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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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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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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696

작성
23.11.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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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달빛 아래에서

DUMMY

“내가 아는 교족이 있는데, 마침 그 집에 아직 장가를 못 간 막내아들이 있어. 그 아비에게 바림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주 마음에 든다는구나. 네 생각에는 어떠냐?”


“왜 제 생각을······”


소우는 시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애꿎은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너는 바림에게 오라비나 마찬가지 아니냐?”


소우는 또 버릇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맞는 말이었다. 바림은 그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고, 아마 소우가 유도에서 늙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우가 바림에게 오라비가 아닌 남자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진 것이라고는 반편인 몸뚱아리가 전부인 사람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소우가 별말이 없자 시해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바림이 제 아비에게 지극정성이지 않느냐? 전부터 일구를 통해서 바림에게 이런저런 혼처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그때마다 단칼에 거절하더라. 아버지를 두고 어디를 가느냐며.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그 집안에서 골패까지 건사해 준다더라.”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다. 교족들은 수괴 사냥 덕에 돈이 많고, 유족 처녀들 중에는 교족에게 시집간 이들도 적지 않으니, 바림은 교족들의 마을에서도 외롭지 않고 유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광증이 있는 아버지까지 시집에서 건사해 준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바림의 효심이 하늘도 감복한 모양이네.’


소우가 미소 짓자, 시해가 말을 더했다.


“그 집안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용한 도사가 있다더라. 그 도사의 도술이면 광증을 고칠 수도 있단다.”


그러고는 소우의 손을 슬쩍 잡았다.


“네가 바림에게 잘 말해줘라. 일구의 말은 안 들어도 네 말은 들을 거야.”


소우가 대답했다.


“네, 어르신. 그렇게 해야죠.”


“바림!”


골패가 식사하다 말고 바림을 찾았다. 그는 좌우로 고개를 휙휙 돌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구는 골패의 허리에 묶은 끈을 휙휙 잡아당겼다.


“어서 밥이나 드쇼.”


“바림······”


골패는 입에 음식이 든 채로 바림의 이름을 몇 번 더 중얼거리더니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일구가 투덜거렸다.


“아무리 딸이 최고라지만 소우 생각도 좀 해요. 피 한 방울 안 섞인 놈이 자기 때문에 애쓰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정신 나간 사람이 뭘 알겠어?”


하며, 일구의 아내 세나가 불쑥 등장했다. 그녀는 양손에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일구가 빈 그릇을 치우자, 세나는 그 자리에 새 음식을 내려놓았다. 일구가 빈 그릇을 그녀에게 건네며 한마디 했다.


“말조심해. 귀까지 먹은 줄 아나······”


“알아듣지를 못하니 귀머거리나 마찬가지지.”


세나가 샐쭉하게 말했다.


“도도랑 바림은?”


“바쁜 애들은 왜 찾아요?”


“끼니는 챙기나 걱정돼서 그러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서방님은 진지나 드시오.”


일구가 세나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세나는 “아잇, 젊은 양반이 벌써 노망났나?” 하며 성을 내면서도 허리를 흔들어 대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골패가 놀란 듯 고개를 번쩍 들고는 다시 바림을 찾았다. 그러나 온 마을 사람들로 왁자한 잔치 자리 어디에도 바림은 없었다. 골패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서는 “바림, 바림······”하고 중얼거리며 입 안으로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바림은 세나의 말대로 부엌에서 일을 돕느라 정신없었다. 씻고, 닦고, 썰고, 젖기를 몇 시간째 하니 손가락 끝이 퉁퉁 붓고 마디마디가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쩌다 한 번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볼 때면 저도 모르게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동네 아낙들은 어떻게든 바림을 교족의 눈에 들게 하려 수선을 떨었다. 몇 번씩이나 그녀를 불러서는 술상을 날라라,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며 부엌 밖으로 내보내려 성화였다.


아낙들의 속내를 아는 바림은 그때마다 당장 맡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거나 볼일이 급하다며 뒷간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처녀 혼자서 교활하고 약은 아낙들을 상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서 닭 한 마리만 잡아 와라.”


“이것만 하고요.”


바림의 대꾸에 아낙들은 그녀가 들고 있는 식칼을 빼앗더니 양쪽에서 아예 한 사람씩 그녀의 팔을 붙들고 부엌에서 쫓아내다시피 내보내는 것이었다.


“얼른! 바빠 죽겠어!”


바림은 별수 없이 닭장으로 향했다.


‘얼른 닭만 잡아 오면 되지.’


바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닭장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음식을 나르는 여자들이 그녀를 불렀다.


“할 일 없으면 음식 좀 날라라.”


“닭 잡아 오래요.”


“그건 우리가 할게.”


하며, 그들은 바림의 손에 억지로 그릇을 들렸다. 순식간에 두 손을 잃어버린 바림은 잔칫상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빨리 나르고 가야지.’


하며, 바림은 되도록 유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만 움직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족들 사이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바림을 교족들의 자리로 등 떠미는 것이다. 온 마을이 나서서 그녀의 혼사를 돕고 있었다. 바림 혼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바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느 교족과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빈 그릇을 치웠다.


마침 바림 옆에 앉아있던 젊은 교족 남자 하나가 그녀를 보고는 말을 붙였다.


“술이 다 떨어졌소.”


“네.” 하며, 바림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러났다. 그러나 몸을 돌이키기 전 잠깐 고개를 든 사이에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남자는 바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바림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바림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얼른 자리를 떴다.


도망치듯 부엌으로 가는 내내 바림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알아봤을까?’




잔치는 해가 지도록 계속되었다. 시해의 종들이 하나둘씩 등에 불을 밝히자, 교족들은 흥이 돋았는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기이한 울음을 터뜨렸다. 영락없는 늑대의 울음이었다. 긴 울음은 몇 분간 계속되었다.


그 소리에 소우의 깃털이 저도 모르게 바짝 섰다. 그러나 유족들은 익숙한 듯 저들끼리 웃고 떠들 따름이었다.


이윽고 시해가 부른 악사들이 악기를 들고 나타났다. 그 뒤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들도 안뜰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족들은 벌써 엉덩이를 들썩이며 환성을 내질렀다.


악사들이 곡을 연주하자 기생들은 교태로운 미소와 함께 춤사위를 시작했다. 교족들은 흥을 이기지 못하고 기생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췄다.


소우는 구석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배가 부른 골패는 꾸벅꾸벅 졸며 잠꼬대로 바림을 찾았다. 소우는 골패의 머리를 제 어깨에 고이고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락이었다. 경쾌하고 가벼운 바람 같은 가락이었다. 기생들의 춤은 마치 그 바람결에 날개를 맡기고 자유롭게 비행하는 나비 같았다. 가볍게 구부린 손가락은 귀한 꽃을 쥔 선녀의 섬섬옥수와 다름없었다.


땅을 밟는 것인지 구름을 밟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발끝은 부드럽고 산뜻했다.


악사의 음악 소리에 구름이 놀란 듯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밝은 달빛이 선녀의 옷자락처럼 시해의 안뜰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달빛은 기생들을 한 번 훑고는 어딘가에 머물렀다. 그곳에 바림이 서 있었다.


바림은 음식을 한가득 담은 소쿠리를 들고 서서 소우를 불렀다.


“소우!”


“바림!”


소우가 마주 인사하기도 전에 골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우의 어깨는 골패의 멀건 침으로 흥건했다.


소우는 멋쩍은 기분으로 바림에게서 소쿠리를 받아 들었다. 대신 바림은 소우에게서 골패를 붙든 끈을 받아 들었다.


“좀 더 있을까?”


“그래, 너는 온종일 일만 하느라 잔치는 즐기지도 못했지?”


소우의 말에 바림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 말이야. 아까 기생들 구경하는 눈빛이 아주 신났던데?”


“뭐? 아냐!”


소우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바림은 벌겋게 물든 그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던데?”


“내가 언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골패는 그들의 목소리를 음악 삼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기생들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는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주변에 있던 유족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아버지!”


바림이 잔뜩 성난 목소리로 골패를 말렸지만, 골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림이 소우에게 말했다.


“얼른 가자. 또 무슨 사달이 날까 겁난다.”


소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림은 아예 골패를 묶은 끈을 잡아당겼다. “아버지, 가요! 안 가면 혼자 두고 우리끼리만 갈 거예요!” 그 말에 골패가 “안 돼!” 하고 소리치며 바림의 손을 붙잡았다.


시해의 집을 나서자마자 어두운 밤거리가 나타났다. 그 밝은 등불도 거리를 비추지는 못했다. 세 사람은 달빛을 등불 삼아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소우와 바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패가 버릇처럼 바림을 부르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을 내뱉는 것이 전부였다.


소우는 시해와의 대화를 곱씹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곱씹은들 그가 원하는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바림을 교족에게 시집보내지 않고 골패와 함께 셋이서 단조마을에서 오손도손 살 수 있는 해결책 말이다.


소우는 바림을 보내줘야 한다는 이성과 되도록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 사이에서 온몸이 양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속내를 알 리 없는 바림은 그저 소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영 신경 쓰였다.


“에고, 에고, 삭신이야.”


바림은 앓는 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제보다 손님이 갑절은 온 것 같아. 온 산에서 장작을 해와도 모자랄 지경이더라. 우물을 몇 번이나 갔다 왔는지 몰라. 닭을 거의 스무 마리는 잡은 것 같아.”


“설마.”


소우가 웃자 바림이 목소리를 높였다.


“말도 마! 돼지도 10마리는 넘게 잡았다던데? 술은 또 어찌나 마셔대는지······ 교족들은 온 산을 뛰어다니는 게 일이라서 그런지 정말 많이 먹는 것 같아. 하하하! 웃긴 게 뭔지 아니? 그 와중에 도도가 교족 남자랑 눈이 맞아버렸지 뭐야? 뭐, 자기 말로는 아버지 어머니와 한동네에서 살고 싶다는데, 오늘은 온종일 그 남자 얘기만 하더라.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바림은 쉴 새 없이 지절거렸다. 소우의 흥미를 돋울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의도와 다르게 소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오히려 바림은 어느새 제 말에 푹 빠져버려서 소우의 눈치는 살피지도 않았다. 그러나 소우에게는 그마저도 위로가 되었다.


바림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여느 소녀들처럼 천진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우는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런 소우의 마음도 모르고 바림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는 소우의 태도가 성의 없다고 생각했는지 짜증을 냈다.


그때 누군가 저 앞에서 요란하게 넘어졌다. “아유, 아프겠다.” 바림이 짜증도 멈추고 걱정할 정도였다. 놀란 골패는 버둥거리며 이상한 신음을 냈다.


심하게 넘어진 듯, 그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소우는 바림에게 짐을 맡기고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소우가 부축하려는데, 어쩐지 그에게서 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소우가 그의 팔을 붙잡고 그의 몸을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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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괜찮아 24.03.22 7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6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7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6 0 11쪽
52 재회 24.03.11 7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7 0 12쪽
48 24.03.01 7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6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7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6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6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6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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