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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최근연재일 :
2024.01.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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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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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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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4

DUMMY

굳이 그의 부성애에 대해 지적해주고 싶진 않다.

다만 그의 말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아보였다.


“그대는 이미 조견과 관계가 구축되어있는 거 아니었소?”

“그래서?”

“무혼은 지금 세가의 옥에 갇혀 있지 않소··· 내 협력을 바랄 것도 없이, 갇혀있는 자를 죽일 방법은 많을텐데?”


당연히 할 수 있는 지적이다.

이미 잡아놓은 자를 죽이는데에는, 음식이나 물에 독을 탄다거나 하는 식의 수고조차 필요없다.


그냥 음식이나 물을 끊어버리면 된다.

그러면 그는 감옥 바닥의 흙이나 파먹다가 죽게되리라.


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혼을 얕잡아보는군.”

“...”

“놈은 지금 그 세가의 옥에 암영귀혼진(暗影鬼魂陣)을 펼쳐두었다··· 그래서 그곳은 지금 조견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사지(死地)가 되어있지.”

“...그게 뭡니까?”


나의 질문에 암영문의 장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등 뒤의 매월에게서 들려왔다.


“암영문의 궁극의 방어진이라고 불리는 비술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 일대에 상상의 공간을 구현해 버리는 것이지요.”

“상상의 공간을 구현한다구요?”

“네.”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암영문이 그 악행속에서도 본거지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니까요.”


재미있게도, 노인은 매월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든 형상은, 결국 이 세상에 드리워진 그림자 같은 것이다.”

“...”

“하여 우리의 무학은, 그 그림자가 드리우기 이전의 세상을 품는 것.”


순간, 나는 권총을 꺼내들뻔 했다.

거짓말처럼, 노인의 곁으로 또다른 복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


심지어 한 명이 아니었다.


양손에 칼을 든 사내가.

커다란 활을 든 사내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철퇴를 짚은 사내가.


거기다 그 하나하나는 그저 서있는 병풍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 각각은 낮은 호흡을 유지한 채, 엄중한 눈초리로 우리 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암영문의 장문인은 그들 속에서 말을 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무혼을 꺾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그 한번의 경험으로 우리의 무학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네놈은 죽게될 것이다.”


긴장감 속에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놈의 무학 타령은 여기저기서 지겹게도 튀어나온다고.


그게 이 시대의 가치관이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이 시점에 그리 중요한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노인은 이 긴 대화의 종지부를 찍듯이 말했다.


“긴말은 필요없을 테지. 난 세가의 옥으로 들어가 무혼을 죽일 것이다. 함께 할텐가.”

“...조견과는 합의가 된 것이오?”

“오늘 만나서 할 생각이다. 혹 조견 놈이 거절해도 잠입할 뿐. 바뀔 것은 없다.”

“...”

“네놈의 바램은 무엇이냐?”


바램이라.

잠시 생각해본 나는, 솔직한 속셈을 오픈했다.


“나는 이 세가가 조견의 손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오.“

“왜지?”

“그는 재양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오.”


만약 몰랐던 사항이라면 분명 그 얼굴에 표시될 이야기.

하지만 노인의 표정은 잘 읽히지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너와 재양은, 아직 짧은 우정으로 알고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짧은 우정이 내가 이 세계에서 쌓은 유일한 우정이기도 하다.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오?”

“...세가의 차기 장문인을 재양으로 지지해달란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노인의 고개는 가로저어졌다.


“받아들일 수 없다··· 다른 조건을 제시해보라.”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소.”

"그런가."


이에 그가 손을 크게 휘두르자, 그를 제외한 모든 복면들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이제 내 앞에는 허리가 뒤틀려있는 노인 하나 뿐.

처음에 그와 함께 이곳 창문을 깨고 들어왔던 두 사람도, 그가 ‘만들어낸’ 병사인 모양이었다.


노인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결행일은 내일 저녁이다. 그때까지 다른 조건을 생각해보도록 하라.”

“...알겠소.”

“내일 중에 다시 찾아올테니, 이 객잔에 머무르고 있도록.”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매월이 말했다.


“손님. 객잔의 입구는 저쪽입니다만?”

“내가 손님이 아니라고 말한건 네 년이다.”


암영문의 문주는 대답 대신 깨진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매월은 ‘에게게, 삐지셨나?’ 하고 중얼거렸고, 나는 눈 앞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표창이 날아왔었던 자리였다.

그곳엔 표창은 없고, 표창이 꽂혔던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노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짧게 되돌아본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아야.”

“네. 공자님.”

“일전에 너, 옥에서 무혼을 만났다고 했었지? 그··· 죄수가 마실 물을 떠주는 심부름을 하고 왔댔던가.”

“그러합니다.”

“그 심부름은 누가 시킨거지?”


이에 선아는 잠깐 머뭇거리다 말했다.


“엄밀히는, 제게 주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옥을 돌보던 여종이 곤란해하기에, 제가 대신 도왔던 것입니다.”

“왜 곤란해 하고 있었는데?”

“무혼 공자가 갇힌 후, 옥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돌았으니까요.”

“어떤 소문?”

“무혼 공자와 눈을 마주치면,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사실이었냐고 묻진 않았다.

정작 선아는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선아는 의외의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단언컨데, 설령 조견 공자님이나 재양 공자님이 그곳에 가셨다 하더라도, 빠져나오진 못하셨을 겁니다.”

“음? ···너는 돌아왔지 않느냐.”

“저니까 돌아올 수 있었을 겁니다.”


매월도 선아를 바라보았다.

이에 선아는, 박살난 창쪽을 바라보다 매월을 향해 말했다.


“여소협. 암영문주님께선 완전히 떠나셨습니까?”

“응··· 이젠 엿듣는 사람 없어.”


이에 선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내게 말했다.


“공자님. 저는 묘족의 마지막 후손입니다.”

“...묘족?”

“네... 부모님께 전해 듣기로, 저희는 천인(天人)이 남긴 발자국을 읽고, 또 그 목소리를 듣는 부족이라 하였습니다.”


천인이라.


21세기 말로 번역하면 하느님 쯤 되는 것일까.

여러모로 무당이 적성인 부족 같았다.


나는 조용히 되물었다.


“음··· 그래서?”

“실제로 저는, 천인으로부터 비롯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구분할 줄 압니다. 그렇기에 제게는, 암영문의 비술이 통하지 않지요. 그런 연유로 저는, 무혼 공자가 짜낸 진(陣)에도 갇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아까전에 선아가 ‘풋-’하고 웃어보였던 것이 기억났다.

나의 출신을 묻는 암영문주의 질문에, 내가 ‘도깨비 나라’라고 답했을 때였다.


어쩌면 그녀는 그때-

암영문주가 펼쳐보인 술수에, 전혀 긴장감을 못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나?”

“이제 무혼 공자와 강공자님. 그리고 저기 여소협만 아는 사실이옵니다.”


이에 더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왜지?”

“...?”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지?”


선아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무혼이야, 어쩌면 자신의 술수가 파훼되는 모습을 보며 네 정체를 깨닳았을 지도 모르지. 그 외에 나나 저기 매월은, 네가 말해줌으로 써 알게된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너는 그 사실을 이 날까지 쭈욱 숨기며 살아왔다는 뜻 아니냐?"

"맞습니다."

"그런 비밀을, 왜 내게는 공개한 것이냐?”


선아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묘족의 말 중엔, ‘운명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예지(豫知)의 능력이, 설령 스스로의 죽음이나 부족의 멸망을 알려온다 해도 이를 피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뭐···?”

“실제로 저희 부족은 그렇게 멸망해갔지요.”


이야기가 좀 무겁게 느껴졌다.

생각했던 거 보다는.


그런데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는 더욱 무거웠다.


“저희 어머니는 끊어질 다리 위를 건너다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패배가 예견된 적에게 저항하다 돌아가셨습니다.”

“...”

“그리하여 저는, 제 부모님의 죽음을 사고사나 전사(戰死)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자살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기묘하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부모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지하고’서도 피하지 않은 거라면, 이는 자살이라고 해야하리라.


그 입심좋던 매월조차도 입을 다문 가운데, 선아가 말을 이었다.


“아까전에 끊어졌던 대화가 있었지요.”


암영문주의 등장에 선아의 이야기까지.

하도 갑작스러운 것들이 많아 선뜩 기억나지 않았다.


“그··· 뭐였지?”

“공자님을 뫼시기로 한날 밤, 제가 자미두수(紫微斗數)를 읽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 그래··· 별점.”

“전 그날, 밤하늘의 별을 통해 새로운 기연이 생길 것임을 예지하고 있었습니다.”

“...도깨비랑 만난다고 적혀있더냐?”


내 농담에, 선아는 살풋 웃곤 말했다.


“두 신성(神星)을 사이에 둔 흉성(凶星).”

“...”

“이는 자미두수로, ‘운명과 싸우는 자’를 말합니다.”


이어 선아는 내 가슴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아마도,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껴보려는 의도인 듯 했다.


그녀는 내 가슴 위에 올려진 자신의 작은 손을 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공자님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선아의 등 뒤에서, 매월은 어딘지 놀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매월관의 정문이 열렸다.


“어디, 초계회를 판막음한 강공자의 술을 한 번 받아보실까?”


재양이었다.

호기롭게 매월관 안으로 들어선 그는, 파손된 창문을 보며 한번 흠짓하더니, 나와 선아를 보며 또 한번 흠짓했다.


“뭐, 뭐야··· 다들 그렇게 서서는···”

“...일찍도 왔다.”

“여기,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 있긴 있지.

···그런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려나.


***


늦은 밤.


재양은 세가의 담벼락 쪽을 향해 눈짓하며 말했다.


“넘을 수 있겠어?”

“응.”


재양이 먼저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고, 나는 뒤따라 달려선 담벼락의 처마에 매달렸다가 올라섰다. 어차피 세가의 담벼락은 성벽같은 것이 아니다. 이는 방어의 목적보다는 그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세워진 것.


담벼락에 올라선 재양은, 세가를 쭈욱 둘러보다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 세가의 옥이야.”

“응, 보여···”


이윽고 월담을 마친 우리는 주위를 신경쓰며 걸어갔다.

늦은 시간인 탓에 세가의 정원을 지나는 이는 우리 둘 뿐.


재양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정말 암영문주가 그렇게 말한 거 맞아?”

“응. 안믿겨?”

“그··· 네 말을 못믿겠다는 건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의외라서··· 형님이 왜 그 자와 손을 잡은 거지?”

“말했잖아··· 너희 형은 지금 세가 내에서 너를 축출하려 드는 거라고.”

“아니, 그건 이해했어.”


그걸 이해했으면 다 이해한거 아닌가?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럼?”

“왜 하필 ‘암영문’이랑 손을 잡았냐는 거야··· 꼭 암영문이 아니고서도 형님이 손잡을 수 있는 자들은 많을텐데.”

“그래?”

“우리 형제들 중에서도 특히나 둘째 형은, 외부 활동이 잦고 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굳이 암영문이랑 손잡을 이유는 뭐냔 말이지.”


어느덧 재양과 나는 세가의 옥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옥지기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엇! 강공자님 아니십니까. 무투회의 일은 전해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재양 도련님도 계셨군요.”

“그래··· 오늘은 면회가 가능한가.”


내 말에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견 도련님부터 강공자님의 면회를 허락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었습니다.”

“나도 동행할걸세.”

“...도련님두요?”

“그래.”


순간, 옥지기는 자신이 재양의 면회까지를 막을 권한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듯 했다. 이에 재양이 당당하게 그를 바라보자, 옥지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면회실이 따로 없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래.”


문지기는 품속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더니, 입구 문을 열었다.

철컹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아래로는, 횃불이 이어진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가볼까?”

“...그래.”


나는 숨을 작게 들이마신 후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부터였다.

암영문의 문주가 말했던 그 암영귀혼진이란 것은.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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