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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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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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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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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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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5화 천객만래

DUMMY

185화 천객만래


“이런 젠장.”


바다로 나오고 나서 몇 번을 입에 담았는지 모를 말을 다시금 담아낸 바스쿠는 불쾌한 동행인들을 태운 배들에 시선을 주었다.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같으니라고.”


소문을 듣고 일단 같은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말을 해두고 하루도 되지 않아 남경 상인 배태경이 보내온 사람이 전한 말에 바스쿠는 하늘이 무너지는 암담함을 느꼈다.


생각 같아서는 들고 일어나서 항의하고 싶었지만 바스쿠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 새끼들은 아주 배알도 없고 말이야.”


아주 짜증 나게도,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같은 포르투갈 상인들이었다.


대책을 논하고자 다시 모이니 기다렸다는 듯이 네덜란드 상인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서 동아시아에서 해역 불간섭을 조건으로 내건 것이었다.


교역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고작 서로 해역에서 마주해도 대뜸 적대하지 않기로 한 것에 불과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바스쿠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글렀음을 직감했고, 그 직감대로 포르투갈 사람들은 두말하지 않고 조선 항로에 저들이 끼는 것을 방조하기로 뜻을 모았다.


“어, 선장님?”

“응?”


잡아먹을 듯이 사방으로 시선을 던지던 바스쿠의 귀에 시로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던 바스쿠는 표정을 풀고 고개를 돌렸다.


“뭔데? 무슨 일이 생겼냐?”

“아니, 그건 아닌데 잘도 그런 걸 받아들였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여행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저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무슨 이득이 됩니까?”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너도 알겠지만, 그 거지 같은 제안 덕에 우리 쪽 놈들은 그걸 좋다고 받아들였지. 그것도 만장일치로 말이야.”

“선장님을 빼면 그렇긴 하네요.”


시로타가 하는 말에 바스쿠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목소리를 살짝 낮추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사실 이게 득이 되긴 해. 나도 조선 항로를 선점해서 잘 벌지 않았으면 당장 저놈들처럼 했을 거다.”

“득이 된다고요? 그게요?”

“위에서 세금, 아니 세금이라고 하기도 그렇지. 아무튼 돈 내라는 독촉이 없어......지진 않고 있어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다.”

“위? 아하, 저기 천축 너머에 있다는 곳 말입니까?”


시로타가 묻는 말에 바스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시로타는 의문이 일부 풀리긴 했으나 여전히 남은 것이 있었다.


하여 입을 열어 물으려고 하니 그 심정을 헤아린 듯 바스쿠가 질문을 듣기도 전에 입을 열어 남은 부분을 채워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저지대 놈들하고 여러 장소에서 여러 형태로 다투고 있지.”

“그거야 뭐......”


일본에서 다툼은 그다지 보이지 않으나 서로 대하는 태도나 말하는 걸 들어보면 양자의 사이가 원활하지 않다는 건 관심이 없는 이라도 며칠 살피면 쉬이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지난번 시마바라에서 일어난 반란 이래 일본 바깥으로 나갈 궁리를 하며 외국인들을 살폈던 시로타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건 저 너머 본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마 거기가 제일 심하지 않을까 싶거든? 매번 전쟁자금을 내놓으라고 사람을 보내는 꼴을 보면 말이지. 참 잘나신 국왕 폐하시지.”


냉소적으로 비웃은 바스쿠는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전쟁을 벌이고 있고, 거기에서 쓰는 것으로 벅차다면 어떨 거 같냐? 심지어 여기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고 하면 말이지.”

“......현지에서 써야 하니 보낼 게 없다고 둘러댈 수 있는 거군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런 생각을 그렇게 빨리들 하시는 걸 보면 정말 다들 대단하십니다.”


시로타의 감탄에 바스쿠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게 상인이지. 굴러도 달려도 항상 이득, 길가의 돌멩이도 팔 수 있으면 귀하고 금괴라고 해도 못 팔면 쓰레기. 그런 의미에서 조선 항로는 나만 아는 팔 수 있는 돌멩이였지.”

“그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이득을 독점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사실상 독점은 아니었고, 조선에서 얻을 이득에 더해서 추가로 더해진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바다가 생겼으니 결과적으로 괜찮게 보입니다만.”


지금 한 말은 시로타의 진심이었다.


당장 전에 살던 마을에서도 어른들이 옆 동네 사람들을 보며 겉으로는 웃어도 집에 가면 예전에 저놈이랑 칼부림했다는 둥, 혹은 활로 노렸지만 운 좋게 살아 나갔다는 둥 말하는 걸 듣고 자란 시로타다.


물론 전국이라고 불리던 시절은 옛적에 끝났기에 아마도 대부분은 더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그저 주워섬기고 있던 것에 불과하겠지만 말을 할 때 어른들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여기에 더해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면 하나 같이 예외 없이 그 눈에 진득하고 흉흉한 기운을 담고 맞장구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도 그것은 언제고 그들끼리 하는 말에 그칠 뿐이니 시로타는 자연스레 이렇게 생각했다.


증오와 분노가 진심이라고 한들 당장, 이후에도 계속 이득이 이어진다면 그런 건 얼마든지 없는 척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시로타가 보기에 바스쿠의 언행은 그저 투정에 불과해 보였다.


“다른 놈들이야 그렇지. 저놈들이야 이제 막 시작한 장사니까. 그렇지만 이게 나한테도 이득이 된다고? 과연 그럴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거다.”


바스쿠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내 입으로 말하긴 진짜 싫은데, 내 별명이 뭔지 알고 있지?”

“어.......”


알고야 있다.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은 함부로 하기 어려운 법이라 시로타는 말끝을 흐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었는지 바스쿠는 복잡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여러 번 실패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결국 조선 항로라는 돈줄을 잡았지. 그러는 동안 내가 얻은 교훈이 뭔 줄 아냐?”

“글쎄요? 아무리 운이 나쁘고 여러 번 실패해도 운이 한번 좋으면 다 뒤집을 수 있다?”

“......아이씨. 임마, 딱히 부정은 안 하겠지만 그게 아냐.”


시로타가 너무 솔직하게 대답하니 바스쿠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이어갈 단초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살아서 다시, 계속해서 해갈 기반이든 재물이든 사람이든 기약만 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돼. 그리고 저지대 놈들은 딱 그 기약을 만들었지. 여지가 생겼다고.”


말로 토해내니 걱정이 더 깊어진 것인지 바스쿠는 그리 말하며 거리를 두고 함께 바다 위를 미끄러지고 있는 네덜란드 선박들을 바라보았다.


“제길, 안 되겠다. 이번에 조선에 가면 우리 위치를 단단히 하도록 좀 비벼봐야겠어.”

“어떻게 말입니까?”


시로타가 물으니 바스쿠는 굳이 감출 일이 아니라 여겨 가벼이 대답했다.


“팔려고 생각했던 걸 선물로 줘야지. 책들 말이야.”

“그걸로 충분할까요?”

“당장은 그러길 바란다. 어쨌든 뭘 하든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거 아냐.”

“그건 그렇죠.”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을 들으며 바스쿠는 시선을 멀리 보이기 시작한 육지에 주었다.


“정 아니면......”

‘나라도 어떻게 살아야지.’


마음을 굳게 먹으며 시선을 앞으로 한 바스쿠의 눈에는 이미 몇 번이고 다녀가서 익은 풍경, 제물포가 점차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



“여기가 조선?”


땅에 내려선 피델베르트는 신기한 듯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연신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시골 촌뜨기가 따로 없었으나 그 눈빛은 강렬하니 아무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생각보다......단단하군.’


뱃사람으로 덕목이 무어냐고 물으면 여럿이 떠오르나 그 가운데 좋은 시력이 들어간다는 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피델베르트는 훌륭한 상인이며 동시에 훌륭한 뱃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자부심에 걸맞게 제법 눈이 좋았다.


그 좋은 눈에 제물포를 지키는 포대와 배들이 눈에 들어오니 피델베르트는 여차하면 자신들이 가볍게 수장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웃.’


동시에 등골을 짜르르 울리는 감각에 피델베르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거기 당신! 짐은 아직이야!”


포르투갈 상인 하나가 급히 달려와서 외치는 말에 피델베르트는 모아온 동료들 가운데 하나가 성급하게 짐을 내리고 있는 걸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쯧. 처음 온 땅에서 그렇게 다급하게 굴면 호구 잡힌다고.’

“젠장, 가서 인사부터 해야 한단 말이야!”

‘어째 익숙한 얼굴인데?’


성을 부리는 모습이 어딘지 익숙하다는 생각에 가만히 보던 피델베르트는 그가 여러 의미로 유명한 이, 바스쿠라는 걸 깨닫고 슬며시 웃었다.


‘악운 좋은 그 친구로군.’

“젠장, 사람하고 배가 늘었으니 저쪽에서 기록하려고 할 거라고! 그러니까 기다려! 기다리라고! 니들, 알아들으면서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지!”


바스쿠가 외치는 말에 피델베르트는 내심 그 말이 옳다고 여기면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 걸음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멈추게 되었다.


“아씨, 그만하라고! 조선 사람들이 왔잖아!”



***



“좌랑 나으리, 좌랑 나으리!”

“무슨 일입니까?”


바깥에서 급히 자신을 찾는 소리에 윤휴는 읽던 책을 살짝 앞으로 밀며 물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전일 일을 찾아온 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심성과 기개를 보아서 이곳 관청과 포구를 오가며 소식을 전하도록 맡긴 사람이었다.


물론 윤후가 딱히 그를 알아보는 신통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가 겪은 일을 들었고 그저 뭉그적대며 쌀이나 축내도 될 자가 그 몸을 썩게 하지 않고 낫자마자 일을 찾아 이곳 제물포까지 온 것을 평가했을 따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기대에 맞게 곧잘 일을 잘하니 윤휴로서는 나중에 송시열이나 윤선거에게 제가 나름 보는 안목이 있었다 자랑할 생각도 품고 있었다.


“그, 포구에 불란국 사람들이 왔는데 불란국 사람들만 온 게 아니랍니다.”

“명나라 사람들이 다시 왔습니까? 그거야 종종 오던 일이 아닙니까.”

“그, 호란? 거기서 왔다는데요?”

“호란? 혹시 화란이나 호란드라고 했습니까?”


익숙한 발음에 되물으니 바깥에서 고하던 이, 박귀동은 급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 맞습니다! 그런 이름입니다!”

“과연과연. 드디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셨는가.”


불란국에 이어서 드디어 다른 나라에서도 이곳 조선으로 발걸음하였음을 안 외조 좌랑 윤휴는 만면에 가득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박 종사관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훈련도감 소속 종사관 박연, 그가 살던 나라말로 벨테브레이를 찾는 물음에 박귀동은 바로 대답했다.


“오전에는 한양 쪽 도로 점검에 나가계십니다.”

“그러면 얼른 가서 불러오시오.”

“예, 나으리!”


힘차게 대답한 박귀동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급하게 뛰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휴는 읽다 만 서책을 기억하며 몸을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의 도니 뭐니 해서 제법 재밌었지만 아무래도 나머지는 나중에 해야겠구나.”


읽던 부분을 한번 보아 기억한 윤휴는 책을 덮고 옷매무새를 살폈다.


이제 새로이 이 조선에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니 조선의 얼굴이 된 기분으로 만전을 기해야 했다.


“이만하면 충분하겠군. 그러면 가볼까.”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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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209화 추천의 의미 +2 23.05.02 426 18 14쪽
209 208화 아비가 제안하고 아들이 행하고 +5 23.05.01 473 22 15쪽
208 207화 이득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2 23.04.30 455 23 13쪽
207 206화 사람은 그 나눔에 사람을 가린다 +2 23.04.29 446 19 14쪽
206 205화 성종과 같다 +3 23.04.28 461 23 14쪽
205 204화 당장의 편함과 득이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5 23.04.27 459 25 15쪽
204 203화 거간꾼은 손해 보지 않는다 +1 23.04.26 452 27 12쪽
203 202화 밀면 움직인다 +2 23.04.25 449 26 12쪽
202 201화 속은 어디나 복잡하다 +4 23.04.24 463 23 13쪽
201 200화 누군가에게 끝난 일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다 +5 23.04.23 487 27 14쪽
200 199화 줄 그은 호박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2 23.04.22 470 22 13쪽
199 198화 포장은 하기 나름이다 +2 23.04.21 473 22 15쪽
198 197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1 23.04.20 477 20 13쪽
197 196화 그저 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1 23.04.19 500 21 13쪽
196 195화 서생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2 23.04.18 490 22 15쪽
195 194화 인연은 때때로 사람을 험지로 이끈다 +3 23.04.17 494 25 12쪽
194 193화 변하는 국면 +4 23.04.16 492 27 12쪽
193 192화 때때로 완벽함은 서두름만 못하다 +2 23.04.15 487 28 14쪽
192 191화 도움은 사방을 향해야 한다 +4 23.04.14 485 24 14쪽
191 190화 올바르고 당당하게 +3 23.04.13 498 26 15쪽
190 189화 다툼에서 가장 손해 보는 사람은 +1 23.04.12 479 25 13쪽
189 188화 장점은 알리고 약점은 감춘다 +2 23.04.11 483 26 14쪽
188 187화 가장 원하는 이 +1 23.04.10 498 23 16쪽
187 186화 이 나라는 다르다 +3 23.04.09 532 25 14쪽
» 185화 천객만래 +3 23.04.08 492 27 12쪽
185 184화 돌아갈 수 없는 사람 +1 23.04.07 508 26 13쪽
184 183화 상인의 방식 +3 23.04.06 516 26 13쪽
183 182화 가도 하나, 남아도 하나 +2 23.04.05 542 25 13쪽
182 181화 작은 불씨들 +2 23.04.04 556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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