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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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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8
추천수 :
227
글자수 :
128,657

작성
23.12.22 22:08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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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DUMMY

내 말을 무시로 받아들인 조견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강철호··· 네놈이, 감히 지금, 내게-”

“조견.”

“...?”

“난 그대를 용서하겠소.”


나는 그렇게 조견을 벙찌게 만들어놓은 다음, 밤하늘을 담아 일렁이는 호수를 잠시 바라보았다.

일부러 시간을 끌어 그의 화를 돋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할 말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대가 선아를 대동한 것이, 그녀의 신변을 위협해 날 협박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면··· 모든 것은 당신 집안의 가주 계승 문제에 관한 것··· 저기 재양이 말했던 대로, 거기엔 내가 딱히 관여할 이유가 없소.”

“...”


나는 재양의 분노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저 녀석이 지금 화난 이유는, 조견이 선아를 이용해서가 아니다. 녀석의 분노는 조견과 암영문주 사이에서 생겨난 야합에 기반한다.


사형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테지.

절대로 손을 잡아선 안될 자와 손을 잡았다는.


그리고 나는, 그 분노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세가의 식구가 아니니까.

암영문과의 관계에 있어 선아를 거래품목처럼 취급하는 것 또한, 그것이 이 시대의 모랄이라면 납득할 수 밖에.


하지만.

선아, 개인에 대해서는 다르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선아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 야밤에 끌려와 사슬에 묶여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는 여자아이.


난 그녀에게 물었다.


“선아야.”

“네, 공자님.”

“언제나 그랬듯, 너는 지금의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 같구나.”

“...”

“그것은 네가, 원래 모든 것에 놀라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냐··· 아니면 이미 네가, 이 모든 일이 벌어질 것을 예지했기 때문이냐?”


선아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네가 이 모든 일들을 예지했다는 가정하에 다시 물으마.”

“...”

“너는 이 모든 일들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냐··· 아니면 굳이 피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냐?”


이번에도 선아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의 침묵 역시 나는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랬구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속으로 파고들었던 달이 다시 빼꼼히 구름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너는, 이리될 줄 알면서도, 그저 예지에 따라 조견에게 끌려온 것이구나.


이 소녀가 살아온 날들과, 내가 살아온 날들 사이엔 강산이 하나쯤 놓여있다.

따라서 나는 그녀를 힐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간단다.”

“...”

“자신에게 벌어질 일이 훤히 보이는데도, 이를 관조하면서.”

“...”

“스스로에게 닥칠 일임에도, 마치 남의 인생을 대하듯이.”


선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서렸다.

아마도 내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되리라곤 ‘예지’하지 못한 모양이지.


“몰라서가 아냐.”

“...”

“자신이 바뀌지 않는 이상, 오늘이 어제의 반복이며 내일은 오늘의 반복일 것임을··· 다들 알고 있어.”

“...”

“그럼에도, 자신만의 변명을 준비한 채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거지.”


멀리갈 것도 없었다.

나, 강철호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가족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음에도.

고아라는 나의 환경에 지례 겁을 먹은 채, 상대의 접근이나 인연을 피했던 나날들.


그리고 난 그 심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건 귀찮아서나 게을러서가 아냐.”

“...”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서지.”


꽉 다물려있던 그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섞인 말이 삐져나왔다.


“아, 아니··· 나, 나는-!”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기다려주었지만, 선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굳이 찾는다면, 그녀 딴에도 변명거리 몇개 쯤은 있는 거겠지.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살았다고.

자신의 아빠가 그렇게 죽었다고.

자신의 부족이 그렇게 사라졌다고.

그리하여 자신은, 이 세가에 시종으로 들어온 몸이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이미 한번 죽어봤기에 안다.

시시하게 살고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변명을 멀리할 줄 알아야 함을.


그녀에게 준비되었을 그 어떤 변명도-

그녀가 품었을 소망을 꺾어야할 이유는 될 수 없음을.


나는 정녕 선아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대화를 마쳤다.


“네가, 이 세계의 당산나무에 빌었던 것이, 부디 아름답고 귀한 것이길.”

“...”


또르륵- 하고.

그녀의 뺨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어?’ 하고 놀래며 자신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릴 때,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견이 흠칫하는 사이, 선아의 손을 들어올렸다.


사슬 속에 묶여 있는 조그만 손.

나는 그 손바닥을 펼친 다음 생각해둔 물건을 쥐어주었다.


“이건···?”

“...”


그것은 나이프였다.

새까만 가죽으로된 칼집에 씌어진,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군용 나이프.


무기를 받아든 선아의 모습에 조견이 순간적으로 인상을 썼다.

하지만 딱히 제지는 없었다.

선아는 그 나이프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공자님··· 저는 드릴게 없는데요.”

“괜찮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나는 끝까지 침묵을 지켜주고 있는 무혼을 향해 말했다.


“가자, 무혼.”

“...어딜?”

“어디든.”


나의 말에 조견은 인상을 잔뜩 찌뿌리며 말했다.


“강공자... 네놈은 모르겠으나, 무혼이 여길 나가게 되면 탈옥이다.”

“그러면 나는 탈옥 교사죄가 되겠군.”

“...”

“그 벌을 받아야할 때가 온다면, 혁련세가의 문주에게 받겠다.”


조견은 내 말속에 담긴 뼈를 못느낄 위인이 아니다.

‘넌 아직 이곳의 문주가 아니다.’


이어서 나는 재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양이 너가 문주가 되면, 나 좀 봐주라... 애초에 무혼을 잡아들인 것도 나임을 감안해서.”

“돌아오실 장문인께, 부탁해줄게.”


우리 셋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함은 이미 느꼈을테지.


조견은 걸음을 떼는 무혼을 찡그리며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더는 참을 수 없겠다는 듯이 자세를 잡았다.


“내가··· 이렇게, 순순히 보내줄 줄 아느냐!”


살기등등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무혼은 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었다.

싸울 자세를 취한 조견을 향해, 똑같은 자세를 취한 자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형씨··· 우리 둘 문제는 둘끼리 풀자고.”

“재양··· 네 놈이, 매가 그립단 말이지?”

“아. 그 코흘리개 시절에나 통했던거? ···워낙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말이지.”


재앙에게는 무혼과 싸우느라 입었던 자신의 상처조차 안중에 없는 듯 했다.


어차피, 여기서부터는 저 녀석의 싸움인 것.

내가 참전의 의사를 비치지 않자, 무혼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승리를 확신하나?”

“그러길 바랄뿐이야··· 관여하지 말라잖냐.”


선아는 그때까지도 자신의 손에 쥐어진 나이프를 바라보고있었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은 내게, 무혼이 다시 물었다.


“갈 곳은 있나?”

“없어.”

“...야영엔 익숙한 편인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는 간단한 합의 후, 월담을 통해 세가를 빠져나갔다.


***


나는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이젠 좀 쉬어도 되겠지.”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었지만, 무혼은 정말 정신력이 강한 녀석이었다.

분명 옥에서 당한 상처로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닐텐데···


세가를 빠져나온 녀석은 산길도 아닌 험한 경사쪽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이곳까지 한참이나 기어올라왔다. 체감상 거의 2시간 정도 이어진 산행이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인적이 도통 느껴지지 않는 산마루.

무혼은 이곳 구석에 꺾어져있는 5그루의 소나무를 표식처럼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자신의 무릎을 집고서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녀석은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퍼져앉았다.


“여기 어디 찾아보면, 야영도구가 있을거야.”

“어디?”

“있을 테니까, 좀 찾아봐··· 내가 오래전에 가져다 둔거.”


실제로 있었다.

삽으로 움푹 패인 바닥 속에, 나뭇잎으로 뒤덮혀있는 야영장비가.


뭐.

야영장비라곤 하지만 거창한 건 아니었다.


바닥에 짚을 풀어 깔고, 나뭇가지 사이로는 밧줄을 엮는다.

그리곤 흡사 빨래 걸듯이 그 밧줄 위로 준비해둔 두터운 천을 쒸운다.


···이게 무혼이 말한 야영준비였다.


“...표정이 왜 그래?”

“이게 야영이면, 세가의 연못은 바다라 불러도 되겠군.”

“실없긴... 저쪽에, 소나무 쓰러진 데에 가봐.”

“왜?”

“생각이 조금 달라질 테니까.”


뭔소린가 싶어 그리로 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쓰러진 소나무 사이에는 흰 도자기 같은 병이 하나 놓여있었다.


“...뭔데 이거?”

“예전에, 노친네 서가에서 훔쳐온 거다. 가져와봐.”


나는 시키는대로 했다.

무혼은, 누운 자세 그대로 병을 받아들더니, 그 입구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 너도 한모금 해라.”

“...술이냐?”

“마셔봐.”


아니나 다를까, 술이었다.


“으음-?”


그런데 내가 알던 그런 술이 아니었다.


한모금 넘기는 순간, 정신이 약간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입을 뗐을 땐 방금 전의 맛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임을 알게되었다.


“뭐, 뭐야, 이거···”

“야영할 맛 나지? ···딴 건 몰라도, 우리 노친네가 입은 고급져서.”


답할 정신이 없는 나는, 무혼을 따라 그의 옆에 누웠다.

취기 때문이 아니라, 맛난 것을 삼킨 뒤의 황홀감 때문이었다.


더이상은 밤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시점.

동터오는 새벽은, 밤하늘을 조용히 밀어내며 내일의 빛을 옮겨오고 있었다.


그리고 술이 있었다.


그 하얀 술병이 나와 무혼 사이로 세번 쯤 오고갔을 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술 이름이 뭐야?”

“그··· 무슨 황주랬는데. 잘은 기억이 안난다.”

“...기가 막히네.”


꽤 큰 술병이었는데도, 술은 빠르게 동났다. 그 이름모를 술이 동날 때까지, 그 술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은 무혼의 인품을 높이 산다.


내 마음이 그러하다면, 온 세상이 나의 집일 수 있다.


내 마음이 그러하다면-

하늘이 지붕이고 바닥이 침대.


나는 대(大)자로 몸을 뻗은 채로, 둥둥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말했다.


“혹시, 기한이 있나?"

"..."

"···나야 얼핏 봤었지만, 독기가 심해보이던데.”


무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곳 섬서에서는 3개월. 양주에서는 1개월.”

“...뭐가 그래?”

“두 의원이 다르게 이야기 하더라고.”


음.

듣고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산석경의 무공을 얻기위해 재양을 죽이려 들던 무혼의 심정이.


그 누구라도-

의사에게 '짧으면 1개월'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았다면, 그 해독제를 얻는 것에 눈이 뒤집힐 수 밖에 없다. 당사자로썬 목숨이 걸린 일일테니.


“너로썬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군··· 비싸게 불러도 되겠는데.”

“걱정마라. 술 한병으로 떼울 생각은 없으니까.”


이에 무혼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말했다.


“그래··· 원하는 게 있나?”


원하는 거라.

물론 있다.


‘이대로는 암영문의 무학의 독기로 인해,

한달 안에 죽게 될지도 모를 녀석에게,

그 해독제를 구하는 것을 도와주는 대가로 받고싶은 것’에 대해-


나는 이곳을 오르면서 이미 생각을 해두었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있어.”

“그래? ···내가 줄 수 있는 건가?”

“물론이야.”

“잘됐군.”


무혼은 그것이 뭐냐고 묻지도 않았다.

녀석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버렸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신호를 주면, 암영문 내부에 심어둔 놈에게서도 신호가 올거야.”

“무슨 신호인데?”

“우리 노친네한테 호위무사가 한 명 있는데... 그 놈이, 자리를 비웠다는 신호다. 그 놈이 자리를 비운 순간, 나는 바로 잠입할 것이다.”


나는 잠시 침음하다 물었다.


“...그 호위무사라는 자도, 까다로운 자인가?”


이에 무혼은 긴 한숨과 함께 답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친네보다 더 까다로울 거다.”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새도우
    작성일
    23.12.30 13:58
    No. 1

    실재로 는 실제로 로, 지례 는 지레 로
    딱아내릴 때 는 닦아 내릴 때, 때는 은 떼는 으로, 코흘리게 는 코흘리개 로
    꺽어져있는 은 꺾어져 있는 으로, 땠을 땐 는 뗐을 땐 으로
    절 때 는 절대 로, 때울 은 떼울 로
    건필하기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3 나의천국
    작성일
    23.12.30 15:59
    No. 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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