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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1,518
추천수 :
225
글자수 :
128,657

작성
23.12.30 21:02
조회
22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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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2

DUMMY

혁련세가에는 그 규모에 어울리게 온갖 것들이 다 들어서있었다.


목공소, 제지소, 장서각, 직조장, 농장, 양계장, 외양간···

거기다 술을 빚는 양조장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런 세가에 유일하게 없었던 것이 이런 곳이다.

바로 대장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세가의 특징 때문이었다.


‘이 냄새, 오랜만이네.’


쇳물에서 풍겨져나오는 비릿한 쇠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는 전생에, 고아원 근처의 공장에서 풍겨나오던 냄새와도 비슷했다.


땅-따-! 땅-따-! 땅-따-!


사방에서는 리드미컬하게 달군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용광로에선 후끈한 열기가 밀려나왔다.


잠시,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를 바라다보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뭐요? 사람 지나다니는 길, 한가운데 서선.”

“아··· 실례했소··· 옛날 생각 좀 하느라.”

“이런데서?”


기다란 쇠꼬챙이들을 한쪽 어깨에 잔뜩 지고 온 사내였다.

그는 내가 슬쩍 비껴선 자리로 들어서더니, 들고온 쇠꼬챙이들을 와르륵 내려놓았다.


“후우··· 하루하루가 다르군. 허리도 아프고.”

“?”

“조만간 머리 밀고 산속이라도 들어가야하나보오.”


그는 내려놓은 꼬챙이들 옆에 앉아선, 목에 걸려있던 수건으로 땀을 스윽 닦았다. 대략 4,50쯤 되어보이는 장년이었다. 이어서 그는 기둥쪽에 새워놓은 물주전자 부리에 입을 가져데곤 벌컥 벌컥 물을 들이키더니, ‘캬-’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매월이 찾더이다.”


···나보고 한말인가?

나랑 안면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나말고 누가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저보고 하신 말씀입니까?”

“그럼 그 쪽 말고, 여기 누가 있소?”

“...제가 누군지는 어찌 아시고?”

“누구긴... 이번에 초계회에서 판막음 한 강공자 아니오?”


으음.

질문만으로도 대화가 되는군.


그 남자는 이어 말했다.


“그 때, 시합은 잘 보았소. 좋은 도량이더군.”

“...그보다 방금 매월 이야기는 뭡니까?”

“말 그대론데.”

“아니, 그녀가··· 내가 여기로 올 줄 알았단 말입니까?”

“에이, 설마. 고년이 무슨 무당이오?”


그는 기둥 옆에 세워둔 곰팡대를 가져와 입에 물었다.

이어 곰팡대 앞쪽에 담뱃잎을 채우더니, 용광로 쪽에 그 끝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냥 여기저기 말을 퍼트려놓은 것일 테지.”

“뭐 때문에?”

“강공자더러, 자기 가게로는 당분간 찾아오지 말라더군.”

“왜?”

“나야 모르지···. 어째, 거기서 놀다, 어린 여급이라도 울렸소?”


그랬을 리야 없다.

사고를 치긴 했지만, 그녀의 가계에서는 아니다.


“흐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무혼을 데리고서 세가를 빠져나온 것이 바로 어젯밤.

그 소식이 벌써, 그녀의 귀까지 들어간 것일까.


‘쓰읍- 후우-’ 하고, 남자는 곰팡대의 연기를 빨았다가 내뱉었다.

내가 그 곰팡대를 가만히 바라보는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뭐 사러 온거요?”

“...네?”

“대장간에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무혼의 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아··· 우선, 여기에 장려라는 검장을 먼저 뵙고싶습니다.”

“장려검장을 찾아오신거요?”

“네.”

“흐음. 말씀하시면 되오.”

“...장려 검장이십니까?”

“그렇소.”


화법이 좀 특이한 사내같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서 말했다.


“무혼이란 자를 아시는지요?”

“무혼? ···아, 그 놈. 여기서 몇번 봤소.”

“그가 칼을 한자루 사달라더군요.”


이에 장려라는 자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말했다.


“칼이라니···. 쌍검이라도 쓰겠다더오?”

“...네?”

“지난 번에 칼 맞춰간지 한달도 안됐거든.”

“아··· 그 칼이 부러진 모양이더군요.”

“멀쩡한 칼이 왜?”


그야 그 칼이 잘려버렸기 때문이지.

21세기에서 가공된 스테인리스 스틸 합금에.


말을 길게 늘일 필요가 없다 생각한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이에 장려는 ‘으차-’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더니, 건물 기둥 뒷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엔 짧은 글자가 적힌 목패 여러개가 걸려있었다.


“보자··· 무혼··· 무혼··· 여기있구만.”


장려는 ‘무혼’이라고 적혀있는 목패를 뒤집었다.

그 목패의 뒷면에는 무혼과 관련된 사항이 상세히 기입되어있었다.


키와 팔 다리의 길이.

검을 쥐는 자세.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검세에 관한 것 까지.


“흠··· 새로 하나 만들어 달라던가, 아님 적당한 걸로 가져다 달라던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새로 만든다고 하면 내가 귀찮아지지··· 무혼도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하고.”

“...그럼, 적당한 걸로 주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그래? 그럼 따라오시게.”


그는 길죽한 목함이 있는 벽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호주머니의 열쇠로 그것을 열어젖혔다. 목함 속에는 무수한 검들이 들어있었다. 그는 그 목함 속에 손을 넣어 휘적거리며 말했다.


“그 놈, 다시 나쁜 짓을 하고 다니나보오? 칼이 부서질 정도면.”

“...글쎄요.”

“세가의 옥을 탈출했다는 말은 들었소···. 그런데 강공자와 같이 다닌다는 것은 의외군.”


장려의 말을 잠시 되새겨보았다.

정보가 제한적으로 퍼진 것일까?

무혼의 탈옥은 알려졌으나, 내가 그를 빼낸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식으로.


이윽고 나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무투회에서, 밝혔었다.

소원으로, 무혼의 면회를 희망한다고.


그런 터에, 무혼의 탈옥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이 제 3자가 보기에, 과연 별개의 사건처럼 여겨질 것인가.


'이상하다.'


나는 빠르게 대장간을 쭈욱 둘러보았다.

의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자, 주변의 광경이 이상하게 비쳐졌다.


망치질을 하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같은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고, 이리저리 짐을 나르는 자들은, 같은 짐을 다시 옮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의 시선은 나를 흘금거리고 있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검장께, 질문이 하나 있소.”

“하시오.”

“그 곰팡대는, 어디서 난거요?”

"이거?"


다음 순간, 나는 목함을 걷어차버렸다.

쾅-!


그는 펄쩍 뒤로 뛰었고, 목함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 속에 들어있었던 수많은 칼들을 와장창 토해내며.


당장 주변에서 반응이 튀어나왔다.


“뭐, 뭡니까?!”

“검장님?”


어느새 장려는 목함에서 칼 한자루를 꺼내든 체였다.

내게서 거리를 벌린 상태로.


나는 빠르게 나이프를 빼어들곤 자세를 잡았다.


“그 곰팡대, 월향이 쓰던 것 아니오?”


장려는 자신의 곰팡대를 한차례 바라보더니, 노기를 드러냈다.


“감히, 내 대장간에서 난동을 피우는가!”

“설명부터 해보시지.”

“뭘 말이냐! 이 곰팡대?”


그 디자인이 특이해서 안다.

연기가 나오는 부분이 용머리로 장식된 곰팡대.


월향이 쓰던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공세를 취해온다기보단 싸움 구경이라도 하는 모양세였다.


“검장님! 무슨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장려는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이며 말했다.


“투기를 거두라.”

“그것도 대답이 아니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월향이 쓰는 곰팡대도 내가 만들어준 것이다.”

“커플 곰팡대라도 된단 말인가.”

“...커플? 그게 뭐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 없다.

단순히 이 자와 매월의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다.


길게 본건 아니지만, 매월이 보여주었던 성격으로 짐작하는 것.

그녀는 자신에게 연인이 있음을 강조할 성격이 아니다.


혹 그가 매월을 감금이라도 하고 있는 거라면, 좌시할 수 없다.

고작 하루를 넘긴 인연이지만, 난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은 바 있다.

매월관에 암영문주가 나타났을 때.


나는 날카롭게 물었다.


“매월이 그대의 첩이라도 된단 말인가?”

“첩이라니. 그보다 가까운 사이지.”

“퍽이나 믿음이 가는군.”


장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다. 고년은 내 딸이니까.”


···엥?

가족이었다고?


고개를 기울이는 내게, 장려가 덧붙였다.


“그리고··· 또 첩이라면 네가 어쩌겠단 거냐?”


그는 자신이 든 검을 곧추세워들었다.

이어서 그는 단박에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뭐엇?!”


꽤 거리가 있있었음에도, 그는 한 걸음만에 내 앞에 당도했다.

곧이어 그의 검이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쉬-익!!!


젖힌 나의 목전으로, 살벌한 소리가 지나갔다.

번개같은 속도였다.

그대로 있었다간, 얼굴이 베였으리라.


“어디, 이 대장장이의 검을 받아보겠느나?”


왼발을 뒤로 뻗어 무게중심을 유지한 내게, 장려의 쾌검이 이어졌다.

횡으로 크게 벤뒤, 어깨로 내려쳐진 검.


간신히 몸을 틀어 이를 피해내곤, 나이프를 그의 전진방향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이를 여유롭게 피해낸 장려의 얼굴엔 비웃음이 스쳤다.


“그 조그만 가시로 어쩌겠다는 거냐.”


내가 든 나이프를 보며 한 말이었다.

이어 그의 화려한 칼솜씨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스슥-!

샤샤샤샤샥!


용광로에 반사된 검광이 눈 앞에서 춤을 췄다.

충격적이었다.

뭐 이런 현란한 검이 다 있나 싶을 정도의.


쒸익-!


깊게 파고든 찌르기를 간신히 피해냈다.

하지만 회피 후의 포지션 또한, 그에게 유리.


그의 양발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나의 발축은 그의 체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의 공격이 이어졌다.

올려쳐진다 싶은 검이 허리로 날라들고, 머리를 베어온다 싶은 검이 다리를 찔러온다. 검도 5단의 눈썰미를 모조리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움직임이었다.


"제법 날쌔구나!"


속절없이 뒤로 몰려가는 나.

이어서 비어 있는 가슴으로 장려의 검이 날아온다 싶을 때, 그의 검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퍽-!


머리털이 쭈삣섰다.

장려가 든 칼의 옆면이 내 무릎을 때린 것이다.


“으극.”


나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말았다.

예민해진 감각이 내게 경고를 보내왔다.


‘칼날이었으면 잘려나갔다!’


공격을 끊어야 했다.


나는 그의 손목을 노려 빠르게 나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이를 가볍게 피해내곤, 검의 옆면으로 내 뺨을 ‘쫙’소리나게 후려쳤다.


“크윽!”


충격과 함께, 내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데미지 자체보다 더 큰일인 것은, 시야가 돌아가버렸다는 것.


그렇게 내 시각을 죽여버린 그는, 그대로 내 정수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죽는다!'는 생각 잠시.

그의 칼은 내 머리 위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 풍압에, 앞머리가 짧게 솟구쳤다.


“이, 이런···”


몸이 굳어버렸다.

너무 쉽게 당해버렸다는 생각과, 상대가 드러내보인 격차 때문에.


방심한 것도,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숨어있는 상대에게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다.


그는 보란 듯이 달려들어 나를 제압해버린 것.


21세기의 내 검도 사범도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지는 못한다.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내게, 장려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강공자··· 초계회를 한 번 잡았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

“이 넓은 세상에, 조견이나 진모장 정도는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이들이 널려있음을 알라.”

“그···”

“이건 그 교훈이다.”


쾅하고.

그 교훈이 내 머리를 내리쳤다.


나는 칼 옆면에 정수리를 얻어맞고 졸도해버렸다.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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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새도우
    작성일
    24.05.15 10:36
    No. 1

    가져데곤 은 가져대곤 으로.
    가계에서는 은 가게에서는 으로.
    건필하기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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