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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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안 되지······.”
칠판을 향해 뻗은 손을 되돌리는 재성
내 여자지만 집주인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손대거나 확인하면 안 되기에
방으로 나와서 민서가 차려준 음식이 있는 식탁에 앉는다.
이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식었지만 맛있다.
처음으로 민서가 차려준 밥을 먹는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하룻밤 사이에 그녀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아주 많이······.
휴대폰이 울리고 발신자를 확인한다.
-재성님 일어났어요?
“응”
-아직도 집이에요?
“응, 한변이 차려준 밥 먹고 있어”
민서는 혹시나 그가 투명칠판을 확인한 게 아닌지 불안했다.
언니의 무죄가 밝혀지지 않았기에, 아직 말하고 싶지 않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남자 만큼에게는 살인자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투명칠판이 있는 방으로 가지 말라고, 절대 확인하지 말라고 하면 왠지 더 확인할 것 같은 생각에 재성이 깜빡하고 그냥 집에서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저희 엄마가 좀 있다가 간다는데 나와줄 수 있어요?
재성을 집 밖으로 끌어낼 거짓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었다.
혼자 사는 민서 집에 민서의 엄마가 반찬 같은걸 갖다 주러 가끔 불쑥 찾아오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다.
요 며칠간 통화조차 한 적 없다.
“이참에 인사나 드릴까?”
재성은 민서가 어떻게 나올지 알지만, 장난을 쳐본다.
-미쳤어요?!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나와요! 알았죠!
언니와 이수지의 정보가 들어있는 투명칠판을 들키는 것도 싫지만
자신의 부모님에게 처음 내 남자를 소개해주는 상황이 지금처럼 제집을 편하게 있는 상태로 보여주는 건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하다.
키득키득
예상한 민서의 반응을 재밌어하는 재성
아쉽지만 장난은 일절만 하기로 한다.
-지금 이게 웃겨요?! 빨리 안 나와요?!
어느덧 밥을 다 먹은 재성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알았어, 지금 옷 입고 나갈게”
비비빅
누군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다.
제집을 여는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안도의 한숨을 쉬는 민서
-후~ 알았어요. 이따······.
“꺄악!”
민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의 외마디 비명
민서의 엄마가 들어오고 민서와 통화 중인 핸드폰을 귀에 댄 채 팬티차림으로 침실로 들어가려는 재성과 마주친다.
아······. 망했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
딸의 집에 찾아온 민서의 엄마는 팬티차림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는 재성의 모습을 확인하고 비명을 지른 채 김치통을 떨어트린다.
못 볼 것 봤다는 것 마냥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뒤로 돌리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현관에 있는 우산을 집어 든다.
야구빠따같은 튼튼한 방망이가 없어서 아쉽지만 일단 이거라도 들어야겠다.
-무슨 일이에요?! 네! 엄마가 온 거예요?!
수화기 너머로 민서의 외침을 듣는지 마는지
재성의 몸이 마비된 채 손 하나 까딱 할 수도 없고 입도 뻥끗할 수 없어 민서의 엄마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이 느낌······. 익숙하다······.
얼마 전에도 받아본 적이 있다.
민서가 질투 했을 때의 느낀 공포와 똑같다.
뿜어내는 공포도 유전인가 보다······.
다시는 마주하기 싫었는데······.
“도둑이야!”
며칠 전 질투로 인해 민서에게 느낀 똑같은 살기로 우산을 든 채 다가오고 있다.
움직일 수 없어 가만히 있다가 어느덧 달려오는 민서의 엄마와 가까워져 우산이 자신의 몸에 향하기 직전에야 몸을 움츠린다.
퍽퍽퍽
얼마나 맞았을까······.
오해를 풀기 위해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재성
“잠깐만요! 어머니!”
어머니란 재성의 말에 더 세게 두들겨 팬다.
“누가 니 어머니야!”
퍽! 퍽! 퍽!
진짜 아프다······.
-잠깐만 엄마! 엄마!
재성을 우산으로 힘껏 두들겨 패는 와중에 재성이 떨어트린 핸드폰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속 민서가 외쳤지만 듣지 못하고 이제야 듣는다.
어느덧 진정이 됐는지 이마를 쓱 한번 문지르고는 재성옆에 있는 휴대폰을 잡는다.
핸드폰을 잡는 행위에 자신을 패는 행동으로 오해한 재성은 순간 몸을 움츠린다.
“야 이년아!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민서는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재성을 집 밖으로 끌어내려는 거짓말이 실제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딸의 말을 듣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보니 두들겨 맞던 남자가 어느덧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내리고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재성에게 처음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일단 옷부터 입어요”
“......!”
재성은 그제야 자신이 팬티차림으로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순간 ‘네 어머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다행히 짧은 시간에 이 말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육감적으로 생각해 냈다.
이미 볼건 다 보여줬으면서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잽싸게 침실로 들어간다.
늦게 나가면 안 될 것 같아 잽싸게 옷을 챙겨 입고 방으로 나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는다.
“편하게 앉아요”
“이게 편합니다”
“하······.”
무슨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다.
다행히 좀 전에 대충 들어보니까 수화기 너머로 민서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것 같긴 하지만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말을 하지 그랬어요”
“......”
눈에 보이는 게 없을 만큼 극도의 흥분상태처럼 보였는데 팬티차림으로 딸의 집에 떡하니 있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게 무슨 소용 이리······.
갑자기 ‘참 뻔뻔하시네요.’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은 뭘까
말한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 될 것 같은데, 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들끓는 속이 아직 진정이 안 됐는지 부엌으로 가 찬물을 벌컥 마신다.
계속 그렇게 있을 거냐는 그녀의 말에 이게 편하다고만 답할 뿐이다.
재성이 먹은 식탁에 놓여 있는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그릇들을 치운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고 그제야 팬티차림으로 재성을 보고 놀라 자신이 쏟은 김치통이 생각이 난다.
현관으로 가보니 딸을 위해 가져온 김치통이 바닥에 떨어진 채 김칫국물이 바닥에 퍼졌다.
행주를 집으려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뭘 할지 예상한 재성이 일어난다.
“제가 하겠습니다!”
“됫어요”
말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행주를 조심스럽게 뺏어 있는 힘껏 김칫국물을 닦는다.
재성이 걸레질을 하는 동안 어지러운지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는 식탁 의자에 앉는다.
이런다고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의 점수라도 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잇는 힘을 다해 빡빡 닦는다.
도움도 안 될 입김까지 불어가면서······.
이미 다 닦아도 한참 지날 판에 아직도 열심히 걸레질하는 재성에게 소리친다.
“뭐해요! 다 닦았으면 그만 해요!”
“네!”
바닥에 흘린 김칫국물을 이미 다 닦은 재성은 걸레질을 멈추고 황급히 일어난다.
그리고 걸레를 빨려고 하자
“하······. 나중에 하시고, 일단 앉아요”
“아닙니다!”
걸레질한 것처럼 왠지 또 걸레 빠는 동안 시간만 끌 것 같은 기분이 든 그녀가 소리친다.
“앉으라구요!”
“네! 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소리에 빨던 걸레를 내팽개치고는 민서의 엄마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온다.
그리고 식탁 의자에 앉지 않고 무릎을 꿇는다.
이젠 재성이 무릎을 꿇는 게 불편할 지경이라 앉으라고 해도 이게 편하다고 할 것 같아 내버려 두기로 한다.
“그래서······. 민서하고 만나고 있다고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하······.”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이 나올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 한 번 실수 했다가는 진짜 위험할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하자고 다짐한다.
“어디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들린다.
그녀로서는 단순히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건 재성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단순히 너무 좋아서 만나고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는지 자신에게도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다.
생각할 만큼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냥 솔직해지기로 한다.
“우연히 직장에서 만나 교제 중입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생각하냐고요”
“그건······. 만나보면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
***
회사로 출근한 민서는 문득 재성이 어제 자신이 숨겼던 언니와 이수지의 정보가 있는 투명칠판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출근에 몰두한 채 중요한 사실을 잊은 자신이 한심하고 후회스러웠다.
결국, 엄마찬스를 쓰기로 하고 전화를 걸어본다.
-응, 한변이 차려준 밥 먹고 있어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천하 태평한 목소리다.
아직 확인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집에 있는 이상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엄마찬스를 써도 이참에 인사나 드리자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는 재성의 반응에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 이게 웃겨요?! 빨리 안 나와요?!”
-알아서 지금 옷 입고 나갈게.
이제 나간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말을 하려고 하는 그때 수화기 너머로 비명이 들려왔다.
설마 하고 한사람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에요?! 네! 엄마가 온 거예요?!”
그리고 계속 소리를 쳐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또다시 비명이 들렸다.
-도둑이야!
설마 했던 마음이 확신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요란한 폭풍 소리가 들렸다.
폭풍 소리는 재성이 두들겨 맞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계속 외쳐보아도 답은 없었다.
얼마나 외쳤을까 드디어 누군가 받았다.
-야 이년아!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엄마! 엄마! 진정하고 내 말들어 사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야!”
-이게 미쳤나!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닌 거였어?!
그녀로서는 딸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몰랐으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겠고 그런 남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 것도 모자라 제집처럼 팬티차림으로 있으니······.
엄마를 진정시켜야 하는 이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지만, 민서는 재성을 ‘아무 남자’라고 칭한 것에 기분이 나빴다.
“아무 남자라니?! 얼마나 자상한데?!”
-이게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너 어디야!
“어디면 뭐! 찾아오게?!”
-뭐! 너 미쳤어?!
남자 편을 드는 딸의 모습에 더 흥분한다.
진정시킨다는 것을 깜빡하고 되레 화를 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다.
천천히 잘 설명해도 모자랄 판에······.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다.
이제야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알아차린 민서는 태세전환을 시도한다.
“미안해! 엄마! 지금 뭔가 오해가 있어서 그래! 나 아무 남자 막 만나고 다니는 여자 아니라는 거 알잖아! 어?! 내 말 좀 들어봐!”
뚝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전화를 계속 걸어봤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다.
재성에게도 전화해보지만 받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휴게실에서 앉아있던 민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는다.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아저씨! 빨리요!”
“가만 좀 있어 봐요, 빨리 가는 중이니까”
진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급한 자신과는 다르게 이 인간은 천하태평이다.
계속 전화를 해보지만, 여전히 받지 않는다.
“신호 바뀌었잖아요! 급하다고요!”
“앞차가 안 가는데 나보고 어찌하라고요!”
다급했는지 앞에 차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기분 탓으로 느낀 것뿐 택시기사는 최선을 다해 빠르게 가고 있다.
맘 같아서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도착하고 택시에서 내리려 하는데
“이봐 아가씨! 계산은 하고 가야지!”
급하게 계산을 마치고 빛의 속도로 집으로 뛰어간다.
집에 도착하자 누군가 문을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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