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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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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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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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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2쪽

193화 변하는 국면

DUMMY

193화 변하는 국면


“신 타타라 잉굴다이, 한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왔나이다.”


조선에서 심양으로 돌아온 타타라 잉굴다이가 곧장 찾아와 인사를 올리니 홍타이지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청의 기둥이라 하기 마땅한 의정대신이다. 이루어낸 것이 기대 이상이구나.”


잉굴다이는 돌아오면서 그저 약조만 나눈 것이 아니라 그 증명으로 양곡을 가득 실은 수레와 함께 돌아왔다.


물론 그 양은 필요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청나라의 사기는 오를 터였으니, 단순히 양곡을 얻을 길이 생긴 것만 아니라 조선이 이렇게나마 손을 보태기로 하였음을 드러내어 승기가 그들에게 있다고 알릴 수 있었다.


아군이나 적이나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러한 홍타이지의 속내를 잉굴다이 역시 알았기에 그는 잠시 안색을 어둡게 하며 입을 열었다.


“한이시여,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에게 말을 듣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거리낌 없이 말하라.”

“한께서 소신을 좋게 보아주심은 감사하나 소신은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좋지 못한 소식과 하나 좋은 소식을 전해드려야 합니다.”


좋지 못한 소식이 둘에 좋은 소식이 하나라니, 여러모로 기분에 거슬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뱉은 말을 실없이 없던 일로 할 수 없는 것이 황제라는 자리다.


홍타이지는 사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덤덤하게 물었다.


“난 이미 그대에게 발언을 허락하였다. 고하라.”

“먼저 좋지 못한 일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에서 이번 일에 조선에서 보내는 것은 보통보다 헐하게 주되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면 그 값을 훨씬 비싸게 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이 일은 가리지 않고 행할 것이니, 명나라에도 곧 사신을 보내어 알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기대가 살짝 빗나가는 일들이기는 하나 아주 나쁜 일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일들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니 홍타이지는 지금 들은 말들을 참아줄 만하고 받아들일 만 하다 생각한 것은 물론이고 잉굴다이를 향한 자신의 신뢰가 한층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어서 잉굴다이가 한 말을 들은 순간 홍타이지는 그러한 생각들을 모두 머리에서 날려버리고 다른 감상을 품게 되었다.


“좋은 소식은 아직 소신이 추정할 뿐이나, 명나라도 저희 생각보다 그렇게 풍족한 것은 아닐지 모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나라가 풍족하지 않다고?”


만주족이 초원에서 말을 타다가 넘어지는 소리에 홍타이지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두 눈을 부릅떴다.


그에 잉굴다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선왕이 이르길, 청나라가 아닌 어느 곳이라도 곤궁하면 그 손을 내밀어 도울 것이라 하였습니다.”

“청나라가 아닌 어느 곳이라도.”


잉굴다이가 올린 말에 홍타이지는 무언가 홀린 듯이 그 말을 곱씹었다.


“대학사.”

“예, 한이시여.”


홀린 듯이 먼 곳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홍타이지가 범문정을 부르니 그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홍타이지는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여전히 먼 곳을 보며 물었다.


“의정대신의 말이 사실이겠는가?”

“그럴 수 없고 있고를 따지자면 없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차분히 생각하면 지난 민란을 진압하고 몇 년이 되지 않았고 대청에서 장성 너머를 휩쓸었음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이 그대보다 먼저 알게 될 수도 있는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고, 듣기에 따라서는 책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말이었다.


보통은 이런 말을 들으면 해명에 힘쓰겠으나 범문정은 대신 차분히 사실들을 늘어놓았다.


“장성 너머에 사람을 쓰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조선은 그럴 필요도 없이 여전히 명나라와 그 사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명나라 황제가 의주에 있던 조선 장수 하나를 좋게 보아 높이 쓰고 있음도 들리니 소신은 물론이고 청나라 누구보다 조선이 사정을 아는 것이 쉬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범문정이 하는 말들을 들은 홍타이지는 다시 잉굴다이를 보았다.


“잉굴다이, 그대의 뜻을 말하라. 알림으로 끝낼 생각이었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조선에서 들은 것이 그저 착각에 지나고 어림짐작에 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면서 생각하고 살피니 아무래도 명나라가 그 힘이 다해감은 틀림이 없습니다. 시기에 맞지 않은 대군을 움직임도 그렇고 한번 대군을 장성 바깥으로 보내 위신을 세웠음에도 물러나지 않음도 그렇습니다.”

“잉굴다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아라.”


홍타이지의 명에 잉굴다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 담긴 확신과 열기를 본 홍타이지는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그 상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

“한이시여, 명나라는 이제 한계에 달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조급하여 결전을 바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병법은 본디 아군이 편하게, 적은 불편하게 함이 요체입니다. 그러니 간언하겠습니다. 저들을 상대하며 결전을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상대하여주소서.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 1년이 걸리고 2년, 3년을 넘겨서 걸릴 듯이 보여도 말입니다.”


장기전을 청함과 함께 그 장기전이 결코 그만큼 오래 가지 않을 것을 뜻하는 말에 홍타이지는 고심했다.


‘일리가 있다. 가능도 하다. 만약 명나라가 이번으로 한계에 달한 것이 확실하다면 이걸로 끝, 우리는 반드시 금나라 시절 위세를 되찾을 수 있다.’


바라는 것은 물론 중국 전토다.


하지만 그것이 단번에 이루어지리라고는 홍타이지는 물론이고 청나라 사람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그렇기에 금나라 시절 위세를, 그 영토를 도로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홍타이지는 심한 유혹을 느꼈다.


또한 그 유혹이 전혀 현실과 멀어 보이지 않으니 그 이끌림은 말로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홍타이지가 고민하는 한참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심양 황궁에 내려앉은 침묵이 가라앉은 것은 당연하게도 홍타이지가 고민을 마친 후였다.


“잉굴다이가 말함이 옳다면 이건 절대 질 수 없으며 신중해야 할 전쟁이다. 그러니 준비하며 더욱 상황을 살피겠다. 허나 여기서 공언하건데, 나는 절대 승리를 서두르지 않겠다. 그대들 역시 이를 기억하라.”


홍타이지의 이 말을 통해 이번 전쟁에 임할 청나라의 자세가 결정되었다.


동시에 하나 더 결정된 일이 있으니, 범문정이 부리는 이들 가운데 다수가 철원에 교류를 명목으로 머무는 이들을 돕기 위해 추가로 보내지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



“허어, 오늘 아침부터 날이 참 쌀쌀하구나. 벌써 겨울이 가까운 건가.”


전 도원수 김자점은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지는 날을 느끼며 유배 전에 비하면 한 십 년은 늙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쟁에서 패하였음을 책임지고 유배된 것도 벌써 햇수로 3년, 곧 4년째로 접어든다.


처음에야 어쩔 수 없음을 알았으니 달게 받아들였다.


전쟁에서 온갖 병력을 다 말아먹고 결국은 임금이 항복할 때까지 꽁꽁 숨어있던 겁쟁이 꼴을 면하지 못했다.


이리된 연유를 들자면 입이 적어도 한 시간은 쉬지 않을 것이나 그래서 그에게 죄가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러니 달게 받았고 유배 오는 일도 괘념치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올 때 다르고 갈 때가 다르다고 하던가?


그 특유의 간사함이 김자점의 마음과 머리에 파고드니 그는 여름부터 슬며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께서는 나를 이제 완전히 잊으셨는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힘든 것은 기약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자고 일어나서 자질구레한 노역을 하고 밥을 먹고 청소하고 잔다.


물론 그는 배경도 아직 쓸만하고 재산도 넉넉하니 노역이라고 해야 대단한 일을 하진 않았다.


그저 소소하게 짚이나 좀 꼬고 끝나니 사실상 그건 소일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이색적임을 벗어나 일상이 된 순간 김자점은 한없이 회의감을 느꼈다.


그의 나이가 벌써 지천명을 넘겼으나 회갑에는 이르지 않으니 아직 정정하여 한번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아니, 그를 넘어서 죽을 때까지 대우받으며 관직에 있고 정승까지 올라감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잘한 일상은 사람의 마음을 죽게 하니 만일 이렇게 몇 년 더 살면 다른 울화로 인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힘이라는 건 참으로 괴롭구나.”


애써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 말하나 그 속이 여전하니 김자점은 이러다가 진짜 병이 나겠다 싶어서 집안을 하릴없이 걸었다.


그러나 한양에 있는 그리운 집과 다르게 그 평수가 적은 집이니 금세 두어 번을 돈 김자점은 더 돌기도 애매하다 여기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던 중 김자점은 문득 멀리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들이 바삐 말에 타고 이쪽을 향하여 오는 걸 보았다.


이윽고 다가온 이들이 누군지 안 순간 김자점은 크게 놀랐다.


“전 도원수 김자점은 왕명을 받으시오!”

“시, 신 김자점이 왕명을 받습니다.”


조금 전까지 잊혔다고 생각하여 쓸쓸하던 것도 잠시, 김자점은 눈앞에 있는 이들을 보니 덜컥 겁을 먹었다.


혹여 정말로 자신이 쓸모없거나 필요 없다고 해서, 아니면 방해가 되어서 사약이 내려온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조선시대에 이러한 급작스러운 방문은 보통 아주 좋은 소식 아니면 아주 나쁜 소식이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전 도원수 김자점에게 이른다.”


사자가 어명을 읽기 시작하니 김자점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남몰래 목울대를 움직였다.


“그대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였음은 아나 그 시운이 따르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대가 구원을 망설였음도 분명 간과하기 어렵다.”


사람을 들었다가 놓는 말에 김자점은 전쟁을 헤치고 살아남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간이 확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제발, 제발......’

“허나 사람이 과도 있고 공도 있으니 어찌 함부로 대하며 조선에 인재가 부족하니 어찌 가벼이 하겠는가. 조선의 국시는 유학이며 유학의 근본은 사람을 교화하여 가르치고 나아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니 이 명령이 도달하는 순간에 기해 전 도원수 김자점을 해배하고 한양으로 부르는 바이다. 그대는 왕명을 받들라.”

“천세, 천세, 천천세! 신 김자점, 성상의 은혜가 실로 하해와 같음을 느끼고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들고 내린 끝에 그토록 바라던 말, 해배가 나오니 김자점은 곧장 몸을 숙이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말을 입에 담았다.


“축하드립니다. 함께 가시죠.”


읽기를 마친 후 축하하는 말을 건네니 김자점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김자점은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사자에게 물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둘이나 셋도 괜찮습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말에 김자점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나와 같이 유배된 심가는 어찌 되었나?”

“아, 그분이라면 저와는 다른 사자가 해배를 명하러 향했습니다.”

“......대답해주어서 고맙네.”


악연이 아직 멀쩡함을 알게 된 김자점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지긋지긋하구나. 내 언제고 기회가 되면 반드시 그놈을 날려버릴 것이다.’


김자점은 그런 각오를 품고 오매불망 그리던 한양으로 향했다.


그는 알지 못했으나 우습게도 그가 한양으로 출발한 시각은 심기원이 해배를 명받고 한양으로 향하던 시각은 물론이고 그 속내도 비슷하였으니 참으로 누군가 알았다면 그들이 삼생의 인연을 쌓은 것이라 여겼을 정도로 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은 닮아 있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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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10화 거슬리는 말이라고 항상 거절하진 않는다 +2 23.05.03 447 21 15쪽
210 209화 추천의 의미 +2 23.05.02 426 18 14쪽
209 208화 아비가 제안하고 아들이 행하고 +5 23.05.01 473 22 15쪽
208 207화 이득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2 23.04.30 455 23 13쪽
207 206화 사람은 그 나눔에 사람을 가린다 +2 23.04.29 446 19 14쪽
206 205화 성종과 같다 +3 23.04.28 461 23 14쪽
205 204화 당장의 편함과 득이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5 23.04.27 459 25 15쪽
204 203화 거간꾼은 손해 보지 않는다 +1 23.04.26 452 27 12쪽
203 202화 밀면 움직인다 +2 23.04.25 449 26 12쪽
202 201화 속은 어디나 복잡하다 +4 23.04.24 463 23 13쪽
201 200화 누군가에게 끝난 일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다 +5 23.04.23 487 27 14쪽
200 199화 줄 그은 호박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2 23.04.22 470 22 13쪽
199 198화 포장은 하기 나름이다 +2 23.04.21 473 22 15쪽
198 197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1 23.04.20 477 20 13쪽
197 196화 그저 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1 23.04.19 500 21 13쪽
196 195화 서생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2 23.04.18 490 22 15쪽
195 194화 인연은 때때로 사람을 험지로 이끈다 +3 23.04.17 493 25 12쪽
» 193화 변하는 국면 +4 23.04.16 492 27 12쪽
193 192화 때때로 완벽함은 서두름만 못하다 +2 23.04.15 487 28 14쪽
192 191화 도움은 사방을 향해야 한다 +4 23.04.14 485 24 14쪽
191 190화 올바르고 당당하게 +3 23.04.13 498 26 15쪽
190 189화 다툼에서 가장 손해 보는 사람은 +1 23.04.12 479 25 13쪽
189 188화 장점은 알리고 약점은 감춘다 +2 23.04.11 483 26 14쪽
188 187화 가장 원하는 이 +1 23.04.10 498 23 16쪽
187 186화 이 나라는 다르다 +3 23.04.09 532 25 14쪽
186 185화 천객만래 +3 23.04.08 491 27 12쪽
185 184화 돌아갈 수 없는 사람 +1 23.04.07 508 26 13쪽
184 183화 상인의 방식 +3 23.04.06 516 26 13쪽
183 182화 가도 하나, 남아도 하나 +2 23.04.05 542 25 13쪽
182 181화 작은 불씨들 +2 23.04.04 556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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