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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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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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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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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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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장 로앙의 이름 (5)

DUMMY

모든 정규 기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부터 미가로스는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교관들이 사라진 자리를 누구나는 대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살피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무슨 사고가 생겼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자연스레 그동안 훈련 과정 중에서 각각 조장을 맡은 이들에게 그 역할이 돌아왔고, 그 가운데서 가장 머리 좋고 차분하다 평가를 받았던 미가로스에게 총괄 역이 돌아왔다.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일이나, 미가로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직접 말하긴 좀 그렇지만, 당장 다른 조장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아니라 몸 쓰는 실력과 휘어잡는 능력을 인정 받은 이들이었다.


그러니 조장은 몰라도 그 모두를 통솔하고 일을 분담해주기에는 역부족인 이들이었고, 천성적으로 그러한 일이 잘 맞지 않는 이들이었다.


덕분에 미가로스가 총괄을 맡는 일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으니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살짝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울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미 맡기로 작정한 일, 누군가 대신 맡길 이도 없었기에 미가로스는 정말 하루하루를 꾸역꾸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보냈다.


당장 남은 식량과 있는 것들을 파악하고 분리하는 일부터 해서 상황을 알기 위해 동료들 몇몇을 보내는 일까지 그가 전부 지휘했다.


덕분에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글솜씨로 보낼 문서를 작성하는 일도 도맡기도 했다.


그렇게 좀 익숙해지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다 싶던 차에 사고가 터졌다.


“없다고?”

“어. 훈련장을 싹 뒤졌지만 보이지 않아.”

“개인 물품도 다 챙겨갔는지 없어. 있는 거라고는 어제 먹은 간편식 포장 정도?”

“......일단 명단 작성해서 이쪽에 돌려줘.”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내에 미가로스는 이해했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상참작이 될까?’


훈련에 들어가면서 누누히 들은 주의점 가운데 하나가 이탈은 곧 탈락으로 처리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시기에 더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신전 기사가 되는 걸 포기했다는 걸 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누군가 와서 이 상황을 해결하고 훈련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한 동기들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그 안타까움은 저녁을 먹고 각 조장들이 보낸 명단을 보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게 뭐야?”


그저 버티지 못해서 사라졌다고 여겼던 이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가장 바라는 일, 내직이 예정되었던 이들이었다.


“처음에는 교관들이고 이제는 내직 예정자들.”

우연일까 싶었지만 미가로스의 직감은 그게 아님을 끊임없이 알렸다.


물론 내직에 예정되었던 이들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지금 조장을 맡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조장들은 누구 하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직 예정자는 그가 알기로 훈련받은 인원 가운데 1할이었다.


1할이 적은 숫자라고 하나 훈련받고 있는 이들 전체에 비하면 사라진 이들은 그 숫자의 반절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이상한지는 몰라도 이상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그 이상함이 어째서 느껴지는 건지, 이 일이 무슨 일로 이어질지 미가로스는 도통 알기 어려웠다.


다행인 점은 그는 그 일을 오래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라 할 일이 바로 다음 날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행인 점은 그 일이 차라리 홀로 궁리했으면 할 정도로 끔찍한 일이라는 거였다.



***



“......죽었다?”


어제 들린 실종에 이어서 조장 가운데 하나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미가로스는 멍하니 되물었다.


그러자 죽었다는 조에서 조장을 대신하여 온 부조장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나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거 같았다.


미가로스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에 있어?”

“입구에. 들것으로 옮겨왔고 깃발로 덮었어.”

“깃발로 덮었다고?”


깃발이란 말에 미가로스는 출입구에 몇인가 걸려있던 로앙 기사단의 상징이 그려진 커다란 깃발들을 떠올렸다.


“들추진 마. 끔찍하니까.”


떠올리자니 속이 나쁜지 안색이 창백해진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미가로스는 출입구로 가서 들것과 깃발을 찾았고, 그걸 들추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정말로 끔찍했다.


마치 야수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사지가 따로에 목은 반절쯤 뜯겨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리고 한층 더 당황스러운 것이 있었으니, 죽은 조장은 그들 가운데서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실력자였다는 점이었다.


“빌어먹을. 근방에 이렇게 위험한 야수가 있었다고? 3미터짜리 불곰이라도 있나?”


토할 거 같은 기분을 억지로 참으며 욕지거리를 내니 주변에서 시신을 지키던 이들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 역시 이곳에서 몇 달이고 보냈지만 그런 건 본 적이 없었다.


미가로스 역시 그걸 알았기에 불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위기감을 느꼈다.


“어디서 발견했어?”

“외각 동산.”


한 사람의 대답에 미가로스는 그곳이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으로 그 뒤가 분지 형태를 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언덕에 가려진 곳이라 훈련장에서는 분지 안쪽을 살피기 힘든데, 그런 곳에 조장 하나를 처참하게 살해한 무언가가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누구나 쉬이 드나들 수 있게 열린 출입구를 보면서 곰곰히 생각하던 미가로스는 결단을 내렸다.


“조장들 모아. 입구 폐쇄하고.”



***



이후 조장들을 모으고 죽은 이에 대한 걸 공유한 미가로스는 그들의 동의를 얻어서 훈련장을 폐쇄했다.


그건 옳은 선택이었고, 매우 현명한 대처였다.


카각카각


“저, 저게 뭐야!?”

“괴, 괴물이다!”


출입구를 닫은 것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려웠던 미가로스와 조장들은 그날부터 입구를 위에서 살필 경계조를 편성했다.


그리고 경계조는 야밤에 어둠을 틈타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뭔지 모를 생물들을 보았다.


일견 늑대나 사자처럼 보였지만 온통 검은색에 쇠로 된 문을 긁을 때마다 흔적을 남기는 것들이, 그것도 울지도 않고 긁기만 하며 문을 돌파할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평범한 늑대나 사자로 보이진 않았다.


이는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와서 상황을 확인한 미가로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저게 원흉인가?”


낮에 죽은 조장의 시신을 떠올리니 얼추 맞는 거 같았다.


동시에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여긴 미가로스는 급히 사람들을 모아 떨어트릴 만한 걸 찾았다.


“하나, 둘! 밀어!”


우르르


내부에서 그러모인 고철 잡동사니들을 한번에 쏟으니 아래에 있는 것들이 하나둘 머리나 몸에 맞아서 비틀거렸다.


통했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미가로스는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누워서 꾸는 악몽이 아닐까 싶은 광경을 보았다.


“재, 재생하고 있어?”


운 좋게도 어떤 고철은 그대로 힘을 받아서 머리 한쪽을 크게 때렸다. 다친 것에 그치지 않고 죽였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검은 연기가 일렁이며 재구성되는 머리는 아래에 있는 것들이 평범한 생물이 아님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다들 깨워.”


이대로 있다가 문이 뚫리면 속절없이 당하고 말 거라는 생각에 미가로스는 결국 모든 사람을 깨워서 대비하기로 했다.


기이잉


그러나 그들이 다른 이들을 깨우기도 전에 이변이 발생했다. 문이 아니라 문을 지지하던 부분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제길! 당장 내려가서 지지대로 쓸 것들 좀 가져와! 아니, 나도 같이 간다!”


미가로스는 그렇게 말하고 아래로 뛰어서 눈에 뜨이는 걸 하나 잡고 문과 바닥 사이에 대각선으로 끼웠다.


“이 깃발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네.”


우습게도 그건 깃발을 걸었던 나무였다.


그를 따라서 다른 이들 역시 남은 깃발들을 같은 용도로 사용했고, 그 노력에 힘입어서 그 밤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아침이 오도록 잘 버텼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이제 시작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안도였다.


괴로운 시간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는 걸 미가로는 그날 밤에는 미처 몰랐다.



***



“또?”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기의 모습에 미가로스는 이제 지쳐서 무어라 말하기도 힘들었다.


저들이 나타나기 얼마 전부터 식량이 빠듯하다 느낀 미가로스는 몇몇 동기들에게 바깥에서 식량을 구해올 것을 부탁했다.


전에 당한 조장 역시 그러한 일을 하던 이였다.


처음 며칠은 밤에만 저들이 나타나는 거 같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식량을 모으는 일은 계속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처음에 당한 조장이 버젓이 낮에 당해서 발견되었음을 기억하지 못한 어리석음은 익숙한 이들의 죽음이라는 형태로 돌아왔다.


“......전처럼 해.”


전처럼.


이제 안쪽 훈련장은 훈련하는 곳이 아니다. 죽은 이들을 묻어주는 묘지가 되었다.


미가로스의 말을 듣고 동기는 바깥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미가로스는 의문이 들었다.


‘우린 과연 우리가 잘해서 살아남은 걸까?’


이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식량 수집을 위해 문을 연 순간 나가려던 이들이 습격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의미 있는 저항을 하지 못하고 학살당했다. 살아남은 이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아니면 운이 나빴거나 말이다.


정신이 반쯤 나간 동료를 기억하며 이제 미가로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밖에 얼마나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괴물들을 뚫고 가거나, 아니면 먼저 도움을 요청하러 보낸 동료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거나.


전자는 목숨을 건 도박이었고, 후자는 보장도 기약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미가로스는 깊은 고민 끝에 조장들과 긴 의논을 거쳐서 결정했다.


나가서 죽는 것보다 안에서 기다리기로 말이다.



***



두려웠다.


저항하지도 못하고 발악하다가 괴물들에게 죽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미가로스는 그 전제를 깡그리 무시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온다! 신전병대, 방어!”


카각


“찔러!”


가장 앞에 있는 이들이 방패로 막으니 그 사이로 후열에 있는 이들이 창을 내질렀다.


단순하고 효과적인 전술이었고, 미가로스 역시 시도한 적이 있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미가로스들은 막는 것에 급급한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하는 공격들은 괴물들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헌데 지금 신전병들이라고 하는 들은 수월하게 저들을 막았고, 그 창은 저들을 손쉽게 꿰뚫었다.


그뿐 아니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듯이 창에 꿰인 괴물들은 하나 같이 연기로 흩어지며 소멸했다.


이도 분명히 놀라운 일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입구를 지키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바깥에서 홀로 종횡무진 날뛰는 사람이었다.


“마수 기사도 아니고 고작 마수들이 전부. 무슨 생각이지?”


멀리서 중얼거리는 아레타의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다가와서 흉험하게 들이미는 이빨과 발톱을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철봉을 휘둘러서 머리를 부수며 전진할 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들의 이빨과 발톱은 그에게 하나도 닿지 않았다.


저게 정말 사람의 피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멀끔했고, 단단했다.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라니, 대단하다.”


아직 저들의 무서움을 잘 알지 못하는 레반트의 목소리가 미가로스를 현실로 이끌었다.


그에 미가로스는 레반트를 돌아보며 물었다.


“소문? 무슨 소문?”

“성전과 수호자들에 대한 소문. 저런 사람이 셋은 더 있다고 하더라.”


홀로 특이한 것이 아니라 저런 사람이 셋이나 더 있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도 아니건만, 미가로스는 그 말에 이미 잊었던 웃음을 오랜만에 입가에 맺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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