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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sy의 소설들

탐정 얀 트로닉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네이시
작품등록일 :
2018.02.28 19:48
최근연재일 :
2019.07.0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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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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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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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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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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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 1. 실종자 (5)

DUMMY

탐정 얀 트로닉

3부. 탐정은 심판하지 않는다


1. 실종자 (5)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차에서 내리고도 이십 분은 걸어야 나오는 한 작은 신발가게였다. 균열이 드러난 외벽과 때 타 흐린 창문, 끄트머리가 닳아버린 간판이 우리를 반겼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달려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빛바랜 간판에는 물 1리터에 물감 한 방울을 희석해도 그보다는 선명할 듯한 희미한 글자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고든 신발’.


에이레네는 신발을 사려 하느냐고 묻지 않을 만큼은 현명했다. 무언가 질문하는 대신 그녀는 내 얼굴을 잠깐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기입니다.”


문은 뻑뻑했지만 소리가 나진 않았다. 경첩이 얼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방에 신발이 들어차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작달막한 백발 노인이 난로 옆 의자에 앉아 돋보기 안경을 쓰고 부츠를 손질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빛줄기가 들어가자 노인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머리숱은 조금 적었지만 눈썹은 몹시 두꺼웠다. 주름이 잔뜩 잡힌 눈매는 고집이 있다기보다 까탈스러워 보였다. 콧날은 약간 비뚤어져 있었는데, 원래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입꼬리가 내려간 입술은 얇았고 약간 파랬다. 안경을 벗고는 얼굴을 약간 찡그려 주름을 더 깊게 만들며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


그에게 우리가 신발을 사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여기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마일즈.”


노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했고 내가 그 말을 할 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천천히 노인의 입이 열렸다. 나온 말은 질문이었다.


“이 동네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데.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나?”

“예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트로닉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

“트로닉?”


심드렁하게 반문한 노인이 다음 순간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찡그렸다.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나를 보더니 물었다.


“이안 트로닉인가?”

“얀 트로닉을 말하시는 거라면, 그게 제 이름이죠.”

“그래, 그거, 얀 트로닉! 그 이름 나도 들어봤지.”


그가 입가를 끌어당겼다. 우호적인 웃음이었다. 나도 비슷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생각보다 유명한 모양이군요.”

“음, 아니아니, 마일즈 그놈한테서 내 이야기 들었지.”


노인이 손질하던 부츠를 옆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왜소한 몸에, 허리가 약간 구부정해서 키가 더 작게 느껴졌다. 에이레네보다도 작았다. 그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 멍청이는 감옥에 들어가 있었겠지. 내 진작 자네를 만나서 고맙다고 했어야 했을 것을, 이제야 인사하게 되는군.”

“괜찮습니다.”


악수를 마치자 그가 구석에 있는 계단을 눈짓했다.


“그놈은 2층에 있네. 올라가 보게.”

“감사합니다.”


우리는 폭이 좁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랐다. 2층에 따로 문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위로 올라가자 바로 내부가 보였다. 한쪽 구석에는 신발들이 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가죽 더미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서 한 청년이 가위로 가죽을 자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청년이 시선을 우리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른 편이었으나 키가 컸고, 얼굴이 다소 길쭉했다. 눈이 가늘었으며 입술도 얇았다. 소매 아래로 보이는 손가락도 가늘고 길어서, 가위를 들기보다 악기를 드는 쪽이 어울릴 것 같은 청년이었다. 눈을 살짝 찌푸리고 의심스러운 듯이 우리를 바라보던 그가 이내 내 얼굴을 기억해냈다.


“세상에, 트로닉 씨!”


그가 가위를 내던지고 내게로 달려왔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여기 와주시다니! 누추해서 부끄러운데요.”

“괜찮은 가게인데 왜, 마일즈. 좋은 직장이야.”


나는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 마일즈가 내 옆에 선 에이레네를 보고 물었다.


“엄청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애인이에요?”

“내 조수야. 에이레네 키르헨펠.”

“아이고, 실례했네요. 반갑습니다, 키르헨펠 씨. 마일즈 스톤입니다.”


마일즈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레네도 웃었다.


“반가워요, 스톤 씨.”

“그런데 조수라고 하시면, 여기 그냥 제 얼굴 보러 오신 건 아니시군요?”

“여전히 눈치가 빠르군. 맞아. 알아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 왔는데, 해결사 일은 아직 하고 있는 거지?”

“아, 물론이죠.”


얼른 답한 마일즈가 턱을 문지르며 덧붙였다.


“사실 신통찮아서 요즘은 거의 그냥 할아버지 조수 된 느낌이지만, 하고 있는 거 맞아요. 무슨 의뢰든 받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대단한 건 아냐.”


말하고 나는 잠깐 멈췄다. 일부러 뜸을 들인 것은 아니고 잠시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는 것뿐이었는데, 마일즈는 내가 대단한 의뢰를 위해 일부러 말을 멈췄다고 오해했는지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이 더 반짝이게 놔두면 곤란할 것 같았으므로 서둘러 말했다.


“실종된 소년이 있어서 찾고 있는데, 자네가 혹시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왔어.”

“도와줄 수 있느냐뇨, 무슨 말씀을.”


마일즈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트로닉 씨의 일인데, 도와드릴 수 없더라도 도와드려야죠. 누구를 찾으시는 건가요? 여기 오신 걸 보면 일단 여기 사람이겠죠?”

“3번가 사람이긴 한데, 바로 옆 거리니까.”

“그 정도야 덮어쓰죠.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3번가 73번지에 살던 소년이야. 이름은 브랜던 벤터스, 16세. 약 160센티미터에 말랐고,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몸은 건강하고, 부업으로 석탄 나르는 일도 종종 했다더군. 마지막으로 모습이 확인된 건 열하루 전, 그 이후로는 내가 아는 한에선 그를 본 사람이 없어.”


마일즈는 자신의 턱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렸다. 그가 물었다.


“별다른 흔적은 아직 못 찾은 거죠?”

“그런 셈이지. 혹시 뭔가 생각나는 게 없나?”

“실종······ 일지 가출일지 그런 일은 워낙 흔한 일이어서. 가출한 애들을 몇 명 알긴 하는데, 일단 인상착의가 부합되지 않네요. 지금 제가 아는 선에서는 없어요. 하지만 원하신다면 저도 같이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럴 것까진 없어.”

“전 언제나 트로닉 씨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구요.”

“내가 자네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 마음만 받지.”

“으음.”


마일즈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불현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실종자라고 하면 여기 4번가 이야기긴 한데, 실종된 지 세 주 정도 된 애가 있어요. 그 애 부모님이 걔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죠.”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그런 아이가 있다는 말은 나도 듣긴 했는데. 그 아이가 브랜던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모르겠지만, 걔 부모님이 삼 주간 걔를 찾아다녔으니 그 와중에 혹시 브랜던에 대해서 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흠.”


나는 팔짱을 꼈다. 잠깐 생각한 뒤 말했다.


“가능성이 높을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고려해볼 만은 하군.”

“걜 찾는 걸 트로닉 씨가 도울 수도 있겠고요. 어차피 트로닉 씨도 브랜던을 찾아 돌아다니는 중이니까.”

“그냥 일이 늘어나는 것뿐일 수도 있지만.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일즈가 기쁜 듯이 말했다.


“걔에 대해 알려드려야겠군요.”

“좀 알고 있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죠. 걔 부모님이 계속 걜 찾아 돌아다니니까.”

“그렇겠군.”

“돌다 보면 전단도 여기저기 붙어 있어요. 트로닉 씨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걸 봐도 되겠군.”


몸을 돌리려는 나를 마일즈가 황급히 붙들었다.


“찾아다니시기 수고스럽잖아요. 제가 몇 가지 알려드릴게요.”

“자네가 정 원한다면.”


나는 다시 마일즈에게로 몸을 돌렸다. 옆에서 에이레네가 작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마일즈는 활기차게 말했다.


“걔 이름은 토미 그랜트. 10살이고, 키는 140 정도예요. 여기 애들 다 그렇듯이 좀 말랐고요. 연한 갈색 머리고 검은색 눈동자고요. 친구들과 놀고 나서 헤어졌다는데 걔만 집에 돌아오지 않았죠.”

“그러고 세 주가 지난 건가?”

“맞아요.”


대답한 마일즈가 의견을 피력했다.


“이 동네에 없는 건 거의 확실하고, 이 도시에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봐요. 유랑극단에 납치당했을 수도 있겠죠.”

“유랑극단이 여길 왔었어?”

“어, 아뇨. 그렇진 않지만, 대강 뭐 그런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말이지만.”


일단 긍정해주자 마일즈는 자신감을 얻은 얼굴로 말했다.


“아마 납치일 거예요. 그만한 애가 혼자 가출했다는 건, 그것도 친구들과 잘 놀고 나서 가출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토미의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나?”

“뭐, 제가 그 사람들을 만나보진 않아서요. 하지만 말로는 그렇게 말하진 않더라도 당연히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부모라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는 법이지. 자네 말이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일즈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가 말했다.


“토미의 집은 105번지예요. 그 부모들은 토미를 찾아다니느라 지금 집에 없을 확률이 높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번 찾아가보셔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 찾아가보지.”


그렇게 답하고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마일즈는 얼른 손을 내밀어 나와 악수했다. 내가 말했다.


“도움을 주어서 고마워, 마일즈.”

“뭘요. 제가 영광이죠.”


마일즈가 슬쩍 내 눈을 들여다보는 듯하더니 운을 뗐다.


“두 분이 가셔도 나쁘지 않겠지만, 이왕이면 저도 같이 가면 그 부모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게······.”

“괜찮아, 마일즈.”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마일즈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고,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쩌면 또 자네가 필요해질 수도 있겠지. 그때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까지 여기 잘 있으라고. 내가 필요할 때 자네를 만날 수 있게.”

“아······ 얼마든지요!”


마일즈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기 쉬운 청년이었다. 그는 우리가 계단을 내려갈 때 따라 내려오더니, 문 앞까지 따라와 인사했다.


거리를 좀 걷기 시작한 뒤 에이레네가 말했다.


“얀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할 수만 있다면 제 조수를 하고 싶은 기색이었죠.”

“시켜주지 그랬어요?”


에이레네가 장난스레 웃었다. 나도 빙긋 웃었다.


“글쎄요, 제 조수는 아가씨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아.”


에이레네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입가가 당겨지는 듯하더니 보조개가 생기고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가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마워요.”


그녀가 내 말에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특별히 뭐라 덧붙이지는 않기로 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에이레네가 물었다.


“토미의 부모님이 브랜던에 대해 뭔가 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능성을 묻는다면, 알 가능성이 없진 않겠죠. 현실적으로 기대할 만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별 소득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별 소득이 없을 걸 감수하고 갈 생각이군요.”

“한번 찾아가봐서 나쁠 건 없겠죠. 그건 마일즈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으흠.”


에이레네의 미간이 약간 좁혀졌다. 내 말에 반박할 만한 무언가를 생각한 눈치였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는 그걸 말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녀는 그냥 가만히 나를 뒤따랐다.


105번지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105번지 앞에 섰다. 이 주변의 다른 집과 별다를 것 없는 좁고 오래된 이층집이었다. 지붕, 벽, 창문, 문, 모든 것이 따로 말할 것도 없이 오래되어서, 문 앞에 붙어 있는 작은 전단마저도 오래돼 보였다. 전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아이를 찾습니다. 토미 그랜트, 10살. 갈색 머리, 검은 눈동자. 키 140센티미터. 이 아이의 행방을 아시는 분은 램버츠 구 4번가 105번지로 연락 주세요!’


나는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렸다.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에이레네를 잠깐 돌아보고 어깨를 으쓱한 후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소리도 냈다.


“계십니까.”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어서, 몸을 돌릴까 하던 차에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가요.”


황급히 외치는, 목이 쉰 남자 목소리였다. 안에서 반쯤 뛰는 듯한 발소리가 나고는 문이 열렸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메마른 남성이었다.


충혈된 눈은 움푹 패여 있었고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얼굴은 푸석했고 곳곳에 두드러기가 나 있었으며 턱에는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제대로 된 잠을 꽤 오래전부터 자지 못한 사람 같았다. 그는 불안함과 동시에 기대를 담은 눈동자로 우리를 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으므로 나는 재빨리 말했다.


“토미의 행방을 알아서 온 건 아닙니다.”


그의 몸으로부터 힘이 조금 빠져나갔다. 그 얼굴에 떠오른 우울함은 이미 그의 일부가 된 듯 보였다. 그는 입가를 약간 찡그렸다가 말했다.


“누구십니까? 무슨 일이죠?”

“탐정 얀 트로닉입니다. 의뢰를 받아, 실종된 소년을 찾고 있죠.”


남자는 조심스럽게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브랜던 벤터스, 16세이고, 3번가에 살았습니다. 실종된 지는 두 주가 조금 안 됐죠.”

“안된 일이군요.”


남자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에게 이 이름으로부터 떠오르는 생각은 별달리 없는 듯했다. 예상한 일이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를 찾아다니던 중에 토미도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혹시나 나눌 이야기가 없을까 싶어 찾아왔습니다.”

“나눌 이야기요.”


남자의 어조는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다만 나를 비웃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속삭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토미가 돌아오지 않은 지 세 주가 되었지만, 우린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죠. 뭔가 기대하고 오셨다면, 미안하지만, 트로닉 씨, 우린 당신이 기대하는 아무것도 줄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오해하고 계시군요.”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남자는 눈을 찡그렸지만 곧 다시 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나누기 위해서 온 겁니다, 그랜트 씨. 제가 필요한 정보만 얻기 위해 온 것이 아니죠. 그랜트 씨는 계속 토미를 찾을 테고, 전 브랜던을 찾을 겁니다. 이 둘은 아마 관련이 없겠죠. 하지만 찾아다니는 중에 서로의 소식을 혹시나 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죠.”

“······토미도 찾아주시겠다는 겁니까?”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살짝 웃었다.


“브랜던을 찾는 도중에 토미를 알게 되면, 찾겠지요.”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이를 악물었는지 턱 근육이 조금 불거졌다. 그런 채로 길게 숨을 내쉬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고맙습니다, 트로닉 씨. 그냥 그렇게 말해주시는 것이라도, 고맙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은 일단 브랜던입니다. 하지만 토미를 발견하면 데려오겠다는 것은 약속드리죠.”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남자의 입가에 아주 희미하게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가 아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니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거죠. 우리 잘못입니다. 내 잘못이죠. 그러니까 누가 도와주길 기대해선 안 되는 거라고 압니다. 하지만, 그렇군요. 뭐랄까, 그래요.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나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다음에 덧붙인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좋았을지 모른다.


“저도 딸이 있었으니까요.”

“······있었다, 는 것은.”

“지금은 없습니다.”


남자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오른손을 내밀었다.


“패트릭 그랜트입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패트릭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믿지요. 당신이 찾는다는 소년, 브랜던이라고 했습니까? 어떤 소년이죠?”


나는 브랜던의 인상착의와 내가 알아낸 것들에 대해 말했다. 패트릭도 토미의 인상착의에 대해 말했다. 전단에서 본 것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친구들과 놀고는 돌아왔어야 했을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마일즈가 해준 것과 같았다. 패트릭이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낸 건 그냥 소문뿐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죠. 혼자 남은 아이를 잡아가는 키 큰 남자가 있다, 그런 거요. 토미를 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보니 전혀 다른 아이더군요.”

“힘드시겠군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런 건.”


그가 고개를 흔들며 쓰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움찔하며 내 뒤를 쳐다보았다. 집중해서 보는 듯하더니 이내 긴 숨을 토하며 긴장을 풀었다. 무언가를 잘못 본 모양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럼, 트로닉 씨, 전 또 나가봐야겠습니다. 어쨌든 돌아다녀 봐야죠.”

“좋은 소식 있길 빕니다.”

“네, 트로닉 씨도 잘 풀리시길 빕니다.”


우리는 인사한 뒤 헤어졌고, 나와 에이레네는 거리로 돌아 나왔다. 토미의 집으로부터 제법 멀어진 뒤에 에이레네가 입을 열었다.


“얀이 토미도 찾겠다고 하게 될 것 같았어요.”

“실종 아동의 부모를 만나는 이상 그런 말을 안 하긴 힘드니까요.”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간 거예요?”

“생각한 범위 안이었죠.”

“으음.”


에이레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어쨌든 브랜던을 찾는 중에 토미도 혹시 찾는다면, 이야기니까요.”

“음.”


에이레네는 그렇게만 말했다. 잠깐 침묵했다가 그녀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요?”

“이번엔 보안관 사무실에 가볼까 합니다. 3번가나 여기 4번가엔 없지만, 1번가엔 있으니까요.”

“거기서 뭔가 찾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에이레네는 처음에는 내 뒤를 따라오다가,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


가까스로 월요일 안에 올립니다. (...)


어째 두 주에 한 편 쓰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그래도 나름 마감을 정해놓으니 어쨌든 쓰게는 되어서 다행이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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