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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님의 서재입니다.

일단은 트럭에 치여 이세계물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SF

완결

이상훈
작품등록일 :
2019.04.06 16:19
최근연재일 :
2020.01.26 18:0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897
추천수 :
2
글자수 :
147,050

작성
20.01.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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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Ep6. 에덴왕국 소멸편 (1)

DUMMY

나는 정처 없이, 목적도 없이 그저 걸어 나갔다. 카테드랄의 사람들은 나가는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원망은 서려 있지 않았다. 그들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밖으로 나가는 나를 보고만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 예상은 틀린 모양이었다. 그들은 무덤덤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는지, 혹은 모든 것은 찰나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라도 했는지. 물론, 그들의 정확한 생각을 나는 알 수 없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알려고 할 기력 역시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튼 카테드랄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카테드랄을 빠져나오고 나서,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성벽을 지나쳐 퍼즈 구역에 들어서고 나는 내가 한 일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본래 시장이었다고 생각되는 공간에는 거의 다 무너져가는, 돌과 나무들을 엉성하게 쌓아 올린 집들과 모래와 흙이 바닥을 지저분하게 꾸미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이 시끌벅적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두셋 정도 되는 사람들만이 어리둥절히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분명······. 혹시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 있니?”

그리고 그 중 가끔 심부름으로 무언가를 사러 시장에 들르는 일로 안면이 조금 있는, 한 나이를 먹은 중년의 여성이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옷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지저분하고 해진 가죽과 천으로 되어 있어 본래 옷의 디자인이 지향하고 있는 활동성을 오히려 저해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들에게 당장 무언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몇 번 젓고 나서 계속해서 길을 걸어 나갔다. 그들은 그런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카테드랄은 그 높은 외형만큼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에, 남겨진 허름한 건물들의 방향을 조합했을 때 내가 어디로 걸어 나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었다. 길을 잃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비록 어디론가 가겠다 하는 목적은 없었음에도. 하지만 그러한 내 생각과 달리 무의식은 목적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어느새 익숙해 보이는 장소에 도달했다. 마리아와 내가 지내던 그곳. 그 집만은 과거의 흔적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다. 나는 익숙한 공간과 바깥의 경계가 되는 문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나무의 거칠한 감촉과 흙내음을 느끼었다. 문은 손으로 조금만 밀어도 열릴 것 같았으나, 나는 그것을 생각으로만 그치고 손을 문에서 떼어내었다.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아니, 그저 익숙할 거라고 생각한 곳이 낯선 공간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나에게 남은 마지막 안식처일지도 모르는 곳을 지나쳐 카테드랄에서 더욱더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테드랄에서 퍼즈로, 퍼즈에서 하인즈로.

하인즈 역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었다.

“거기 예비마법사님, 뭣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역시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고위마법사님들과 주민들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십니까? 이대로라면 농사 기일도 맞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마법사는 없습니다. 신도 없고 천사도 없어요.”

나의 답변에 그들은 꽤나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신이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입니다. 마법과 계급으로 엮이는 세계는 끝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나의 말에 의외의 반응을 해왔다.

“이런 악마 자식이!”

퍼즈에 있었다면 나와 같은 교육센터에 다니며 예비 마법사가 되었을 듯한 나이대의, 허름한 복장을 입은 마른 한 소녀가 나를 악마라고 부르며 뺨을 때렸다. 소녀의 눈동자 속에는 악의와 증오, 그리고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 역시도 혼란과 같은 부차적인 감정이 실린 것을 빼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 애가 아직 어려서 악마들을 솎아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고 마법사님의 뺨을 때려버렸습니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니 용서해주십시오.”

그녀의 보호자로 보이는 한 노파는 그런 그녀를 붙잡으며 간절히 나에게 애원을 해왔다. 나는 그곳에서 더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인 다음에 하인즈 구역의 밖을 향하여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번에 하인즈 구역에 들렀을 때와는 달리 농작물들은 꽤나 시들해져 있었다. 이 왕국에서 마법의 영향이 사라진 지는 불과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았을 터였는데, 그 불과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은 사이에 이런 결과가 되어버린 것일까. 하지만 비록 그때에 비해 시들해졌다고 하더라도 황금빛을 수놓는 광경만큼은 조금 남아있었고, 그것이 나름의 위안이었다.

하지만 과연 저 황금빛 광경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최소한 하인즈의 사람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그로 인해 감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하지만 아까의 일을 생각해보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감사가 아닌 증오와 원망일 듯했다.

과연 그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아니면 자유 이전에 생존을 누릴 수 있을까? 생존을 누릴 수 있어야 자유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들의 미래의 방향을 한쪽으로 결정지어버린 나 역시도, 무책임하지만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하인즈 구역도 지나, 엣지 구역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엣지 구역은 이제와서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왕국이 없으니까. 성벽 역시도 터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낮게 깔린 벽돌들과 공성을 위한 무기들 약간. 그런 것을 제외하면 엣지, 그러니까 왕국의 안과 밖은 도저히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황무지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황무지를 기억에 의존해서 무작정 걸어 나갔다.

“어이, 당신!”

그러던 중 황무지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방탄복을 갖춘, 익숙한 악마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다섯 정도의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당신은······.”

그들은 나를 알아보고는, 자초지종에 대해 물어봐왔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두가지였다. 에덴왕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 결국 나는 도박을 선택했다. 호신용으로 받은 수류탄의 핀을 뽑고, 내가 복도의 전투 동안에 숨어있던 창고 같은 공간에 던진 것이다.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숨어있는 와중에 느낄 수 있던 조금의 이유 모를 안락함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만약 그런 신과 같은 힘의 중추를 담당하는 기계가 있다면, 기계 스스로 파괴되지 않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했을 테니까. 어쨌거나 그런 내 억측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틀리지 않았으니 억측이라고 부를 순 없나.

에덴왕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다른 말은 마법으로 유지되고 생태계가 깨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리고 그 두 번째 말을 듣고 나서 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나를 속인 것도 아닌 것이고.

“대답하세요.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신의 독재에서 벗어나는 게 당신들의 목적 아니었나요?

“하지만 이래서야 인류가 멸망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죠. 그리고 저도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나의 변명에 그들은 무언가 화를 내려는 듯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 저희가 뭐라 탓할 순 없겠습니다만은······.”

그들은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지나쳐 에덴왕국으로 서둘러 달려 나갈 뿐이었다. 그들이 멸망의 앞에 치달은 에덴왕국을 재건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결과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아! 애초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나도 희생을 했단 말이야. 내가······. 나라고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쉬웠을······.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나도 알고 있다. 결국 선택을 한 것은 나라는 것을. 하지만, 불공평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나는······. 마리아는 결국 만나지도 못했고. 수류탄을 던진 다음에 섬광이 잠깐 일더니 나는 카테드랄의 1층 구석에 누워있었고 마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역시······. 아니.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의 충고를 무시하고 이러한 결말을 이루어낸 나에게 그녀는 과연······. 그녀의 증오 어린 눈빛을 나는······.

······.

······.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싫었다. 더 이상 걷기도 싫었다. 더 이상 내가 선택한 결과를 마주하는 것도 싫었다. 애초에 이 이상 바깥을 향해 더 걸어도 어떠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모래흙 바닥에서 군데군데 해진 천을 들어 가볍게 모래들을 털어내고 그것들로 몸을 대충 덮은 다음 몸을 가릴만한 벽돌들이 조금 쌓인 흙바닥을 찾아 그곳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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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p6. 에덴왕국 소멸편 (3) 20.01.26 30 0 5쪽
37 Ep6. 에덴왕국 소멸편 (2) 20.01.19 20 0 6쪽
» Ep6. 에덴왕국 소멸편 (1) 20.01.12 15 0 10쪽
35 Ep5. 에덴왕국 붕괴편 (14) 20.01.05 22 0 5쪽
34 Ep5. 에덴왕국 붕괴편 (13) 19.12.29 22 0 9쪽
33 Ep5. 에덴왕국 붕괴편 (12) 19.12.15 22 0 9쪽
32 Ep5. 에덴왕국 붕괴편 (11) 19.12.08 25 0 7쪽
31 Ep5. 에덴왕국 붕괴편 (10) 19.12.01 20 0 6쪽
30 Ep5. 에덴왕국 붕괴편 (9) 19.11.24 26 0 12쪽
29 Ep5. 에덴왕국 붕괴편 (8) 19.11.17 21 0 5쪽
28 Ep5. 에덴왕국 붕괴편 (7) 19.11.10 21 0 6쪽
27 Ep5. 에덴왕국 붕괴편 (6) 19.10.27 27 0 7쪽
26 Ep5. 에덴왕국 붕괴편 (5) 19.10.20 24 0 6쪽
25 Ep5. 에덴왕국 붕괴편 (4) 19.10.13 19 0 8쪽
24 Ep5. 에덴왕국 붕괴편 (3) 19.10.06 24 0 8쪽
23 Ep5. 에덴왕국 붕괴편 (2) 19.09.22 25 0 8쪽
22 Ep5. 에덴왕국 붕괴편 (1) 19.09.15 36 0 11쪽
21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10) 19.09.08 41 0 6쪽
20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9) 19.09.01 31 0 8쪽
19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8) 19.08.25 38 0 6쪽
18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7) 19.08.18 40 0 10쪽
17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6) 19.08.11 48 0 16쪽
16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5) 19.08.04 32 0 9쪽
15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4) 19.07.28 31 0 12쪽
14 Ep4. 어서 오세요, 오컬트부에! (3) 19.07.22 34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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