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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sy의 소설들

탐정 얀 트로닉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네이시
작품등록일 :
2018.02.28 19:48
최근연재일 :
2019.07.08 23:34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361
추천수 :
72
글자수 :
129,313

작성
18.03.12 19:31
조회
159
추천
6
글자
20쪽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2)

DUMMY

탐정 얀 트로닉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1. 실종자 (2)


마차를 잡는 데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부들을 찾아갈 필요도 없이, 마침 지나가던 마차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의자가 낡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깨끗한 마차로, 램버츠 구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아늑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요금을 지불하고 마차에서 내리자 앞서 내린 에이레네가 거리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램버츠 구는 빌런츠 시에서 가장 낙후된 곳이다. 본디 빌런트 시에 포함되지도 않은, 성 밖의 마을이었으나 삼십 년 전에 시에 포함되었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해 마차가 다니기 어려웠고, 다닥다닥 세워진 건물들은 건물 폭이 좁고 창문이 거의 없었다. 이곳저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서 빈말로도 깨끗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지금이 1월인 덕분에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램버츠 구에 오신 적이 있습니까?”

“아뇨. 어. 처음이에요.”


지나치게 둘러보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티가 나는 에이레네가 답했다. 지나가는 행인조차도 그녀에겐 새로운 듯했다. 닳을 대로 닳아 깃이 아예 없는 코트를 입고 지나가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를 보고 그녀는 약간 눈썹을 오므렸지만, 별다른 불쾌감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조금 신기한 듯했다. 남자는 우리를 힐끗 곁눈질하고는 우리를 지나쳐 골목으로 사라졌다. 에이레네가 입을 열었다.


“뭐랄까······ 새롭네요.”

“멋진 동네죠.”

“음.”


그녀는 모호하게 답했다. 나는 미소지었다.


“그럼 가볼까요. 아마 십 분쯤 걸어야 할 겁니다. 그쪽까지는 마차가 들어가지 못해서.”

“알아요. 마차에서 얘기했잖아요.”


에이레네는 담담하게 답하고 내 뒤를 따랐다. 정확히는 내 뒤라기보다는 옆이었다.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왔다.


길은 블록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리 잘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블록마다 높낮이가 들쭉날쭉했고, 어떤 것은 깨져 있었고 어떤 것은 아예 조각이 사라져 있기도 했다.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은 명백했는데, 관리 이전에 포장 자체가 그다지 깔끔하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곳곳에 검은 얼룩도 있었는데 떨어진 석탄 조각을 누군가 밟아서 생긴 흔적 같았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종종 놀러 나온 아이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나와 있었는지 볼과 귀가 빨갰으며 코끝에 콧물이 언뜻 보였다. 아이들끼리 잡기 놀이를 하는 듯 한데 몰려 뛰어다녔는데 땀으로 머리가 젖어 있었다. 우리들 쪽으로 달려오다가 에이레네가 신기해 보였는지 그녀를 좀 쳐다보고 가기도 했다.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빨개진 볼을 하고 에이레네가 말했다.


“내가 신기한가 봐요.”

“누가 봐도 여기 사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좀 평범한 옷을 입고 올 걸 그랬을까요?”

“그랬어도 어차피 눈에 띄었을 겁니다. 에이레네는 예쁘니까.”

“에?”


그녀가 멈춰서는 바람에 나도 멈췄다. 뒤돌아보자 당황한 듯한 그녀가 보였다. 푸른 눈동자로 나를 탐색하듯이 보더니 살짝 웃으며 다시 내 옆으로 걸어왔다.


“뭐야, 놀랐잖아요.”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내가 별생각 없이 말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의도 없이 말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평소에 스스로 안 예쁘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에이레네는 밝게 웃었다.


“그런 말 한 적이 없잖아요. 얀이 나한테.”

“없었던가요?”

“없었어요.”


에이레네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꼭 좋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는 충분히 눈에 띄는 외모이며, 이 램버츠 구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라고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녀에게는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다시 걷기로 했다.


에이레네는 내 옆에서 경쾌하게 걸었다. 방금 전보다 몸무게가 오 킬로그램쯤 가벼워진 사람의 걸음이었다. 그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앞으로 좀 신중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5분 정도 지나 3번가 73번지 앞에 도착했다. 그즈음에는 에이레네의 발걸음도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나는 2층짜리 건물 앞에 서서 잠시 둘러보았다. 집 폭은 좁았고 창문은 1층과 2층에 각기 하나씩만 있었다. 창문을 더 달 만한 공간도 별로 없어 보이긴 했다. 갈색으로 칠해진 벽은 칠이 반쯤 떨어져 나가 마치 각질이 일어난 피부처럼 보였다.


두 칸짜리 계단을 오르면 흰색 나무문이 있었다. 나는 타니아에게 받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열쇠가 돌아가는 느낌이 뻑뻑했으며 문이 열릴 때 경첩에서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이 났다.


안은 어두웠으며 조용하고 싸늘했다. 밖에서 짐작할 수 있던 대로 안은 좁았다. 내 사무실의 반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거실은 없었으며 화덕과 찬장, 자그마한 식탁만이 비좁게 놓여 있었다. 식탁 옆에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 사이로 먼지가 떠돌았다. 식탁 안쪽으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계단 밑의 작은 쪽문이 보였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에이레네가 되도록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눈여겨봐야 할 게 있나요?”

“단서가 될 만한 건 뭐든 좋습니다.”


내가 답했다. 식탁에 먼지가 쌓인 모양을 살피며 말을 계속했다.


“메모나, 편지, 낙서, 아니면 싸운 흔적, 망가진 물건, 물건이 사라진 자국. 무엇이 됐든, 눈에 띄는 건 모두 제게 말해주세요.”


“알겠어요.”


에이레네가 싹싹하게 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1층을 살펴보라고 말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나무로 된 계단이 심하게 삐걱거렸다.


올라가자 2층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었다. 천장도 따로 없었으며 바로 지붕이었다. 지붕 귀퉁이에 거미줄이 보였는데 벌레가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나는 잠시 서서 안을 살펴보았다. 지푸라기가 깔린 침대가 두 개, 나무판을 대강 짜 맞춰 만든 듯한 옷장이 하나. 옷장 옆에는 자그마한 난로와, 가까스로 상체를 확인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거울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가구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옷장을 살폈다. 여성용 겨울옷이 열 벌, 남성용 겨울옷이 네 벌 들어 있었다. 남성복은 성인이 입기에는 조금 작아 보였으며, 여성복은 코트도 있었지만 남성복은 코트는 보이지 않았다. 옷 주머니를 살펴보다가 남성용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한 종잇조각을 찾아냈다. 명함이었다.


모서리가 약간 헤진 명함에는 굵직한 글자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허버트 병원. 의사 C. 허버트. 그레이치 구 5가 27번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것을 내려보았다.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곧 모두 털어버렸다. 이 명함은 그저 명함일 뿐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명함을 내 코트 주머니에 챙겼다.


이어서 침대도 살펴보았지만 지푸라기 말고는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흐트러진 침대를 다시 정리하고 나서 난로를 들여다보았다. 다 타버린 석탄 조각 사이로 종잇조각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꺼냈는데, 읽을 만한 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글자 몇 개나 겨우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ㅔ든지 환영하겠습니다. ······’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말 같았다. 필체로 미루어 볼 때 이 문서를 쓴 사람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중류층 이상일 것 같았다. 어쩌면 다른 단서를 찾았을 때 이 종이와 대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조각도 명함과 함께 챙겼다.


이제 더 이상 살펴볼 것이 없었다. 나는 공연히 창틀이나 바닥을 두어 번 살펴보고 나서 1층으로 내려갔다.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내려가자 에이레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찾아봤는데, 별다른 건 없었어요. 다만······.”

“다만?”

“저쪽 쪽방에서 옷가지를 찾았는데, 겨울옷이 안 보이던데요. 특히 남자가 입을 만한 옷이.”

“그건 위층 옷장에 있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남자가 입을 만한 코트는 없더군요. 브랜던은 외출한 채로 돌아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실종이라고 하면 보통 그렇죠.”

“확인은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나는 에이레네에게 위층에서 찾은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읽은 그녀가 눈썹을 약간 들어 올렸다. 그녀가 물었다.


“위층에서 찾았어요?”

“바지 주머니 안에 있더군요.”

“이게 브랜던의 실종과 관계있을까요?”

“그건 확인해봐야죠.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나는 에이레네에게 종잇조각도 보여주었다. 잠시 생각한 그녀가 평했다.


“이 집의 누군가는 제법 수준이 되는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았군요. 그리고 초대받은 사람은 그런 초대를 받았음을 알리는 문서를 굳이 남겨두고 싶지 않았고요.”

“단순히 이게 별 의미가 없어서 땔감에나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죠.”

“그런 거라면 얀이 이걸 챙기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야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으니까요.”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에이레네도 같은 종류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말했다.


“어쨌든, 이걸 태운 사람이 그리 철두철미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다 태우지 못한 걸 보면.”

“그냥 땔감으로나 쓰려던 거라서 일부러 다 태울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죠.”

“그걸 알려면 다른 정보가 더 필요하겠네요. 뭔가 더 있나요?”


에이레네는 충분히 신중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입가를 살짝 당기며 답했다.


“여기에서는 더 찾지 못했습니다. 케빈의 집으로 가보죠.”

“알겠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타니아의 집을 나와 열쇠를 우편함에 넣어두고 1분 정도 걸었다. 케빈의 집인 75번지는 73번지와 거의 같은 모습의 건물이었다. 사실 이 일대가 비슷했다. 나는 흰색 나무문을 두 번 두드리고 잠시 기다렸다. 곧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타니아 씨가 고용한 탐정 얀 트로닉입니다. 브랜던 실종과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침묵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는 아니었다. 문이 열리자 사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담갈색 머리를 뒤로 묶어 내렸고 화장기는 전혀 없었다. 피부는 거칠었으며 잘 씻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갈색 눈에 경계심을 담은 그녀가 물었다.


“탐정이라고요?”

“피고용인입니다. 타니아 씨가 동생을 찾아달라고 고용하셨죠.”


나는 담담하게 답해주고 물었다.


“여기 브랜던의 친구인 케빈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케빈을요? 음······ 케빈?”


그녀가 안쪽으로 소리쳤다. 잠시 후 2층으로부터 앳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왜요, 엄마?”


어린이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청년의 목소리도 아닌, 그 중간쯤에 있는 목소리였다. 케빈의 어머니가 답했다.


“널 찾아온 사람이 있는데. 브랜던 때문에.”


대답 대신에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의 계단은 타니아의 집 계단보다 더 시끄러웠다. 이윽고 15세 전후로 보이는 소년이 문가에 나타났다. 귓가를 덮는 갈색 머리는 제대로 정돈되지 않았으며 결이 거친 옷을 입고 있었다.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소년이 물었다.


“무슨 일이죠?”


나는 반복했다.


“타니아 씨가 고용한 탐정 얀 트로닉입니다. 브랜던 실종과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대답하며 그에게 명함을 건네주자, 케빈은 흥미롭게 명함을 살폈다. 다시 나에게 시선을 올렸을 때에는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탐정이라고요?”


신기한 듯이 말한 케빈의 시선이 나를 지나쳐 에이레네에게도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듯하더니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입이 다물렸고 시선도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다만 시선이 조금씩 에이레네에게로 이동하는 것만은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처럼 에이레네를 소개했다.


“이쪽은 에이레네 키르헨펠입니다. 제 조수죠.”

“아.”


케빈은 관심 없다는 투로 답했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질문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에이레네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고, 케빈은 그녀를 흘끗 보았다가 묵직하게 말했다.


“브랜던을 위해서 오신 거라면 뭐든 도와드려야죠. 친구를 위한 일이니까요.”


그가 브랜던과 어떤 우정을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친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였다.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케빈이 신사답게 말했다.


“추우니까 일단 들어오시죠.”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우리는 자그마한 식탁에 앉았다. 타니아의 집과는 달리 어느 정도 온기가 있어서 훈훈했다. 케빈의 시선이 식탁 위에 올려진 에이레네의 손을 스치고 내게로 돌아왔다.


“그럼, 제가 뭘 도울 수 있을까요?”

“글쎄요······, 브랜던과 친하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로 친하십니까?”

“꽤?”


케빈이 자부심 있게 답했다. 그가 덧붙였다.


“걔가 친구가 그다지 많은 친구가 아니거든요. 제가 알기론.”

“친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전혀 없진 않겠죠. 다른 친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진짜 몇 명 없을걸요. 내가 들어본 애가 아마 빅터? 근데 걔가 누군지 어디 사는진 나도 몰라요. 이름만 들었죠.”


나는 그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브랜던을 보신 건 언제였습니까?”

“아마, 한 열흘쯤 됐죠?”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뭔가 평소와 다른 기색 말이죠.”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우린 평소처럼 놀았고 헤어졌죠.”


그의 대답이 조금 빠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 이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타니아에게 이미 대답했던 내용이어서일 수도 있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물었다.


“그렇다면 브랜던이 사라지리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 하셨다는 거군요.”

“그렇죠.”


케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되새기듯 말했다.


“둘도 없을 친한 친구이고, 열흘 전에 아무 일 없이 헤어졌었고, 사라지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케빈은 내가 되뇐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는지 눈을 약간 찌푸렸다. 나는 빙긋 웃고, 불현듯 물었다.


“브랜던이 지금 어디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케빈은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그러다 눈을 한 번 더 깜빡인 후 반문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실종되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치고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계신 것 같아서요. 뭔가 짐작하시는 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음.”


케빈은 그제야 걱정을 시작한 사람의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깊은 우물 밑바닥에 있는 데다 잘 끌어올려지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조금 더 시도했지만, 스스로도 잘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이렇게 반문했다.


“좀 더 걱정하는 게 보통이겠죠?”

“보통 얼마나 걱정해야 할지를 처음 본 사람에게 묻진 않죠.”


나는 담담하게 답해주었다. 케빈이 미간을 오므렸다. 나는 그를 격려해주기로 했다.


“친구들은 서로 깊이 이해하는 법이죠. 친구를 믿고 있다면 쉽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아마 당신과 브랜던은 깊이 있는 우정을 나누었겠죠.”

“음.”

“하지만 저희들은 브랜던을 모르니까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나시는 걸 말해주세요. 뭐든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에이레네?”

“물론이죠.”


에이레네는 준비된 사람처럼 내 말을 받았다.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짐작하시는 걸 말해주시면 기쁘겠어요.”

“어······ 사실, 그래요!”


케빈이 힘차게 말했다.


“난 생각하고 있었어요. 브랜던이 언젠가는 여길 떠날 거라고요. 그게 지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만요.”

“떠난다고요?”


내가 물었다. 케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솔직히는, 난 브랜던이 실종된 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걔가 그냥 어딘가로 떠난 게 아닐까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건 아녜요. 그냥 그런 느낌이 있었다는 거죠.”

“물론, 누구나 기회가 있다면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법이죠.”


내가 맞장구쳤다. 케빈이 듬직하게 말했다.


“더 나아져야죠. 기회가 오지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말예요.”


이 말을 하는 케빈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는데, 그렇다고 나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에이레네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나는 물었다.


“이런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까?”

“이런 일이요?”

“여기를 떠난다거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말입니다.”

“어······ 가끔? 당연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평생 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그래서 이게 그냥 브랜던이 어딘가로 떠난 것이란 생각을 하시는 거군요.”

“그런 셈이죠. 뭐,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전혀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지만. 브랜던은 나보다 더했거든요. 여길 정말 싫어했죠.”

“알겠습니다. 이게 브랜던이 스스로 떠난 것이라면 그가 우선 갈 만한 곳이 있을까요?”

“음.”


케빈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답했다.


“인부 보조? 걔, 몸 좋거든요.”

“그렇습니까? 말랐다고 들었는데요.”

“아, 말랐지만 단단해요. 석탄도 나르고 그랬거든요. 부업으로.”

“그럼 몸도 건강하겠군요?”

“감기도 잘 안 걸려요, 걔.”

“병원에 갈 일은 없겠군요.”

“전혀 없죠.”


케빈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 참, 이건 아마 상관없는 일이겠습니다만.”


나는 타니아의 집 2층에서 발견했던 종잇조각을 꺼내 케빈에게 보여주었다. 케빈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르는 사이 물었다.


“혹시 이걸 어디선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이게 뭐예요?”

“길에서 주웠습니다만, 괜히 신경 쓰여서요.”

“예민하신 분이시군요.”


케빈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나도 같이 웃으며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내가 말했다.


“가끔 아무것도 아닌 듯한 게 도움이 될 때가 있거든요. 도와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제 가봐야겠군요.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별 도움이 못 된 거 같아서 미안하네요. 브랜던을 찾으면 알려주세요.”

“많은 것을 알려주셨지요. 찾으면 오겠습니다.”


우리는 악수했다. 케빈은 아주 잠깐 에이레네를 쳐다보았지만 에이레네는 오른손을 내밀지 않았고, 그래서 케빈도 손을 뻗지 않았다.


에이레네와 나는 거리로 돌아 나왔다. 골목을 걸어 타니아나 케빈의 집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내가 입을 열었다.


“수고했습니다, 에이레네.”

“이런 것도 조수의 역할인 셈이죠?”

“잘해주었습니다.”


에이레네는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무언가에 불만족스러운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한가롭게 말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가설은 몇 개 떠오르게 됐습니다만 역시 아직은 확신할 단계가 아니죠. 질문을 하나 해볼까요.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이레네는 금방 답했다.


“허버트 병원이요?”

“그렇죠. 마차를 타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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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한 편 올립니다. 앞으로는 격주로 월요일마다 올려볼까 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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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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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 n2******..
    작성일
    18.03.12 21:40
    No. 1

    격주 월요일이 기다려지네요~
    그리고 얀은 에이레네양에게 좀 덜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웃음)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네이시
    작성일
    18.03.12 23:00
    No. 2

    저도 얀이 에이레네에게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친구가 워낙 그런 친구라..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hy0110
    작성일
    18.03.13 23:11
    No. 3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재미있는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네이시
    작성일
    18.03.14 11:23
    No. 4

    저야말로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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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5) +2 18.12.03 98 2 14쪽
13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4) +2 18.11.12 63 2 9쪽
12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3) +2 18.10.22 83 2 10쪽
11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2) 18.10.01 88 2 8쪽
10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2. 친구 (1) +2 18.08.06 88 4 11쪽
9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9) +2 18.07.16 81 4 14쪽
8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8) +2 18.06.18 77 3 14쪽
7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7) +2 18.05.27 90 4 11쪽
6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6) +4 18.05.07 117 4 11쪽
5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5) +2 18.04.23 123 6 19쪽
4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4) +2 18.04.09 126 5 15쪽
3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3) +4 18.03.26 164 6 19쪽
»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2) +4 18.03.12 160 6 20쪽
1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1) +2 18.02.28 356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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