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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sy의 소설들

탐정 얀 트로닉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네이시
작품등록일 :
2018.02.28 19:48
최근연재일 :
2019.07.0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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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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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1)

DUMMY

탐정 얀 트로닉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늦어 있었다.


집 안은 어둡고 적막했다. 그러리라고는 알고 있었다. 보안관보의 퇴근은 늦다. 아내와 딸이 깨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평소처럼 조용히 들어가,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가볍게 웃었을 수도 있다. 그 후에 조심스럽게 그들 옆에 누웠을 것이다. 내가 눕는 기척에 둘 중 하나가, 혹은 두 명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을 수도 있다. 조금 툴툴대고, 다시 잠에 빠져들거나, 아니면 깨어나 나와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수 없었음을 당시의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나치게 적막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적막한 가운데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듯한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둡고 습한 공기 사이로 약간의 피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캐시? 그레이스?”


내 목소리는 아무런 이변도 느끼지 못한 사람 같았다. 나는 차분한 걸음으로 안방 앞에 도착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방문을 밝히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았다.


알고 있다.


이것은 꿈이다.


이미 수십 번 이상 꾸어왔다. 모두 지나간, 지금은 내 안에서만 존재하는 광경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원한다면 나는 꿈에서 깨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깨어나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눈앞의 문을 연다.


소리도 없이 한 남자가 달려든다.


달빛에 비쳐 무언가가 번쩍인다. 칼이라고 깨닫는다. 그 칼에 무언가 엉겨 붙었다는 것도 알아챈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인다.


남자의 칼이 내 가슴을 스친다. 내 손이 그의 팔을 휘감는다. 반동을 살려 그의 팔꿈치를 꺾는다. 비명과 함께 남자의 입이 벌어진다. 그 턱을 강하게 후려친다. 맥없이 쓰러진 그의 갈비뼈를 강하게 걷어찬다. 옷가지를 찾아 팔과 다리를 함께 결박한다.


안방 안을 살핀다.


아무도 없길 바랐다. 그러나 있었다. 내가 지켰어야 할 두 명의 여자들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 침대맡에, 쓰러져서.


가까이 가는 순간 알아챘다. 아내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 베인 곳은 목이었으며 살아있기를 기대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와 있었다. 눈은 감겨 있지 않았다. 이쪽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마주쳤다면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어라 외쳤지만,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좀 더 다가갔고, 쓰러진 내 딸이 아직 힘겹게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했다. 몸 어딘가로부터 피가 흘러나왔는데 심상치 않은 양이었다. 몸을 더듬어 상처를 확인했고 옷가지로 상처를 지혈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눈을 떴다.


“아빠······?”

“말하지 마.”


나는 그녀를 안아 들고 일어났다.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메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레이스의 목소리에 비하면 오히려 힘이 있는 편이었다. 그레이스의 목소리는 모래알 같았으며, 건조하다 못해 쇳소리까지 났다.


“믿었어요.”


아이는 웃으려 했다.


“아빠가 올 거라고 믿었어요.”


그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더 말하지 말라고 말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르게 의사에게로 달려갔지만,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아이는 중간에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레이스가 죽었으며 다시는 눈을 뜰 수 없게 되었음을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의사에게로 달리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문을 두들기자 나온 의사는 아이를 살폈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았고 그것으로 할 말을 다 했다. 이어서 한 말은 단지 덧붙임에 지나지 않았다.


“늦었습니다.”


물론 나는 늦었다. 무엇보다도 집에 그 시간에 갔어서는 안 되었다. 10분, 하다못해 5분 만이라도 빨리 갔었더라면. 서류 작업 하나를 덜 했더라면. 밀린 일 몇 개 정도는 다음 날로 미루고 그냥 집에 갔었더라면. 집에 걸어가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빠르게 갔더라면.


후회한다고 무언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나는 후회한다. 후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세상을 떠난 내 딸은 내게 선물을 남겨 두고 갔다. 기프트라고 불리는 능력. 그날 이후로 나는 다칠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내게 흉터를 남기지 못하니까.




눈을 뜬다.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어둡지만 천장의 얼룩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은 밝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 위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누운 채로 잠시 달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1. 실종자 (1)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햇볕이 비치고 있었다. 해는 높지 않았고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에는 짙은 음영이 드리웠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가로수 가지는 앙상했고 쓸쓸해 보였다. 간헐적으로 바람이 부는 듯 창문이 가볍게 떨렸지만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잠깐 창밖을 쳐다보았지만 오래는 아니었다.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를 끼워 탁자에 올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벽난로의 불빛이 약해져 있었다. 부지깽이로 장작을 뒤적이다가 불길이 살아나자 장작을 두어 개 더 올려두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에이레네 키르헨펠이 책을 덮고 말을 걸었다.


“사람이 없네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열일곱의 소녀로, 영민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와 이지적인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는 약간 복숭앗빛을 띠었으며 도톰한 입술에는 생기가 있었다. 물결치는 금발은 요즘 들어서는 뒤로 묶어 올리는 편을 선호하는 듯했는데 제법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깨끗하게 다린 셔츠와 바지는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 사무실에 있기에는 적합한 복장이었다.


사무실이라지만 거창한 곳은 아니었다. 삼 층짜리 건물의 삼 층에 세를 들어, 한쪽은 주거 공간으로, 한쪽은 사무소로 꾸몄다. 사무소에 있는 것은 소파 두 개와 탁자 하나, 자그마한 책장 두 개, 그 옆의 옷걸이, 그리고 한쪽에 있는 벽난로 정도가 전부여서 다소 휑뎅그렁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마 소파가 아주 싸구려는 아니어서 봐줄 만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한가롭게 답했다.


“이런 날도 있는 법이죠.”

“날‘들’이겠죠. 일주일째잖아요.”


예리한 지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으쓱하고 답했다.


“지난번 의뢰비를 많이 받았으니 이번 달은 아직 여유롭습니다. 정 여의치 않으면 럼블버즈에 가서 뭔가 없는지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가씨가 다녀오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음.”


에이레네는 그렇게만 말했다. 창밖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사무소의 상황이 진심으로 걱정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다시 책을 펼쳤다.


두 문단 정도를 읽었을 때쯤 에이레네가 다시 말을 걸었다.


“럼블버즈 하니까 생각났는데, 저번에 일레인이 그러던데요.”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책에 눈을 둔 채로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도 눈길을 책으로 내렸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간판 달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간판?”


나는 에이레네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살짝 웃었다.


“얀 트로닉 탐정 사무소 럼블버즈 지부라고요.”

“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에이레네의 입가에 장난기가 걸려 있었다. 그녀가 발랄하게 말했다.


“자기가 탐정 의뢰 반은 받고 있는 거 아니냐면서, 아무래도 지분을 좀 늘려야겠다던걸요?”

“······그게 반이라면 이 사무소 유지가 안 되지 않을까요.”

“아, 나도 반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레인도 정말 반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걸요. 그래도 꽤 되는 건 사실 같아요.”

“그건 사실이죠. 안타깝게도.”


일레인의 주점인 럼블버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찾아갔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 같은 탐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개 사람 찾기나 분실물 찾기, 사소한 조사 등의 자질구레한 일이었는데, 사실 탐정이 하는 일이란 게 실제로는 심부름꾼 같은 일이라, 럼블버즈를 통해 들어오는 일이나 사무소로 제대로 들어오는 일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목숨에 위협을 받은 소녀가 신변 보호와 진상 조사를 의뢰하러 탐정을 찾아오는 것 같은 일은 흔치 않은 법이다.


나는 담담히 긍정했다.


“뭐, 어떻게든 의뢰가 들어와 주면 고마운 일이죠.”

“그렇죠.”


작년에 목숨을 위협 받고 신변 보호와 진상 조사 의뢰를 위해 나를 찾아왔던 소녀인 에이레네 키르헨펠이 느긋하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표정은 부드러웠으며 기분이 약간 좋은 듯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무어라 더 말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푸른 눈동자가 문 쪽으로 향했고 뒤따라 고개도 움직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문을 쳐다보았다. 문 너머 계단으로부터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발소리는 무겁지 않았으며 규칙적이었다. 가까워진 발소리가 문 너머에서 멈추었고 잠깐 뜸을 들인 후 노크했다. 그즈음에는 나와 에이레네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40릴드짜리 상냥한 영업용 미소와 함께 답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검은빛으로 몸을 뒤덮은 빨간 머리의 여성이었다.


무엇보다도 검은 털모자와 검은 롱코트와 검은 부츠가 인상적이었다. 에이레네가 입고 다니는 것만큼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입을 수 있을 만큼 저렴해 보이지도 않아 보였다. 검은빛으로 몸을 감싼 덕분에 붉은 머리칼이 더 눈에 띄었는데, 일반적인 단발보다 조금 더 짧아서 귀 옆에서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목구비는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뚜렷했는데,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열에 일곱은 미인이라고 말할 만한 외모였다. 피부는 다소 창백했으며 눈은 에메랄드빛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와 에이레네를 번갈아 향했다. 나는 친절했다.


“반갑습니다. 트로닉 탐정 사무소의 얀 트로닉입니다. 이쪽은 제 조수인 에이레네 키르헨펠이죠.”

“안녕하세요.”


에이레네가 싹싹하게 인사했다. 빨간 머리의 여성이 미미하게 웃었다. 불안해 보이진 않았지만 다소 긴장된 기색이었다. 그녀도 자기 이름을 밝혔다.


“타니아 벤터스예요.”

“앉으시죠. 홍차 드시나요?”


에이레네의 물음에 타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대답한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를 끓이러 에이레네가 주거 공간 쪽으로 들어간 사이, 탁자에서 펜과 종이를 집어 든 내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동생이 사라졌어요.”


할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녀는 높낮이가 별로 없는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저는 장사를 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최근에는 멜콰이어 시에 있었죠. 동생은 여기에 있었고요. 멜콰이어 시에 있었던 건 두 달 정도 되는데, 일주일 전에 여기로 돌아왔더니 집에 동생이 없더군요. 저 나름대로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나 혼자 찾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여길 찾아왔죠. 탐정이 실종자도 찾아주는 거 맞죠?”

“물론 찾아드리죠. 제대로 오신 겁니다.”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이럴 때의 내 목소리는 코코아만큼 따스해서, 초조해 있기 마련인 의뢰인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대체로 유효했다. 다만 지금은 그 효과가 조금 의심스러웠는데, 어조가 효과가 없어서라기보다 의뢰인이 크게 초조해하지 않고 있는 듯해 보여서였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우선 몇 가지 제가 알아야 할 게 있는데요.”

“네.”

“동생분의 인적사항에 관해 알려주십시오. 이름, 나이, 생김새, 체형 등이요.”

“브랜던. 브랜던 벤터스요. 16살이고,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인데 저랑 생김새가 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키는 160센티미터가 넘고 약간 말랐고요.”


나는 그 내용들을 종이에 적었다. 펜 끝을 종이에 지그시 눌렀다가 말했다.


“친구 관계는 어떻습니까? 알고 있는 친구라든가?”


타니아는 잠깐 눈썹을 오므렸다가 답했다.


“친구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아서요. 제가 알기론 케빈이란 애와 친해요.”

“그 친구 집에는 가보셨나요?”

“네? 아. 가봤어요. 모르겠다던데요. 짐작 가는 일도 없다고.”

“흠.”


나는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집 주소를 알려주시죠. 그 케빈이라는 소년 주소도요.”

“케빈도요? 아무것도 모른다던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은 단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음. 주소는 램버츠 구 3번가 73번지예요. 케빈은 75번지구요. 옆에 옆에 집.”


나는 그 주소도 적었다. 그럴 즈음 주거 공간에서 찻잔과 포트가 놓인 쟁반을 들고 돌아온 에이레네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포트의 홍차를 잔에 따랐다. 하얀 잔에 적홍빛 홍차가 차오르며 김이 피어올랐다. 에이레네가 상냥하게 웃었다.


“드세요.”

“고마워요.”


타니아가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는 사이 에이레네가 내 옆에 앉았고, 나는 살짝 비켜주며 홍차를 마셨다. 에이레네가 종이로 눈을 돌리기에 그녀가 보기 편하도록 각도를 약간 바꾸어 주었다. 타니아가 찻잔을 받침에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까?”

“네, 전혀요.”


그녀는 단호했다. 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적어도 제가 집에 같이 있을 때에는요.”


다시 한 번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


“제가 언제쯤 돌아올지 알기 때문에, 혹시 제가 없는 사이에는 집을 비웠다 하더라도 그땐 왔어야 맞을 거예요. 아니면 뭔가 쪽지라도 남겨놓든가요.”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이걸 먼저 안 물었군요. 경찰에 신고는 언제 하셨습니까?”


타니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내 눈을 응시했다. 그녀의 녹색 눈동자에서는 아무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까?”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물었다.


“경찰을 믿지 못하십니까?”

“글쎄요.”


타니아가 입술 한쪽이 찌그러진 듯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타니아가 말했다.


“우리 동네에는 보안관 사무실 자체가 없어요. 아니, 건물은 있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죠. 보안관보가 한 명 있었을 때도 있었지만, 오래전 이야기예요.”

“램버츠 구가 좀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신중하게 말했다.


“경찰을 아예 불신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구역의 경찰에게 협력을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가능하다면요.”


타니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쓴웃음을 흘렸다.


“협력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요. 아마 탐정님이라면 방법이 있겠죠.”

“맡겨 주십시오. 혹시 전단은 만드셨습니까?”

“전단······ 만들었죠. 나흘 전에. 여기저기 붙여봤는데, 아직 성과가 없네요.”

“그렇군요. 그러면······.”


나는 잔에 담긴 차를 마저 마셨다.


“이제 제가 움직여 봐야겠군요. 의뢰비 이야기인데, 하루에 40릴드이고 기타 비용이 들어가면 따로 청구 드립니다. 일이 끝났을 때 정산하시면 됩니다. 뭔가 질문 있으십니까?”


타니아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비용은 상관없어요. 제 동생만 찾아주시면 돼요.”

“걱정 마십시오.”


나는 믿음직하게 답했다. 타니아가 입술 끝으로만 미소지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시는 건가요?”

“그럴 겁니다. 우선 집부터 들러보고 싶은데, 열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 있어요.”


타니아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열쇠를 집었다. 새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용한 흔적은 별로 없어 보이는 열쇠였다. 타니아가 말했다.


“저도 밤에는 돌아갈 테니까, 그 열쇠는 사용하고 나서 우편함 안에 넣어두시면 돼요.”

“집에서 주무시는 거죠?”

“맞아요.”


대답한 타니아가 홍차를 잠깐 내려보더니 잔을 들어 마저 마시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나와 에이레네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타니아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맡겨주십시오.”


나도 고개를 숙였고 타니아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자 에이레네가 입을 열었다.


“약간 이상하지 않았어요?”

“흠.”


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에이레네는 신중한 탐정 조수의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만큼 세심하진 않은 사람처럼 말했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불안해 보이지가 않아서요. 실종된 사람 찾으러 온 사람치고.”

“믿을 만한 탐정에게 의뢰하러 왔으니 좀 안정이 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믿을 만한 탐정······ 그걸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보통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해요?”

“사실이니까요.”

“아, 그래요.”


에이레네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졌지만 그만두기로 한 사람의 얼굴을 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쨌든, 동생이 실종된 사람치곤 큰 걱정이 없는 것 같아 보여요. 그래서 이 일이 그녀가 말한 것과 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뭐, 어쩌면 타니아 씨는 동생을 찾는 게 아니라 채무자를 찾는 걸 수도 있을 겁니다. 조직에서의 도망자를 찾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혹 도망친 연인을 찾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녀가 완전히 솔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돈을 주기로 했죠.”


나는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이레네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기쁜 소식이네요.”

“아주 기쁜 소식이죠.”

“음.”

“타니아 씨의 증언에 대한 추측은 불확실한 것이지만, 브랜던을 찾아내달라고 타니아 씨가 돈을 주기로 한 건 확실한 것이죠. 확실한 걸 믿고 가 봅시다.”


에이레네는 우선 수긍한 얼굴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지으며 옷걸이에서 코트를 꺼내 걸쳤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진회색 코트로, 두껍지는 않지만 안감이 기모로 되어 있어서 한겨울에도 충분히 입을만한 옷이었다. 에이레네도 내 것과 비슷한 연회색 여성용 코트를 꺼내 입었다. 이렇게 입으면 마치 맞춰 입은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맞춰 산 것이긴 했다. 에이레네가 말했다.


“마차 탈 거죠?”

“물론이죠.”


사무실을 나온 뒤 에이레네가 문을 잠갔고, 문에 걸린 팻말을 ‘의뢰를 맡아 외출 중’으로 바꿔두었다. 잠깐 서로에게 가볍게 미소지어주고 나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어찌어찌, 글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새로 <탐정 얀 트로닉>을 읽어주시는 분들,

이전에 <탐정 얀 트로닉>을 보셨던 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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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4) +2 18.11.12 63 2 9쪽
12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3) +2 18.10.22 8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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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3) +4 18.03.26 164 6 19쪽
2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2) +4 18.03.12 159 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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