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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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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작품등록일 :
2020.11.07 16:18
최근연재일 :
2020.12.04 06:0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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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
추천수 :
36
글자수 :
123,237

작성
20.11.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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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화. 붉은 범 -4

DUMMY

16.



“이거 아주 상황이 다이나믹하게 굴러가는구만.”


원구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멧돼지 제단의 받침목에 묶여있었다. 원구가 가진 엽총까지 뺏긴 상황이었다.


‘하느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러다 선교하겠는데요.’


하늘에서 천사라도 내려와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척 보기에도 무속신앙에 심취한 집단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붉은 범’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구가 깊은 생각에 빠진 동안, 옆에 나란히 묶인 곽태구가 마을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옘비영. 덕춘 어머니 저한테 왜 이런데! 나 몰라요? 곽태구요 곽태구!”


곽태구는 제단에 모인 노인들의 얼굴과 이름도 알고 있었다. 마을 노인들의 잡일을 대신 하다 보니 드문드문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건 노인들도 마찬가진지라 서로 수근거렸다.


“그래도 태구 네는 여기서 산지 꽤 됐는데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네?”

“태구 네 없으면 축사 지붕 무너졌을 때 누가 대신 수리해준다고.”

“씨끄르와! 그 입 다물지 못하네?”


아까의 제사장이 나타나 노인들의 대화를 막았다. 제사장의 손에는 곽태구에게서 빼앗은 엽총이 들려있었다.


“신령님께서 외지인들 때문에 노하셨는디 자네들은 일 생각 밖에 안하나? 전부 물려 죽고 싶네?”


제사장의 일갈에 노인들은 입을 다문다. 곽태구는 억울해 울먹인다.


“말자 누님, 제가 무곡군에서 산지가 얼마인데 왜 저까지 외지인으로 몰아유.”


그 말을 들은 제사장은 곽태구 앞에 와서 말한다.


“자네는 우리와 피가 달라. 피는 냄새가 나고, 들짐승과 벌레들은 그 냄새를 맡고 몰려들어.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은데 외지인들이 몰려드니 돼지역병도 돌고, 신목도 불타고, 신령님도 노하신 거 아니네? 전부 자네 같은 외지인들의 죄야 죄.”


제사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른 노인에게 턱짓을 한다. 그 노인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다. 발버둥치며 저항하는 곽태구의 손바닥을 살짝 그어 피를 낸다.


“외지인이 몰고 온 악한 기운은 외지인이 가져가야 옳컷지?”


제사장은 원구에게도 피를 내기 위해 그의 손을 잡아들었다. 그때 원구가 두 눈을 얇게 뜨고 말한다.


“당신들은 인신공양을 하고 있었군.”

“신부님은 우릴 너무 원망마소. 살코주거나 잡어 먹는 건 신령님이 정하는 일이니까네. ‘사냥제’가 원래 그렇소.”

“사냥제?”

“신령님이 공물의 상태가 매해서 뛰쳐나오면 ‘사냥제’가 시작이지.”

“그럼 당신들은 그 피부가 붉은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는 건가? 고작 피부병 걸린 고양이 따위를?”

“신부님이 천주를 괴시면 뭐라도 주는가? 신령님을 깔보지 말라.”


제사장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금 제를 올리길 재촉했다. 그러자 노인들이 제단을 둘러싸고 바닥에 멧돼지피를 뿌리며 장구를 두드린다.


‘이거 단단히 잘못됐네. 붉은 범을 피하려 했더니 아예 적진에 들어온 셈이구만.’


원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렁이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도망치고 없다. 곽태구는 옆에서 동정이라도 살려고 동네 노인들에게 말을 걸고 있지만 전부 무시당한다.


‘단단한 새끼줄이라 끊을 수도 없고, 태워서 끊자니 지포 라이터도 다 썼고, 이거 참 골치 아프구만.’


원구는 탈출을 위해 이래저래 시도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원구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릴 뿐이었다.


‘하느님,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당신의 뜻을 위해 더 나아가야 한다면 천사를 내리시어 이 새끼줄을 끊어주소서.’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노인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원구는 살짝 한 쪽 눈을 떠봤다.기도의 내용처럼 천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라, 붉은 범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 제단 앞으로 뛰어왔던 것이었다.

크르르릉······

붉은 범은 낮고 음산한 울음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돌았다. 제사장과 노인들은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거의 실신하듯 울고 있었다.


‘에라이, 기도 내용을 바꿔야겠구만.’


원구는 식은 땀을 흘리며 다른 기도를 읊어댔다. 다니엘의 사자굴처럼 붉은 범의 입을 막아주기를.


“······아아, 신령님-!!”


제사장은 붉은 범을 눈앞에서 목격하자 감격한 얼굴이었다. 주름이 가득 찬 얼굴에 환희가 가득하다.


“신령님! 즈네가 당신을 불러냈소! 부디 즈네가 마련한 제물을 받으시라우!”


붉은 범은 멧돼지 제단과 묶여있는 두 사람을 슥 훑어보곤 제사장에게 다가간다.

제사장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 붉은 범의 음산한 음성을 듣는다.


“······불경해, 불경하다······”

“예?”

“······병든 돼지는 싫어. 다른 자의 권세도 싫어······”

“무, 무슨 말씀이신지······”


어느새 겁에 질린 노인들이 안개 속으로 도망치고, 오직 제사장만이 붉은 범 앞에 있었다.

붉은 범은 제사장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도 다른 노인들처럼 달아나······”

“내, 내튀라고요?”

“······너희가 날 불러냈다고? 내가직접 너흴 찾아온 거다. 킥킥킥······”


붉은 범이 활짝 웃는다.

마치 빨간 마스크처럼 쭉 입이 쭉 찢어졌다. 그 모습을 본 제사장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붉은 범은 키득거리더니 제단에 묶인 원구와 곽태구에게 다가온다. 곽태구는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그와는 달리, 전부 지켜보고 있던 원구가 붉은 범을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 구면이지?”

“······킥킥킥, 내가 너흴 놓친 줄 알았지?······”

“말 잘하네. 평범한 들짐승인 줄 알았는데.”

“······인간 주제에 용감해. 역겨운 천주교도놈······”


붉은 범은 징그럽게 눈웃음을 짓는다. 길쭉한 혀를 내밀어 콧잔등을 핥는다.


“······어떻게 찢어 죽여줄까? 토막내서 교회 지붕에 걸어줄게······”

“넌 못해.”


원구는 자신만만하게 내질렀다. 사실 근거는 없다. 그래도 원구의 뻔뻔함이 어느 정도 먹히긴 했는지, 붉은 범이 발톱을 꺼내진 않았다.


“······무슨 생각이야?······”

“내 경험상 너 같은 녀석들은 날 쉽게 공격하지 못하더라고. 내 직업 때문인가봐.”

“······넌 네가 나보다 강한 거 같아?······”

“난 하느님의 종이자 검이다. 너같은 미물을 두려워하지 않아. 왠줄 알아?”

“······??······”


원구가 묶인 두 손으로 중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하느님의 권세와 비교하면 넌 X밥이거든.”

“······킥킥킥킥······”


원구의 말에 붉은 범이 크게 웃는다. 어처구니 없단 듯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군다.

원구는 붉은 범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다.


‘이게 그 불쾌한 골짜기 효과란 건가? 인간의 행동을 따라하니 기분 나쁜데.’


붉은 범은 바닥을 뒹굴다가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로 원구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바꿔, 어린 여자애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신부님, 저 커서 돈 많이 벌 거예요. 기도해주세요~······”

“뭐?”


원구의 눈 밑이 씰룩거린다.


“너 뭐라고 했냐?”


원구는 유달리 예민하게 반응했다. 붉은 범은 그걸 원했는지 눈웃음을 짓는다.


“······신부님, 붕어빵 하나만 사주면 안 돼요?······”

“······!!”


원구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잠이 간신히 들 때면, 어김없이 꿈에서 나타나 자신의 신부복을 붙잡고 흔들어대던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그 꿈을 꿀 때면, 꿈임을 자각하게 되고 곧장 깨게 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된 잠을 못 잔지 오래 됐다.

지독하리만큼 원구의 내면을 갉아먹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어째서 저 붉은 범이 내고 있지?


“······킥킥킥킥······”


붉은 범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한다.


“내 앞에서 함부로 나대지 마라. 미약하고 오만한 성직자여. 너 같은 자들을 몇 만 명이고 직접 찢어 죽였으니.”


붉은 범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새끼줄을 끊었다. 원구가 당황한 사이, 붉은 범이 웃으며 말했다.


“멀리 달아나라 성직자와 겁에 질린 잡졸아. 안개 속에서 뛰고 넘어지며 멀리 날아나 봐라. 내가 너희 뒤를 쫓아 이윽고 산산조각 내리니.”



****



세종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걸을만한 길을 발견해 그 위를 걷고 있었지만 산 밖으로 나올 순 없었다.


“대체 이 놈의 밤은 언제 지나가는 거야. 기온도 너무 낮은데.”


세종은 입김을 불며 팔짱을 꼈다. 겨드랑이를 가리니 조금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돌연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세종은 상태창을 보는 눈으로 안개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누군가의 상태창이 보였다.


『인물 : 마을노인C』

【체력상태창 : 펼치기】

【정신상태창 : 펼치기】

상태 : 《공포》

성향 : 질서/중립


마을의 노인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은 잔뜩 겁에 질려선 세종을 지나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기에 《공포》상태였던 거지?”


세종은 노인이 달려온 방향에서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단 걸 깨달았다.

노인이 가로질러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자 웬 민가가 보였다.


“이런 산골에 집이 있었네.”


세종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안쪽을 살펴보러 울타리에 다가섰다.


“으악 깜짝이야!”


뱀들이 울타리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뱀들이 세종을 발견하자 ‘쉬익’소리를 내며 고개를 치켜든다.


‘이 모든 상황과 뱀들이 연관이 있는 건가? 그나저나 여기서 뭐하던 거지? 저 멧돼지는 뭐고?’


세종은 조심스럽게 입구를 통해 민가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멧돼지가 잔뜩 꾸며진 채 제단 위에 있었다.

그리고 제단의 버팀목엔 끊어진 새끼줄이 늘어져있었다.


“누군가 묶여있었나? 하지만 지금은 탈출한 거 같은데······”


이미 사건이 지나간 후 같았다. 세종은 현장에 남아 주위를 탐색했다.


“여기서 무슨 제사라도 지낸 거 같네. 무당은 여기에 없었을 텐데······”


세종은 혹시나 싶어서 창호문을 하나씩 열어봤다. 쿱쿱하고 오래된 음식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났다.

안을 살펴보니 많이 이상했다. 보통 산속 민가는 한 가구만 사는 게 보통이겠지만, 식기구가 지나치게 많았다.

반대로 이불이나 베개 같은 침구류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공동생활의 흔적은 보이는데 잠은 여기서 자지 않은 거 같고, 그럼 이 집은 무슨 목적인 거지?”


여기서 단체로 식사를 하고 잠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한 거겠지. 그런 시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어느 창호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응? 자물쇠로 잠겨있어?”


자물쇠로 잠겨있는데다가 기분 나쁜 악취가 창호문 틈새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종은 직감적으로 이 안에 중요한 뭔가가 있단 걸 깨달았다.

자물쇠를 열어보려고 ‘1234’나 ‘9999’같은 숫자를 맞춰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세종은 창호문을 걷어차 부숴버렸다.


“창호문이 튼튼해 봤자지.”


그런데 공간 내부는 상상하지 못한 물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윽?!”


세종은 코를 틀어막고 두 눈을 찌푸렸다.

안에는 역십자가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새까맣게 변색된 해골이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바닥엔 양초와 향에 불이 붙어있었고, 죽은 뱀들의 사체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무엇보다도 시선이 가는 건, 바닥에 그려진 수상한 원형의 기호였다. 마법진 같기도 하면서 기분 나쁜 그래피티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끔찍한 악취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대체······이게 다 뭐야. 저건 설마 사람의 뼈······?”


세종은 산속 민가에서 발견한 끔찍한 공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악마’와 관련된 제단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곡군은 악마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단 말인가?


[‘오세종’은 끔찍한 ‘악마숭배’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성수치 -5]

[현재 이성수치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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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중단과 그 이유 20.12.15 41 0 -
공지 프롤로그 삭제 + 8화 내용추가 20.11.17 96 0 -
22 22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1 20.12.04 47 1 13쪽
21 21화. 자원구 신부 -2 20.12.03 39 1 12쪽
20 20화. 자원구 신부 -1 20.12.02 56 1 12쪽
19 19화. 대악마 -3 20.12.01 54 1 12쪽
18 18화. 대악마 -2 20.11.30 53 1 14쪽
17 17화. 대악마 -1 20.11.27 65 1 12쪽
» 16화. 붉은 범 -4 20.11.25 65 1 12쪽
15 15화. 붉은 범 -3 20.11.24 54 1 14쪽
14 14화. 붉은 범 -2 20.11.24 141 1 11쪽
13 13화. 붉은 범 -1 20.11.23 63 1 11쪽
12 12화. 돌발상황 20.11.20 66 2 12쪽
11 11화. 범을 보았다 -2 20.11.19 91 2 12쪽
10 10화. 범을 보았다 20.11.18 89 3 13쪽
9 9화. 범인을 보았다 +2 20.11.17 79 2 12쪽
8 8화. 복선 -1 20.11.16 78 1 12쪽
7 7화. 엑소시스트 -2 20.11.14 81 1 12쪽
6 6화. 엑소시스트 -1 20.11.13 89 1 13쪽
5 5화. 축사의 귀신 -3 20.11.12 97 2 12쪽
4 4화. 축사의 귀신 -2 20.11.11 94 0 12쪽
3 3화. 축사의 귀신 -1 20.11.11 105 2 12쪽
2 2화. 나는 상태창이 보인다 +2 20.11.09 138 6 14쪽
1 1화. 나는 상태창이 보인다 +2 20.11.09 21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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