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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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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3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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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57

작성
23.12.13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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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6

DUMMY

#6


내가 작게 한숨을 쉬는데, 선아라는 아이는 욕조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욕조에 손가락을 살짝 넣어보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찬물이네요? 왜 뜨거운 물을 안쓰시구요?”

“음··· 그럴려면 또, 사람들한테 부탁해야 하잖아··· 사람들은 또 물을 기르고, 장작을 태워 욕조물을 데우고, 다시 옮겨야하고.”

“그런데요?”

“번거롭지··· 하는 일도 없이 여기 머무르고 있는데, 그런 신세까지는 안지고 싶어.”


내 말을 찬찬히 듣던 선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세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제가 어르신들께 들은 내용과는 조금 다릅니다.”

“...뭐라고 들었는데?”

“공자님께서는, 아차하면 자객에게 큰 변을 당할 뻔한 막내 도련님을 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준 일이 어찌 작은 일일 수 있겠습니까. 소녀의 생각에, 그런 은혜를 입은 이로 하여금, 충분한 보답을 못하게 하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닐 듯 합니다.”


인상은 다소 여리여리한데, 말은 또박또박했다.

나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다 말했다.


“...그런데, 나 원래 찬물에 잘 씼었어. 한겨울에도 말야.”


사실이었다.

죽기 전, 내가 파견됐던 지역중엔 러시아 북방쪽도 있었고, 길게는 한달 이상 머무르는 거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온수샤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셨습니까. 그럼 이번에는 뜨거운 물을 써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시겠네요.”

“...”

“씻으시는 시간대만 미리 말씀주시면 제가 항상 조치해두겠습니다.”

“그럴 필요없어, 진짜··· 괜히 힘들잖아.”


이에 선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정 그러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만약 공자님이 감기라도 걸리게된다면, 저는 다른 시중을 드는 대신, 공자님의 병간호를 하게되겠지요.”

“...”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병간호가 다른 시중을 드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랍니다.”


순간, 재량이 이 여자애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좀 묘한 아이긴 해.’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의사전달 만큼은 확실히 하는 소녀같았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잠시 나가 있어줄래? 옷부터 좀 갈아입을까 하니.”

“알겠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욕실 밖으로 물러났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문을 열기전 재양의 말을 떠올렸다.

이 소녀에 대해 했던 말이었다.


‘너도 보시다시피 여자애고, 17살이고, 혁련세가에서 거둬드린 여종이야. 신기(神氣)가 있는 아이이기도 하지.’

‘세가 내에선 종종 저 애에게 관상같은 걸 봐달라는 이들도 있어.’


환복한 채로 욕실을 나온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음. 선아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관상을 본다고 들었는데.”

“몇몇 분들이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래? 음···”


선아라는 아이는 표정 변화가 크지 않았다.

나는 안되면 말지 하는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어떻게, 내 관상도 한번 봐줄 수 있겠어? 복채 같은 게 따로 필요하나?”

“복채는 따로 받지 않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냐니.

조금 엉뚱한 되물음이었다.


“어··· 관상을 봐주는 건 너인데, 내가 괜찮지 못할 건 뭐야?”

“때때로, 제가 관상을 봐준 분들은 마음을 상해하셨거든요.”

“...뭐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그렇게 기분좋은 일만은 아닌가 보더라구요.”

“...그래?”

“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론, 점괘나 관상을 물어보는 분들께 이런 재확인을 하곤 합니다.”


관상을 보는 일이 무려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될정도라면, 이 소녀가 보는 관상이란 그만큼 정확한 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말했다.


“봐줘봐··· 마음 상하지 않을 테니··· 그냥 이대로, 서있으면 돼?”

“네.”


그녀는 딱히 ‘시작한다’거나 하는 말도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비한 눈이었다.

상대의 과장이나 왜곡에 속지 않을 법한 직시(直視).


뭐랄까.

내 땀구멍 하나하나까지를 다 봐버릴 듯한 그녀의 눈빛에 괜히 긴장하는데, 그녀는 여상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공자님은, 도깨비 같은 분이시군요.”

“...도깨비?”

“어디서 오셨는지는 모르나, 이곳과는 매우 다른 곳···”

“...”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사람의 피를 손에 묻히셨군요.”


...

...

...진짜 용하네.


이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이 소녀에게 변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어... 군인이었는데··· 적과 교전을 하게되면 상대를 죽이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밖에. 어떨 때는 상대를 사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일 때도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선아는 내 말엔 관심없는 듯,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 살생의 업이 이곳까지 이어져있으니, 공자님은 반복해서 누군가를 죽일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될것입니다.”


그녀의 경고대로, 우울한 관상이었다.

내가 저질렀던 살생의 업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다니.


동시에 얼마전의 일이 떠올랐다.

적외선 쌍안경을 쓴채로, 무혼을 향해 총을 겨눴던 순간이.


난 그때, 그 작자의 어디를 쏘아야할 것인지에 대해, 잠깐 고민했었다.


원한다면, 그의 급소를 노릴 수도 있었다.

상대는 권총이라는 물건에 대해 아예 몰랐기에.


게다가 명분은 충분했다.

상대가 먼저 나를 죽이려고 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

총구를 그의 급소로 겨냥하지 않았던 것은, 알량한 도덕이나 인류애 때문이 아니었다.


살생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새로운 세상에서 시작을.


나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런 상황들을 피할 방법은 없나?”

“피할 방법 말이옵니까.”


내 질문에 소녀의 얼굴이 갸웃, 기울어졌다.

영 불가능한 일인걸까?


“왜? 어려운 일인가보지?”


내가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공자님과 비슷한 대답을 했던 분이 있습니다.”

“누구?”

“암영문의 무혼 공자님이요.”


잠시 후, 나는 확인삼아 물었다.


“무혼이라면··· 나한테 당했던 그 무혼?”

“네.”

“그자는, 현재 세가의 옥에 갖혀 있을텐데.”

“그렇습니다.”


그와 만나는것과 관련해 나는 번번히 면회가 가로막히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의아해하자 선아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저께, 옥의 죄수들이 마실 물을 갈아주는 심부름을 위해 갔다가, 그 분과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저를 알아보시더니, 제게 손금을 봐줄 수 있냐고 묻더군요.”


이 여자애, 손금같은 것도 보나 보군.

선아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분도, 강공자님 만큼이나 많은 살생의 업을 쌓아오신 분이셨습니다.”


이어질 말을 짐작하는 편안한 화법.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자도 네게,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한 모양이군. 나처럼.”

“그렇습니다···”


묘하게도.

술한잔 섞어보지 못한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만다.

선아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 때, 그 분께 했었던 말을, 강공자님께도 드려야 겠군요.”


그녀는 조금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자님··· 저는 운명을 믿습니다.”


나는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입술을 몇번 오물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그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순탄지 못한 길을 걸어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음...”

“하지만 저는, 그 수많은 길에서 어떤 갈림길로 걸어가야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함부로 조언하지 않습니다. 저도 알지 못하니까요... 그런 조언은, 인생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오만일 것입니다.”

“...”

“하여, 어떤 길을 걸어 무엇을 하려하는지는, 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져야하는 질문일테지요.”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소녀에 말에, 나는 가만히 서있었다.

이에 그녀는 잠시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하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 내일부터 제가 강공자님을 뫼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물러났다.

정말 기묘한 여자애였다.


선아를 보내고 침대에 눕게된 나는,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곤 침대 옆의 서랍을 열어보았다.

거기엔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출동장비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군번줄과 전투화.

적외선 쌍안경에 권총.

수류탄 2개.

군용 나이프.

방탄조끼에, 전투복...


모두 상대를 죽이거나, 죽어야 하는 직업의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최소한 그 분야의 전문가였을 것이다.


재양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네가 말하는 시시함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넨 노력하는 삶을 살았을거야.


틀린 말은 아니리라.


나는 이른 나이에 특수부대장이 되었던 사람이었다.

무술, 체력, 생존술, 살상기술, 전투 사고력, 상황 대처능력, 부대 운용능력···

그 모든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서.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삶은 시시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나는 이 세계에서 무얼 하고 싶은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장을 보며 다짐했다.

한번이면 족했다고.


시시한 삶을 두번이나 살 생각은 없다.

나는, 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찾아야한다.


***


다음날 아침.

습관처럼 일찍 눈을 뜨게된 나는, 평소의 루틴대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먼저 기상과 함께 시작되는 푸쉬업 100개.

그리곤 긴장한 팔근육을 쉴 겸해서 하는 스쿼드 100개.

마지막으로는 강도를 높여 벽에다 대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푸쉬업 50개다.


“후우- 50. 끝.”


딱 여기까지를 마치고나면 몸이 기분좋게 데워진다.

나는 데워진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욕조속에 몸을 담궜다.


그리곤 의외의 소란스러움에 놀랐다.


“음?”


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발걸음소리.

왁자지껄 대화하는 소리.

병장기 같은 것들이 땅을 딱딱 치며 지나가는 소리.


나는 창문을 열어보았다.

정원으로 난 길을 따라, 꽤 많은 인파가 지나가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의 손엔, 다양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칼, 창, 봉, 삼철곤, 철편, 크로우···

나는 그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했다.


혁련 세가는 권각술의 무학을 추구하는 가문.

그리고 권각술을 익히는 데엔 저런 무기가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저들은 세가 외인이라는 말인데...'


순간, 머리속을 지나는 것이 있다.

재양이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내일 세가에서 무투회가 열려. 참전까진 아니더라도 관전 정도는 해봐.


술자리에서 툭 튀어나왔던 말이라, 이렇게 규묘가 큰 것인지는 몰랐다. 나는 세가에서 내어줬던 옷을 대충 챙겨입고, 객실의 방문을 열었다.


두번째로 놀랄 차례였다.

접객관의 복도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자가 있었다.


“어···? 선아?”

“강공자님.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언제부터 있었던 거냐?”

“방금 왔습니다.”


봄이긴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공기가 꽤 차다.

선아의 손이 빨갛게 익어있는 걸로 봐선, 방금 왔다는 말도 그다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온건데?”

“강공자님이 오늘, 무투회에 참가한다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재양 도련님께요.”


···난 확답을 준 기억이 없는데.


그 친구는 다 좋은데, 넘겨짚는 버릇이 좀 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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