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대악마 -1
17.
세종은 견디기 어려운 악취 때문에 코를 틀어막고 중얼거렸다.
“대체 이 끔찍한 것들은 뭘 위해 있는 거지······?”
민가에서 악마숭배의 흔적을 발견한 세종은 『상태창』으로 제단을 살펴본다.
[악마 ‘???’의 제단]
[설명 : 악마 ‘???’를 모시는 제단. 인간공양의 흔적이 보인다.]
[재료 : ‘말라 죽은 뱀 x30’, ‘날짐승의 피로 그린 상징벡터’, ‘거짓말쟁이의 유해x1’]
[효과 : 악마 ‘???’로부터 진실을 엿듣습니다.]
“악마를 위한 제단이었어? 척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긴 한데······”
세종은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악마숭배를 위해 누군가의 유해를 거꾸로 매달아놓기까지 하다니.
악마 ‘???’의 정체는 상태창으로 볼 순 없었지만, 지금 무곡굴 인근의 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현상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악마에 대해선 전혀 모른단 거지.
“역시 이런 분야는 원구 신부님이 더 잘 알텐데······”
세종은 원구가 필요했다. 어쩌면 ‘사냥제’에서 탈출하는 방법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이 안개 속에서 어떻게 원구를 찾는단 말이지?
세종은 그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컹컹컹!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누렁이가 분명했다.
“누렁아-! 거기에 있니?”
세종은 민가에서 나와 밖으로 나왔다. 안개 속에서 개 짖는 소리만을 따라 이동하는데, 흐릿한 형체가 꼬리를 흔들리며 달려와 안겼다.
“누렁아! 너 대체 어디에 있었어?!
누렁이였다. 세종은 아는 얼굴과 재회해 기쁘면서도, 원구와 옆집 아저씨는 보이지 않아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옆집 아저씨랑 원구 신부님은 어디에 두고 너 혼자 다닌 거야?”
누렁이는 헥헥거리며 세종 앞에서 몸을 획 돌려 어디론가 뛰어간다. 마치 따라오라는 신호같다.
“그, 그렇지! 옆집 아저씨랑 원구 신부님이 어디 있는지 아는구나!”
세종은 주먹을 꽉 쥐고 누렁이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누렁이가 데려간 곳엔 낯선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처음엔 안개 때문에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고서야 바닥에 쓰러진 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고, 세종은 입을 틀어막았다.
“크윽?!”
이상한 옷차림의 노파였다.
머리엔 상모를 쓰고 온몸엔 금줄을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파는 짐승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온몸이 넝마처럼 찢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세종’은 ‘붉은 범’에게 공격 당한 노파를 발견했다!]
[이성수치 -5]
[현재 이성수치 : 45]
‘이번에도 이성수치가 떨어졌어······’
세종은 위기감을 느꼈다. 너무나도 처참한 광경이었기에 이성수치가 떨어졌다.
‘벌써 45야. 30까지 떨어지면 옆집 아저씨처럼 발광할지도 몰라······’
세종은 자신이 어릴적 발작을 일어날 것 같을 때면 반복했던 심호흡을 시도했다.
공포를 간신히 억누르며 노파의 상태를 살폈다. 온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응급처치조차 먹히지 않을 상태였다.
노파는 고통스러워하며 세종에게 손을 뻗는다.
“허, 허억······허억······”
“괘, 괜찮으세요? 할머니 정신 바짝 차리셔야 돼요!”
세종은 노파의 체력상태창을 열어봤다.
【체력상태창 : 닫기】
체력 : 5
힘 : 10
심박수 : 47(1분간)
‘체력이 5로 떨어졌다. 사망직전이야-!’
세종은 자신이 노파를 도울 방법이 없단 걸 알고 있었다.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며 숫자가 5에서 4로, 4에서 3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노파의 임종을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죄송해요······제가 도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세종이 미안하다며 사과하는데,노파는 세종의 얼굴을 보고는 별안간 원망 어린 말을 토해냈다.
“저, 저주받은 외지인······네 놈이 우릴 모두 죽이고 있어······”
노파는 그렇게 말하곤 숨이 끊어졌다. 세종은 또 다시 자신을 저주하는 말에 황망함을 느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제단을 만든 사람들이 악마를 불러낸 거 아니야?”
세종은 노파의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하고는 그녀의 옆에 떨어진 엽총을 주워들었다.
“엽총은 고맙지만 당신이 불쌍하진 않네요. 원망은 악마숭배자들에게 하시길.”
세종은 두 눈을 부릅떴다.
“누렁아, 가자. 원구 신부님이랑 아저씨를 구하자.”
누렁이는 왈왈 짖으며 세종을 앞질러 방향을 제시했다. 세종은 성큼성큼 누렁이의 뒤를 쫓았다.
****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진다. 짐승의 위협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원구는 안개 속을 뛰면서도 자신이 멀리 달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원구는 붉은 범의 의도를 금세알아차렸다. 민가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게끔 유도 당하고 있었다.
‘농간 당하고 있어. 다른 사냥감들을 차례차례 죽이며 장난을 치고 있다. 우린 가장 마지막에 공격 당할 거야.’
원구는 턱 밑까지 숨이 찼다. 더 이상 뛰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멈춰 설 수도 없었다.
그 순간에도, 원구와 곽태구보다 발이 느린 노인들은 차례차례 붉은 범에게 살해당하고 있었다.
붉은 범은 살육을 즐기며, 다른 한 편으론 겁에 질린 채 달아나는 원구와 곽태구를 안개 너머에서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실로 악마적이군······아니, 악마가 맞겠지?’
원구는 붉은 범의 정체가 ‘악마’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단순히 병에 걸린 짐승이나 풀려난 정부의 비밀병기 같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무곡군의 기이한 풍습과 붉은 범과의 대화를 통해 가늠이 잡혔다.
‘저건 악마다. 솔로몬이 봉인한72마리의 대악마 중 하나다.’
그게 진짜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악령을 쫓는 것과는 달리, 악마를 표적으로 한 구마(驅魔)는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그건 악마의 진명(眞名)을 알아내 부르는 것이다.
악마는 자신의 진명을 알고 있는 사제를 함부로 해치지 못하고, 심지어는 권능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도망치면서 진명을 대체 어떻게 알아내냐는 것이다.
‘진명이고 자시고. 폐, 폐가 찢어질 거 같다. 더 이상은 못 뛰겠어!’
원구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잦은 흡연으로 엉망진창인 폐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곽태구보다 폐활량이 떨어졌다.
잔머리를 쓸 만큼의 여유가 없어진 원구의 뜀박질은 점점 느려지더니, 마침내 제자리에 뻗어버렸다.
곽태구는 깜짝 놀라 원구를 다독인다.
“신부님! 여기서 멈추면 범이 온당께요!”
“제, 제기랄. 저 붉은 범은 어차피 우릴 마지막에 남겨둘 겁니다!”
원구는 척 보기에도 더 달릴 수 없는 상태였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지만, 육체가 너무 어설프다.
곽태구는 식은땀을 질질 흘리고 있으면서도, 원구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원구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집어넣고 부축한다.
“힘내랑께요 신부님! 여서 죽으면 정말 개죽음잉께!”
“아저씨라도 도망치세요. 저 녀석은 절 노리는 걸껍니다. 제가 도망치길 포기하면 저한테 올거예요.”
“뭔 그런 소리를 한대요! 쉽게 포기하지마셔라!”
곽태구는 낑낑거리며 원구를 데리고 걷는다. 원구는 용쓰는 곽태구 때문에라도 걸음을 재촉해본다.
그 순간에도 노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원구가 발을 헛딛어 둘이 사이좋게 나자빠진다.
붉은 범이 가까이 있는 듯하다.
“크윽, 제기랄 사탄녀석. 언제까지 안개 속에서 지켜볼 셈이냐!”
원구는 헉헉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풀숲을 기던 뱀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그 순간 원구는 불현듯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 녀석, 뱀을 부리는 건가?’
사탄과 뱀은 밀접한 관계지만, 유달리 많은 뱀들을 목격했다. 어쩌면 이것이 악마의 진명을 알아낼 힌트처럼 보였다.
그러나 원구가 악마의 진명을 알아내기도 전에, 곽태구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
“시, 신부님! 드, 등 뒤에!”
“X발······”
곽태구는 원구의 등 뒤의 무엇인가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빠진 표정을 보니 누군지 알겠다.
“······킥킥킥······”
붉은 범이 원구의 등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를 냈다.
“······사제여 다리가 풀린 거야? 실로 나약하구나······”
“큭.”
원구는 바닥의 풀을 뽑아 뒤로 던졌다. 붉은 범은 고개를 털더니 앞발로 원구를 후려쳤다.
“컥?!”
원구는 차에 치인 듯한 충격을 받으며 튕겨져 나갔다. 곽태구가 부르는 애타는 소리에도, 붉은 범은 바닥을 뒹구는 원구에게 다가오더니 발로 몸통을 눌렀다.
“끄으으윽······!!”
“······킥킥킥······”
붉은 범은 혀를 날름거리며 음산한 목소리를 낸다.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 신께서 이번에도 널 버리셨다······”
“헛소리 하지마. 이 더러운 악마야!”
“······낄낄, 애타게 부르짖어도 너의 신은 단 한 번도 네게 응답하지 않았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붉은 범은 승리감에 도취된 채 적극적으로 원구를 조롱했다.
그 방식은 매우 악마적이었다. 목소리를 바꿔가며, 원구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로 악몽 같은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너는 신부복을 입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신의 존재를 믿은 적이 없다. 넌 사실 신을 원망하고 있어.”
“······닥쳐라.”
“신께선 네 아이들을 산채로 타 죽을 때와 마찬가지로, 네가 죽기 직전인 순간에도 묵묵부답이시구나!”
“끄아아악-!!”
원구는 분노하며 울부짖었다. 붉은 범은 원구의 발악을 보며 즐거워 껄껄거렸다.
붉은 범은 원구에게 속삭였다.
“내게 애원하고 신을 부정해라. 그리하면 살려서 보내줄 것을 약속하지.”
“끄으윽······”
원구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곽태구는 이를 악물었다.
곽태구는 줄곧 겁에 질려있었다.
눈앞에서 와히드가 물려갔고, 자신의 차를 추격까지 했으니, 붉은 범과 마주치면 끔찍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심이 들었다.
마을사람들에게 붙잡혔을 때, 내심 그들이 자신은 보호해주리란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은 끝까지 외지인이었으며, 굴러들어온 돌이었다. 붉은 범으로부터 생존하려면 오세주, 신부님과 같은 외지인들끼리 뭉쳐야만 했다.
이번만큼은 무용한 사람이 되지 않으리란 마음이 솟구쳤다.
곽태구는 묵직한 돌멩이를 주워들더니 붉은 범에게 투척한다.
“이 역겨운 범놈아! 신부님을 놔줘!”
퍽.
“크르르릉.”
붉은 범은 눈동자를 돌려 곽태구를 노려본다. 그러자 뒷통수가 오싹하고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이, 이익! 내가 오줌이라도 지릴 줄 알고! 신부님과 와히드를 돌려줘라!”
다시 한 번 돌을 던졌다. 이번엔 제대로 빡!하고 소리가 났다.
“······이 미개한 인간놈이. 오냐, 같잖은 신부와 네놈을 같이 보내주마!”
붉은 범은 이를 드러내며 다른 한 쪽 발에 발톱을 끄집어낸다.
곽태구는 자신이 할 수 있는한, 붉은 범에게 저항하겠다며 또 다른 돌을 집어드는 순간,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붉은 범의 머리를 관통했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건 세종이었다. 엽총 끝에선 화약이 타고 남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거 혓바닥은 더럽게 기네 악마놈이. 콱 나비탕 끓여버릴라.”
- 작가의말
자정시간대에는 조회수가 잘 안 오르는 거 같아 아침시간으로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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