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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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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외지
작품등록일 :
2020.11.07 16:18
최근연재일 :
2020.12.04 06:0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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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
추천수 :
36
글자수 :
123,237

작성
20.12.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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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화. 자원구 신부 -2

DUMMY

21.



주여. 악이 그늘진 거리와 골목 구석마다 도사리고 있나니, 주를 섬기는 자를 방패로 쓰시어 고통받는 자들을 지키게 하소서.

악에서 구하소서······


그날은 일요일 늦은 오후였다.

지정된 거처는 원룸촌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을 열어보니 몇 장의 고지서와 함께 지시서가 도착해있었다.

허접한 종이봉투를 뜯어보니 상세한 수사진척도를 알리는 자료와 함께 여자들의 사진이 동봉되어있었다.


‘사건이 들어왔구나······’


원구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진 속 여자들은 전부 젊었다. 죄 없이 실종된 사람들이었다. 대학생, 아니면 직장인. 범죄자들은 대개 자신보다 약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범죄는 자신에게 불만족스런 놈들이나 자행하는 법.

간악한 놈들.

원구는 자료를 들춰본다.

범행시점과 장소가 제각기 달랐다. 심지어 서울과 강원 지역을 오가며 벌어졌다. 아마도 연쇄실종사건으로 묶을 치명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윗선에서도 몰랐을 것이다.


인간뼈 토템.


실종사건들을 하나로 묶어줄 유일한 증거였다. 별개의 현장에서 사탄숭배자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뼈 토템에서 실종자들의 DNA가 발견된 것이다.

자료의 주석에는 암호를 위해 넘버링과 페이지가 함께 달려있었다.

원구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찾아서 뽑았다. [주술학 저서 3권]이라는 이름의 책이었는데 다소 얇은 편이었다.

정해진 페이지를 펼치자 ‘인간뼈 토템’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원구는 내용을 따라 읽는다.


“인간뼈로 만들어진 토템은 가장 강력한 1급 주구(呪具) 중 하나이다. 기능에 따른 3가지 분류인 증식(增殖)과 제액(除厄), 저주 모두 기능할 수 있으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은 무시하고 쭉 따라 읽던 중, 문제의 대목이 나타났다.

원구는 미간을 찌푸린다.


“······그 재료는 최소 3일간 고문 받아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인간의 뼈이다. 고통의 강도가 심하고, 피고문자의 저항이 심할수록 효과가 커진다. 한 명의 뼈보다 여러 명의 뼈를 엮으면 더 높은 위력의 주구가 된다······”


원구는 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으나 정보가 더 필요했다.

억지로 읽고 나니 가벼운 현기증이 돌 지경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원구는 억지로 분노를 가라앉히며 담배를 마저 태웠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직속상관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서신을 받아서 읽은 구마사제 자원구는 즉시 이 사건을 해결할 성스러운 의무가 부여된다. 이는 교황의 명령이며 천주의 뜻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악인을 처단하고 죄 없는 영혼들의 복수를 대행하라.’


원구는 서신을 읽은 후에 묵주기도를 드린 후에 성호를 그었다.

마지막 할 일은 자료를 추린 후에 흔적을 지워야 하는 것이었다.

자원구는 재떨이에 지포라이터 연료를 붓고 서신을 불태웠다. 필요한 짐을 싼 후에 문을 열고 나오자, 자신과 똑같은, 검은 옷의 사제들 두 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녕하십니까 자원구 신부님.”

“보조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원구는 가볍게 목례만 후 자리를 떠났다. 두 사제는 자연스럽게 원룸으로 들어가 원구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



연쇄실종사건은 검경에서도 아는 이가 없는 극비였다. 종교기구와가 적법한 수사기구보다 연쇄실종을 먼저 파악했고, 그들과의 결탁이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됐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철저하게 극비취급을 했는지, 전담수사팀이 결성된게 알게지지 않아 신고된 실종사건들을 수사하는 형사들이 배정되기까지 했다.

때문에 원구가 전담수사팀과 처음 접촉한 장소또한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폐쇄된 해변이었다.

파도가 철썩이는 모래사장 위에서 멍하니 서있는데, 한 명의 경찰이 다가왔다.


“자원구 신부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죄송, 죄송. 많이 기다리셨죠?”

“그냥 뭐 30분 정도 명상 좀 했습니다.”

“여기 그 문제를 일으킨 물건입니다.”


형사는 조심스럽게 금색 자수가 들어간 천으로 둘둘 만 토템을 건넨다. 주구가 내뿜는 저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게 발견된 장소는 삼척시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일가족이 몰살당했습니다. 아버지가 미쳐서 처자식을 전부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토템 때문입니다. 저주를 받아 광기를 일으킨 거죠.”

“······무시무시하네요. 실제로 믿진 못하겠는데.”

“그런 것치곤 열어보지 않고 잘 가지고 오셨네요.”


원구는 웃으며 품에서 향수병을 하나 꺼낸다. 안에 든 건 향수가 아니라 성수였다. 천을 슬쩍 덜춰보자 고작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의 토템이 있었다.


“······엄청 작네? 큰 건 사람 머리만 한데.”

“그 작은 게 그 사단을 낸다는 겁니까?”


원구는 토템에 성수를 연신 뿌리면서 말한다.


“인간뼈 토템은 인간의 원혼을 담아 가공한 겁니다. 그만큼 이 작은 토템에 아주 강한 원혼이 서렸단 거겠죠.”


원구는 그 자리에서 토템에 기도를 드린다. 뭔가 주문을 읊기도 하고, 성가를 부르기도 했다.

길고 번잡스러운 의식이 끝난 후에야 성호를 그리던 원구는 인간뼈 토템을 맨 손으로 만졌다.


“이제 이 물건이 사람을 죽이진 못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경찰이 고개를 숙인다. 원구도 자연스럽게 함께 숙인다.

고개를 들자 원구의 눈앞엔 낡은 스마트폰이 들이밀어졌다.


“받으세요. 수사팀과 통화 가능한 휴대폰입니다. 저희와 연락할 때 말곤 다른 기능은 절대 쓰시면 안 됩니다.”

“게임도 못 돌릴 거 같네요.”

“중고폰이니까요. 공유할 정보가 생기면 통화를 하도록 합시다.”

“접촉장소는 또 여깁니까? 여긴 좀 거추장스러운데.”

“그때그때 다를 겁니다. 장소가바뀌면 연락 드리죠. 그럼 수고하십쇼.”

“수고하세요.”


경찰이 먼저 해변가를 떠나려다 주춤했다. 뒤를 돌아 원구에게 물었다.


“신부님은 이런 사건이 처음은 아니죠?”

“네, 뭐.”

“그럼 한 가지만 물읍시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알게 된 게 어떻게 진실입니까? 너무 말도 안 되는데.”


형사는 신실한 편이 아닌듯 보였다.

원구는 심드렁한 말투로 대꾸했다.


“······믿고 싶은대로 믿으십시오. 미친 놈들이 소꿉놀이 하는 걸로 생각하셔도 괜찮고, 모든 게 진실이라고 믿어도 상관없습니다.”


원구의 대답이 좀 의외였는지 경찰이 갸웃거린다.

신부에게 기대되는 이미지가 어떤 건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에 응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확고한 사실은 어떤 악인이 사람을 죽여 조각으로 만들고 있단 것뿐입니다. 명확하지요.”

“그렇지요.”


경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원구는 경찰이 사라지고 나서야 중고폰과 토템을 옷 안쪽에 넣은 후에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



수사는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수사팀은 서울과 강원 일대의 모든 실종사건을 재수사하며 범인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원구의 몫은 인간뼈 토템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분별하는 것이었다. 정체불명의 사체를 접하거나 광증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수감된 자들과 인터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증거불충분일 뿐인 사건이거나, 완전 별개의 사건처럼 보였다.

원구는 수사의 범위를 늘리기로 했다. 서울과 강원 일대에서 일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뼈 토템의 목적이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기 위함일까?


‘아니야, 그럴 리 없다. 1급 주구를 만들려면 그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고, 그만한 노력을 할만한 이유가 있겠지.’


때문에 원구는 이 사건이 단독범의 범행이 아닐 거라 판단했다.

대개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탄숭배자들이 주구를 대량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단서는 토템의 제작방법을 입수한 경로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인간뼈 토템에 대한 지식이 전승되는 경로는 전무하다.

한국의 특성상 민속신앙에 의한 주술행위는 흔하게 발견되지만, 교황청 비밀문서고에 기록될 만큼 강력한 주구는 등장한 바가 없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정보가 들어왔거나, 거물급 인물이 연관됐거나, 현실적으론 딥웹(Deep Web) 등을 통해 입수했겠지.

그날부터 원구는 인터넷을 뒤지며 인간뼈 토템의 정보가 어떻게 국내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무곡군에서 토템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많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



무곡군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낀 감정은 ‘서늘하다’였다.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흉측하게 굽은 소나무가 많았다.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기에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제대로 적중했다.


“여깁니다. 신부님.”


전담수사팀의 형사는 현장으로 원구를 부른다.


“토템은 어디에 있습니까?”

“장롱 안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건드린 사람이 있습니까?”

“신고 한 마을주민이 손을 댔다더군요.”

“그래요?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게······지금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정신병이 일어난 터라.”

“이런······”


원구는 고개를 내저으며 시신을 덮고 있던 흰 천을 거뒀다.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번 피해자는 온몸에 자해한 흔적이 있군요. 사인은요?”

“과다출혈 같다더군요. 무엇인가에 저항한 흔적이 있는데 환각이라도 본 거 같습니다.”


원구는 형사의 말대로, 토템이 숨겨져있었다는 장롱에 다가갔다. 화려한 자개장이었는데, 나프탈렌 냄새가 심하게 났다.

장롱문을 열어보니 ‘인간뼈 토템’이 나무재질과 융합되어 박혀있었다.


“토템을 제거하겠습니다.”


원구는 축사를 한 후에 토템을 뽑아냈다. 원구는 수거한 토템을 수의 안쪽에 숨긴다.

형사는 원구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벌써 4개째군요.”

“그러게요. 대체 몇 개가 더 남았을지······용의자는 좁혀졌나요?”


형사가 고개를 내젓는다.


“신부님의 추측대로 무곡군의 주민들과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있는데 마땅치 않네요. 교통 CCTV도 최근에야 수리하고 있고.”

“더 기다려야한단 소리군요.”


원구는 한숨을 푹 내쉬자 형사가 두 손을 들어올린다.


“저희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원을 풀어서 토템을 먼저 찾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압니다. 알지요.”


경찰의 무능함이야 이미 질렸다. 원구는 고개를 돌려 장롱 안쪽을 바라본다.

토템이 융합되어있던 장롱 내부는 기괴하게 뒤틀리고 왜곡되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부분이 생기거나, 토템이 박혀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물결이 생겼다.

마치 불타서 녹아내린 것 같다.


“······”


원구는 그 순간 역겨움을 느꼈다.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며 현장을 빠져나가 풀숲에서 구토를 했다.


"커, 커헉!"


원구가 갑자기 속을 비워내자 형사가 쫓아와 등을 두드려줬다.


“신부님 괜찮으십니까? 비위 좋은 편인 줄 알았는데 한 박자 느리신가?”

“······그런 거 아닙니다.”


원구는 입 속의 잔여물을 뱉으면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 떠올랐다. 흉측하게 녹아내린 철근과 구조물들은 원구에게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불길이 치솟는 고아원. 앳된 얼굴의 원구가 언덕을 달려 올라간다. 바람을 타고 잿가루와 불씨가 휘날리고 있었다.


“안돼! 안 된다고!”


화마가 뒤덮은 고아원 안으로 들어가려던 걸 수녀님들이 붙잡는다. 원구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울부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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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자원구 신부 -2 20.12.03 39 1 12쪽
20 20화. 자원구 신부 -1 20.12.02 55 1 12쪽
19 19화. 대악마 -3 20.12.01 53 1 12쪽
18 18화. 대악마 -2 20.11.30 52 1 14쪽
17 17화. 대악마 -1 20.11.27 64 1 12쪽
16 16화. 붉은 범 -4 20.11.25 64 1 12쪽
15 15화. 붉은 범 -3 20.11.24 53 1 14쪽
14 14화. 붉은 범 -2 20.11.24 140 1 11쪽
13 13화. 붉은 범 -1 20.11.23 62 1 11쪽
12 12화. 돌발상황 20.11.20 65 2 12쪽
11 11화. 범을 보았다 -2 20.11.19 90 2 12쪽
10 10화. 범을 보았다 20.11.18 88 3 13쪽
9 9화. 범인을 보았다 +2 20.11.17 78 2 12쪽
8 8화. 복선 -1 20.11.16 78 1 12쪽
7 7화. 엑소시스트 -2 20.11.14 80 1 12쪽
6 6화. 엑소시스트 -1 20.11.13 88 1 13쪽
5 5화. 축사의 귀신 -3 20.11.12 96 2 12쪽
4 4화. 축사의 귀신 -2 20.11.11 94 0 12쪽
3 3화. 축사의 귀신 -1 20.11.11 104 2 12쪽
2 2화. 나는 상태창이 보인다 +2 20.11.09 137 6 14쪽
1 1화. 나는 상태창이 보인다 +2 20.11.09 21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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