”


만두국을 들고온 재양이었다.

녀석은 내 옆자리에 와 앉으면서도 주변을 향해 연신 포권을 해댔다. 아무래도 호스트의 입장이다 보니 밥 한끼 편히 먹는 것도 만만찮은 모양이었다.


난 만두를 떠먹는 녀석을 보며 말했다.


“잘 봤다. 싸우는 거.”

“그래? ···어떻던가?”

“도전자들이 거의 상대가 안되던데?”


나의 칭찬에 녀석이 쓰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재양?”

“응?”

“무슨 일인데.”


내 촉대로, 재양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는 재양이 말을 꺼낼 때가지 말없이 기다렸다.


입안의 만두를 한참이나 오물거리던 재양이 말했다.


“나 이때까지 혼나고 왔어.”

“누구한테?”

“누구긴... 형이지.”


의외로 자주있는 일이었다.

재양이 그의 형인 조견에게 혼나는 것은.


“이번엔 뭐 때문에 혼났는데?”

“내가 대련 중에, 겉멋을 부렸다는군.”

“...반대가 아니고?”

“응.”


생트집이었다.

5시간에 걸 친 대전 중, 3승점을 가지고서 세가에 도전장을 던졌던 이는 총 다섯.


그리고 그들과의 대련 중, 관중들을 의식했던 것은 재양이 아니라 조견이었다. 그는 일부러 화려한 동작으로 공방에 임했고, 사람들은 그 화려함에 박수를 보내곤 했었다.


“빡치면 한번쯤 확 엎어버리지 그래?”

“에이, 어떻게 그래··· 그래도 형인데.”

“그런 말은, 상대도 널 동생으로 아껴줄 때 하는 말 아냐?”


말이 좀 과했나 싶기도 하지만, 재양은 내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임을 알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둘이 대련하는 모습들을 보고 느꼈던 바도 있다.


재양은 자신의 작은 키가 대련시에 불리함으로 작용한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이에 녀석은 상대에 맞춰 경기를 운용해 나갔다. 이는 여러가지 변수에 대한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


아마도.

둘이 싸우게된 다면 십중팔구 재양이 유리하리라.


예외가 있다면 그 멘탈의 문제겠지.

재양은 고민에 잠긴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다가 말했다.


“정말 요즘, 우리 둘째 형 좀 이상하긴 해.”

“여러번 들었던 말이군.”

“이런 말 좀 그렇긴 한데··· 뭔가 강박을 가진 것 같아.”


강박이라.


비슷한 사람을 전생의 부대에서도 종종 목격한 적이 있었다.

주로 진급시기 쯤에 벌어지곤 하던 일이었다.


나는 세가의 정황을 잠시 떠올려보다가 말했다.


“요즘, 너의 형을 압박하는 게 있어?”

“...압박이라니?”

“뭔가··· 너의 형의 자리에 위협이 가해졌다거나, 뭐 그런.”


재양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정치적인 사고 쪽으로는 잼병인 녀석이다.


“그나저나, 강공자는 참석안해?”

“무투회에?”

“응.”


나는 밥먹는 중인 사람들을 쭈욱 둘러보다 말했다.


“글쎄··· 싸우는 방식이 워낙 달라서 좀 껄끄럽네.”

“그래도 무려 ‘무혼을 쓰러뜨린 공자’아닌가. 사람들은 좋아할텐데.”

“내가 광대는 아니잖나.”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누가 누구보다 강한가 약한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승패는 여러가지 조건 하에 결정되는 것이고, 그러한 조건들을 배제한 강약은 큰 의미가 없다.


칼을 준비한 약자는, 잠든 강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재양! 아직 식사 중인거냐?”

“아, 형님··· 막 마치려던 참입니다.


조견이었다.

그는 우리가 앉은 자리로 걸어와선 내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강공자도 계셨군. 어째, 음식은 입에 맞으시오?”

“그렇습니다. 혁련은 주방장도 고수인 모양이더군요.”

“그렇소? 다행이구려··· 마침 이렇게 만났으니,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좀 나누지 않겠소?”

“저랑 말입니까?”


나는 재양과 선아를 한번씩 바라보곤 말했다.


“음··· 저도 막 식사를 끝낸 참이긴 합니다만.”

“때를 잘 맞췄군··· 그럼 이쪽으로.”

“...”


그가 가리켜보인 곳은 조웅전이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라 걸어갔다.


“마침 날씨가 좋아 다행이오. 비가 오거나 했으면 피곤했을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세가에서의 생활은 마음에 드시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봄의 햇살 아래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걸었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본 세가의 임시 책임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확실한 건, 그는 처음부터 내게 용무가 있었다는 것.

조견은 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무투회의 개최자이고, 이 시점에 심심풀이 삼아 나를 찾았을 리가 없다.


무슨 용건일까.


나는 그를 따라 조웅전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이 높고, 면적이 넓은 건물 내부에는, 인상적인 물건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너비가 0.5평은 될 법한 커다란 바위.

물론 난 저 바위의 유래를 안다.


“이게 그 산석경의 바위군요.”

“이 바위를 아오?”

“대충만 압니다. 최근에 이곳 장서각에서 초대 장문인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조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이 세계에서 ‘경공’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확실히 날렵한 동작이긴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 긴장했다.


책에서 읽었던 바-

저 바위 위에 앉는다는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본디 저 바위는, 혁련세가의 장문인이 앉는 자리였다.


무려 500년 동안.


조견은 그 특유의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난 본디 단도직입적인 화법을 좋아하오. 하지만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삥 둘러가는 방식으로 하겠소.”

“저 역시도 시간을 아끼는 편을 좋아합니다.”

“좋소.”


이윽고 그에 입에선 친구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재양을 지지할거요?”

“...”


나는 답하지 않았다.

질문 자체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고개를 기울이고 있자 조견은 다시 말했다.


“시간을 아끼고 싶다는 말은 거짓같군. 다시 묻겠소. 우리 혁련 세가의 뒤를 잇는 차기 장문인으로, 당신은 재양을 지지할거요?”

“...”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에 주먹을 꽉 쥐게 된다.

혁련 세가의 차기 장문인?


본 세가의 장문인은 소림사로 떠났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벌어진 무림맹 회의의 참석을 위해.


소림사까지는 거의 천리에 해당하는 거리이기에, 조견이 임시로 이곳 세가의 책임을 지고 있는것.


그렇다면, 방금 조견의 말은-

이 혁련 세가의 장문인이라는 자가 ‘돌아오지 않는 장문인’이 된다는 의미인가?


내가 가만히 바위를 바라보고 있자, 조견은 조금 짜증을 담아 말을 이었다.


“모른척 해도 소용없소. 당신이 계속해서 무혼과 접선하려 했던 것을 알고 있소.”

“...”


나는 고개를 조금 숙이며 표정을 감추었다.


갑자기, 무혼?

...여기서 갑자기 왜 무혼이 튀어나오지?


“그리고 그대가 재양이 놈과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알고있소··· 아마 그대를 구워삶으려는 수작이었겠지."

"..."

"그대를 포섭하기 위해, 재양이 제시한 대가는 뭐였소?”


글쎄.

재양이 만약 내게 '장문인이 되기 위한 지지를 바란다'고 한다면, 녀석이 제시해야할 대가는 우정이 전부일 것이다. 재양은 내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세심하게 나를 챙겨준 녀석이다.


내가 여전히 말이 없자, 조견이 다시 말했다.


“그 놈이 제시한 것이 뭐라도 상관없소. 나는 더 큰 것을 제시할 터이니.”

“...”

“나는 그대의 바램을 모르오."


모를 수 밖에.

아직은 나 스스로도 이 세계의 당산나무에 빌 소원을 만들지 못했으니.


"다만 그대가 원한다면, 이 세가에서 2인자의 자리까지 건네줄 의향이 있소.”


숨을 들이키고 만다.

이런 과감한 제안을 한다고?!


이곳에 온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본 세가의 규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이곳에서 거느리고 있는 식솔만 수백에 이르고, 이 주변 지역과 연결된 사업만 수십개에 이른다.


도대체 이 조견이라는 남자는 어느정도의 일을 벌려놓은 걸까.

생각하는 내 모습이 갈등으로 비춰진건지, 조견은 말을 덧붙였다.


“살면서 중요한 기로에 서게되는 순간들이 있소.”

“...그렇지요.”

“내게는, 이곳 세가에 입양되던 순간이 그러했을 거요.”


이 녀석, 입양아였나.


나는 입양아가 삐뚤어지게 큰다거나, 고아가 악당이 된다는 식의 선입견을 좋아하지 않는다. 환경이 어떠하든, 삐뚤어질 놈은 삐뚤어지고 악당이 될 놈은 악당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열등감은 다르다.

나는 이 녀석이 재양에게 취해온 말과 행동들이, 어떤 열등감의 카테고리안에 묶여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방금 나의 제안에, 그대도 같은 기로에 선 것일지도 모르지.”


무어라 답할지 고민해보는데, 조웅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조견 공자님. 오후의 무투회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그래··· 곧 가마.”


조견은 ‘음-’하고 잠시 침음하더니, 바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했다.


“만약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면, 오늘 재양에게 도전해 그를 꺾어주시오... 무혼을 쓰러뜨린 그대의 무공이면, 재양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앞서의 제안에 비해 좀 작은 스케일의 요구같았다.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 재양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주는게 목적입니까?”

“설마 그렇겠소.”

“...그러면?”

“그 녀석을 꺾은 다음, 터무니없는 소원을 말해버리시오.”


음...

결국 이 조견이라는 자는, 재양을 책 잡을 빌미를 원하는 거였군.


“음···”

“생각은, 나가서 충분히 해보시고.”


조견의 마지막 말의 어조에는 ‘니가 이 제안을 거부할리가 없다’는 확신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마치 사람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가 등을 돌렸을 때, 나는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런데 당신.

나를 모르네?


나, 강철호.

햇병아리 시절에 분대장의 면상을 들이받았던 남자였다.


장난 반 농담 반으로.

나와 동료들을 이간질했다는 이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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