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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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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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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글자수 :
128,657

작성
24.01.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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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4

DUMMY

군것질거리라곤 했지만, 그 양은 넉넉했다.

통상 서너 명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물론 과거형이다.


“...”


전병에, 만두에. 떡에, 후식으로 옥수수까지.

모든 음식을 말끔히 먹어치운 내게, 무혼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어디다 숨겨뒀냐.”

“뭘.”

“아무리 봐도 위장이 따로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서.”


다 먹고난 옥수수를 산자락 아래로 던져버린 나는,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는 편이다.”

“...긴장은 안되나?”

“긴장?”

“내일. 우리 노친네랑 싸우는 거.”


음···

긴장이라.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죽음을 한번 경험했던 자의 여유같은 건 아니었다.


나는 근처에서 넓어보이는 나뭇잎을 따선 입가를 슥슥 닦았다.

무혼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야 계속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만··· 너는 정녕 아무렇지 않은 건가?”

“글쎄··· 긴장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잖나.”

“...일부러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닌것 같다만.”

“허세는 무슨.”


나는 포만감 속에서 벨트를 풀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이 세계의 밤하늘이 좋다.


“허세는 아니고··· 임무를 받아들이는 관성 같은 거지.”

“···무슨 뜻이지?”


내뱉고 나서야 내가 좀 복잡한 표현을 썼음을 깨달았다.

표현을 좀 정제해보려 생각해보자, 마침 얼마 전 무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가 그랬었지··· 군사라는 건, 비겁한 살수의 다른 말이라고.”

“그랬지.”

“뭐랬더라··· 살인의 죄를 황제의 뜻으로 포장하고, 그 이유조차 황제에게 떠넘겨 버린 자라고 했던가.”

“...그런데?”


물론 나는 이 시대의 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라는 단어를, 국가나 상급자로 바꿔도 그 의미는 통한다.


난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맞는 말인지도 몰라. 어느 정도는··· 군인에게 있어서 전투 대상은, 스스로 고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니까.”

“으음.”

“나는 그런 생활을 오래해왔다.”


정확히는 12년동안이었다.

무혼의 말대로면, 싸움의 이유와 책임을 남에게 떠넘겨 버리는 집단생활이.


책임을 남에게 넘겼으니, 전투 대상을 고를 권리도 남에게 있는 것.

그러다보니, 적이 누구인가 하는 것는 납득의 대상이 아니라 수긍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무혼은 내가 하지 않은 말까지 바로 이해한 듯 했다.

그에게서 ‘핏-’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네 말은··· 그저 적을 받아들일 뿐이니, 긴장도 안한다는 뜻 아닌가.”

“...궤변같나?”

“물론이다.”


굳이 변명을 덧붙이는 대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밤하늘에는, 어쩌자고 이토록 많은 별이 떠다니는 것일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자니, 별안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세가의 당산나무 아래에서 별점을 봤다고 하는 한 소녀가.


괜한 상념에 마음이 어지러운 중, 무혼이 다시 말했다.


“긴장한 것 같진 않으나, 뭔가 수심이 깊어보이는군.”

“...뭐, 수심까진 아닌데...”


바로 잠이올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따라붙는 상념을 지우기 위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무혼.”

“왜.”

“몸 좀 풀고 눕는 건 어떤가?”


무혼의 얼굴이 나를 향했고, 나는 장려에게 받아왔던 칼을 툭툭 쳐보였다.

무혼이 되물었다.


“...검으로 말인가?”

“그래. 먹은 거 소화도 할겸.”

“...검에도 조예가 깊었나?”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그건 또 뭔 소리야.”


무혼은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군말없이 검을 들고 일어섰다.


마주선 거리는 5보 앞.


나는 검을 들어올리며 장려와 주고 받았던 대화를 떠올렸다.


-네놈··· 어떻게 내 연성팔법을 보고서, 그대로 따라할 수 있었느냐.

-...두 눈이 있으니까.

-정녕 한번 보고서 흉내낸 거란 말이냐? ···그게 다이더냐?

-집요하시오··· 보고 따라하지 그럼, 달리 뭐가 있단 말이오?

-아무리 남의 검초를 흉내낸다 해도, 상대가 똑같이 움직여주지 않는 이상 변초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변초는, 해당 초식의 진의를 파악하지 않고는 구사할 수 없다.


장려가 말하는 ‘초식’이니 ‘변초’니 하는 단어에 익숙치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연계동작을 익혔다 하더라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 응용해서 구사해야 한다는 의미 같았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상대가 내 공격을 방어해냈다면, 그 방어에 맞게-

상대가 내 공격을 피했다면, 그 회피에 맞게-


연계될 공격은 당연히 수정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 정도 베리언스도 없는 공방이 어디있다고.’


나는 끝내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 장려는 당부하는 어조로 말했었다.


-만약, 연성팔법의 변초를 막힘없이 구사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필히 다시 오너라.

-...왜 굳이.

-글쎄. 와보라고 하면 와봐.


어딘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는데, 그가 날 다시보자고한 이유는 끝내 알지 못했다.

딸의 가게에서 술이라도 한 잔 사려는 것일까.


“뭔 생각을 그리 하는가.”

“아, 음··· 아니다.”

“검집은 풀지 않겠다, 강공자.”

“좋아.”

“선수(先手)도 양보하지.”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칼을 눕혀든 무혼을 향해, 뛰어든 나.

이어 장려가 펼쳐보인 초식이 다시금 이어졌다.


안면을 베어들어가는 1초.

상대의 체간을 뒤로 옮겨놓고-


횡으로 베어들어가는 2초.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붙인 다음-


어깨로 떨어지는 3초.

좌우의 벨런스를 무너뜨린다.


아슬아슬했지만, 무혼은 그 3초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의 반격이 튀어나왔다.


“흐-읍!”


앞발 근처로 떨어진 무혼의 검.

내 전진을 막으려는 의도였으나,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공격이었다.


쓰윽.

여유롭게 그 공격을 피해낸 나.


이어서 나는 그의 전면을 향해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올려베는 눈속임 동작으로 허리를 베어가고, 머리를 베는 동작으로 자리를 찔러들어간다.


“으읏?!”


무혼으로썬 반격의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것이리라.

뒤로 물러나는 무혼에게 따라붙으며 다음 수순을 이어간다.


쉬이익-


가슴을 향해 나아가던 검을, 무혼의 무릎을 쪽으로 떨어뜨린다.

무혼은 황급히 자세를 낮추며 검을 바닥에 찍었다.


터-엉!


맞부딪힌 검집의 소리가 울려났다.

이어서 나는 자세가 낮아진 무혼의 정수리를 향해 마지막 초식을 구사했다.


“크읏!”


무혼은 검을 들어올리지도 못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멈춘 나의 검을 보며 말했다.


“...장난 아니군.”


···진짜 이런 식으로 되네.


두번째로 구사해보니 확실히 알겠다.

장려가 말한 이 ‘연성팔법’이라는 초식이, 상당히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있음을.


나는 잠시, 이 초식에 담긴 어떤 깨우침 속에 침잠했다.

그런데 길게 한숨을 쉬었던 무혼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방심했다, 강공자··· 다시.”

“아··· 그래.”


나와 무혼은 다시 거리를 만든 후, 맞부딪혔다.

오래지 않아 그는, 머리 위에서 멈춘 나의 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완전히 간파했다, 강공자··· 다시.”

“좋아.”


오래지 않아, 간파했다는 무혼이 머리 위의 내 검을 보며 말했다.


“예상했다. 다시.”

“...”


이때 쯤부터, 무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발을 헛디뎠군. 다시!”

“팔길이를 생각못했다. 다시!”

“눈에 뭐가 들어갔다. 다시!”


계속해서 변명거리가 갱신되었지만, 몇 번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승부욕이 강한 대전 상대를 두고서, 이 초식의 여러가지 변형을 시험해보았다.


무혼이 축으로 돌아온다면, 찌르는 대신 베어간다.

무혼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베는 대신 다리를 찔러넣는다.


그 흐름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마지막은 매한가지.

나의 검은 녀석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


“...”

“...”


대련을 하면 할수록 초식이 가다듬어지는 느낌이다.

아마 무혼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10여번의 도전 후, ‘다시!’를 반복하던 무혼의 말이 멈추었다.

그도 눈앞에서 멈춰진 내 검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을 뿐.


이어서 녀석은, 내 검을 옆으로 쓰윽 밀어내며 말했다.


“아니··· 이런 실력을 가지고서, 왜 처음부터 검을 안들고 다녔던냐.”

“처음? ···아, 처음 만났을 때.”


수련동굴에서 봤을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때, 출동 장비 그대로 이곳에서 환생했었지.

그리고 21세기 특수부대원의 출동장비에 검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총과 수류탄이라는, 더 막강한 무기가 이미 있는 것이다.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었다··· 앞으론 들고 다니려고.”

“...참 알 수 없는 놈이군.”


이번에 내가 굳이 칼을 든 이유도, 칼이 총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그 탄환의 소모를 고려한 것일 뿐.


총알은, 이 시대에선 만회할 수 없는 보급품인 것이다.


무혼은 벌러덩 바닥에 누웠고, 나도 검을 내려놓으며 누웠다.


내일 함께할 동료의 멘탈을 고려해 재대련을 요구하진 않았다.

하지만, 검을 잡았던 손에는 고양감이 남아있었다.


마치 새로 생긴 발톱으로 사냥감 몰아붙이듯.

상대를 의도대로 제압해본 감각이.


양손을 몇번 쥐었다 폈다 해본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무혼.”

“왜.”

“너희 아버지··· 그러니까 암영문주에게도, 내 검초가 통할까?”


무혼은 ‘으음-’ 하고 잠시 침음하다 말했다.


“통한다.”

“...확실해?”

“확실해··· 무조건 통해.”


너무 쉽게 단정해버린 그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무혼의 말은 끝난게 아니었다.


“다만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군.”

“무슨 착각?”

“이미 내가 여러번 보여주지 않았느냐··· 귀혼진의 무서움이 어떤 것인지를.”

“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이 행해준 그 ‘심법’의 훈련을.


용암이 터지고, 바다에 빠지고, 눈에 미끄러지는 세상에서-

중요한 건, 무기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변화 앞에 무너지지 않는 마음과, 판단.


무혼은 단호하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초식의 간격까지 노친네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다.”

“으음.”

“그리고 만약, 그 간격만 확보한다면, 무조건 네가-”

“-죽을 것 입니다.”


마지막은 무혼이 한 말이 아니었다.

누워있던 무혼과 나의 눈빛이 빠르게 교차했다.


“...!”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다.


“누구냐!”


무혼과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서.


검을 세워든 무혼과 홀스터에서 총을 꺼내든 나.

그런 우리를 향해, 상대는 강조하듯 말했다.


“암영문주를 검으로 베려고 하는 순간, 강공자님은 필패하실 겁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달그림자 밖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우리 둘 모두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

“...”


달빛 아래.

작은 체구를 도도히 세우며 걸어와, 나와 무혼을 응시하는 인영.


그 양팔과 발목에는, 사슬이 잘려나간 수갑과 족갑이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움직이셔야 합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맑은 눈을 한 소녀.

선아였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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