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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님의 서재입니다.

상태창으로 귀신이 보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외지
작품등록일 :
2020.11.07 16:18
최근연재일 :
2020.12.04 06:0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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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수 :
12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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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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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축사의 귀신 -2

DUMMY

4.



불길한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발생하곤 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 지방출장을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트럭에서 유실한 판 스프링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처럼 이유를 파헤치기 전엔 우연이나 재해, 혹은 저주의 모습을 하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법이었다.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혼절해 쓰러진 무당은 그대로 들것에 실려갔다. 노인들은 신이 노하셨다느니, 부정탔다느니 시끄럽게 중얼거리며 축사를 떠났다.

굿판은 그대로 끝이었다.


한국 오컬트영화의 클리셰처럼,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무당이 패배했고, 무당패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주섬주섬 짐을 챙기더니 검은색 밴에 올라타 쏜살같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 마냥 조용해졌다. 광기어린 굿판도, 번쩍이며 점멸하던 백열전구도, 무당이 쓰러진 것도 전부 환상 같다.

세종은 정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왔다.


“와, 씨······전부 다 뭐였지?”


세종은 자신이 보았던 귀신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회색 니트 베스트. 갈색의 긴 치마와 검은 단화.

언뜻 평범한 여성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으니 사람으로 볼 순 없었다.


“!@#%^#@#살”


귀신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두 팔은 땅에 닿을 듯이 축 늘어져있었고, 발끝이 지면 위로 살짝 떠서 구두 앞코가 질질 끌리는 형태로 부유했다.

오금이 저리고 소름이 끼쳤다. 겨드랑이로 맑은 땀이 주르륵 흘러 갈빗대를 훑고 지나갔다.

전등이 다시 번쩍여, 축사가 환해졌을 땐 귀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세종의 눈에 보였던······수상한 메시지.


[‘오세종’은 ‘축사의 귀신’을 목격했다!]

[『혼돈 파편』을 획득했습니다!]

[‘축사의 귀신’ 혼돈 파편 : 1/4]


『혼돈 파편』?

그게 대체 뭐야?

27세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태창이었다.

이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뭔가를 획득했다는데, 정작 세종에겐 『혼돈 파편』으로 보이는 물체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세종은 납득하기 어렵고, 영문 모를 일들을 겪은 덕에 혼란스러웠다.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축사로 되돌아갈 용기가 들지 않았다.



------------------------------------------------------------------



굿이 실패한 탓인지 축사의 돼지들이 영문모를 병에 걸려 죽는 건 여전했다.

한 두 마리씩 죽으면 옆집 아저씨가 트럭에 시체를 싣고 어딘가로 향했다.

대체 시체를 어디에 가져가냐고 물으면 옆집 아저씨는 손을 내저으며 성의없이 대꾸했다.


“다 버리는 곳이 있다. 세주는 걱정 말구 작품활동에만 집중해라.”


그리곤 옆집 아저씨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돼지 시체를 옮겼다.


‘죽은 돼지 시신들이 대체 어디로 가는 거람? 그리고 돼지역병의 정체는 대체 뭐고.’


이래저래 의문이 가득했다. 한 번은 죽은 돼지의 ‘상태창’을 봤을 때에도 돼지역병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었다.


『돼지 13』

체력 : -

힘 : -

심박수 : -

성향 : -

상태 : 《병사 : ???》


[‘오세종’은 《병사 : ???》의 정체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에라이, 뒤도 안 닦아서 찜찜한 느낌이야. 이럴 땐 고기라도 구워먹어야 돼.”


세종은 기분이라도 전환할 겸, 읍내의 마트로 향했다.

바닥엔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져 대충 빈 공간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별로 크진 않아도 직유통 되는 고기는 싱싱했고, 주류 코너도 따로 있었다.

세종은 정육점 앞에서 심사숙고한다.


‘목우촌 벌집삼겹? 아니면 한우 등심? 김치랑 같이 구워먹으면 삼겹이 진짜 장난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기를 비교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주받은 놈······”

“응?”


뒤를 돌아봤을 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기분 나쁘게.”


고개를 돌리고 꽃등심을 들어올리는데 또 다시 들렸다.


“미움을 샀어······”

“뭐야.”


세종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처음엔 보지 못했지만, 매대 뒤에 숨어있는 어느 노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노파는 매대 뒤에 숨어, 쌓아 올린 행사상품 틈새로 세종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세종’은 늙어서 핏발이 선 눈과 마주쳤다!]


“까, 깜짝이야! 무슨 일입니까!

“······”


노인은 불만이 잔뜩 어린 눈으로 노려보다가 슬쩍 뒤돌아서서 마트를 나갔다.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어이가 없네.”


세종은 화가 나면서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매장에 있고 싶지 않아 계산할 상품을 들고 계산대 위에 올렸다.


그러자 종업원이 아무 말도 없이 코드를 찍고 카드를 돌려줬다. 그런데 여전히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뒤를 불쑥 돌아보니, 마트의 모든 사람들이 멈춰 서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니까 다시 태연하게 장을 보기 시작했다.

식은 땀이 흘렀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세종은 당장이라도 마트를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비닐봉투에 물건을 담아주던 종업원이 말을 걸었다.


“오세주 작가님?”

“아, 네. 맞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셨네요?”


오세주가 여길 자주 들렀었나?


“서울에 잠시 일이 있어서요. 잠깐 다녀왔죠.”

“호호, 최근에 출간된 ‘해가 지는 시간에’ 재밌게 읽었어요. 초창기 작품보다 좋아졌던데요?”

“그런가요? 하하, 감사합니다.”


종업원은 씩 웃으며 소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하게 연기자로 살아가는 심리묘사가 정말 대단했어요.”

“아, 그렇군요.”

“저는 주인공의 대사 중에 ‘나는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엔 지독한 우울에 빠집니다. 연인들이 으레 겪는 이별후유증과 비슷합니다.’가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너무 로맨틱 해요~.”

“대사까지 외우시다니 정말 재밌게 보셨나 본데요? 작가로서 정말 뿌듯하네요.”


세종도 따라서 미소를 짓긴 했지만, 이럴 때가 난감하다.


‘오세주가 쓴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데······요약본을 훑어보긴 했지만 잘 안다곤 할 수 없지.’


따라서 그런 심도 깊은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끊는 게 정답이다.

종업원이 눈치도 없이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자, 세종은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턱짓하곤 헛기침 소리를 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분 계산해드릴게용~호호.”


종업원은 그렇게 말하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 종이가 하필이면 세종이 버리려는 영수증 뒷면이어서 찝찝한 기분이 들게 했다.

세종은 조수석에 장바구니를 던지면서, 마트에서 겪은 기이한 분위기를 곱씹었다.


“그 노인은 왜 날 쳐다본 거지. 기분 너무 나쁜데. 오세주 이 인간이 무슨 짓이라도 하고 다녔나?”


세종은 언짢은 느낌을 담아 키를 돌렸다. 시동이 걸리는데, 누군가 갑자기 창문에 두드렸다.


“누구야?”


세종이 고개를 돌리자 웬 검은 사제복 차림의 신부님이 서있었다.


‘엄청 젊어 보이는데, 딱 봐도 내 또래인 듯······이 동네에도 성당이 있었나?’


세종은 문을 여는 대신,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부님?”

“······”


젊은 신부는 고개를 조금 수그렸다. 훤칠하고 이목구비도 날렵한, 말 그대로 신부님을 하기엔 아까운 쌍판이었다.

의문의 신부가 입을 열었다.


“형제님. 여기에 주차하시면 안 됩니다.”

“예?”


세종이 되묻자 신부님이 어떤 표지반을 가리킨다. 그제야 세종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아······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했네요.”


정말로 못 봤다. 분명 눈에 띄는 푸른색이 도료 되어있는데, 요 며칠 정신없는 일들을 겪다 보니 푸른색도 못 볼 정도였나 보다.

신부님은 가볍게 웃었다.


“두 눈 멀쩡해 보이는데 못 봤을 리가 있나. 앞으로 조심합시다.”

“······?”


순간 얼이 빠졌다.

무슨 신부가 시비 거는 말투래?

세종은 욱해서 자신의 말투로 대꾸할 뻔했지만, 지금은 세주를 흉내 내고 있단 걸 자각했다.

즉시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바꿨다.


“변명할 거리가 없군요. 지금 바로 차 빼겠습니다.”

“그러세요. 오세주 씨.”


이 동네에 오세주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지, 신부님도 이름을 언급한다.

이게 유명인의 삶이란 거구나. 세종은 미디어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후진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소름이 끼치는 마트에서 벗어나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

젊은 신부는 세주의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세주 작가. 여기에 내려오고 몇 달이 지났다지.”


범죄소설 작가 오세주.

그의 부모님이 무곡군의 군민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두 분 다 돌아가셔 어느 산에 묻었다고 한다.


신부는 그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악인의 내면까지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건 별개로 화제의 인물이란 건 부정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그의 집에 있는 돼지축사에서 무당이 굿을 벌이던 중 혼절했다지.


어쩌면 찾고 있는 사건의 단서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부는 금연구역에서 담배꽁초를 버린 후에, 근처의 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처의 여직원은 신부를 보곤 입을 쩍 벌렸다. 신부는 접수대에 한 쪽 팔을 올리곤 건조하게 질문을 했다.


“여기 무당 한 명 실려오지 않았나요?”

“네, 그렇긴 한데요.”

“면회하러 왔거든요.”

“여기 사인하시면 돼요. 그런데 혹시 관계가······”


아무래도 여직원은 천주교 신부와 무당의 관계가 궁금한 듯했다.

하긴, 이상하게 보일 만하다고 생각한 신부는 대강 둘러댔다.


“대학동기요 동기.”

“네?”

“몇 호실이예요?”

“304호요······”

“수고하세요.”


신부는 그렇게 말하곤 여직원이 말한 ‘304호’를 찾아갔다.

비교적 경증이었는지, 병실에는 다른 환자들이 링거를 팔에 달고 누워서, 혹은 앉아서 젊은 사람들이 트로트로 경연을 벌이는 채널을 보고 있었다.


그 중, 무당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척 보기에도 눈빛이 사나운 여성이 한 명 누워있었다. 그 옆에선 무당패 조수 한 명이 사과를 깎고 있다가 신부를 보곤 벌떡 일어났다.


“호들갑 피우지 말고 앉아라.”


그녀는 조수를 앉힌 후에 신부에게 묻는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가 천한 무당에겐 무슨 일이시오? 아는 얼굴이 아닌데.”

“아프신데 실례합니다. 저는 자원구 신부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자원구라고 밝힌 신부는 명함을 꺼내 무당에게 건넨다.

무당은 자신이 직접 받지 않고 조수를 통해 명함을 받아 든다.


“······구마사제 자원구?”

“읽으신 대로.”

“사이비요?”

“무속신앙 종사자에게 들을 말은 아니고.”

“시비 걸러 온 건 아닐테고, 무슨 이유로 왔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축사에서 기절을 했다죠?”

“······자존심을 건들려 온 게 맞군.”


무당은 기분이 나쁜지 뒤척거리다가 말을 한다.


“맞소. 난생 처음 겪은 일이지. 보통 원귀가 아니었어. 굿으로 쫓아내려고 했지만 반대로 내게 살(殺)을 날리더군”


그 이야기를 들은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자세한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굿을 벌이기 전과 그 후까지.”

“왜 그게 궁금하지? 당신이 그 원귀를 내쫓으려고? 당신이 뭔데?”


무당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걸 부정하는 의사로 받아들인 신부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누군지 뭘 하려는 지는 궁금하지 않을 텐데. 단지 주님의 뜻을 위해 봉사 중입니다.”

“흥.”


무당은 코웃음 치더니 몸을 일으켰다. 조수가 아직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무당은 자신의 고집대로 슬리퍼를 신고 일어섰다.

무당은 이동식 링거대를 끌며 나갔다.


“담배나 한 대 피지.”

“좋습니다.”


신부는 눈썹을 위로 치켜 뜨며 긍정적인 의사를 표했다.


작가의말

빼빼로데이였네요. 이제 알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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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중단과 그 이유 20.12.15 40 0 -
공지 프롤로그 삭제 + 8화 내용추가 20.11.17 95 0 -
22 22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1 20.12.04 46 1 13쪽
21 21화. 자원구 신부 -2 20.12.03 38 1 12쪽
20 20화. 자원구 신부 -1 20.12.02 55 1 12쪽
19 19화. 대악마 -3 20.12.01 53 1 12쪽
18 18화. 대악마 -2 20.11.30 52 1 14쪽
17 17화. 대악마 -1 20.11.27 64 1 12쪽
16 16화. 붉은 범 -4 20.11.25 64 1 12쪽
15 15화. 붉은 범 -3 20.11.24 53 1 14쪽
14 14화. 붉은 범 -2 20.11.24 140 1 11쪽
13 13화. 붉은 범 -1 20.11.23 62 1 11쪽
12 12화. 돌발상황 20.11.20 65 2 12쪽
11 11화. 범을 보았다 -2 20.11.19 90 2 12쪽
10 10화. 범을 보았다 20.11.18 88 3 13쪽
9 9화. 범인을 보았다 +2 20.11.17 78 2 12쪽
8 8화. 복선 -1 20.11.16 78 1 12쪽
7 7화. 엑소시스트 -2 20.11.14 80 1 12쪽
6 6화. 엑소시스트 -1 20.11.13 88 1 13쪽
5 5화. 축사의 귀신 -3 20.11.12 96 2 12쪽
» 4화. 축사의 귀신 -2 20.11.11 94 0 12쪽
3 3화. 축사의 귀신 -1 20.11.11 104 2 12쪽
2 2화. 나는 상태창이 보인다 +2 20.11.09 137 6 14쪽
1 1화. 나는 상태창이 보인다 +2 20.11.09 210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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