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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더블유 님의 서재입니다.

잔인한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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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빅더블유
작품등록일 :
2020.02.21 06:30
최근연재일 :
2020.04.08 20:39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103
추천수 :
4
글자수 :
198,226

작성
20.03.11 18:16
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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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2쪽

15화 살아가는 이유

DUMMY

‘재심신청승인’


너무 기쁜 나머지 어느덧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고통의 감정이 씻겨져 내려가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에 냉정해지기로 한다.


흘러내리지 않도록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장소, 시간, 날짜등 기본적인 정보를 쭉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또 한번 놀라게 만드는 글자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한지연의 재심사유였다.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하······.”


참지 못한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멈출 줄 모른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언니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 때문에 생각조차 못했던 사실


언니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게 고통스럽다.


(나 정말 아니야! 나 아니라고! 나 아니야! 흐윽 흑)


4년 전 재판 때 처절하게 울부짖었던 언니의 모습, 마치 어제 일처럼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까지 4년 동안 노력했지만, 진범을 찾지 못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인간의 꼬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완전범죄라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이냐는 잔인한 생각마저 들면서 날 더 처절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난······. 뭐한 걸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를 보호해주는 변호사


변호사가 된 이유 단 사람 때문이었다.


***


재성 역시 민서와 마찬가지로 한지연의 재심신청결과를 확인한다.


그도 역시 지금까지 수시로 확인해 왔다.


그리고 놀라는 부분도 겹친다.


‘재심신청승인’과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놀라운 감정은 유사하지만 슬픔의 감정인 민서와는 다르게 그의 눈엔 어느덧 증오가 묻어난다.


동생이 죽고 난 후 며칠간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집에 틀려 박혀서 하루가 가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폐인처럼 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동생일 죽인 여자는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살아갈 테니까


14년의 형을 마치고 평범한 여자로 살아갈 테니까


“하······.”


가슴이 미어질 만큼 증오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뒤틀린 감정을 뒤로하고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증거이자 사법기관의 위법행위를 여실히 보여주는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하지만 증거는 없다.


증거가 있다 해도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허위자백’이라는 글을 보고 아주 잠깐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정말 이 여자는 어디까지 바닥인 걸까


사람 죽인 그것도 모자라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모습이 바닥에 밟힌 채 살려고 몸부림치는 벌레의 모습처럼 징그럽다.


발버둥 못 치게 숨도 못 쉬게 더 세게 밟아버리고 싶다.


죄인에게 벌의 무게를 알려주는 자, 검사


검사가 된 이유 단 한 사람 때문이다.


***


지금까지 어제와 다르게 재밌게 떠들어대는 민서 덕분에 방 안에 있는 직원들은 그녀의 질투가 풀렸을 거라 확신한다.


불과 하루 만에 다시 잘 웃고 잘 떠들어 대는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4년 동안 가장 기쁜 날이기에 저절로 밝은 기류가 흐른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말하게 된다.


재성이 잠깐 나가자 눈치를 살피던 주현이 민서를 바라본다.


방 안에 있는, 직장동료인 두 명의 변호사도 궁금한 눈초리다.


“어제 검사님하고 뭐 했어요?”


“밥 먹었어요”


뿌듯하다는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민서


언니의 재심신청승인과 더불어 재성도 그녀의 밝은 기류에 일조했다.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올린다.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재성이 무슨 사고를 치는 게 아닌지 하고 주현과 직장동료들은 사실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극도의 분노로 갔다가 기분이 풀어지면서 내려간 낙차가 큰 롤러코스터를 탄 어제를 회상한 민서


자신을 향한 궁금한 눈초리를 읽고 설명을 시작한다.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질투하니깐 귀엽다고”


순간 일제히 놀란다.


민서는 아직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재성의 정강이를 차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처럼 화났던 순간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당황했던 재성의 모습을 생각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날카로운 그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피식 나온 웃음이 더 커진다.


이번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궁금한 눈초리로 민서를 바라본다.


“어~우 진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검사님 진짜 대단하시다.”


“그렇게 화났던 적도 없었네요”


“그래서 한변, 어떻게 했어요?”


생각해 보니 살기를 품은 채 재성을 대했을 뿐 자신이 딱히 한 말은 없었다.


마땅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질투에 휩싸인 체 아무것도 뵈는게 없고 분노로 가득 찬 그때 당시의 심경을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충 둘러대기로 한다.


“막 짜증 냈죠. 그러더니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분 풀렸어요?”


“어차피 저밖에 없는 거 아니까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민서의 표정과 어울리는 당연한 답


익살스러운 멘트에 민서를 제외한 모두가 간지러운 듯 몸을 부르르 떤다.


반면 민서는 아직도 그 당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이 귀에 걸릴 듯 말 듯하다.


어쩜 그런 말을 하고도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신기해한다.


“어~우 한변 밖에 없다구요?”


“당연하죠~”


“어쩜 그런 말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할 수 있죠?”


“사실이니까요~”


재성과 민서의 연애 방송을 지켜보는 게 즐겁지만 여기까지 듣는 거로 한다.


너무 들으면 셈나니까


***


며칠 후


“네?! 신청이 안된다고요?!”


민서는 재심 때 언니의 변호사로 신청하기 위해 법원으로 왔다.


하지만 직원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이미 누가 한지연 씨의 변호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누가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재판의 개인적인 정보들은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


언니가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을 변호사로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하는 민서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지연 씨는 알고 있는 건가요? 자신을 변호해줄 사람이 누군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한지연 씨가 직접 신청한 건 아니죠?”


“모릅니다”


계속 모른다고만 말하는 직원은 정말 모른다.


한지연이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직접 자신의 변호를 맡을 사람을 신청했는지 안 했는지


단순히 이미 누군가가 그녀의 변호를 맡게 됐다고 전달받았고 바꿀 수 없다는 것만 알 뿐이다.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이게 말이 되냐고요!”


“저보고 뭐 어쩌라는 겁니까”


왜 자기한테 따지는지 이해가 안간다.


단순히 전달받은 대로만 했을 뿐이니까


계속 민서가 따지게 되자 결국 직원들에 의해서 쫓겨나게 된다.


“아! 이거 놔요!”


두 명의 남자는 민서를 잡고 있던 팔을 놓고 말한다.


“소란 피우지 마시고 그만 가세요”


내팽겨진 민서는 한동안 말없이 두 남자가 가는 걸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다시 들어가도 내팽개치기만 할 뿐 좋아질 게 없다고 판단한다.


“어쩔 수 없지 뭐······.”


***


언니의 재심신청승인을 확인하고 처음 만난다.


유리창 너머로 지연이 걸어온다.


“언니 재심신청 승인된 거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었어”


민서는 지연을 보자마자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언니가 알든 모르든 기쁜 소식을 말하고 싶었다.


4년 동안 교도소에서 본 언니의 제일 밝은 모습이다.


지연은 당연히 자신의 동생 민서가 변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연이 직접 자신을 변호해줄 사람을 신청하지 않았다.


“재심 때 누가 이미 언니의 변호인으로 신청했다고 하더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는 민서


“누가?”


“언니도 몰라?”


“응”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가는 민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를 제대로 변호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오늘 법원에서 언니 변호인으로 신청하려 했는데 누군가 벌써 신청했다 하더라고”


“뭐?! 누군데?”


“모르겠어, 안 알려 주더라고”


둘은 동시에 한숨을 쉰다.


재심신청이 승인돼서 한껏 기대에 차올랐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맨 기분이다.


현재로선 재심이 열리기 전까지 누가 지연의 변호를 맡았는지 알 길이 없다.


“맞다 언니, 왜 나한테 말 하지 않았어······.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백하게 되었다고······.”


“......”


그날의 아픈 기억을 회상하는 지연


계속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그때 당시 경찰은 믿지 않았다.


증거가 확실한데 계속 아니라고 할 거냐고, 순순히 죄를 인정하라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일 수 있다고 몰아붙였다.


끝까지 아니라고 하자 결국······. 모텔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구타와 강간을 당하고 결국 원하는 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였다고······.


결국, 강제로 이수지를 죽였다는 자백서를 쓰게 되고 끔찍한 시간이었던 모텔에서 빠져나올 수 잇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판이 열리고 결국 살인죄로 14년을 받게 되었다.


이미 늦었다. 아니라고 말해봤자 결정적인 증거에 자백까지 있으니······.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동생에게조차······.


“말하기 힘들지······?”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연


아픈 기억을 떠올리느라 그날의 상처가 다시 느껴진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민서로서는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답답하게 느껴진다.


물론 상처가 크겠지만 자신에게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아줄 것이냐 이 말이다.


알아야 증거를 밝히든 뭘 하든 할 텐데 아프다고 속으로만 갖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 미안한데 나한테 말해줘······. 그래야 내가 해결하든 뭘 하든 하지, 가만히 언니만 알고 있으면 누가 믿어주겠어, 안 그래?”


“......”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힘들지만, 동생에게만큼은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연


지연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아니라고 말로만 떠들어 봤자, 오히려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만 있을 뿐이지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다고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무거운 입술이 열린다. 말하기에 너무 가슴 아픈 고백이 시작된다.


지연은 그때 당시 있었던 일을 민서에게 말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가······. 내가······. 죽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


“......”


4년 전 어쩔 수 없이 자백을 하게 됐던 상황에 관해 설명을 마친 지연


말하는 내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말하는 순간마다 제대로 입 밖에서 나오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겨우 말할 수 있었고 끝났다는 생각에 이제야 안도감이 온다.


“하······.”


“......”


“한지연 씨 접견시간 종료 됐습니다”


민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왜 그동안 자신에게조차 말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혼자만 앓아오면서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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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결혼생활 20.04.08 30 0 10쪽
38 38화 그토록 원해왔던 순간 20.04.07 25 0 10쪽
37 37화 심판의 날 20.04.06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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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드러나는 진실 20.04.04 26 0 10쪽
34 아침이 오기 전 새벽 20.04.02 20 1 12쪽
33 33화 반격 20.04.01 20 0 12쪽
32 32화 새어나오는 불안감 20.03.31 17 0 11쪽
31 31화 가까워지는 진실 20.03.30 17 0 10쪽
30 30화 내 심장 고칠수 있어? 20.03.29 20 0 11쪽
29 29화 이러면 안되는데...... 20.03.28 22 0 11쪽
28 28화 눈치없는 심장 20.03.27 20 0 11쪽
27 27화 하루만 데이트, 응? 20.03.26 18 0 11쪽
26 26화 아프다 20.03.24 23 0 11쪽
25 25화 잔인한 심판 20.03.23 18 0 11쪽
24 24화 잔인한 말 20.03.22 17 0 11쪽
23 23화 믿을수 없는 말 +2 20.03.20 27 1 11쪽
22 22화 조금 더 가까이 20.03.19 21 1 11쪽
21 21화 같이 살면 어떨까? 20.03.18 17 0 13쪽
20 20화 날 어디까지 생각해요? 20.03.17 19 0 12쪽
19 19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20.03.16 25 0 12쪽
18 18화 위로가 되는 사람 20.03.15 18 0 12쪽
17 17화 엇갈린 운명 20.03.13 20 0 11쪽
16 16화 재성님이라 부를래요 20.03.12 19 0 12쪽
» 15화 살아가는 이유 20.03.11 23 0 12쪽
14 14화 앞으론 조심해! 20.03.10 24 0 11쪽
13 13화 폭발하는 여자 20.03.10 23 0 12쪽
12 12화 짜증나는 질투 20.03.09 29 0 11쪽
11 11화 질투의서막 20.03.09 28 0 12쪽
10 10화 내옆에 있어줘서 참 다행이다 20.03.08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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