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빅더블유 님의 서재입니다.

잔인한심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완결

빅더블유
작품등록일 :
2020.02.21 06:30
최근연재일 :
2020.04.08 20:39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098
추천수 :
4
글자수 :
198,226

작성
20.03.10 21:26
조회
23
추천
0
글자
11쪽

14화 앞으론 조심해!

DUMMY

“......!”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뱉은 말이로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실제로 맹수 앞에서는 죽음의 위험을 느껴 엄청난 두려움에 떤 채로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을 노려다 보는 민서를 떨린 눈으로 마주하는 재성


아무 생각이 안 들고 침묵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민서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흥분하지 않은 차분한 톤이지만 하는 말이 참 가관이다.


“내가 질투할 거라 생각했나?”


“......!”


저건 내 말투인데······.


자신에게 존댓말을 해온 민서에게 처음으로 듣는 짧은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건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머릿속이 하얘지기만 한다.


마비된 체 떨린 눈으로 바라보는 재성에게 이젠 더 짧게 말한다.


“왜 가만히 있지? 무슨 말이라도 하지 그래?”


미안해, 잘못했어, 실수였어, 제발 화 풀어, 앞으로 안 그럴게 등등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투피스가 쓰리피스라는 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인 루피가 폐왕색 이란 걸 쓰자 사람들이 거품 물고 기절한다는데 어느 정도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 기절한 척 쓰러질까 고민도 해봤지만, 굉장히 어색한 연기에 속아줄 것 같지 않고 지금보다 더 심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극한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입술을 연다.


“미안해······. 한변······.”


재성의 말을 자른다.


“사과 말고, 근거”


단순히 민서를 달래주는 것만을 생각한 재성은


질투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민서의 질문을 잊었다.


“근거라면······.”


“잊었나?”


대사만 보면 민서와 재성이 하는 말을 반대로 착각할 것이다.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다.


근거가 무슨 소리고 뭘 잊었는지 말하는 그녀의 말을 여전히 모르는 재성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현재 재성의 기억 속에는 민서가 살기를 뿜어낸 이후 처음으로 말했던 ‘미안해 한변’ 이전의 기억은 없다.


“뭘 말하는 건지······.”


“근거,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하는 근거”


이제야 민서의 말을 알아차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은 여전하다. 미세한 움직임조차 조심해야 한다.


질투한다고 생각하는 근거······.


생각해 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 내야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최대한 기분 안 나쁜 방향으로 포장해서 말해야 한다!


“빠져나갈 생각 하지 마시죠”


아무래도 독심술을 터득한 모양이다.


“......”


“뭐?”


“그게 그러니까······.”


그럴싸하면서 잘 포장된 말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도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공포로 가득 찬 지금 이 상황이 더 어렵게 만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데······. 돌파구가 잇을 것이다.


“뭐!”


“......!”


살기를 내뿜은 이후로 처음으로 차분한 목소리에서 톤이 올라갔다.


이제 더 이상의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그럴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민서가 보챈다.


“뭐냐고!”


빨리 대답하라고 보채는 민서의 말에 자신의 만행을 느끼게 해주었다.


며칠 전 그녀에게 이렇게 보채는 듯 말하고 짜증 내자 별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도저히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불가능이다!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그냥 솔직해지기로 한다.


“한변이······. 세린씨가 나타난 이후부터······.”


솔직해지기로 했지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무슨 이유에서든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할 금기어인 ‘세린’을 꺼냈으니······.


“뭐! 세린씨?!”


이번엔 목소리가 더 커졌다.


눈에 뵈는게 없어 보이고 귀청이 떨어질 만큼의 큰 목소리다.


여전히 재성은 왜 목소리가 더 커졌는지 모른다.


두려움에 갇힌 나머지 생각조차 못 한다.


내 입술이 어떻게 지껄이는지 운에 맡긴 채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아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그 뭐냐! 뾰로통! 그래 맞아 뽀로통한 표정도 짓고”


재성의 목소리가 자유분방하게 흥분한다.


민서 앞에서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질투하는 게 귀엽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돌아왔지만 민서가 주는 공포는 여전하다.


“그게! 그······. 잠깐! 이야 잠깐! 그! 그! 그리고! 장난으로 할 말인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


“하······.”


흥분한 재성과는 대조되게 어이없다는 듯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민서의 한숨소리


그리고 갑자기 살기가 가라앉더니 재성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또각또각


단 세 걸음 만에 바로 앞까지 온 민서


진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두 눈을 질끔 감는다.


이제 난 벌 받을 준비가 됐다!


될 대로 되라지!


푹-


“윽”


온 힘을 다해 민서는 감정이 실린 주먹으로 재성의 복부를 가격한다.


그리고는 재성을 안는다.


“......!”


처벌이 아닌 구원을 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그럼 그다음은 다시 처벌인가 하고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한 채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어후! 진짜! 왜 그랬어요?! 내가 얼마나 속상했던 줄 알아요?”


“......”


다시 그녀만의 하이톤으로 돌아온 목소리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진 않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짧은 시간 느꼈던 극도의 공포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짜릿하면서 달콤하다.


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다시 내 여자로 돌아왔다.


“다른 여자가 흑심 품지 않게 조심해요”


“응······.”


“오해할만한 행동도 하지 말고요!”


“알았어, 미안해 한변······.”


협박이라는 건 이렇게 하는가 보다.


뭐가 어떻게 됐든 지금 이 상황을 오래 느끼고 싶다.


내 여자가 너무 달콤해서······.


***


결국, 전쟁이 끝나고 식당에 온 재성과 민서


말 한번 잘못 했다가 크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재성


애초부터 질투에 빠진 민서를 위로하고는 식당에 오려 했지만


고속도로 잘못 빠져서 개고생한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


그냥 좋게 끝날 걸 왜 질투하니까 귀엽다는 어디 그런 멍멍이 같은 막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민서


순식간에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한 느낌


재성은 그녀의 질투가 폭발했을 때의 공포가


민서는 자신이 몰아붙일 때 공포 속 재성의 모습이 생각난다.


서로가 짧은 시간에 지금까지의 모습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모습을 봤다.


“무슨 자기 방송에 출연하라고 하는지 참 웃기지 않아요?”


“그러게······.”


아직 세린의 안티팬에서 탈퇴한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임자 있는 남자인 거 알면서 그리고 그 임자가 나인 것도 알면서!


왜 그렇게 살갑게 구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고 짜증 나는 여자다.


“평소에 유튜브를 많이 보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거는 처음인데······.”


“나도, 그리고 난 유튜브 잘 보지도 않아”


질투로 인해 알게 된 그녀의 무서운 모습이 생각나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관두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여자에게 잡혀 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어쩌면 앞으로 그녀의 의견을 조금의 반항도 없이 순순히 들어줘야만 할 것 같다.


“근데 그거 알아요? 그때 왜 인터뷰 했을 때요. 댓글도 많이 달리고 막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난 안 봐서”


일반적으로 자신의 연극배우 생활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 세린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인들의 길거리 인터뷰’라는 색다른 콘텐츠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때 당시 인터뷰했던 다른 커플들도 많았지만, 그중에 선남선녀 같은 재성과 민서에게 특히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거기다가 남자는 만난 지 5년이나 됐다고 하는데 여자는 일주일이라 하고


그러더니 처음 만난 시점은 5년 전이라는 같은 대답과 첫사랑은 서로를 가르치는 둘에게 시청자들이 굉장히 궁금해했다.


그래서 세린이 재성과 민서를 자신의 방송에 초대한 이유였다.


“검사님 이제 앞으로 우리 문화생활 좀 많이 해요”


아무리 유튜브에 관심이 없다 해도 자신이 나온 방송조차 안 보다니


정말 노는 거나 문화생활에는 먼지만큼의 관심도 없다고 생각해 그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나로 인해 변화된 재성의 모습이 꽤 재밌을 것만 같아서


“뭐 어떤 게 있는데”


“음······. 일단은······.”


이럴 때 보통 재성 같았으면 생각하는 민서에게 ‘뭐’, ‘뭔데’라는 식으로 보채듯이 말하겠지만


좀 전에 질투로 인해 살기를 내뿜었던 민서에게 똑같이 당한 후로 자신의 만행을 깨달아 앞으로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다.


할 때는 몰랐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돼보니 멍멍이 같은 기분을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 때린 사람은 모르거나 쉽게 잊지만 맞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


“영화나 연극, 뮤지컬, 아니면 음, 콘서트 같은데 자주 가요”


“나야 뭐 상관없어”


“정말요? 이런데 잘 안 가본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근데 이렇게 쉽게 승낙 하는 거예요?”


재성은 민서가 나열한 문화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로 안 가봤지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 싫어 한 건 아니었다.


어딜 가든 상관없다.


즐거워하는 민서의 모습이면 충분하다.


***


온종일 질투로 속만 끙끙 앓아오고는 한순간에 없어지면서 후련했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를 보낸 민서는 집으로 들어온다.


질투 때문에 생긴 분노로 인해 재성의 복부를 가격한 뒤 그의 품에 안긴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까지 그의 품에서 느낀 느낌 중 가장 포근했다.


분노의 감정이 씻겨져 내려가 포근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하······. 또 느끼고 싶다.”


어느덧 재성에게 한껏 취한 자신을 뒤로하고 컴퓨터로 향한다.


매일 확인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한지연의 재심신청 결과다.


한번 재심을 한다면 다시 같은 사건과 이유로 다시 재심을 신청할 수 없는데


나조차도 없는 무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라도 잇는 건지 의문점이 든다.


그래도 뭐 안 하는 것보단 일 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실험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한지연의 사건번호와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글자를 보고 놀란다.


‘재심신청승인’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잔인한심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39화 결혼생활 20.04.08 30 0 10쪽
38 38화 그토록 원해왔던 순간 20.04.07 25 0 10쪽
37 37화 심판의 날 20.04.06 22 0 11쪽
36 36화 혼자가 아닌 둘 20.04.05 24 0 11쪽
35 35화 드러나는 진실 20.04.04 26 0 10쪽
34 아침이 오기 전 새벽 20.04.02 20 1 12쪽
33 33화 반격 20.04.01 20 0 12쪽
32 32화 새어나오는 불안감 20.03.31 17 0 11쪽
31 31화 가까워지는 진실 20.03.30 17 0 10쪽
30 30화 내 심장 고칠수 있어? 20.03.29 20 0 11쪽
29 29화 이러면 안되는데...... 20.03.28 22 0 11쪽
28 28화 눈치없는 심장 20.03.27 20 0 11쪽
27 27화 하루만 데이트, 응? 20.03.26 17 0 11쪽
26 26화 아프다 20.03.24 23 0 11쪽
25 25화 잔인한 심판 20.03.23 18 0 11쪽
24 24화 잔인한 말 20.03.22 17 0 11쪽
23 23화 믿을수 없는 말 +2 20.03.20 27 1 11쪽
22 22화 조금 더 가까이 20.03.19 21 1 11쪽
21 21화 같이 살면 어떨까? 20.03.18 17 0 13쪽
20 20화 날 어디까지 생각해요? 20.03.17 18 0 12쪽
19 19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20.03.16 25 0 12쪽
18 18화 위로가 되는 사람 20.03.15 18 0 12쪽
17 17화 엇갈린 운명 20.03.13 20 0 11쪽
16 16화 재성님이라 부를래요 20.03.12 19 0 12쪽
15 15화 살아가는 이유 20.03.11 22 0 12쪽
» 14화 앞으론 조심해! 20.03.10 24 0 11쪽
13 13화 폭발하는 여자 20.03.10 23 0 12쪽
12 12화 짜증나는 질투 20.03.09 28 0 11쪽
11 11화 질투의서막 20.03.09 28 0 12쪽
10 10화 내옆에 있어줘서 참 다행이다 20.03.08 27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