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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sy의 소설들

탐정 얀 트로닉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네이시
작품등록일 :
2018.02.28 19:48
최근연재일 :
2019.07.0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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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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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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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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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3. 선택 (3)

DUMMY

탐정 얀 트로닉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3. 선택 (3)


마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빌런트 구에 접어들고 나서였다. 그레이치 구의 도로 폭이 아주 좁은 것은 아니지만, 마차가 무언가에 부딪힐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가능한 것은 이 도시 내에서는 빌런트 구뿐이었다. 쌍두마차 두 대가 지나가도 별문제가 없을 정도로 넓은 도로는 언제나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얼마 전 내린 눈도 이미 깔끔하게 길가로 치워져 있었다. 도시에서의 생활 편의성은 거주하는 사람들의 자금력에 비례한다. 빌런트 구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거주지였다.


에이레네도 이곳에 살기는 했지만, 리처드는 그녀의 집보다 더 위쪽에 살고 있었다. 이곳은 오르막을 타고 위로 오를수록 집과 정원이 커진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건물은 두 개의 첨탑이 특징적인 갈색 성채, 빌런트 성이었으며, 빌런트 구에 접어들면 그 두 개의 첨탑은 어디서건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첨탑 위에서 펄럭이는 빌런트 가의 깃발도 볼 수 있지만, 요즘처럼 눈이 자주 오는 시기에는 깃발은 보통 내려가 있었다.


마차는 빌런트 구로 들어서고도 한참을 더 올랐고, 이윽고 우리가 목적한 건물이 보였다. 이 주변의 다른 건물들보다는 조금 작은, 삼 층짜리 상아색 저택이었다. 연두색 지붕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삼 미터는 될 법한 담장을 지나자 곧 대문이 나타났다. 나는 마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일즈를 남겨둔 채 에이레네와 마차를 내렸다.


마차를 기다리게 하고, 대문의 사자 얼굴 모양 문고리를 두드렸다. 대문에 달린 창이 열린 것은 실제로는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겠지만, 한참을 기다린 것처럼 느껴졌다. 창 너머에서 이쪽을 살핀 갈색 눈동자는 금세 나를 알아보았다.


“오랜만이시군요, 트로닉 님. 주인님을 찾아오셨습니까?”

“리처드는 있습니까? 가능하다면 이쪽으로 불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갈색 눈동자의 집사, 버그먼은 내 뒤편에 있는 마차를 알아보았다. 그가 신중하게 답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창이 닫히고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에이레네는 표정 없는 얼굴을 하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입술이 조금씩 깨물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대문이 소리 없이 열렸고, 안으로부터 진회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금발은 이런 아침에도 빈틈 없이 빗어 넘겨져 있었다. 리처드는 나와 에이레네, 그리고 뒤쪽의 마차를 슥 훑어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마차를 눈짓했다.


“내가 아는 소년에게 문제가 생겼어.”

“문제라고?”

“마법이나, 기프트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해.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자네가 좀 봐주었으면 좋겠는데.”

“흠, 내게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온 게 아닐지 걱정되는데.”


리처드는 차분하게 답하며 나를 뒤따랐다. 나는 마차 문을 열고 마일즈를 그에게 보였다. 리처드는 가만히 마일즈를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아는 표정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이건.”


나직히 중얼거린 리처드가 마차로 올라타 마일즈의 눈을 까뒤집었다. 마일즈를 살피는 그의 눈매가 일 밀리미터쯤 가늘어졌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이랬나?”

“잘 알 수 없네. 그는 실종됐었고, 다시 만난 건 삼십 분쯤 전이야. 그때에는 이미 이렇게 되어 있었지.”

“자네가 살피던 그 병원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병원의 의사가 다녀간 직후 그가 그렇게 된 채 나타났어.”

“그렇군.”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는 마차 문을 닫고 나를 눈짓으로 불렀다. 우리는 마차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섰다. 리처드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탄 것 같군.”

“탔다고?”

“타버렸다······고 하지.”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맥스웰을 기억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눈살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그가 관계가 있나?”

“맥스웰은 좀 문자 그대로 타버리긴 했네만······ 그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네. 몸이 버티는 이상으로 능력을 사용한 경우, 능력이 지나치게 작용해서 몸을 태워버리는 거야. 보통은 능력이 나오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데, 가끔 이렇게 타버리는 경우가 있어. 왜 그런지는 아직 모르네.”

“이것부터 좀 묻고 싶은데.”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회복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되면.”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정도에 따라 다르네.”

“······희망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뭔가?”

“문제는, 탔다는 거지. 실제로 불에 탄 건 아니지만, 사실 비유적인 의미에 가깝긴 하네만, 그럼에도 사실상 화상과 좀 비슷하네. 일단 타버린 것은 그대로 상흔이 남아. 완전히 원래대로 회복될 수는 없을걸세.”

“나도 원래대로를 기대하진 않아. 다만······.”


나는 입 속에서 말을 굴렸다가 말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었네.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장담은 못하겠네. 자네가 그걸 원한다면 노력은 해볼 수 있겠지. 하지만 얀.”


리처드는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치료비가 비쌀걸세.”

“······이런 케이스는 자네들에게도 의미 있지 않은가?”

“저 사람이 실험용 생쥐가 되어도 괜찮다는 뜻인가?”

“······.”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나를 보았다. 그의 눈은 부드러워 보였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현실적인 문제일세, 얀. 우리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아냐. 뭔가를 원한다면 그만한 가치를 입증해야 하네. 물론, 자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지. 에이레네 양에게도 있어. 하지만 저 사람에게 그것이 있는가?”


나는 눈을 찌푸렸다. 내가 반박하기 전에, 리처드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윗사람이 물을 때, 나는 무어라고 답해야 하겠는가? 만약을 대비한 데이터로서의 가치? 그것으로 윗사람을 이해시킬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경우, 저 사람은 말 그대로 데이터로서 이용될걸세. 회복이 최우선시되지 않을 거야.”

“돈이 문제라면.”


갑자기 들린 목소리는 에이레네의 것이었다. 옆을 돌아보자 어느새 그녀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내면 되겠네요. 얼마나 드는데요?”


리처드가 에이레네를 돌아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말했다.


“아가씨는 얀을 정말 좋아하는군요.”

“······난 얼마나 드느냐고 물었어요, 리처드 씨.”


에이레네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답했다. 리처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에이레네 양이 그 돈을 낼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어질 겁니다.”

“그건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에요, 리처드 씨.”


에이레네는 차분했다. 리처드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에이레네도 그를 응시했다. 이윽고 리처드가 쓰게 웃음 지었다.


“에이레네 양의 생각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저 소년은 그렇다고 해도, 토미 그랜트는 어떻게 할 건가요? 그 아이의 치료비까지 낼 수는 없을 텐데요.”

“토미가 어쨌다고?”


물은 사람은 나였다. 리처드는 나를 돌아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 아이가 온전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자네도 생각하지 않았나?”

“나는 자네와 토미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한 기억이 없는데.”


리처드는 침묵했지만, 오래 침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그가 말했다.


“말실수를 해버렸군.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더는 없을걸세. 조심해야 하니까.”

“······.”


나는 리처드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린 사이, 에이레네가 말했다.


“치료비가 얼마인지 말씀해주시죠. 토미까지 가능할지 알고 싶으니까요.”


리처드는 작게 웃었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분명히 무리일 겁니다. 에이레네 양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군요. 회복이 최우선시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우선시되지 않을 것도 아닐 테니까요.”


에이레네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녀가 물었다.


“우릴 시험한 건가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군요. 양해를 구한 셈이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긴 하겠지만, 우리에게도 사정이 있으니까요.”

“자네는 내게 확신 없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었지.”


나직한 내 목소리에 리처드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전적으로 나를 지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말이야. 그렇지 않았나?”


리처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긍정했다.


“비슷한 말을 했지.”

“자네는 그 병원에 대해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지만, 그걸 알려줄 순 없는 거지. 입장 상 말이야. 지금도 그렇지?”

“그렇네.”


리처드는 조용히 답했다. 내가 물었다.


“마일즈가 완치될 가능성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치료는 시도할 수 있다는 거고?”

“음, 그렇지.”

“데이터로서의 가치 이야기를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치료비를 낸다고 해서 그에게서 데이터를 얻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겠지?”


리처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랬을걸세.”

“알겠네. 그의 치료를 부탁하지.”


말하고 나서 내가 덧붙였다.


“그리고, 토미도.”

“토미의 경우는······.”


리처드는 조금 생각하고 말했다.


“아주 심각하진 않을걸세. 그렇지만 자연히 낫진 않을 테지. 치료를 받는 게 좋긴 할 거야. 다만, 지금처럼 자네가 찾아왔을 때는 몰라도 이런 일에 내가 관여한 흔적을 남기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님을 양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부모를 내가 만나보도록 하지. 누구에게 가라고 소개하면 되나?”


나는 수첩을 꺼내 들었다. 리처드의 입가에 흐릿한 골이 생겼다. 그가 말했다.


“그레이치 구 2번가 172번지. 닥터 헨슨.”


나는 그대로 적고 리처드에게 보여주었다.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마일즈도 그리로 데려가면 될까?”


마차를 눈짓하자 리처드도 마차를 보았다. 그가 금방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가서 내가 이야기해야 하기도 하겠고. 저 소년 건은 내게 맡기고, 자네는 자네 일을 하도록 하게. 토미에게 가도 좋겠고, 다른 급한 일이 있다면 그걸 해도 좋겠고. 뭐, 자네는 아마 토미에게 갈 것 같지만.”

“그렇겠지.”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하고 나서 헤어졌다. 리처드가 마차에 타고 길을 내려간 뒤, 나와 에이레네는 근처에 있는 마차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10분을 걷기 전에 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램버츠 구 4번가 105번지로 출발했다.



===================


만성피로가 사라지지 않는 요즘입니다. 글쓰기도 영 쉽지 않네요.


이 소설이 여러분에게 작은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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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탐정 얀 트로닉>에 관하여 (18. 6. 4. 수정) 18.02.28 192 0 -
22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3. 선택 (5) 19.07.08 76 2 9쪽
21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3. 선택 (4) +2 19.06.16 64 2 7쪽
»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3. 선택 (3) +2 19.04.29 54 2 11쪽
19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3. 선택 (2) 19.04.01 70 2 13쪽
18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3. 선택 (1) 19.03.11 59 2 13쪽
17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8) 19.02.11 66 2 11쪽
16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7) 19.01.21 58 2 14쪽
15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6) +2 18.12.31 76 2 13쪽
14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5) +2 18.12.03 98 2 14쪽
13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4) +2 18.11.12 63 2 9쪽
12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3) +2 18.10.22 83 2 10쪽
11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2) 18.10.01 88 2 8쪽
10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1) +2 18.08.06 89 4 11쪽
9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9) +2 18.07.16 82 4 14쪽
8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8) +2 18.06.18 78 3 14쪽
7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7) +2 18.05.27 91 4 11쪽
6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6) +4 18.05.07 117 4 11쪽
5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5) +2 18.04.23 123 6 19쪽
4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4) +2 18.04.09 126 5 15쪽
3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3) +4 18.03.26 165 6 19쪽
2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2) +4 18.03.12 160 6 20쪽
1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1) +2 18.02.28 357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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